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1

아치2011.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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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장, 이런 데 써도 되는지 모르겠네.

 

  지금 난 익명이 보장되는 장소가 필요하다. 마음 놓고 뭔가를 토해낼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이곳이 그런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난 이곳에서 과거의 한 사건을 풀어놓을 심산이다. 세월에 퇴색되어 이제는 그 의미마저 모호해졌으나, 나는 다시 그것에 색감을 입혀 그때의 그 감정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그 행위가 마음 아플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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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졸보기로 퍼트린 양, 좁은 창을 통해 들어온 흐릿한 볕이 방 저편에서 점차 어깨 언저리로 나지막한 곡선을 그리며 맴돈다. 자칫 흐름이 멈춰버릴 것 같이 느려터진, 참으로 나른한 오후이다.


  “따르릉!”


  동식물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어떤 종류의 자율적인 계시기구(計時機構)가 구비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을 심리적 시계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갑자기 시간의 연속적인 흐름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너무도 격해져 날뛰는 듯, 아니 시간 자체가 아예 실종된 듯이 느껴졌다. 갑작스런 전화벨의 위력이다.


  내 심리적 시계는 항상 직선이 아닌, 완만한 타원을 그린다. 그리고 그렇게 타원으로 느려터진 시간의 자취를 더듬는 것은 나의 오래된 취미이다. 마치 막 잡아 올린 여인네의 알몸을 더듬는 듯, 오늘 오후가 참으로 그런 맛깔난 시간이었는데, 몽롱한 허구의 막을 사정없이 찢고 들어온 난폭하고 예의 없는 그 소리란,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게으름뱅이다. 고로 나의 참을성과 인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나 같은 게으름뱅이에게는 먹고사는 일이 그다지 큰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 게으름이 먼지처럼 쌓여서 한 도리 때로 덮여갈 무렵부터는 그것이 반드시 그렇게 가벼운 문제만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토록 생각할 동안, 나를 꼭지로 동심원를 그렸던 사람들의 속은 얼마나 새까맣게 탔을까나?


  “야, 내가 잡지사 하나 연결해 놨다.”


  초록은 동색이라 그랬다. 그 형편이 나와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친구 놈이 딴에는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는지, 견디지 못하고 불현듯 찾아와서 말했다. 하지만 나 역시 한계를 경험하고 있던 터라 선뜻 받아들였는데, 그래서 얻은 것이 주간지 한 모퉁이의 칼럼 한 쪼가리였다.


  칼럼이 주로 시사, 사회, 풍속 따위에 관한 짧은 평이라면, 이게 어디 시간을 엿가락처럼 늘려서 그 끄트머리나 빨고 있는, 나 같은 백수건달에게 가당키나 한 것이겠냐마는, 내 사정이 또한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라서 그저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덥썩 문 것이 또한 실수였다.


  일체는 진리와 통한다고 했다. 방구석을 파고 있다고 이치를 모른다거나, 할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개똥철학이 있었기에, 일주일에 한 편씩 쓰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 머린 쓰면 쓸수록 더 깊은 물이 나오는 마르지 않는 샘이 아니다. 주위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이 없었기에 금세 그 한계를 드러내, 다시금 게으름에 몸을 맡기게 될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역시 남의 돈을 뽑아 먹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부터 내 평화는 사실상 출판사에 담보 잡힌 것에 다름 아니었다. 꼭 이 시간정도에, 내가 시간의 끄트머릴 붙잡고 온 몸으로 늘어지고 있을 그 정도에, 꼭 이마나한 소리로, 시간의 질곡을 일으켜 나로 하여금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것은, 오롯이 출판사 정부장의 몫이다.


  아무튼, 정부장의 전화 하나로 난 산산이 부서졌다.




 가자,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