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아나키즘 운동의 이면지도자 우당 이회영 지사 전기』16 정의와 도덕이 상실된 현대 사회에 던지는 우당의 질문

대모달201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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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방송 채널 TVN에는 20~30대 싱글 여성 30여명이 1명의 남성을 두고 3단계에 걸친 선택을 통해 연애 여부를 결정하는 쇼로, 2%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는『러브스위치』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 제목인『러브스위치』와는 너무 틀리게 ‘러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붕어빵에 붕어가 들어있지 않은 것처럼…. 월세 사는 단역배우가 싱글 남성으로 출연하자 여성들은 모두 “월세 사는 남자는 싫다”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심지어 월급 약 2백만원을 타는 중소기업 사원이 출연했을 때에는 “겨우 한 달에 2백만원밖에 벌지 못하면서 무슨 용기로 이 자리에 나왔느냐?”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출연자 가운데 어떤 미녀는 “신용카드를 주는 남자가 내 이상형으로 한 달에 1천만~2천만원 정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하여 대부분의 시청자들로부터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것은 물질 만능 시대로 전락한 대한민국 자본주의 사회의 타락성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수많은 경우의 한가지 예에 불과하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사랑과 우정의 기준이 ‘돈’이 되는 현상으로 접어들었다. 가진 돈이 많고 적은가 여부는 그 사람의 인격과 품위, 지식과 능력을 검증하는 잣대로 적용되었다. 겉으로는 다 아니라고 부정하겠지만 어느새 ‘돈’으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의 서열이 정해져 있고 ‘돈’으로 인해 신분과 지위의 현격한 차이를 보여주는 21세기판 봉건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는 인격·우애·도덕·가치관 등을 전부 파괴하고 인간사회를 금수사회로 변하게 한다. 돈 때문에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고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아기엄마가 아기를 살해해 사고로 위장하려 하는 흉칙한 뉴스를 보라. 서양 남자들에게 함부로 자신의 순결을 바치는 강남의 젊은 여성들을 보라. 이것을 어찌 금수사회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썩을 대로 썩은 대한민국 자본주의 사회는 현자(賢者)를 더욱 강하게 그리워지게 한다. 그래서 돌아가신 법정(法頂) 스님이 더욱 그립다. 과연 자본주의는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좋은 것인가? 인성(人性)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자본주의가 과연 대한민국을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 수 있을까?

 

대기업들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계속 먹고 싶은 돼지와 같아 소상공인들의 터전에까지 대형 할인 마트를 진출시켜 재래시장의 돈줄을 끊고 있다. 또 중소기업들과 불합리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갖은 혜택과 이윤을 독점한다. 그러면서 고용창출의 책임을 중소기업에게만 전가하고 정규직 고용에는 인색하다. 우리 나라에는 고학력자들이 너무 많아 그들의 학력과 교육 수준에 걸맞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야 하는데 대기업들은 온갖 스펙을 걸어 청년 대졸자 채용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하면서 외국인 고용에는 매우 열성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대체 어느 나라의 대기업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무리 명문대를 졸업하고 토익 고득점을 취해도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에 입사할 수 없다. 대기업 고위 임원의 자녀가 아니면 아무리 학력과 능력이 우수해도 절대 채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 부모를 만나 좋은 교육을 받고 대한민국 최고 직장까지 보장받아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이 출세하는 사람들은 ‘기회 균등의 원칙’을 어겨 계층의 고착화를 심화시키는 장본인들이다. 모든 국민이 균등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는 결코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국민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제대로 주지 못하는 나라는 부패하기 마련이고 결국 내부 혹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멸망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정규직 고용률이 낮으면서 연평균 근로시간은 항상 최고치이고 사회복지 지출비용은 가장 낮으면서 노동자들의 임금은 웬만해서는 올라가지 않는다. 한 번 가난해지면 영원히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빈익빈(貧益貧) 현상은 과연 자연스러운 것인가? 대한민국에서 워렌 버핏과 같이 서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부자를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 대한민국의 부유한 상류층은 자신들이 가진 많은 재산만큼 많은 특권을 추구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짊어지는 의무는 오로지 가난한 서민이나 몰락한 중산층의 몫이다. 대한민국을 치사하고 불공평한 나라로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 과연 과거 봉건주의 사회와 무엇이 다른가?

 

지난 8월 대한민국 최고의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사망했다. 세계 곳곳에서 자신의 패션쇼를 열고 자신의 이름으로 대표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 패션 시장에 내놓아 유명해진 그는 자신의 패션쇼에 국내 정상급 연예계 톱스타들을 모델로 세워 권위를 자랑했던 문화인사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아니다. 연기자 최불암이 앙드레 김을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애국자”라고 칭송했지만 나는 앙드레 김이 어떤 애국적인 일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인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 국위선양을 했기 때문에…? 아니면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했던 경력 때문에…?

 

그가 1982년에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문화공로훈장을 받았다고 해서 과연 그게 애국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자는 그가 국가의 명예를 드높였다고 말하겠지만 여기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부유함은 개인의 몫일 뿐이지 결코 국가의 몫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앙드레 김을 애국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앙드레 김이 사망한 후 그의 막대한 재산은 사회에 환원된 것이 아니라 아들과 며느리에게 돌아갔다.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 워렌 버핏과 너무 대조적이다.

 

신약성서 마테오 복음 19장을 보면 엄청난 부(富)를 축적한 젊은 자산가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저는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모두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무엇을 더 해야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리스도가 대답하기를,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고 하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스도의 대답을 듣고 젊은이는 자신의 많은 재산을 전부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풀이 죽어 떠났다. 그러자 그리스도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고 말한다.

 

마테오 복음 19장에 나오는 성경 말씀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뜻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고 생각된다. 대한민국의 부유한 상류층 가운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행한 부자는 과연 누구이고 얼마나 되는지 국민들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그만큼 우리 나라의 상류층은 특권의식만 몸에 배여 있을 뿐, 사회적 책무를 짊어지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부자들이 많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완벽하게 실천한 경우도 흔치 않았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마테오 복음 19장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가장 가까이 실천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조선왕조의 문벌귀족 한 사람을 겨우 찾아낼 수 있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11대 자손으로 조선왕조 최고의 귀족인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일컬어지는 경주(慶州) 이씨(李氏) 상서공파(尙書公派) 출신인 우당(友堂) 이회영(李會榮) 지사(志士)는 1910년 경술병탄늑약(庚戌倂呑勒約)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식민지로 흡수되자 온 가족이 해외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헌신하자고 형제들을 설득했다. 이건영(李建榮)·이석영(李石榮)·이철영(李哲榮)·이회영(李會榮)·이시영(李始榮)·이호영(李頀榮) 6형제는 지금 가치로 8백억원이 넘는 전답·가옥·패물을 모두 처분하고 60여명의 일족을 이끌고 만주로 집단망명을 떠났다.

 

조선의 내노라 하는 정통사대부 귀족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못하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협력하여 작위를 받고 은사금까지 챙겼는데, 이회영 일가는 ‘재상의 집안에 걸맞는 처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조국 독립을 위한 가문의 희생을 실천한 것이다. 그들은 서간도로 망명해 경학사(耕學社) 조직과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 설립에 공헌하고 3천여명의 항일무장투쟁(抗日武裝鬪爭) 기간요원(基幹要員)들을 배출했다.

 

유학자이며 양반 사대부였던 이회영 지사는 북경에서 아나키즘 사상을 수용한 이후, 아나키스트로서 또 다른 삶을 살았다. 그는 정부라는 행정조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자유연합적 독립운동 지도부를 주장하며 임시정부 구성에 반대했다. 또한 코민테른의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공산주의 세력을 비판하며 민중에 의한 직접혁명과 무장투쟁 노선을 추구했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의열단(義烈團) 및 다물단(多勿團)의 지도와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中國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또한 민중적 자유협동과 민족간 연합주의를 통해 국제주의, 사해동포주의를 실천하려는 이회영 지사의 인식은 동방무정부주의자연맹(東方無政府主義者聯盟) 참여와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났다. 나아가 상해노동대학(上海勞動大學)과 천주(泉州) 민단편련처운동(民團編練處運動)을 후원한 점에서도 무정부공산사회를 꿈궜던 그의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회영 지사는 신흥무관학교 재건에 강한 애착을 갖고 이상촌 건설과 독립운동 근거지 확보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1921년 북경 영정하(永定河) 개발과 1923년 호남성 양도촌 건설 계획, 그리고 1925년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과의 내몽고 생활 근거지 조성 계획 등이 그것이다. 이는 아나키스트들이 추구하는 공동생산, 공동소유의 이상촌 건설을 통해 안정적인 항일투쟁 기지를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신념과 기대 때문이었다. 독립군 기지 건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는 평소의 신념과 아나키즘 사상에 따라 1932년 적지 한가운데인 만주행을 감행하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다.

 

명문대가의 특권층이며 정통사대부인 이회영 지사가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역사범’, ‘극단적 테러리스트’로 낙인찍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은 물론, 민족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조차 과격하고 위험하다며 손가락질한 아나키즘을 삶과 꿈의 깃대로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그가 누구보다 노비해방과 신분타파,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 자율자치의 신사회를 갈망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나아가 그는 어떤 지위나 계급, 민족이나 이념의 작은 차이에 얽매이지 않고 공익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했으며, 동아시아의 참다운 자유연대와 공존공영을 추구했다. 이회영의 삶과 꿈이 아름다운 것은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으면서 누구도 지배하지 않는, 참 자유인의 그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무정부주의(無政府主義)로 번역되는 아나키즘은 권력과 제도를 거부하고 자발성과 평등에 기초한 공동체 사회를 이상으로 한다. 따라서 과도한 체제의 간섭을 거부하는 공동체운동이지 무정부주의가 아니다. 이회영 지사는 이런 아나키즘의 영향으로 상해 임시정부 출범 당시 대세(大勢)와 맞서 정부라는 권력조직화를 반대했고, 공산주의에 대해서도 획일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부었다.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들은 이렇게 좌·우익 양쪽에 대해 비판을 함으로써 양쪽 모두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했지만 목숨을 건 의열투쟁을 통해 민족의 의기를 만방에 떨쳤다.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제국주의 시대를 극복하는 대안 사상으로 아나키즘은 탁월한 것이었으나 당시엔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의 강세에 그 빛을 발하지 못했으며, 해방 후에도 냉전 이데올로기로 말미암아 부각되지 못했었다. 아나키즘은 동서간 냉전 이데올로기가 종식된 21세기에 들어서야 인간사회의 본질적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면서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뉴욕타임즈》는 이에 대해 ‘세계화로 인해 초국적 자본과 세계 기구가 종래의 정부를 대체하는 새로운 지배채제로 등장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신(新)아나키즘 그룹이 세력을 넓혀가는 최근 들어서야 재조명을 받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국내의 지방자치제도의 정립과 발전 역시 아나키즘에 기반한 정치제도의 구현이라 하겠다.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한계와 타락성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공금 횡령 및 채용 비리 논란으로 인해 완전히 그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본다. 나는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이 자본주의를 버리고 정치·사회·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이회영 지사께서 추구하셨던 아나키즘 체제로 변혁돼야 진정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가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특정 계층만 갖은 혜택을 받고 가난한 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회적 양극화를 지속시키는 자본주의를 유지한다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치사하고 불공평한 나라로 남게 될 것이다.

 

연기자 최불암이 ‘이 세상에 다시 없을 애국자’라고 칭송했던 21세기의 대표적인 문화인물 디자이너 앙드레 김은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부귀영화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의 정상급 귀족이었던 이회영 지사는 가족·형제들과 함께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제국주의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벌였다. 더구나 사회 지도층으로서의 특권의식마저 버리고 민중의 편에 서는 아나키즘 노선을 선택했다. 이회영 지사야말로 지금으로부터 90여년 전에 성경 마테오 복음 19장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천했던 ‘충분히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인물이었던 것이다.

 

아나키즘에서 약육강식의 세계회 시대를 극복하는 대안 사상을 찾고, 기득권을 포기한 채 갖은 궁핍을 마다하지 않은 이회영 일가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재벌가, 권세가로 불리며 긍지와 책임감 대신 우월의식과 오만함으로 뭉친 지금의 사회 지배층에게 가문의 영광과 명예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귀감이 될 것이다. 강권주의·승자독식의 대한민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순이 느껴진다면 이을규(李乙奎)·이정규(李丁奎)·류자명(柳子明)·신채호(申采浩)·이회영(李會榮)·정현섭(鄭賢燮)·백정기(白貞基)·엄형순(嚴亨淳)·류기석(柳基石)·이강훈(李康勳) 등 아나키스트들의 치열했던 삶을 살펴보고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對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으로부터 90여년전 이회영 지사가 독립운동의 방향과 새로운 독립국가의 이상으로 추구했던 독자적인 아나키즘 사상은 현대 대한민국에 분명히 유효한 노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