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아아아아아 어느 샌가 내리던 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내리고 있다. 하이얀 그 빗줄기들은 땅으로 곤두박질쳐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주르륵 창문을 타고 내리는 빗방울들은 무엇인가를 향하듯 빠르게 내려가고 합쳐지고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현관에 있던 우산을 집었다. 우산 손잡이를 잡고 한두 번 돌린 뒤 엄지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렀다. '파앗' 소리가 나며 힘차게 펼쳐지는 이 우산을 들었다. 파르르 떨리는 쇳대를 손가락으로 느끼며 수직으로 세웠다. 후두두둑 빗방울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하얀 운동화에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며 동그랗게 젖는 느낌에 발가락을 움찔거렸다. '우우우웅 우우우우웅' 내 주머니에 느껴지는 핸드폰진동에 손을 가져다 댔지마 집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를 찾는 전화일 테니.... 진동을 무시하며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내 시야에는 꿈틀거리며 즐거워하는 지렁이 한마리가 보였다. 몸의 흙을 꼼지락 거리며 털어내고는 스멀스멀 땅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세상을 얻은 것처럼 마악 기뻐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인다는 내 생각에 조소가 흘렀지만 어쩌면 지렁이는 정말로 자신의 세상을 만났을 지도 모른다. 뒤에 가방을 한 번 더 추스르고 나는 걸음을 다시 옮겼다. 조용한 적막감에 휩싸인 어두운 이곳에 사르륵 책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하품이 나올라는 것을 억지로 소리 안내려고 입을 꽉다물고 있었다.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손가락으로 스윽 닦은 뒤 다시 샤프를 잡았다. 벌써 두시간째 붙들고 있는 수학이지만 몇 장 못넘어간체 끙끙대고 있는 내 자신이 문득 한심스러워 졌다. 그리고 문제들이 나열되어 있는 수학책에 어른거리는 내 성적표에 분통이 터지 지경이었다. 핸드폰을 켰다. 부재중 전화 한통에 메시지 한통 두개 다 엄마였다 '명철아, 이번시험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마렴. 엄마는 충분히 너를 믿고 있으니 다음을 한번 노려보자꾸나. 아들 파이팅!'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만족스럽지 않은 점수이거니와 이제 시험이 몇 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답답했다. 고2, 가장 활발하고 아름다워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만 현실의 나는 이런 어두침침한 독서실에서 끄적끄적 샤프를 놀리고 있다. 이런 저런 잡생각들이 드는 나를 알아채고 나는 얼른 뺨을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그래, 다음번에 잘하면 되지!" 나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샤프를 잡았다. 학교라는 곳이 정말 무섭다. 나를 성적이라는 기준의 잣대로 평가하고 인정하는 것이 무서웠다. 동그라미 몇 개의 개수로 아이들은 등급이 매겨진다. "야 백명철, 너네 집에도 성적표 왔냐?"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응" 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털썩하며 내 옆에 앉은 현진 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야, 나 엄마가 나한테 그렇게 잘해주는 적 처음인 것 같더라... 숫자 1에 그렇게 좋아하시네..." 한대 갈기고 싶었지만 나는 꾸욱 참으며 말했다. "난 조카 못 봐서 엄마한테 죽을 뻔 했으니 그만 나불거려라." 현진 이는 씨익 웃으며 툭 치고 일어났다. 저자식이 나한테 저렇게 얄밉게 구는 이유가 있다. 여태껏 내가 저 자식 보다 잘 봐왔고 그럴 때마다 똑같이 나도 저런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업자득 이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영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하지만 김현진한테 미안한 생각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펴고 다른 애에게 가서 자랑하는 김현진이 보였고 그걸 듣고 있는 조재관, 그리고 나처럼 어제의 성적표 여파에 풀이 죽어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마치 특권층처럼 으스대는 현진이의 모습이 얄밉기도 했지만 부럽기도 했다. 중간고사 때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눈을 감았다. 다시 그날을 향해 날고 싶었다. "뜨아아아아아아~!" 나는 기지개를 폈다. 온몸이 뻐근했지만 내 앞의 문제집의 빨간 동그라미들이 기분을 좋게 했다. 시험도 이렇게만 맞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목을 돌리며 시계를 봤다. 이미 새벽 2시가 넘어잇었다. 눈꺼풀은 무거웠지만 오늘 내가 예정했던 공부를 다 끝냈다는 사실에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문제집을 덮고 바로 옆 침대에 누웠다. "하아.... 이번에는 잘 봐야될텐데..." 나는 눈을 감았다. 내 앞의 시험지에 나는 심호흡을 했다. 두 손을 꼭 잡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번 시험은 제가 노력한 만큼 나오게 해 주세요.' 우선 언뜻 본 일번 문제는 눈으로도 풀리는 문제여서 살짝 마음이 들뜰었다. 종소리와 함께 바로 연필을 잡았다. 좋아, 이번에는 한번 잘해보자. 두근대는 심장과 함께 긴장인지 흥분인지 모를 이 기분에 취해 나는 정신없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점수가 하나 둘 나왔다. 하나하나 확인하는 내 얼굴에는 감추지 못할 웃음이 피어났다. 예상외의 점수에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저번에 비를 맞으며 즐거운 듯 몸을 뒤틀던 지렁이와 같이 난 내가 원하던 세상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옆에서 같이 점수를 확인하던 김현진의 얼굴이 똥씹은 표정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더욱 기본이 좋아졌다. 어쩌면 속물 같은 행동이었지만 이미 높은 숫자와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에 취해있는 나는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하나하나 나오는 점수표가 나에게는 시원한 빗방울처럼 느껴졌다. 하아, 내가 이 청량함을 느끼기 위해 그 땅속에 숨어있었던 건가.... 그래, 어두운 그곳을 버텨내던 내 자신을 위해 오늘이 있는 것이야!!! 반에서 2등, 전교에서 3등을 한 나는 엄청난 수직상승에 선생님들의 관심까지 받게 되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나를 부르셔서 "드디어 명철이 니가 꽃을 피우는구나! 그래, 이렇게만 하면 된다. 그동안 수고했다." 라고 말씀하셨다. 겸손을 떨었지만 아마 내 표정에서는 이미 가진 자의 표정이 드러났을 것이다. 엄마도 내 성적표를 보시고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동안 새벽까지 잠을 못자고 피곤해 하던 내 모습에 안타까워하시던 엄마였었다. 나도 눈물을 흘리고 싶었으나 가슴에서는 이미 울기보다는 웃고 있었기에 그냥 말없이 살짝 웃었다. 조금 있으니 내가 그렇게 원하던 심화반도 들어갔다. 원래는 중간고사 성적만으로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수직상승의 성적과 그동안의 노력을 선생님들도 알아주셨는지 바로 심화 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될 수 있다고 생각됐다. 내가 마음 먹은 대로...... "어머, 명철아! 네가 이번에 그렇게 시험을 잘 봤다면서? 명철이 엄마는 좋겠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이모는 나를 보고 말하였다. 그러자 엄마는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뭘... 이제 한번인데...." 겸손한 말이었지만 순간 내 마음에는 무언가가 쿵 하고 부딪혔다. 한번.... 그리고 이것을 유지해야 한다. 한번, 한번, 한번.... 메아리처럼 머릿속에서 한번 이라는 소리가 울렸다. 다음번에도 잘 쳐야 한다. 그렇다. 이번만이 끝이 아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다른 애들은 벌써 과외에서나 수학진도를 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저번 중간고사의 점수에 취해 아무것도 하질 않았다.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는 내 모습에 이모가 말했다. "화장실 가고 싶니? 좀 불편해 보이네..." 나는 '예? 아, 아니에요.' 라고 말 한 뒤 지금 이 상황에서 나갈 수 있을 만한 구실을 생각했다. "아 엄마, 제가 애들이랑 놀기로 약속을 잡아놨는데 깜박했어요. 저 먼저 가볼게요." "아, 그래도 저녁은 먹고 가야지 않겠어?" "괜찮아요. 애들이랑 먹으면 되요. 그럼 먼저 일어날게요. 이모 안녕히 계세요." 나는 말을 후두두둑 내뱉고 얼른 커피숍에서 나왔다. "하아... 그래 이번에도 한번 열심히 해보는 거야......." 나를 향한 다짐이었지만 가슴에는 뭔가가 얹힌 듯한 기분이 사라지질 않았다. "자 이번에 전교 3등을 한 명철이, 어디 나와서 풀어볼래?" 초록색 칠판을 톡톡 두드리며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표정에는 무언가의 비웃음이 담겨있는듯 했다. 나는 쭈뼛거리며 칠판으로 나갔다. 하얀 분필들이 어지러이 수식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우선 생각나는 대로 풀었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모, 모르겠어요 선생님." 그러자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조소를 흘렸다. 목구멍에서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고개를 숙였다. "전교 3등이 헛짓거리였구만. 들어가." 웅성거리는 아이들. 그리고는 뒤에서 혀를 차는 선생님.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심화 반에서의 생활은 더욱 최악이었다. 갑자기 들어온 나를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우리 학교에서 친한 친구들은 다 심화 반에 들어올 만큼의 실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심화 반에서는 아는 친구들이 없었다. 매일 야자시간때 혼자 조용히 앉아 선생님이 하는 내용을 들으며 조용히 필기를 하다가 교실에 가는 것 외에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잠깐잠깐 꽂힐 때는 그 시선은 마치 거지를 보는 듯 한 동정이 아닌 비웃음의 시선이었다. '이번 결과가 과연 진짜 니 실력인 것 같아?' '낙하산으로 들어왔으면서...." '이번에는 얼마나 잘 보는지 보자.' 환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그들의 시선이 창처럼 내 몸에 꽂혔다. 그럴 때 마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몸이 점점 피로해져갔다. 살도 점점 빠지고 눈 밑으로 그림자가 더욱 진해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점점 피부색이 까매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거운 눈을 비비며 일어나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면 비쩍 말라버린 내 모습이 순간 썩어 들어가는 환각을 볼 때면 과연 지금 내가 살아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미 잠은 하루에 3시간 이상을 자지 못했다. 잠을 들려고 노력을 해봐도 머릿속에 울리는 누군가의 조소와 시선이 맴돌았기에 다시 일어나 책을 보았다. 밥도 잘 넘어가질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도 다시 저번과 같은 청량한 비가 내릴 것 이라고.... 난 그 비를 원했다. 시험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에이포 용지 하나에 아이들의 표정이 제각기 변했다. 단순한 표에 고유번호와 그 옆의 숫자들은 서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나는 얼른 눈을 스윽 내리며 내 번호를 찾았다. .............................................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동안의 노력이 순간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서야 느꼈다. 주마등이라는 표현을 해야 할까.... 아니 영화의 한 필름처럼 지나간 장면은 내가 꼬박고박 졸며 공부하던 모습이었다. 하하하.... 차라리 웃어야겠다. 우는 것은 비참하다. 웃자............................ 뚜벅뚜벅 계단을 밟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늦은 밤이어서 그런지 웅웅 울려대는 내 발소리가 신경 쓰였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 손에 쥐어진 종이 한 장을 누군가가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렸다. 하지만 난 계단을 올랐다. 녹슨 문을 열었다. 계단을 오르느라 땀으로 흡뻑 젖어버린 나의 몸에 시원한 바람이 감쌌다. 이런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지금 뿐이랴..... 다리가 후들거렸다.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목구멍으로 막느라 아팠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 마시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오열을 할 것 같아 콧물이 줄줄 흐르는 코로 가쁘게 숨을 쉬었다. 부들거리는 팔을 억지로 움직여 쇠창살을 잡았다. 내 눈앞의 펼쳐진 회색도시들은 어둠속에서도 밝은 빛을 내며 흐르고 있었다. 손에 꽉 쥐고 있던 종이를 놀았다. 원래 이럴 때는 신발도 벗어야 되는 것인가 생각을 했지만 신발 벗을 시간에 무슨 생각이 들지 몰라 그냥 다시 쇠창살을 잡았다. 가슴이 뛰었다. 아플까? 그냥 한순간에 끝났으면 좋겠는데.... 나는 새야, 다들 그렇게 생각하더라고, 그래 나는 새야....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약 1m정도를 뛰었다. 그리고 수직낙하.... 후우우우우우웅웅우웅웅우후후후후훗훗훗훗후후............... 귓가의 바람소리가 그들의 웃음소리로 변했다. 비웃음과 한심함. 그럴줄 알았다는 그들의 시선. 그래, 나에게의 세상은...........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다.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움직여 지지 않았다. 숨이 가빠왔지만 기분이 좋았다. 눈의 초점이 맞춰지고 내 눈앞에 보인 것은 흙과 붉은 물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지렁이 시체였다. 아.... 너도 나처럼 된 거니? 아니 내가 너처럼 된 건가? 아무튼 좋아 우리는 시원한 빗방울이 내리는 그 대지가 나만의 천국인줄 알고 동경하며 올라왔지. 그래, 그곳이 전부인 줄만 알았어. 그곳에서의 생활이 최고인줄만 알았지. 나도 모르는 사이 햇빛은 내리쬐고 있었어. 나는 내 앞의 지렁이 시체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울컥울컥 머리에서 피가 나오는 것이 느껴지고 점점 시야는 흐려졌다. 왠지 난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에 속으로 피식 웃으며 난 눈을 감았다. ------------------------------------------------------------------------------------------ 두번째 소설입니다. 이번에도 시험끝나고 할일 없어서 즉흥적으로 쓴거라 짜임새가 없습니다. 그래도 긴글 읽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이왕이면 댓글도...굽신굽신) 4
[단편소설] 지렁이
싸아아아아아
어느 샌가 내리던 비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차게 내리고 있다.
하이얀 그 빗줄기들은 땅으로 곤두박질쳐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주르륵 창문을 타고 내리는 빗방울들은 무엇인가를 향하듯 빠르게 내려가고 합쳐지고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현관에 있던 우산을 집었다.
우산 손잡이를 잡고 한두 번 돌린 뒤 엄지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렀다.
'파앗' 소리가 나며 힘차게 펼쳐지는 이 우산을 들었다.
파르르 떨리는 쇳대를 손가락으로 느끼며 수직으로 세웠다.
후두두둑 빗방울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하얀 운동화에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며 동그랗게 젖는 느낌에 발가락을 움찔거렸다.
'우우우웅 우우우우웅'
내 주머니에 느껴지는 핸드폰진동에 손을 가져다 댔지마 집지는 않았다.
어차피 나를 찾는 전화일 테니....
진동을 무시하며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내 시야에는 꿈틀거리며 즐거워하는 지렁이 한마리가 보였다.
몸의 흙을 꼼지락 거리며 털어내고는 스멀스멀 땅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세상을 얻은 것처럼 마악 기뻐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인다는 내 생각에 조소가 흘렀지만 어쩌면 지렁이는 정말로 자신의 세상을 만났을 지도 모른다.
뒤에 가방을 한 번 더 추스르고 나는 걸음을 다시 옮겼다.
조용한 적막감에 휩싸인 어두운 이곳에 사르륵 책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하품이 나올라는 것을 억지로 소리 안내려고 입을 꽉다물고 있었다.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손가락으로 스윽 닦은 뒤 다시 샤프를 잡았다.
벌써 두시간째 붙들고 있는 수학이지만 몇 장 못넘어간체 끙끙대고 있는 내 자신이 문득 한심스러워 졌다.
그리고 문제들이 나열되어 있는 수학책에 어른거리는 내 성적표에 분통이 터지 지경이었다.
핸드폰을 켰다.
부재중 전화 한통에 메시지 한통
두개 다 엄마였다
'명철아, 이번시험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마렴. 엄마는 충분히 너를 믿고 있으니 다음을 한번 노려보자꾸나. 아들 파이팅!'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만족스럽지 않은 점수이거니와 이제 시험이 몇 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답답했다.
고2, 가장 활발하고 아름다워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만 현실의 나는 이런 어두침침한 독서실에서 끄적끄적 샤프를 놀리고 있다.
이런 저런 잡생각들이 드는 나를 알아채고 나는 얼른 뺨을 손바닥으로 두들겼다.
"그래, 다음번에 잘하면 되지!"
나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샤프를 잡았다.
학교라는 곳이 정말 무섭다.
나를 성적이라는 기준의 잣대로 평가하고 인정하는 것이 무서웠다.
동그라미 몇 개의 개수로 아이들은 등급이 매겨진다.
"야 백명철, 너네 집에도 성적표 왔냐?"
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응" 이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털썩하며 내 옆에 앉은 현진 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야, 나 엄마가 나한테 그렇게 잘해주는 적 처음인 것 같더라... 숫자 1에 그렇게 좋아하시네..."
한대 갈기고 싶었지만 나는 꾸욱 참으며 말했다.
"난 조카 못 봐서 엄마한테 죽을 뻔 했으니 그만 나불거려라."
현진 이는 씨익 웃으며 툭 치고 일어났다.
저자식이 나한테 저렇게 얄밉게 구는 이유가 있다.
여태껏 내가 저 자식 보다 잘 봐왔고 그럴 때마다 똑같이 나도 저런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업자득 이었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영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하지만 김현진한테 미안한 생각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봤다.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펴고 다른 애에게 가서 자랑하는 김현진이 보였고 그걸 듣고 있는 조재관, 그리고 나처럼 어제의 성적표 여파에 풀이 죽어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마치 특권층처럼 으스대는 현진이의 모습이 얄밉기도 했지만 부럽기도 했다.
중간고사 때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눈을 감았다. 다시 그날을 향해 날고 싶었다.
"뜨아아아아아아~!"
나는 기지개를 폈다.
온몸이 뻐근했지만 내 앞의 문제집의 빨간 동그라미들이 기분을 좋게 했다.
시험도 이렇게만 맞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목을 돌리며 시계를 봤다.
이미 새벽 2시가 넘어잇었다.
눈꺼풀은 무거웠지만 오늘 내가 예정했던 공부를 다 끝냈다는 사실에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문제집을 덮고 바로 옆 침대에 누웠다.
"하아.... 이번에는 잘 봐야될텐데..."
나는 눈을 감았다.
내 앞의 시험지에 나는 심호흡을 했다.
두 손을 꼭 잡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이번 시험은 제가 노력한 만큼 나오게 해 주세요.'
우선 언뜻 본 일번 문제는 눈으로도 풀리는 문제여서 살짝 마음이 들뜰었다.
종소리와 함께 바로 연필을 잡았다.
좋아, 이번에는 한번 잘해보자.
두근대는 심장과 함께 긴장인지 흥분인지 모를 이 기분에 취해 나는 정신없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점수가 하나 둘 나왔다.
하나하나 확인하는 내 얼굴에는 감추지 못할 웃음이 피어났다.
예상외의 점수에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저번에 비를 맞으며 즐거운 듯 몸을 뒤틀던 지렁이와 같이 난 내가 원하던 세상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 옆에서 같이 점수를 확인하던 김현진의 얼굴이 똥씹은 표정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더욱 기본이 좋아졌다.
어쩌면 속물 같은 행동이었지만 이미 높은 숫자와 아이들의 부러운 시선에 취해있는 나는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하나하나 나오는 점수표가 나에게는 시원한 빗방울처럼 느껴졌다.
하아, 내가 이 청량함을 느끼기 위해 그 땅속에 숨어있었던 건가....
그래, 어두운 그곳을 버텨내던 내 자신을 위해 오늘이 있는 것이야!!!
반에서 2등, 전교에서 3등을 한 나는 엄청난 수직상승에 선생님들의 관심까지 받게 되었다.
담임선생님께서는 나를 부르셔서
"드디어 명철이 니가 꽃을 피우는구나! 그래, 이렇게만 하면 된다. 그동안 수고했다."
라고 말씀하셨다.
겸손을 떨었지만 아마 내 표정에서는 이미 가진 자의 표정이 드러났을 것이다.
엄마도 내 성적표를 보시고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동안 새벽까지 잠을 못자고 피곤해 하던 내 모습에 안타까워하시던 엄마였었다.
나도 눈물을 흘리고 싶었으나 가슴에서는 이미 울기보다는 웃고 있었기에 그냥 말없이
살짝 웃었다.
조금 있으니 내가 그렇게 원하던 심화반도 들어갔다.
원래는 중간고사 성적만으로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수직상승의 성적과 그동안의 노력을 선생님들도 알아주셨는지 바로 심화 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될 수 있다고 생각됐다.
내가 마음 먹은 대로......
"어머, 명철아! 네가 이번에 그렇게 시험을 잘 봤다면서? 명철이 엄마는 좋겠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이모는 나를 보고 말하였다.
그러자 엄마는 활짝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뭘... 이제 한번인데...."
겸손한 말이었지만 순간 내 마음에는 무언가가 쿵 하고 부딪혔다.
한번.... 그리고 이것을 유지해야 한다.
한번, 한번, 한번....
메아리처럼 머릿속에서 한번 이라는 소리가 울렸다.
다음번에도 잘 쳐야 한다.
그렇다. 이번만이 끝이 아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다른 애들은 벌써 과외에서나 수학진도를 빼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저번 중간고사의 점수에 취해 아무것도 하질 않았다.
갑자기 안절부절 못하는 내 모습에 이모가 말했다.
"화장실 가고 싶니? 좀 불편해 보이네..."
나는 '예? 아, 아니에요.' 라고 말 한 뒤 지금 이 상황에서 나갈 수 있을 만한 구실을 생각했다.
"아 엄마, 제가 애들이랑 놀기로 약속을 잡아놨는데 깜박했어요. 저 먼저 가볼게요."
"아, 그래도 저녁은 먹고 가야지 않겠어?"
"괜찮아요. 애들이랑 먹으면 되요. 그럼 먼저 일어날게요. 이모 안녕히 계세요."
나는 말을 후두두둑 내뱉고 얼른 커피숍에서 나왔다.
"하아... 그래 이번에도 한번 열심히 해보는 거야......."
나를 향한 다짐이었지만 가슴에는 뭔가가 얹힌 듯한 기분이 사라지질 않았다.
"자 이번에 전교 3등을 한 명철이, 어디 나와서 풀어볼래?"
초록색 칠판을 톡톡 두드리며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표정에는 무언가의 비웃음이 담겨있는듯 했다.
나는 쭈뼛거리며 칠판으로 나갔다.
하얀 분필들이 어지러이 수식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우선 생각나는 대로 풀었지만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모, 모르겠어요 선생님."
그러자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조소를 흘렸다.
목구멍에서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고개를 숙였다.
"전교 3등이 헛짓거리였구만. 들어가."
웅성거리는 아이들. 그리고는 뒤에서 혀를 차는 선생님.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심화 반에서의 생활은 더욱 최악이었다.
갑자기 들어온 나를 반겨주는 이는 없었다.
우리 학교에서 친한 친구들은 다 심화 반에 들어올 만큼의 실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심화 반에서는 아는 친구들이 없었다.
매일 야자시간때 혼자 조용히 앉아 선생님이 하는 내용을 들으며 조용히 필기를 하다가
교실에 가는 것 외에는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잠깐잠깐 꽂힐 때는 그 시선은 마치 거지를 보는 듯 한 동정이 아닌 비웃음의 시선이었다.
'이번 결과가 과연 진짜 니 실력인 것 같아?'
'낙하산으로 들어왔으면서...."
'이번에는 얼마나 잘 보는지 보자.'
환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그들의 시선이 창처럼 내 몸에 꽂혔다.
그럴 때 마다 가슴속에 응어리가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몸이 점점 피로해져갔다.
살도 점점 빠지고 눈 밑으로 그림자가 더욱 진해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점점 피부색이 까매지는 것이 느껴졌다.
무거운 눈을 비비며 일어나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면 비쩍 말라버린 내 모습이 순간
썩어 들어가는 환각을 볼 때면 과연 지금 내가 살아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미 잠은 하루에 3시간 이상을 자지 못했다.
잠을 들려고 노력을 해봐도 머릿속에 울리는 누군가의 조소와 시선이 맴돌았기에 다시 일어나 책을 보았다.
밥도 잘 넘어가질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믿었다.
도 다시 저번과 같은 청량한 비가 내릴 것 이라고....
난 그 비를 원했다.
시험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에이포 용지 하나에 아이들의 표정이 제각기 변했다.
단순한 표에 고유번호와 그 옆의 숫자들은 서로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나는 얼른 눈을 스윽 내리며 내 번호를 찾았다.
.............................................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동안의 노력이 순간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서야 느꼈다.
주마등이라는 표현을 해야 할까....
아니 영화의 한 필름처럼 지나간 장면은 내가 꼬박고박 졸며 공부하던 모습이었다.
하하하.... 차라리 웃어야겠다.
우는 것은 비참하다.
웃자............................
뚜벅뚜벅 계단을 밟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늦은 밤이어서 그런지 웅웅 울려대는 내 발소리가 신경 쓰였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내 손에 쥐어진 종이 한 장을 누군가가 볼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렸다.
하지만 난 계단을 올랐다.
녹슨 문을 열었다.
계단을 오르느라 땀으로 흡뻑 젖어버린 나의 몸에 시원한 바람이 감쌌다.
이런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지금 뿐이랴.....
다리가 후들거렸다.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을 목구멍으로 막느라 아팠다.
숨을 한번 크게 들이 마시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오열을 할 것 같아 콧물이 줄줄 흐르는 코로 가쁘게 숨을 쉬었다.
부들거리는 팔을 억지로 움직여 쇠창살을 잡았다.
내 눈앞의 펼쳐진 회색도시들은 어둠속에서도 밝은 빛을 내며 흐르고 있었다.
손에 꽉 쥐고 있던 종이를 놀았다.
원래 이럴 때는 신발도 벗어야 되는 것인가 생각을 했지만 신발 벗을 시간에 무슨 생각이 들지 몰라 그냥 다시 쇠창살을 잡았다.
가슴이 뛰었다.
아플까? 그냥 한순간에 끝났으면 좋겠는데....
나는 새야, 다들 그렇게 생각하더라고, 그래 나는 새야....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약 1m정도를 뛰었다.
그리고 수직낙하....
후우우우우우웅웅우웅웅우후후후후훗훗훗훗후후...............
귓가의 바람소리가 그들의 웃음소리로 변했다.
비웃음과 한심함. 그럴줄 알았다는 그들의 시선.
그래, 나에게의 세상은...........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다.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움직여 지지 않았다.
숨이 가빠왔지만 기분이 좋았다.
눈의 초점이 맞춰지고 내 눈앞에 보인 것은 흙과 붉은 물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지렁이 시체였다.
아....
너도 나처럼 된 거니? 아니 내가 너처럼 된 건가?
아무튼 좋아
우리는 시원한 빗방울이 내리는 그 대지가 나만의 천국인줄 알고 동경하며 올라왔지.
그래, 그곳이 전부인 줄만 알았어.
그곳에서의 생활이 최고인줄만 알았지.
나도 모르는 사이 햇빛은 내리쬐고 있었어.
나는 내 앞의 지렁이 시체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울컥울컥 머리에서 피가 나오는 것이 느껴지고
점점 시야는 흐려졌다.
왠지 난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에 속으로 피식 웃으며 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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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소설입니다.
이번에도 시험끝나고 할일 없어서 즉흥적으로 쓴거라 짜임새가 없습니다.
그래도 긴글 읽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이왕이면 댓글도...굽신굽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