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수만있다면...

김지훈2011.07.17
조회407

24년간의사랑...그리고 악연혹은인연....

 

어디서부터 글을 써야할지 모르겠네요

현재 전 24살입니다

동네에 자취방을 얻어 집과 자취방을 오가며

살던 고등학생이였습니다 아시는분들은아시겠죠?

남자들이 자취방을 얻는자체가 무엇인지

여자를만나 술먹고 자고 그럴뜻으로 전 방을 얻어써요

매일 학교 당구장 노래방 피시방을 다니며 중학교졸업을했지만

후배들에게 매일 돈을 모으라고 시킨 정말 전 양아치였어요

수많은 여자들을 만났죠 그러던 어느 따뜻한 봄날 2006년

전 19살 그여자는 17살 처음본순간부터 그냥 전 푹빠졌습니다

한창 버디버디가 유행했었죠 버디버디에 있던 200명가량에 여자를지우고

싸이월드도 탈퇴하고 정말 미칠듯 그여자와 전 사랑을했죠

아참 저희학교는요 두발자유에다 그냥 서울에서 알아주는 꼴통학교였어요

별이별 사람 다있었구요 돈만내면 졸업해주는대였어요

그아인 저보다 약간 더좋은학교였지만 저의집착과 의심때문에

거의학교를 가지못해써요 그렇지만 서로 행복했어써요

지금 생각하면 만나지말았어야하는데 .. 운명이란게..인연이란게 몬지...

전 19살 학생신분이였고 집도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중학교때 흔히말하는 돈줄이라고하죠 중학교 졸업하고난후

연락이 끈어졌습니다 .근데 전 정말 독종처럼 그여자와 놀고싶기에

그여자를 위해 모든걸 해주고싶어서 .. 졸업앨범을 디져서 그남자 아파트집앞에서

2틀동안 밤을지새운뒤 결국 만났습니다 온갖협박을다했죠 온갖핑계 거짓말을 다했죠

그리고 돈을 안주면 칼을 들이댔습니다. 그남자아이한테 1년간 4천만원이상을 뜯었죠

우리때는 그랬어요 예전에는 더심했을지모르지만 저희때까지는 지금은 유치하지만

그 일찐이라는 위압감이있었기에 그남자아인 순순히 돈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돈으로 여자친구와 매일영화보러갔습니다 그때가 아마 스승의은혜? 공포영화 여름때

개봉했습니다 시사회도보고 ..생략하겠습니다 무튼 2006년 그여자를 만나 2007년까지

1년동안 돈걱정없이 지냈습니다..그런데 중학교때 대가리 쉽게말해 2번째로 싸움잘하다는애가

그남자아이를 꼬드겨서 자기편으로 만들고 저를 신고를했습니다

결국 경찰서 강력계로 잡혀갔습니다 12시간이란 긴시간동안 조사를 받으며

아니다 아니다 전 그런적없다 증거를대라 하며 경찰과 멱살을잡고 욕도하고 그랬습니다

그래도 다행인게 우리엄마야. 우리엄마..우리엄마애기는 밑에쓸꺼에요

우리엄마아는분 도움으로인해 일단 나왔습니다.. 전 그때까지 초범이였어요

제 친구들은 모두 폭주뛰면서 여의도 다니고 잡히고 집단폭행 성폭행 기물파손

오토바이절도등으로 다 법원까지갔지만 전신기하게도 그때까지 초범이였습니다

한번도 경찰서를 간적이없어요 그리고 4달후 정확히 제가 만으로 19세 되던해에

그부모님은 고소장을 제출하였고 전 안양 감별소에 갔습니다 성인이아니였기에 영등포구치소까지는

안갔습니다 그리고 법원에서 재판을받을때 모든 죄를 다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초범이라는

이유로 좋은거겠죠 무튼 그이유로 1.2호 받고 14일동안 살다나왔습니다

저희할머니꼐서 6남매를 키우셔서 친척들이 너무많아요 감별소면회때 매일매일오셧습니다

아마 그시기때 저희집에서 양가 부모님허락을받고 동거를했을시기였습니다

여자친구도 한 3일간왔는데 감별소 그사람들이 여자친구인걸 눈치채고 왜눈치챘냐면

제가 울었으니깐요 사랑한다고 수도없이말했으니깐요.. 눈치채고 방에서 애들 꼽주고있는데

저를 조용히 불러내더라구요 그러면서 싸대기를 때리면서 정강이를 차면서

그여자애 니동생아니지 하더랬죠.. 그래서 맞기시러서 아니라했죠

그이후부터 여자친구는 매일매일왔지만 면회문박에서 매일 절 처다보곤했죠 들어오진못하고

그때 큰삼촌이 오셧는데 여자친구한테 했던말이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면회해달라하면

해준다고 우스게소리로 애기를 했었대요.3년동안 여자친구와 참많은 일들이있었습니다

헤어지고 서로 때리고 욕하고 ...그러면 전항상 그아이 집빌라창문을보면서

xxx사랑해 내가 정말미안해 한번만 만나죠 하며 소리를 질렀죠 그게 습관처럼되버리니

그쪽 동네사람들이 경찰서에 신고를해 저를 잡으로오고 전도망가고

싸우면 그아이집 앞 가로등앞에서 기본 5시간을 기다렸죠..그러면서 그여자동네에

폐지줍던 할머니와 친해지고 공장에서 일하던 아저씨들과도 친해지고 기다리는게 힘들지않아써요

할머니는 이래요 " 총각 오늘 또 싸운거야? " 공장아저씨들은 "심심하면 같이 족구할까?"

이러고 참재미써써요 그여자애 동생이 절만나면 항상그래요.

가로등만보면 오빠가있을것맡같다구요..

미첬죠 늦은밤에 새벽에 xxx미안해 이젠안그럴께 큰소리를 지르니..

파출소에서 이미 소문쫙나써서요..그렇게 지내다가..저희집이 약간돈을벌어 빌라로 이사를갔습니다

거기서 본격적으로 동거를 시작했구요 그남자이야기는 감별소간이후로 끝났구요

바람의나라라는게임으로 미친듯이 돈을벌어 컴퓨터도 2대사고 한달에 1천만원씩 돈을벌었습니다

그걸로 부모님에게 돈을 받지않았습니다..그리고 그여자아이에 새아빠는 간경화로 돌아가셨고

그날이 바로 저희외할아버지 제사였는데 전 결국 여자아이를 사랑하기때문에 장례식장에갔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쫒겨났죠.. 여관을 전전하며 살았어요...그리고 xx통장 인터넷사기를 첬습니다

그돈으로 매일 여관을전전하면서 살다가 임신을 하게되 집으로 다시 들어왔죠

그때 저의나이는 21살 그아인 19살... 그아이는 정말 아기를 사랑해써요..

정말 저도 사랑했어요..그여자를 닮은 아이 저를 닮은 아이가 그아이 뱃속에서 자라고있으니

그런데 여자네집쪽에서는 저를 인정하고....아기를 낳으는 쪽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엄마가 반대가 심했어요.. 엄마애기도할꺼지만 저희엄마는..저를 남자이상으로 자식이상으로

사랑했습니다... 저를위해서라면 불속이라도 뛰어들 엄마였습니다...

그때까지는 불법이 아니라서 가격이싸 동네 산부인과에서.. 날닮은 그여자를닮은 아이를..

죽였습니다...그래요..죽인거죠...그이후로 밤마다 아기울음소리가 들리는것같기도하고

정말....힘들었습니다..그리고 3년간에 동거를 끝으로 그여자와 헤어졌습니다

전 당당하게 돈을 벌고싶어써요 사기를 치기싫어서요 ..나쁜짓이닌깐요..

제친구들은 모두 호스트빠에서 일을해요..중학교 고등학교모두 같이나왔기때문에...

공부와는 거리가멀었고 언제나 우린 당당했어요 우리가 어디든가면 그상황에서는

모든사람들이 저희때문에 웃고 즐겼습니다 ..어린나이에 호스트빠를 다니다..

결국 번돈을 다써버리고 또다시 사기를 첬어요.. 그런데 결국 걸렸죠 그전에 친것과동시에

그래서 초범이라는 이유로 징역 10월을 대전에서 그리고 땅끝마을인 통영교도소에서

살았죠.. 4월11일 재생일날 여자친구가 뜻박에 면회를 왔더라구요...

그전에 중간중간만나..술먹고 실수도하고했어요.. 또다시 저를닮은 그여자를닮은 아이가생겼어요

그리고 하는말이 헤어지재요..이젠지첬대요.. 그리고 아이는 지울꺼래요

붙잡을수없는 철창앞에서..마지막이별을 했습니다..정말 많이울었습니다 

3년간의사랑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우리엄마야는요..서울에서 땅끝마을인 통영까지 왕복 12시간이나 되는거리를...단 10분면회를하겠다고

일주일에 5번씩 오던 그런 어머니였습니다..그사실을 아는 교도소직원분께서..저만 특별히 20분면회를

주셨고.. 내가 엄마오지마 영치금은 입금해도되잖아 이래써요 그러면 엄마는 10개월동안

항상 똑같은 말만해써요 ..여기에오면 서울에서 잘보지도못하는 약초도있고 꽃도있다며

그렇게말씀하셧습다 그렇게 핑계를대면서..면회시간 1분남겨지면 서로 말없이 울었습니다...

10개월후.. 전출소를 하였고. 전 눈물을 흘리수박에없었습니다...꽃과 약초는 보이지않고

온통 시맨트바닥과 바다만보였습니다...저희엄마는 그런여자였습니다

이제 마음을 잡겠다 그여자 잊겠다.. 가족을 위해서 재대로살겠다

다짐을했어요..그런데 저보다 한살많은 친척형이있었는데 출소후 연락이 왔습니다

자기가 돈을 벌어야하는데 투잡을 뛰고싶다고.. 오전오후까진 요리를하고 밤부터 새벽까지는

호스트빠를 다니자고..전 게속 하기싫다했습니다 몬가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결국 친척형설득에 다시 .....그쪽세계로 빠지게되었고.. 거기서 또사고를 치고말았죠

지금도 친척형을 원망합니다 ....정말 죽도록 원망합니다 그이유는 조금더읽어보시면 아실꺼에요

전 수배가 내려지고 정확히 4월11일 엄마와 아빠와 재동생과 저랑 거실에서 케잌을 두고..

엄마야가 해준 맛있는 음식을 두고... 조용하고 ...슬픈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12일날 결국 전 집을 나왔고 수배가되어 도망다니게되었습니다..5개월동안 도망을다녔습니다

돈은 호스트빠에서 일해서 모았던 돈으로 생활을하였습니다 ..

그런데..정말...하늘이 무너질듯한 소식을 전해드렀습니다 내앞에서는 항상 웃던 건강했던

엄마야가...간경화라고..의식을잃어 xxx병원에 입원을했다고 경찰들은 저희집 그리고

엄마 병원에서 잠복을하였고.. 저는 모자를 푹눌러쓰고... 경찰이 잠든사이에 엄마병실을갔습니다

보는순간..그냥 망연자실을 했습니다.. 온몸은 노랗고 눈엔 황달이있고 분명히 몸은말랐는데

배에는 복수때문에 배가나왔고...그때가 어머니와 마지막..대화였어요...

엄마입안이 이상하게 뼈같은게 나와있어서 제가 간호사한테 욕을하며 당장주치의를 불러달라고하며

아침부터 대판싸웠습니다 완전 초토화시켰죠 그병원을 그리고 경찰이 알았는지.. 찾아왔고

전....그게 어머니 마지막목소리란걸 잊은채 도망을갔습니다..모르게써요 그순간에 잡히지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도망가다보니 1명 2명 4명까지 뿌리치고 도망을갔습니다....

그리고 간이식을 해주어야겠다는생각으로 9월경 전 자수를했습니다..

하지만...1~2개월박에 살지않았던 저는 게속 연기가 되었고..엄마는 병이 더욱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렇게 7개월을 영등포구치소에서 있다가... 엄마가위급하다는 이야기를듣고

이모께서 법원이며 구청장부터 시작해서 탄워서를내고 보석신청을냈습니다

전 9월달에 부터 이미 간이식을 마음먹었기에 7개월동안 운동도열심히했습니다..

결국 3월28일쯤..보석허가가 떨어졌고... 전출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xxx병원에 갔습니다 친척들 10명넘는 분들이 다오셧고 중환자실에있던 엄마를보았습니다

...울음도 안나와써요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써요...그리고 간이식이 된다는말에

서울대병원으로 옴겨졌고.. 전 입원을해 간조직검사 여러가지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간이식을 해줄수있다는 장기이식센터 직원들에말해 전 정말 기뻣습니다

그런데... 그이후부터 합병증이 오기시작했습니다 신장이 안좋아지고 폐에 물이차고

피에 균이생기고...중환자실 면회는 2번이에요 아침 저녘 1시간30분거리를 매일두번씩

오가며 엄마에게 사랑해 사랑해 수도없이 말을했고 노래도불러주고..손발에 로션도 발라주고..

티슈로 얼굴도 닦아주고...매일 그랬습니다.. 엄마는 목에 호흡기를 넣어나서 말을못하겼습니다

우리엄마는요.. 중환자실에서 면회시간만대면요.. 항상웃어써요 말은못하였지만

그런데요 그다음날 가면요 매일 눈주위에 하얀가루가 이써써요..알고보니 저희가고 울어서생긴

눈꼽과비슷한 눈물자국이였던거요.. 전엄마가 약해질까바 자연스럽게 얼굴을닦아주고

하루에 수십번씩사랑해 사랑해 그리고 노래를 불러주어써요...그리고 2011년 4월 11일 재생일날

간이식을 할수있다는말에 좋아했는데....좋아했는데...수술도중 사망할수있다는 말에

수술을 할수가없어써요...그리고 중환자실대기실에서 의자에서 잠을자고 간호사들한테

눈웃음 한번처주고 음료수 사다주면서 면회몰래 2번씩 더했어요 ...

그리고 한달후 화창한 봄날...5월5일 .. 엄마가..돌아가셨습니다.. 전 그모습을 지켜밨고...

모든 친척들이 지켜보는가운데 저희엄마는 돌아가셨습니다..전..재정신이아니여서 ...

막내이모가 언니간거야? 갔어? 하며 소리를 질르는순간 저도모르게 편의점으로가맥주4캔을

다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갔더니... 눈을 뜨고......그렇게..가셨습니다...

우리집은 가난합니다.. 하지만 친척들은 부자입니다.. 아직도 이런말들을합니다

우리셋째..힘들게살아왔는데.. 더잘해줄껄..돈이모길래..우리엄마는요..

젊은나이에 페지를 주어서 팔았어요 젊은나니에 길거리 청소를 해서 돈을 벌어써요

그리고 꽃을 너무사랑하셧어요... 장례식장엔 화환이 7개나 왔구요.. 사람들 엄청많이와써요

전 친한친구 1명에게만 연락했는데 .. 제가 중학교때 고등학교때 실컷 괴롭혔던..후배들이

모두 와주었구요.. 저랑사이안좋았고매일 싸움을했던 친구들도 와주었어요...

그리고 입관식때 친구들이 새벽부터 와서 관을 들어주었써요...

근데 열받는건 화장하는날 성당사람들과 아까 애기했던 친척형 그리고 친척형엄마 외숙모죠

화장하는도중에 갑자기 밥을 먹으로간대요 그래서 전 시발 ..어떻해 사람들이 그럴수있어

엄마뜨거운거 시러하는데 엄마 지금 불속에있는데 그거 기도해주러 그거 보려고 성당사람들왔으면서

나중에 먹어도 대지 왜지금먹냐고..라이터를 땅에 던지면서 외숙모한테 대들었죠..

그때 친척형이 저를 제압하면서 욕을하더라구요 당연히 제가 자기엄마한테 욕을하니 자기도열받았겠죠

.전 한마디했죠 성기까라고..니가 나보다 싸움잘해? 지금 맞짱뜰까?

내가 니카바해준게 몃번인데 시발새끼가 군대가따와서 근육만들면 싸움잘해 ?

그리고 친척형 옷을 다찢어버리고 ... 친구여자친구 형수씨되는분이 술을사와 전술을먹고진정을했고...

그사람들은 밥을먹으로갔고... 전 너무화가난게 친척형만아니였으면 지욕심때문에 투잡띠고싶어서

경험이있었던 저를 끌여들여 ..사고를 첬는데 왜 나만들어갔냐.. 그게억울해써요 같이사고첬는데..하..

친구들과 담배를피며 술을 마시고있는데 이모가 울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뛰어 오더라구요

엄마 ...볼수있다고..엄마 지금이 마지막이라고...가써요..그래요 가써요 갔는데요

마지막인모습이요.. 하얀색가루였어요...그게 엄마에 마지막이였어요 전 실신까지했죠

난다알아요 우리엄마는요 제가 3살때 아버지와 이혼후 배운게없어 술집장사를해서

매일술을마시며 저희를 키웠어요 그리고 제가요 여자친구와 동거를 하면서 엄마는 술을 더욱더

많이드셧어요 엄마일기장을 보곤 알았죠... 선천성간경화가 아닌.. 후천성이여써요

그만큼 술을 드셨다는거죠..근데요 우리엄마는 중독이아니였어요... 사랑하는저를혼낼수가없어

조용히...홀로 술을 마시고 주무시고 하셨어요...그런게 내리사랑인가봐요

친척들중에 제일잘사는 삼촌께서

1600만원 자리 빈소를사서 저희엄마가 좋아하는 꽃이그려진..함에 엄마야를 소중히 넣고...

분당메모리얼파크에 모셧어요... 저희엄마는 행복할꺼에요 옆에 백남봉씨도있구요..

그밑에 박용하씨도 있구요... 오전오후엔 백남봉씨가 웃길테구 밤에는 잔잔한목소리로박용하씨가

노래를 불러줄테고.....그리고 그이후부터 지금까지 3달동안 술마시고담배펴서

저는 페암초기판정을받고 병원에입원을해 다행히 수술을잘끝나 퇴원하며 요양중입니다.....

그리고 엄마돌아가시기 15일전에 제가 3년간사랑했고 2년간 그리워했던 여자는.....

참..사람또울게하게... 재친구에 동생 즉 재친구에 동생인데 그동생은 제 후배여써요

그후배랑 사겨서 아이를 낳고 혼인신고까지해써요... 정말 ...미치도록 ...화가나야하지만

미치도록... 슬펐습니다......그날따라 비가많이오더군요... 우연히 싸이를 돌아다니다가알게되었죠

그이후에 그여자 동생이랑 연락이되 술도 사주고 제가사랑했던 여자안부도묻고..

아기는 잘크는지.. 얼마나이쁜지..하면서 그여자에 동생이랑은 연락을합니다....

하늘이 저에게준 숙제같은걸꺼에요 아마.. 몰라요 저도모르게 그여자애 동생을 챙겨주고싶어써요

그래서 용돈도 주고..밥도사주고..술도사주고.. 언제든 연락하라구요 근데요 난 그여자동생은

여자처럼 보이지않아요...솔직히 제가사겼던 그여자아이에 안부를 들을려고 만나는것같아요....

아참 한가지더는요... 병원에서 그랬는데 5년전부터 간이안좋았대요..그여자를 처음만났던 시기때부터요.. 그리고 친척형이 호스트빠를 절대꾸가지않았으면 그때 간이식했으면 지금쯤 엄마랑 요양하면서

시골에서 행복하게살고있을수도있었을텐데... 여러분도 글을 다읽어보셨겠지만.. 모두다 제잘못입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3번 들어갔어요 물론 복학생은 아니구요.. 다른이들과 같이 졸업을했는데

꼴통학교2번 예고1번..이렇게요 그때 예고에서 학주한테 대들지만않았다면 지금쯤 제가 하고싶었던거

하면서 살았을텐데... 제가 사겼던 여자애가 저를보면그래요 엠씨더맥스 노래를 들으면 오빠생각난다구

그리고 언니도 오빠싸이 가끔씩 본다고.. 그리고 그쪽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도 이런이야기를한대요

어차피 아기날껄 아차피 결혼할껄 저랑 그렇게살지 왜 22살먹고 배운거없는 오토바이배달만하는

그런남자랑 결혼을 했냐구... 근데요 저도 잘난것없어요 저도 만약 일을해바짜 겨우 옷싸이트나

컴퓨터관련을 했을었을테니까요 그게그거죠...... 입원하기 몃일전 그여자아이 집근처를 술마시고

한바퀴를 돌아써요 그여자아이와 앉았던고 만났던곳 놀았던고 그리고 가로등앞..그리고 그아이창문을

보고... 그냥 저도모르게 실없이웃고 눈에서는 눈물만 나써요... 제가다녔던 고등학교옆에

그여자아이집 옆에였거든요....학교도 한번 가밨죠....

나요 우리엄마야 너무 보고싶어요 보고싶어 미칠꺼같아요

우리새아빠는요 10년동안 살면서 혼인신고도 엄마야랑 하지도않고 저희들도 아빠호적에안있는데

제가 아빠라고 부르지도않는데 우리엄마를 1년간 간호해주었구 보험금도 제가 수령하는데도

제가 관리할텐데도 가진거없는데도 저희곁에 있어준 우리아빠 정말로 사랑해요

지금은 요 아빠라고 불러요 교도소에서 약속해써요 아빠라고하겠다고.. 아직 10년넘게

우리를 위해 엄마를위해 저희를 먹여살렸지만 전 한번도 사랑한단말 안해써요.....

언젠간 할날이오겠죠... 요즘은 아빠랑 가끔씩 엄마 영전사진 앞에 술을 따라놓고

아빠랑 술을마시면서 사진을보면서 엄마와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울고 웃고해요

여러분 우리엄마 되게 예뻐요 그리고 재동생도 잘생겼구요 우리아빠는 ㅎㅎ 너무 순하게생겨써요

저는요 몰라요 그냥 그럭저럭이에요 ...나중에 우리엄마야 이쁜사진이랑 다올려드릴께요...

그리고 엄마돌아가시기전에 사랑의리퀘스트에 사연을 보넀는데 작가분이 연락왔는데

제가 전과자라서 촬영을 할수가없었서요.. 만약 촬영했으면 저는 상관없지만 재동생

대학교는 다닐수있어을텐데....... 모두다 제잘못입니다...

죽고싶어도 죽을수가없어요 엄마의 그마지막 모습을 전 보았기에..솔직히 무섭습니다

아빠가 가끔씩 그럽니다 엄마한테 가고싶다고...... 재동생은 중학생이라 철이없는지..

항상 웃고다녀요..근데 가끔씩 혼자방안에서 웁니다...

재발할수도있게지만 그런생각 버리고 열심히 살아서 우리엄마야 빈소도 박용하씨빈소처럼

넓은대로 옴겨주고 그럴꺼에요... 제 첫번째 소원이에요 ...

매일아침눈을떳을때 엄마가있었으면 좋겠는데...

시간을되돌수만있다면....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