『한국인 아나키즘 운동의 이면지도자 우당 이회영 지사 전기』12 상해노동대학과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 ⑵

대모달201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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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東方無政府主義者聯盟), 자유연합적 국제연대운동의 효시

 

1928년 5월 상해로 철수한 이을규(李乙奎)·이정규(李丁奎) 형제와 화암(華岩) 정현섭(鄭賢燮) 등은 재중국조선무정부공산주의자연맹(在中國朝鮮無政府共産主義者聯盟)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단체는 곧 4년전 폐간된《정의공보(正義公報)》를 복간하는 의미에서 그해 6월 1일자로《탈환(奪還)》을 발간하며 아나키즘 사상을 선전하기 시작했다. 또한 중국, 일본과 대만 등 각국의 동지들과 협력하여 일제의 무력침략과 국제공산주의동맹(國際共産主義同盟)의 전횡에 맞설 새로운 국제연대기구의 결성을 모색했다.

 

아나키스트들의 국제연대운동은 1920년 10월 오스기 사카에[大杉榮]가 극동사회주의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상해로 밀항하면서 비롯되었다. 그는 제국주의적 침략에 반대하는 동아시아 아나키스트들이 상해에 모여 전체 대회를 열 것을 주창했으며 의열단(義烈團)의 단장인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과도 만나 일본의 민중혁명을 위한 연락 기관 설치에 동의했다. 1923년 9월 오스기 사카에가 아마카스 마사히코[甘粕正彦] 현병대위에게 살해당하자, 아나키스트들의 국제연대는 1926년경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와 류기석·이정규 등 한국인들과 대만 출신 임병문(林炳文) 등에 의해 계승되어 추진되었다.

 

이 무렵 북경에서는 코민테른의 지침에 따라 민족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연합전선 형성과 민족유일당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에 아나키스트들은 민족유일당 결성을 ‘무분별한 합작으로 인한 운동의 방기’로 보고 코민테른의 전횡에 맞설 아나키스트들만의 국제협력기구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1926년 여름 임병문은 상해에서 중국·일본·조선·인도 등의 아나키스트들로 구성된 국제적 연대조직을 결성하기 위해 준비회의를 가졌다.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의 비전운동에 큰 감명을 받고 아나키즘을 수용하게 된 단재는 오직 현 제국주의 제도에 대한 불평과 약소민족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아나키즘으로 동방의 기성단체를 변혁하여 다 같이 자유롭게 잘 살기 위해 이 운동에 참여했다고 진술했다.

 

류기석은 1926년 12월 한 신문에 아나키스트 대연맹의 조직을 주장하는 글을 싣고, 대회 이전의 예비대회를 열자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 대회를 위해 모임 장소와 시기를 비롯해 토론문제 등 참석자들이 토론할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제안했다. 이에 따르면, 대회의 발기인은 중국의 민종사와 민중사, 그리고 조선흑치단 등이 맡고, 먼저 동아시아 무정부주의자 대연맹 기성회를 조직해 각국의 혁명 방략과 연락 및 선전문제, 대회선언문 작성 등의 준비 사항을 제시했다.

 

이러한 준비 과정을 거쳐 1927년 9월 중국 천진에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東方無政府主義者聯盟)이 조직되기에 이르렀다. 즉 중국 광동성 출신의 아나키스트인 수건(修建)의 발의로 조선·중국·일본·대만·베트남·인도·필리핀 등 7개국 대표 120여명이 모여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를 통해 참석자들은 각기 자기 나라에서 서로 긴밀한 연락 기관을 설치할 것과 본부를 상해에 둘 것 등을 결의했다. 나아가 이들은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의 창립 목적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제 변혁과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잘 사는 이상사히를 건설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일본인으로는 사노 이지로우[佐野一郞]와 야다베 무우지[谷田部勇司] 등이 참여했다.

 

한국 측 대표인 단재는 일본 흑우회에서《현사회(現社會)》를 발행한 바 있는 이필현과 함께 대회에 참석한 이후, 결정 사항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1928년 4월 천진에서 한국인 중심의 아나키스트 대회를 개최했다. 대회 참석자들은 연맹의 선전기관을 설치하여 선전문을 세계 각국에 발송하고, 러시아인과 독일인 폭탄 제조기술자를 초빙하여 폭탄과 총기를 제조하여 일제 고관 암살과 식민통치기구 파괴를 꾀하기로 했다. 이들은 또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작성자는 단재였다.

 

“세계의 무산대중, 그릭 동방 각 식민지 무산민중의 피와 가죽과 살과 뼈를 짜 먹어온 자본주의 강도제국(强盜帝國) 야수군(野獸群)은 지금에 그 창자 배가 터지려 한다”고 포문을 연 단재는 “우리 민중은 알았다. 깨달았다. 그들 짐승의 무리가 아무리 악을 쓴들, 아무리 요망을 피운들, 이미 모든 것을 부인한,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세계를 울리는 혁명의 북소리가 어찌 갑자기 까닭 없이 멎을 쏘냐?”라고 혁명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설파했다.

 

단재는 이 선언문에서 한국만이 아닌 동양 사회의 혁명을 주장하면서 우리의 생존은 곧 우리의 생존을 빼앗은 적을 섬멸하는 데서 찾을 것이라며 투쟁으로 민중을 해방시키자고 주장하고, 우리 동방민족의 혁명이 만일 급속도로 진행되지 않으면 동방민족은 그 존재를 잃을 것이라면서 동아시아 민중의 단결과 투쟁을 강조했다. 이 북경회의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현재 전하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결의를 한 기록은 남아 있다.

 

"-불순을 극한 현하의 조선 민족운동 반대 -일체의 정치운동 부정 -사이비 혁명의 허식인 공산전제의 배척 -공산당 이용주의자의 애매한 사대주의 사상의 청산."-〈무정부주의 혁명 선언문〉, 신채호『단재 신채호의 독립운동 연구』, 안병직 저술

 

이후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은 활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했다. 북경우편관리국 위국위체계에 근무하는 대만인 임병문이 외국위체(환)를 위조하기로 한 것이다. 임병문은 외국위체 2백매를 위조 인쇄해서 북경우편관리국을 통해 일본·대만·조선·만주 등지에 있는 주요 32개소의 우편국에 유치위체(留置爲替)로 발송했다. 총 6만 4천원에 달하는 거금이었다.

 

임병문이 조선과 만주 지역을 맡고, 이필현은 일본 지역, 단재는 대만 지역을 맡아 돈을 찾아오기로 했다. 임병문은 1928년 4월 25일, 만주의 대련은행에서 위체 2천원을 대련화북물산공사의 장동화란 이름으로 찾아서 북경의 이필현에게 부치는 데 성공했다. 이에 고무된 그는 계속해서 일본 모지[門司]를 거쳐 고베에 도착해 일본은행에서 2천원을 찾으려다 그만 일본 경찰관들에게 체포당하고 말았다.

 

단재 역시 5월 8일 일본을 거쳐 대만 기륭(基隆)항에 상륙하려다 체포되어 대련으로 호송되었다. 또한 이필현과 이경원도 각각 천진과 고베에서, 그리고 중국인 양길경(楊吉慶)도 이 사건으로 체포되었으니, 일제가 얼마나 동방무정부주의자의 활동을 예의주시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임병문은 대련경찰서에서 심한 고문을 받아 8월에 사망하였다.

 

③ 한국의 아나키즘 운동이 진정한 독립운동이다.

 

단재를 비롯한 아나키스트들의 피체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의 활동이 위축되자, 류기석과 이정규를 비롯해 일본인 이카가와 가와라이[赤川哲來], 중국인 모일파(毛一派)·왕수인(汪樹仁)·등명선(鄧鳴選) 등은 조직을 재정비했다. 이들은 1928년 6월 14일 상해 프랑스 조계의 이매로에 위치한 화광의원에서 회합을 가졌다. 화광의원은 사천성 출신 등명선이 일본 유학 시절에 아나키스트가 되었다가 귀국 후 개원한 곳으로, 상해 아나키즘 운동의 중심지였다.

 

이에 한국·중국·일본 동지들을 비롯해 베트남·인도·필리판 등과 기타 6개국 지방 유지 대표 등 백수십명의 대표들이 대회에 참석했다. 그 결과 정식으로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일명 O.A.F, 이하 ‘동방A연맹’)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동방A연맹은 서기부 위원으로 이정규와 아카가와 가와라이, 모일파, 왕수인 등을 임명했다.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지사는 이 대회에〈한국의 독립운동과 무정부주의운동〉이란 제목의 글을 보냈다. 그는 한국의 무정부주의운동은 진정한 독립운동이라고 밝히고, 이번에 갖는 동방무정부주의자대회는 한국 독립운동을 위한 일이니 각국의 동지들은 적극적으로 성원하라며 참가한 각국 대표들에게 호소했다.

 

이 글의 원본은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우당이 얼마나 한국의 독립을 열망하며 세계 각국의 혁명운동가들에게 호소했을지 짐작할 만하다. 또한 그가 아나키즘을 한국의 독립운동과 같은 차원에서 바라보았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즉 우당에게 있어 아나키즘은 민족주의의 또 다른 형태인 동시에 완결형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혁명가의 호소는 곧 그 자리에 모인 각국 대표들에 의해 결의안 중 하나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이규창의 증언에 의하면, 동방A연맹은 이후에도 두 차례에 걸쳐 집회를 가졌는데, 중국 아나키스트 원로인 이석증과 오종휘, 호한민(胡漢民)과 노신 등이 참석했으며, 이석증이 배후에서 지도했다고 한다.

 

동방A연맹의 서기국은 제1차 사업으로 기관지《동방(東方)》을 발간했다. 이정규는 1928년 8월 20일자 창간호에〈동방무정부주의자에게 고한다〉라는 논문을 실어 동방 각 제국(諸國) 동지들의 단결을 강조하였다. 연맹의 원로격인 우당이 결성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묵란(墨蘭)을 실었다. 우당의 묵란은 그 필치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작품과 거의 비슷하여 웬만한 눈으로는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운란(雲蘭)이라는 높은 평을 받았다.

 

동방A연맹은 ‘철의 규율’을 강조하는 공산주의자들의 국제적 지도조직인 코민테른과는 달리, 각자의 또는 각 나라의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유연합적 사상을 갖고 자율자치 원칙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이에 따라 동아시아 민중의 해방운동을 지도해나가야 한다는 취지를 밝히고, 실제 그렇게 조직을 운영했다.

 

이 단체는 각 개인의 자유는 물론 각 민족의 자주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 긴밀한 연락 기관을 두는 한편, 서로 평등한 조직 형태를 추구했다. 류기석은 이 단체가 코민테른과 같은 명령기관이나 혁명의 총사령부가 아니므로 “세포를 가지지 않은 과대망상·광적인 공허한 대조직을 요구하지 않는다”면서, 자유연합주의 제도를 근저로 하는 평등한 조직을 추구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서로 각 민족이 협력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의식과 상호부조의 본능을 연맹의 기치하에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동방A연맹은 제국주의적 침략과 코민테른의 독재에 반대하는 동아시아 아나키스트들이 상호 연락과 원조를 위한 자유연합적 국제연대를 추구한 단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방A연맹의 앞에 놓은 운명은 너무나 가혹했다. 단재의 피체에 이어 1928년 11월 우당이 아끼던 청년 이정규가 상해 영사관 관헌에게 붙잡혀 국내로 압송되고 말았다.

 

우당은 장탄식을 금하지 못하면서도 서울에 있는 부인에게 이정규가 피검되었다는 소식을 그의 가정에 통보해 주도록 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단재와 이정규의 피체 소식으로 괴로워했던 우당은 자신도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연맹의 지도자급 인물들이 한꺼번에 일제에 체포됨에 따라 동방A연맹의 활동도 점차 위축되고 말았다. 하지만 사실상 연맹의 주도세력이라 할 만한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의 활동은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특히 류기석과 화암을 중심으로 한 재중국조선무정부공산주의자연맹은 1928년 6월 1일부터 기관지《탈환》을 발행하는 등 활동을 계속했다. 이들은《탈환》을 한·중·일 3개국의 언어로 번역하여 만주와 중국 관내를 비롯해 대만과 한국, 일본에까지 널리 배포했다.《탈환》은 1929년 5월, 6호까지 거의 격월로 발행되었고, 이듬해인 1930년 1월 7호가 간행되었다. 하지만 그 뒤 계속되는 자금난으로 제14호를 끝으로 간행이 중지되고 말았다.

 

재중국조선무정부공산주의자연맹은 또 상해부 명의로 1928년 7월 9일 ‘상해 교민에게 알린다’는 제목의 격문을 발행했다. 이 글에서 민족유일당 운동을 주도하던 한인청년동맹(韓人靑年同盟) 상해지부 내의 파벌 투쟁을 비판하고 혁명운동자의 자유연맹이 조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8월 19일에는〈신자치파인 공산당을 주토(誅討)한다〉는 글을 발표하여 공산주의자들의 전횡을 폭로했다. 또한 흑치단(黑幟團) 명의로 1929년 12월 25일자로〈자치권 획득 및 합법운동자 박멸 선언〉이라는 제목의 격문을 발표했다. 이 격문에서 이들은 “볼셰비키는 학생운동을 강간한 이후 합법운동을 절규했다. 그들은 어제까지는 절대 독립을 주장했으나, 지금은 자치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개량적 민족주의 운동과 공산주의를 함께 비판했다.

 

♣ 출처 ☞ 김명섭 저술『자유를 위해 투쟁한 아나키스트 이회영』역사공간 편찬(2008년 출판)

           ☞ 이덕일 저술『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웅진출판사 편찬 (2001년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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