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당 진계 차( 玉堂陳戒箚 )

또이2006.11.14
조회85

이 글은 율곡이 38세 때 홍문관 동료들과 재앙을 없앨 방법을 논하여 임금에게 진간(進諫)한 글이다. 천재(天災)를 멎게 하기 위하여 뜻을 세워서 나라의 기강(紀綱)을 진작시키고, 폐단을 고쳐서 백성들을 편안히 살도록 해 주기를 청하니, 선조가 비답하기를, "사의(辭意)가 직절하고 의론이 통쾌해서 볼수록 두려운 생각이 든다."하였다.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총명하심과 밝은 지혜로 족히 유위(有爲)한 일을 할 만한 자질을 지니신 분이라, 혼란하던 나머지 다스릴 때를 당하여 응당 유위한 일을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선비들은 위대한 도(道)가 행하여지기를 기대하였고, 백성들은 지극한 다스림의 은택(恩澤)이 내리기를 바란 지 이제 7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천심(天心)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하여 이변(異變)이 거듭 일어나고, 장마와 가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여 농사가 흉년이 들고 있읍니다. 그리고 혜성(彗星)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우뢰 가 때 아닌 때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재난을 당하는 일에 습관이 되어 사람들은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마는, 하늘은 인애(仁愛)하신 것이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가 있겠읍니까?

지금 사람의 일로써 미루어보면, 기강(紀綱)이란 나라를 건사하는 원기(元氣)인데도 기강이 땅에 떨어져 있고, 백성이란 나라를 지탱하는 근본인데도 백성들은 처신할 바를 잃고 있습니다.

기강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백관(百官)들이 벼슬자리를 태만히 하여 사사(私事)를 앞세우고 공사(公事)를 뒤로 미루며, 아침에 벼슬자리를 쫓겨났다가 저녁에 벼슬을 제수받곤 하면서 오로지 목고 마시는 일에만 힘쓰고 직분상 하여야만 할 일은 치지도외(置之度外)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비(是非)가 뒤섞이어 올바른 것을 겨냥할 데가 없으며, 크고 작은 것이 흐트러져 통할할 곳이 없게 되어 있읍니다.

아름다운 명령이 비록 내겨진다고 하더라도 공연한 법령일 뿐 행하여지지는 않아 정사(政事)가 날로 문란해지고 있으나 이를 다스릴 단서(端緖)조차도 없읍니다. 백성들이 처신할 바를 잃고 있기 때문에 굶주림과 헐벗음이 몸에 절실하여 예의는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고 부역(賦役)을 도피하기에만 다급해집니다.

부자(父子)가 서로 보전하지 못하게 되고, 족린(族린)의 고통은 온 지방에 퍼져서 멋대로 악한 짓을 하게 되니 법령으로써 제어할 수가 없읍니다. 법도와 윤리의 변괴가 연달아 일어나니, 약한 자들은 죽어서 골짜기를 메우게 되고, 강한 자들은 일어나 도적질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을과 마을은 적막하게 되고 사람이 살던 곳은 졸지에 황폐해져서 문에서는 헛된 징병장부(徵兵帳簿)를 지니게 되고 양식은 저축되어 있는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백 년의 승평(昇平)에 뒤이어 불행히도 살 수 없어 도적이 된 백성들이 나라 안에서 무기를 희롱하고 있고, 섬의 오랑캐와 산 속의 오랑캐들이 변경 밖에서 사나와져 있습니다.

밖으로는 나라를 지키고 침략을 막는일을 의탁할 데가 없고 안으로는 절조를 지키고 의롭게 죽으려는 기풍이 없어졌으니, 나라가 무너져버릴 듯한 형세가 분명히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전하께옵서는 조상들의 간난(艱難)하고 위대한 유업(遺業)을 지키고 계시면서 시세(時勢)의 위난이 더해감을 보시고도 어찌 두려운 듯이 경계하고 반성하여 스스로 진작(振作)시키고자 하는 뜻이 없으시단 말씀이십니까.

옛날에 당(唐)나라 문종(文宗)16)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공부를 하였음에 범상한 임금이 되는 것을 부끄러이 여긴다." 하였고, 제갈 량(諸葛亮)17)은 후주(後主)18)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함부로 스스로를 깎아내리거나 비유를 인용함에 있어 올바른 뜻을 잃음으로써 충간(忠諫)의 길을 막아서는 안됩니다."고 하였습니다.

대체로 자신이 하는 정치가 범상한 임금이 하는 정치와 같은 것을 문종께서는 부끄러이 여겼고, 함부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을 후주는 경계할 일로 여겼읍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영특(英特)한 자질과 명철한 바탕이 여러 임금들보다도 뛰어나시니, 요(堯)·순(舜)처럼 되시고자 하신다면 곧 당(唐)·우(虞)의 다스림을 뒤쫓을 수 있을 것이며, 탕왕(湯王)·무왕(武王)처럼 되시고자 하신다면 곧상(商)·주(周)의 다스림을 계승할 수 있으실 것입니다.

공로를 세우고 사업을 발전시키는 일은 마땅히 할 수 없는 것이 아니실 터인데, 어찌하여 물러나 불민(不敏)하다는 핑계를 내세워 책난(責難)의 길을 막으시고, 근래의 법규를 꼭 지키겠다고 하여 복고(復古)의 논의를 막아 버리십니까?

유신(儒臣)들을 드물게 접견하시며 예의에는 엄격하되 말은 간략하게 하도록 함으로써 다스리는 도리를 강론하는 이익이 없도록 하시고, 공정한 이론을 굳이 막고 영기(英氣)를 드러내시면서도 뜻을 어기는 말을 허심(虛心)으로 받아들이는 도량(度量)이 없으십니다.

명분은 이전의 법도를 준수한다고 하시지만 북사(北司)19)가 날로 성해지는 것은 실로 조상들의 옛 법규가 아니며, 명색은 백성을 편안히 하고 변강(邊疆)을 보강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풍부히 저축되어 있는 환미(換米)20)는 실상 내수(內需)의 사용(私用)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덕이 있는 이에게 내려야 할 은전(恩典)을 작은 노고에 대하여도 함부로 내려주어 상(賞)은 선(善)을 권면할 수가 없게 되었고, 널리 베풀어져야 할 은총은 동기간에만 치우치게 베풀어서 은혜는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전하의 책임은 기강(紀綱)을 진작시키고 백성을 편안히 하는 데 있습니다.

기강의 진작은 뜻을 세우는 데 달렸고, 백성들의 편안함은 폐해를 개혁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

앞에서 논한 몇 가지 일은 모두가 뜻을 세우고 폐해를 개혁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전하께옵서는 재능이 고매하지 않은 것도 아니요, 학문이 연박(淵博)하지 않은 것도 아니요,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신 것도 아니요, 시비(是非)를 밝게 헤아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십니다.

전하께옵서 다스리지 못하고 계신 것은 하시지 않는 것이지 하실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아! 천재(天災)를 멎게 하고 인화(人和)를 이룩하여 세상의 정도(正道)를 만회하는 기틀은 전하의 한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옵서 진실로 하루 아침에 각오를 새로이 하실 수 있으시어 위대한 뜻을 분발하여 공론(公論)을 쾌히 따르시며, 좋고 나쁜 것을 분명히 보아 대신들을 올바로 면려(勉勵)하시며, 정사(政事)의 공을 일으키기에 힘쓰시어, 밝게 날로 새로워져서 구름이 흐르고 비가 내리듯 21) 하게 된다면, 곧 어진 사람은 올바른 도를 행하려 하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그의 계모(計謀)를 다하려 하고, 재주가 있는 사람은 그의 능력을 다 발휘하려 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은 그의 힘을 다 바치려 들게 될 것입니다.

벼슬자리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각오로 스스로 힘쓰게 되고, 재야(在野)의 사람들은 서로 손잡고 달려나와, 여러 현명한 이들이 모여들고 온갖 계책을 다 진언(進言)케 됨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기강은 진작되기를 바라지 않아도 스스로 진작되게 되고, 백성은 편안하게 되기를 바라지 않아도 자연히 편안하게 될 것이니, 태평한 다스림을 머지않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옵서는 누가 막기에 그것을 못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아! 만나기 어려운 것은 시의(時宜)요, 잃기 쉬운 것은 기회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향약(鄕約)22)을 시행하도록 명하신 터라, 나라 사람들은 모두가 전하께서 지극한 다스림을 일으키게 되리라 여겨서 목을 빼고 눈을 닦으며 전하의 시정(施政)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일을 할 만한 때이며 이용할 만한 기회인 것입니다. 지금 만약 구습(舊習)만을 따르고 아무 것도 개혁하지 않는다면 온 백성이 실망하게 되고 향약도 곧 폐지되게 되어, 「대학(大學)」에서 이른바 "비록 선한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어찌할 수도 없다."23)는 지경에 불행히도 가까워지게 될 것입니다.

「시경(詩經)」24)에 이르기를 "마치 저 물 위의 배가 어디에 닿을는지 모름과 같으니, 마음의 시름이여! 옷 입은 채 잠잘 겨를 도 없도다."라고 하였는데, 신들의 시름도 실로 이와 같습니다.

전하께서 유의해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 주 >

16) 이름은 이 앙(李昻). 827년부터 840년에 이르는 14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임금.

17) 181~234. 자는 공명(孔明). 삼국(三國)시대 촉(蜀)나라 유 비(劉備)의 승상으로 지략(智略)과 충성을 다하였다. 《出師表》

18) 유 비의 아들 유 선(劉禪). 유 비의 뒤를 이어 후주가 된 뒤 승상 제갈 량의 도움으로 국력을 만회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 본래는 당(唐)나라 내시성(內侍省)이 대내의 북쪽에 있어 북사라 불렀다. 여기서는 내수  사(內需司)·내시부(內侍府) 등 임금에게 직속되는 내직(內職)들을 가리킨다.

20) 환곡(還穀). 변경 지방의 군량(軍糧)을 준비하기 위하여, 상인들로 하여금 달느 지방의   곡식을 사서 변경에 바치고 경기(京畿)  근처에서 곡식을 받게 되면 환곡법(還穀法)에      쓰이던 곡식

21) 예부터 은택이 널리 베풀어지는 것이 비유되던 말이다.

22) 작자는 36세(1571)때 청주(淸州) 목사(牧使)로 내려가 향약조례(鄕約條例)를 만들어 백성을 교도하였다. 이것이 서원향약(西原鄕約:「율곡전서」권 16 잡저 3 참조)이며, 뒤에 또 해주향약(海州鄕約)도 만들었다. 작자가 1573년 9월에 향약을 논하자 이를 시행토록 왕이 윤허를 내렸다.

23) 이 귀절 앞에 "국가의 우두머리이면서도 재물을 모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에 힘쓰는 것은 반드시 소인(小人)에게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잘하는 일이라 생각하여 소인을 시켜 국가를 다스리게 하면 재해가 한꺼번에 몰려 온다"는 말이 있다.

24) 소아(小雅) 소반(小弁)시에 보이는 귀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