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편집장이 나에게 그렇게 큰 일을 맡기다니 _ 이번달에는 꽃과 기념일에 관련된 특집 기사를 다루기로 되어 있었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어찌된 일인지 가장 분량많고 중요한 내용인 주요기사 취재가 들어왔고, 나는 잔뜩 기대하며 꽃 축제에 관련된 행사업체들과 인터뷰 약속을 힘들게 잡아두었더니, 막 출발하려는데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왔던 것이다.
"박기자, 급하게 스케쥴 변경됐네"
"네?"
"박기자가 취재하기로 한 꽃 축제에는 이기자와 한기자 보냈으니까 자네는 지금 곧장 내가 불러주는 주소로 가서 인터뷰하게"
어이가 없었다. 갖은 애를 써가며 행사 업체 사람들과 인터뷰 약속을 잡아두었더니 선배인 이기자와 한기자가 홀랑 채가고, 나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인터넷상에서 활동중인 사이버 작가와의 인터뷰 건을 넘겨주는 것이었다. 정말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꽃 축제 취재를 위해 공부한 행사 관련 프린트 물들이 담긴 파일을 가방밖으로 쏟아내고 편집장 욕을 마구 늘어놓으며 잠깐 흥분했던 내가 곧 자포자기하고 편집장이 불러준 주소를 써놓은 메모를 집어올렸다. 대학 졸업하고 1년만에 근근이 가지게 된 직장이었다. 다들 취직이 어렵다 어쩐다 해서 공무원 시험이라도 치려고 아둥바둥인데 나는 꽤 운 좋게도 제법 이름있는 문학잡지사에 기자로 취직할 수 있었다. 비록 이제 겨우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신참이었지만, 나름대로 학교 때 성적도 좋았고, 인터넷 방송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경력도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인정해줄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편집장의 태도는 정말 너무했다. 하기 싫으면 나가라, 너 아니어도 쓸 사람 많다 는 식의 태도를 보이며 마치 나를 제 집 하인부리듯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었다. 사실 성격 같았으면 편집장의 면전에다 사직서를 멋지게 던져주고 나왔을 것이지만 이력서를 들고 이곳저곳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힘든 현실과 타협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나는 매번 꾹 참고 말았다. 더러워서 못 해먹을 것 같아도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나는 편집장이 불러준 주소가 적혀 있는 메모지와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 건물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자리에 서서 머뭇거렸다.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의 인터뷰 문을 준비해야 할지도 걱정되었고, 야외가 아닌 그 사람의 집으로 불쑥 찾아간다는 것도 어쩐지 조금 꺼려졌기 때문이다.
"편집장님, 주소가 아파트인데요?"
"그래, 그 사람 취재 스케쥴 잡느라 힘들었어. 자기 집 아니면 어디서도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요즘 인터넷에서 한참 인기몰이하고 있는 호러소설 작가라고 하니까 잘 좀 취재해 와. 자네도 대학 다닐 때 글 꽤 썼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내가 특별히 자네한테 일 맡기는 거니까 신경써서 인터뷰 잘 하라고"
편집장은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유들유들하게 잘도 둘러댔다.
"사전 지식도 없이 가도 되는 겁니까? 인터뷰할 거리가 하나도 없는데요?"
"뭘 그런걸로 고민하고 그러나, 원래 작가란 사람들은 자기 세계에 심취한 사람들이니 작품성향이나 뭐 그런것들 물으면 지들 혼자 줄줄 떠들기 마련이니까 대충 인터뷰하고 자네가 알맞게 윤색해서 기사 써내"
정말이지 뻔뻔스러운 사람이다. 8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문 앞에서 육중한 아파트 철제 문을 바라보고 서 있자니 어쩐지 한숨이 나왔다. 난 이사람에 대해서 정말 아는 것이 없다. 게다가 난 겁이 많은 편이어서 호러 소설을 싫어한다.
".. 누구세요 "
벨을 누르자 어쩐지 음울해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인터폰을 타고 흘러나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인터뷰 하기로 한 잡지사에서 온 박기자라고 합니다"
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쾌활하게 인사를 했다. 곧 딸깍 소리가 나며 안에서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준 남자는 현관 앞에 서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남자는 후줄근한 트레이닝 복 차림에 며칠은 감지 않은 듯한 부스스한 머리, 게다가 바싹 야윈 몸에 퀭한 눈을 가지고 있어 정말 병자처럼 보였다. 타인과 만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괴상한 성격의 호러소설 작가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만들어져 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들어갈까 말까를 짧은 순간동안 현관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뭐해요, 인터뷰 안할겁니까?"
약간 귀찮음이 묻어있는 그의 말에 나는 아, 네 하며 엉겁결에 얼른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안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게다가 온통 창이 활짝 열려있어 환하기까지 했다.
"앉으세요"
그가 거실에 있는 쇼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쇼파에 엉덩이를 걸쳐놓으며 주방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응시했다.
"뭐 드실래요?"
"네? .. 아, 저"
"어? 커피랑 녹차 밖에 없네요"
"그럼 커피 주십시오"
음침하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는 싹싹하게 굴었다. 키도 제법 컸고, 꾀죄죄한 몰골이지만 생긴건 꽤 깔끔해 보였다. 나이는 28에서 30살 정도로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그가 커피 두 잔을 가지고 와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그가 건내준 뜨끈한 커피를 홀짝대며 주섬주섬 가방에서 녹음기와 수첩을 꺼내들고 인터뷰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의례적인 질문만 하기로 했다.
"음, 한참 인터넷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호러 소설을 연재하신다고요?"
"아, 인터뷰 시작인가요?"
내가 녹음기의 버튼을 누르고 그에게 묻자 그가 마시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네_ 부담갖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대답해주시면 되요"
"그렇군요, 흐음 _ 인기몰이라. 오래전부터 활동하고 있던 호러 동호회에 꾸준히 소설을 올렸었는데 많은 분들이 재밌게 읽어주셔서 저도 감사할 따름이죠"
"호러 소설은 언제부터 쓰셨습니까?"
그는 나의 질문에 잠시 눈을 위로 치켜뜨고 생각하더니 3년이네요, 하고 대답했다.
"본격적으로 인터넷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3년이지만, 사실은 훨씬 전부터 쓰고 있었죠. 원래 글쓰는 걸 좋아했고, 호러쪽 분야도 좋아했거든요"
"와, 꽤 오래 쓰셨네요! 호러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계시다고 했는데 어느 동호회입니까?"
"『심령연구회』라는 동호회에요. 전에는 주로 심령 현상의 비밀이나 미스테리를 메인으로 하는 동호회였지만, 사이트 재건후에는 제 소설 동호회로 바뀌었습니다"
심령연구회, 라는 동호회 이름을 발음하며 그의 얼굴이 조금 미묘하게 굳어갔다. 나는 그가 들려준 말을 수첩에 적어내려가는 척 하며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다음에 할 질문들을 생각해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음, 그럼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평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뭐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하지만 대부분 리얼하다는 게 주된 반응입니다. 참, 기자님은 제 작품 읽어보셨나요?"
그가 나에게 되물어왔고 예상치 못한 그의 질문에 나는 순간 뜨끔했다.
"아, 저 저 .."
당황한 듯한 나의 모습에 그가 괜찮다는 듯이 싱긋 웃어주더니 자리에서 일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남겨진 나는 난처함과 당황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 대답에 그가 기분이 상한건가, 읽었다고 거짓말을 했어야 했나 사전지식없이 인터뷰를 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알아야 했다고 나를 자책하며 멍하니 앉아있는데 곧 그가 종이 몇 장을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이게 뭡니까 하고 묻자 그가 다시 한번 악의없이 웃어주며 말했다.
"바쁘게 오신 것 같아 제 작품 못 읽으신 것 같네요. 급하게 몇 개 프린트 했습니다"
나는 그의 배려가 고마워서 황송한 생각마저 들었고 곧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의 작품을 받아들고 속독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의 작품을 읽는 동안 그는 조용히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의 작품은 아까 그가 말한 것처럼 정말 리얼리즘이 살아있었다. 사실 괴담형식으로 풀어나가는 그의 스토리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인물과 묘사 하나하나가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베껴 낸 듯 해서 절로 몸에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체질적으로 무서운 것을 싫어하는 나인지라 몇 편 읽고 나니 피부에 그 형상들이 와 닿는 것 같아 속이 메스꺼워졌다.
"와아, 정말 _ 대단하십니다"
내가 프린트물들을 정리해 테이블 위로 올려놓자 그가 가져가라는 듯이 까딱 손짓을 했다.
"정말 리얼한 묘사인데요!"
"그렇죠? 마치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리얼하죠?"
"하하, 네 그렇네요 _"
농담을 던지는 그의 말투가 묘하게 거슬렸다.
"필명이 박작가이시군요"
"네, 꽤 오래전부터 박작가로 활동해 왔습니다"
"소설은 자주 쓰십니까?"
"그런 편이죠, 자꾸 채근을 해대서"
"아, 팬들이요?"
내 말에 그는 별 대답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괴담 스토리를 많이 쓰시나 봐요?"
나는 서둘러 다른 질문을 던졌고,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죠. 사실 괴담류에는 그다지 인과관계가 적어 스토리상의 결함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때문에 더욱 극적이고 흥미있는 재미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호러 소설에서의 그 흥미는 결국 독자들에게 더욱 쭈뼛함과 메스꺼움을 선사하는 거구요"
"쭈뼛함과 메스꺼움 .. 이라구요?"
나는 잠시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고개를 든 그의 표정은 무엇에 질린 듯한 지겨운 표정이었다.
"사람들이 공포물을 찾는 이유가 그것 아니겠습니까, 불쾌하고 두려운 쾌감의 추구. 때문에 더럽고 징그럽고 더욱 무섭게 상상할 수 있는 '괴담' 이 필요한 것이지요. 호러 소설만큼 많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소설류도 드물어요. 그것은 한순간이라도 독자들이 그들을 기억해 준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글을 읽고 난 후 어두워 지거나 혹은 조금만 두려워지는 상황이 되어도 독자들은 글 속에 있는 그들을 다시금 떠올려 낼 수 있거든요"
"하하, 마치 괴담의 주인공들을 부활시키려는 의도같은 발언이네요!"
나는 제법 진지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작게 웃음을 내뱉았다.
"그렇죠, 누구든 잊혀지는 존재가 되는 건 두려우니까요"
침체되어진 분위기를 애써 바꾸려 밝게 말을 꺼낸 나의 웃음이 잦아들기도 전에 그가 싸늘한 눈을 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어쩐지 갑자기 주위가 서늘해지는 듯 하여 서둘러 인터뷰를 끝내려 마음먹었다. 아까 읽은 괴담의 내용들도 머릿속에서 한데 섞여 자꾸만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질문할 거리를 찾으려 머리를 굴려봤지만 한번 이미지화 된 귀신들의 모습은 쉽게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 소, 소설은 계속 쓰실겁니까?"
결국 내가 진땀을 흘려가며 질문 하나를 겨우 던지자 그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야죠_ 그럴 수 밖에 없구요. 내가 죽을때까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업이죠"
"아, 소설 쓰는 일이 즐거우신가 보군요"
" ..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도 있잖아요 하하하"
그의 어색한 웃음에 잠시 섬짓해져 나는 서둘러 다음 질문을 내놓았다.
"인터넷 상에서 인기있는 작가이신데 출판계획은 없으십니까? 연락 많이 올 것 같은데요"
"네, 아무래도 저도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는 편이 좋으니, 출판 계획은 있습니다. 현재도 출판사들과 여러차례 연락중이구요"
"그렇군요, 한국에서는 공포 문학계가 굉장히 침체되어 있는 상황인데 아무쪼록 박작가님의 책이 대중문학계에
공포문학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하하, 네 감사합니다"
"네, 그럼 인터뷰는 이것으로 마치고 사진 촬영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서둘러 인터뷰를 마치고 가방속에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녹음기와 수첩을 챙기면서 솔직히 무슨 말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는 내 말에 집안을 한번 휘휘 둘러보더니 어디서 찍을까요 하고 물었다.
"아, 뭐 인터넷 작가이시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도 괜찮을 것 같구요,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으니까 편하게 포즈 취해 주십시오"
그는 사진을 찍힌다는 게 약간은 어색한 모양인지 컴퓨터 앞에 엉거주춤하게 앉아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삐삑 _ 하는 기계음을 터뜨리며 내가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세 장 정도 같은 사진을 찍고 제대로 찍혔는지 확인하기 위해 버튼을 눌러 액정을 살펴보았지만 그의 모니터에서 방출되는 빛 탓인지 뿌연 기운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정면을 향하고 있어 얼굴의 윤곽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나는 그에게 다른 포즈를 요구했다.
"모니터 빛 때문에 얼굴이 잘 나오지 않네요. 그럼, 아! 저기 쇼파위에 편하게 앉아주실래요?"
방은 어두운데 모니터 빛 때문에 부옇게 나오나 보다 생각한 내가 거실에 아까 내가 앉았던 쇼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하고 쇼파끝에 앉았다.
"아뇨, 그쪽말고 조금 더 안쪽으로 네네, 그쪽"
그는 잠시 옆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으로 자리를 탁탁 털어내었다. 그리고 조금 굳어진 얼굴로 쇼파에 기대앉았다. 삐삑 _ 다시 그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내었다. 이번에는 각기 다른 각도에서 다섯 장 쯤 찍고 돌려보았지만 이상하게 이번 사진들에도 그의 모습이 부옇게 나와 있었다.
"이상하네요, 박작가님_ 제 카메라가 이상한지 자꾸만 사진이 부옇게 나오네요"
그 말에 그가 내게 다가와서 카메라 액정을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이 내게 가까이 밀착되자 훅 하고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잘 씻지 않아서 나는 냄새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나는 애써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지웠다.
"그러게요, 것 참 이상하네요"
그가 한참이나 카메라의 액정을 들여다보더니 잘 모르겠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럼 뭐 제가 포토샵으로 살짝 손 보겠습니다. 집 내부 사진 좀 찍어가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컴컴한 그의 방에 놓여있는 파란 빛을 내는 컴퓨터를 촬영하고 현관쪽에서 그의 거실 내부를 촬영했다.
"박기자 님이라고 하셨죠?"
주방으로 컵을 가지고 들어가며 그가 난데없이 물었다.
"네"
"저는 박작가라는 필명이고, 그쪽분은 박기자라 하하_ 어쩐지 반가운 느낌이네요"
"아, 그렇군요!"
그의 말에 나도 작게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호러 글에 관심 많으신가요?"
그의 질문에 조금 난처해졌지만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사실, 덩치는 이래도 무서움을 많이 타서 호러 문학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시군요 _ 그럼 글은 잘 쓰세요?"
"아 뭐,"
나는 조금 쑥쓰러워져 카메라를 든 손으로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남들만큼 쓰는 편입니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좋아하긴 하죠"
"기자시니까 눈에 보이는 걸 보다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잘 묘사하시겠네요"
그가 주방쪽에서 나를 바라보며 아까처럼 싱긋 웃어보였다.
"박기자님, 호러 소설 작가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호러 소설 작가요? 호러 소설을 쓰는 사람이죠"
내가 약간 어이 없게 대답하자 그가 껄껄 웃었다.
"그렇네요, 하지만 적어도 저는 "
그가 나를 바라보며 이제까지 입에 걸고 있던 웃음기를 싸악 지우고 말했다.
"보이는 걸 그대로 옮겨내는 사람이랍니다"
머리로는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미 팔뚝에는 소름이 좌악 올라오고 있었다.
"하하, 바, 박작가님_ 농담도 .."
"그들은 항상 요구하죠.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사람들에게서 잊혀지지 않게 해달라고"
가뜩이나 묘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더욱 추워지는 걸 느끼며 몸을 움츠렸다.
"그들은 날 살려두었어요, 내가 좋든 싫든 그런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말이죠 하지만 견딜 수 없었어요. 매일같이 침대맡에 죽은 친구들이 서 있는 것 옷장을 열면 불에 탄 아이들이 울고 있는 것, 개수대 속에서 여자의 손가락이 보이는 것 .. 그리고 당신의 머리 위에서는 투신한 여자가 눈 한쪽으로 날 거꾸로 내려다 보는 것"
순간, 난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가 지금 내뱉는 말이 설령 농담이라 하더라도 엄청나게 무서워서 주저앉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정말 그의 말처럼 고개를 위로 들어올리면
투신자살한 여자의 한쪽밖에 없는 눈알이 보일 것 같았다. 내가 아무말 하지 못하고 몸을 덜덜 떨면서 그를 바라보자 그가 다시 작게 웃었다.
"나는 사실 4개월전에 자살했어요"
주방쪽에서 매캐한 냄새가 맡아져왔다. 그리고 뒤돌아선 그가 치직_ 라이터를 켰다.
"그래도 당신이어서 다행입니다 .. 앞으로 부탁드려요, 박기자님"
꿈인가?! 지독한 악몽이다. 나는 얼얼해진 머리를 부여잡고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삣 _ 삣 _ 삣 _ 삣 낯설음 기계음 소리와 함께 왼쪽팔에 꽂혀있는 링거와 흰 침대시트가 눈에 들어왔다. 어? 여기, 병원인가?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옆쪽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어, 엄마!"
내가 작게 소리내어 몇 번 부르자 어머니는 그제야 게슴츠레 눈을 뜨고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정신이 들어? 간호사, 간호사!!"
곧 간호사 몇 명이 들이닥쳤고, 삣삣 거리던 기계등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기분은 어때요? 자, 발가락 한번 움직여 볼래요?"
나는 간호사의 말에 따라 왼쪽 오른쪽 발가락과 손가락을 등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제가 왜 병원에 있습니까?"
그 말에 어머니가 내 손을 꼬옥 쥐시며 말했다.
"너 그때 취재갔다가 하필 가스 폭발 사고를 당해서 이리로 실려온거야. 나는 너 깨어나지 못하는 줄 알고 .. 흑"
어머니는 목이 멘 소리로 말을 잇다가 결국 작게 울음을 터뜨리고 마셨다. 아, 가스 폭발 _ 박작가의 집에서 마지막으로 본 섬광같은 불꽃들, 가스 폭발이었구나.
"아드님이 정말 억게세 운 좋은 사람이네요. 폭발 충격으로 8층 베란다 밖으로 추락했는데 골절이나 화상없이 경미한 부상만 입고 깨어나다니요"
간호사가 팔에 주사를 놓으며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몇 가지 검사 받아보신 후에 곧 퇴원하실 수 있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침에는 소식을 듣고 편집장과 한기자가 출근 전 내게 잠깐 들렀다.
"어때, 몸은 좀 괜찮나?"
편집장은 약간 미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괜찮습니다. 병원에서는 저더러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하하"
한기자가 내 말에 따라웃더니 말을 이었다.
"크게 액땜했다 생각해, 얼른 나아서 이제는 큰 취재만 맡으라고_ 알았지?"
그들은 출근 시간때문에 병실에 잠시 머물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곧 일어섰다.
"아, 그 박작가라는 분은 어떻게 됐어요?"
내 말에 편집장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 .. 죽었네, 그 친구는. 이런 말 하기 좀 뭣하지만 .. "
그가 말을 하려다 말고 말끝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왜요?"
"시체가 성하지 못한채로 발견됐어, 이상한 건 죽은지 한 5개월은 된 듯 썩어있더라고. 물론 폭발때문에 시체가 훼손되었을거라 추정하네만 "
싸한 기운이 온몸을 훑어내렸다. 4개월전에 자살했어요, 라며 내게 말하던 그의 말과 훅 맡아져오는 불쾌한 악취가 떠올랐다. 그럼 그런 그와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커피를 함께 마셨던 나는 뭐란말인가! 나는 편집장과 한기자가 돌아간 후 침대 속에서 진저리치며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상기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을 옮겨낸다는 박작가의 말과 생생하게 써내려간 그의 글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부탁드려요 박기자님 _ 하던 그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나는 침대옆에 어머니가 갖다놓은 노트북을 펴 들고 그의 동호회를 찾기위해 검색창에 '심령연구회'를 쳤다. 그러자 그의 동호회 주소와 함께 자잘한 신문 기사들이 주르륵 모니터에 함께 떴다.
【심령연구회 정모 중 큰 사고 .. 】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제목을 클릭하자 곧 사진과 함께 기사가 보여졌다.
【심령연구회 야유회 중 큰 교통사고, 생존자 1명 x월 x일 심령연구회 라는 인터넷 동호회에서 야유회를 위한 여행 중 고속도로에서 큰 추돌사고를 당해 많은 사상자를 내는 사고가 발생했다. ... 일각에서는 심령동호회 (심령현상이나 미스테를 연구하는 동호회) 라서 운이 좋지 않았다는 등의 억측도 난무하고 있다. 이 날 사고로 인해 버스에 타고 있던 회원 전원이 사망했으며, 승용차로 뒤따라가던 회원들 중 두 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명은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유일한 생존자인 박씨(29)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경미한 부상이어서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박작가였다! 유일한 생존자인 박씨는 박작가가 틀림없었다. 그는 나처럼 최악의 조건에서 정말 운좋게, 기적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날 살려뒀어요. 내가 좋든 싫든 그런건 상관하지 않고 말이죠. 그들은 항상 요구하죠.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사람들에게서 잊혀지지 않게 해달라고 .. 보이는 걸 그대로 옮겨내는 사람입니다'
"아아아.."
나는 잠시 인터뷰 내용을 떠올리며 작게 몸서리쳤다. 침대 머리맡에 항상 보인다던 죽은 친구들, 불에 탄 아이, 투신한 여자 _ 정말일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누가 쓰게 되지? 끼익 _ 끼익 _ 어디선가 철제로 만든 이음새가 끽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나는 어쩐지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철제로 만들어진 침대 아래쪽이었다. 시퍼렇고 창백한 가늘은 손이 침대 밑에서 손을 뻗어 왼쪽 다리쪽의 침대 기둥을 붙잡고는 앞뒤로 끽끽 거리며 흔들어대고 있었다.
"아아아악"
나는 몸을 바둥거리며 소스라치는 비명을 지르고는 침대 위쪽으로 기어올라갔다. 턱, 흔들_ 뒤로 물러서던 내 목 뒤로 무언가 서늘한 것이 닿았다.
"아, 아아아아 "
나는 한숨같은 소리를 뱉아내가며 차마 돌아볼 용기가 없어 두려움에 눈물을 주륵 쏟았다. 발가락, 발가락이었다. 차갑게 굳어진 발가락이 내 목에 부딪혀 조금씩 흔들 흔들 움직거리고 있었다. 목 뒷덜미로부터 척추를 따라 싸하고 오싹한 기운이 온몸을 마비시켰다. 오늘따라 간호사도 들어오지 않는다. 누구라도 좋으니 병실로 들어와서 이 악몽같은 상황을 벗어나게 해주면 좋으련만.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목덜미에 차가운 기운을 느끼며 꼼짝않고 울고만 있는데 어느 순간 목덜미에 닿던 차가운 기운이 스윽 사라졌다. 가위에서 풀린건가, 아니면 악몽에서 깨어난 건가 싶었지만 여전히 침대 아래쪽에서 끽끽 거리는 소리는 들려왔다.
'깨어나, 깨어나 _ 꿈이야'
나는 스스로 암시를 걸며 뒤로 홱 고개를 돌렸다. 아아!? 박작가였다! 박작가가 내 침대 머리맡에 서서 천장에서 목을 메고 흔들거리던 여인의 발목이 내 뒷목에 가 닿지 못하도록 양손으로 잡고 있었다.
" .. 안녕하세요, 박기자님"
그가 내게 인사했다. 죽은 여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뭉턱 잘려나간 왼쪽 손목에서 여전히 더운 피를 흘린채.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사직서를 제출했다. 편집장은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사고 후유증때문에 더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편집장의 사무실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오면서도 나는 그의 사무실 창문 밖에서 손톱이 빠져버린 손가락으로 유리를 마구 긁으며 울고 있는 여자를 애써 모른척 하며 침착하게 말을 잇고 나왔다. 물건을 정리해서 집으로 돌아가자 박작가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다음은 누구야?"
정리해온 물건들을 책상위에 올려놓으며 내가 묻자 박작가가 침대밑을 가리켰다. 그러자 침대밑에서 상체뿐인 여고생이 파리한 얼굴로 내장을 질질 끌며 기어나왔다.
"오늘안에 네 이야기 써줄 테니까, 제발 잘때 침대 좀 흔들지 마"
내가 질책하듯 말하자 그녀가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책상위에 올려두었던 폰이 드르륵 진동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박작가님, 지난달에 연락드렸던 출판사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원고는 잘 받았습니다. 내일쯤 출판사로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전화를 끊고 돌아서자 박작가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였다.
"우리들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대요"
여전히 이야기가 미뤄지고 있는 박작가의 동호회 사람들이 내 말에 환호성을 질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박작가님"
박작가가 잘려진 왼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다섯 달 뒤, 책이 나왔다. 90년대 초 이후로 호러 소설 시장은 상당이 위축되었으므로 사람들은 호러 소설을 단순히 화장실 유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읽을 수 있고, 리얼한 묘사가 주를 이루는 박작가와 나의 괴담집은 의외로 팍팍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일탈감을 주는 코드로 작용했다. 사람들은 기괴한 이야기들을 혐오하고 무서워하면서도 즐겨 찾았다. 나에게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인터뷰며, 출판 계약 건이며, 영화사에서 전화가 걸려왔지만 나는 되도록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 계속해서 미친듯이 글을 써댔다. 집에는 이제 더이상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나와 박작가의 책이 사람들에게서 유명해 질수록 나를 찾아오는 그들의 수도 늘어났다.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그들이 이제는 무섭다기 보다는 화가 나고 지겨워져갔다. 끊임없이 글을 써내는 나의 노고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흉측한 몰골을 들이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하소연하는 그들 _ 나는 점점 퀭하게 말라가고, 모든 일에 의욕을 잃어갔다. 그때 문득 며칠전 인터뷰 요청건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박작가입니다. 아, 네 _ 인터뷰 요청 하셨죠, 인터뷰 할까 해서요 네, 기자분을 저희 집으로 보내주시겠습니까? 집이 아니면 어디서도 만나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괜찮습니까? 네 _ 그럼 이따가 뵙 .. 아 잠깐요! 혹시 박씨 성을 가진 기자분이 있다면 그 분으로 보내주십시오 네, 그럼"
전화를 끊었다. 곧 박씨 성을 가진 기자가 나의 아파트를 방문하게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컴퓨터 옆에 줄지어 서서 아우성치는 박작가와 그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한번도못들어봤을 무서운이야기<12>
★한번도못들어봤을 무서운이야기 1~10
http://pann.nate.com/talk/312168939
( 박작가를 보다 재미있게 읽으시려면
11번 글 '후유증' 을 먼저 읽으세요
박작가는 후유증의 속편입니다 )
박작가 - 생의 에피소드는 그렇게 옮겨진다
어쩐지 의외라고 생각했었다.
편집장이 나에게 그렇게 큰 일을 맡기다니 _
이번달에는 꽃과 기념일에 관련된 특집 기사를 다루기로 되어 있었다.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어찌된 일인지 가장 분량많고 중요한 내용인 주요기사 취재가
들어왔고, 나는 잔뜩 기대하며 꽃 축제에 관련된 행사업체들과 인터뷰 약속을 힘들게
잡아두었더니, 막 출발하려는데 편집장에게서 전화가 왔던 것이다.
"박기자, 급하게 스케쥴 변경됐네"
"네?"
"박기자가 취재하기로 한 꽃 축제에는 이기자와 한기자 보냈으니까
자네는 지금 곧장 내가 불러주는 주소로 가서 인터뷰하게"
어이가 없었다.
갖은 애를 써가며 행사 업체 사람들과 인터뷰 약속을 잡아두었더니
선배인 이기자와 한기자가 홀랑 채가고, 나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인터넷상에서 활동중인 사이버 작가와의 인터뷰 건을 넘겨주는 것이었다.
정말 억울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다.
꽃 축제 취재를 위해 공부한 행사 관련 프린트 물들이 담긴 파일을
가방밖으로 쏟아내고 편집장 욕을 마구 늘어놓으며 잠깐 흥분했던 내가
곧 자포자기하고 편집장이 불러준 주소를 써놓은 메모를 집어올렸다.
대학 졸업하고 1년만에 근근이 가지게 된 직장이었다.
다들 취직이 어렵다 어쩐다 해서 공무원 시험이라도 치려고 아둥바둥인데
나는 꽤 운 좋게도 제법 이름있는 문학잡지사에 기자로 취직할 수 있었다.
비록 이제 겨우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신참이었지만,
나름대로 학교 때 성적도 좋았고, 인터넷 방송에서 기자로 활동했던 경력도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하면 인정해줄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편집장의 태도는 정말 너무했다.
하기 싫으면 나가라, 너 아니어도 쓸 사람 많다 는 식의 태도를 보이며
마치 나를 제 집 하인부리듯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었다.
사실 성격 같았으면 편집장의 면전에다 사직서를 멋지게 던져주고 나왔을 것이지만
이력서를 들고 이곳저곳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힘든 현실과 타협할 마음이 생기지 않아 나는 매번 꾹 참고 말았다.
더러워서 못 해먹을 것 같아도 살아야 하는 세상이다.
나는 편집장이 불러준 주소가 적혀 있는 메모지와 눈앞에 보이는 아파트 건물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자리에 서서 머뭇거렸다.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떤 내용의 인터뷰 문을 준비해야 할지도 걱정되었고,
야외가 아닌 그 사람의 집으로 불쑥 찾아간다는 것도 어쩐지 조금 꺼려졌기 때문이다.
"편집장님, 주소가 아파트인데요?"
"그래, 그 사람 취재 스케쥴 잡느라 힘들었어. 자기 집 아니면 어디서도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요즘 인터넷에서 한참 인기몰이하고 있는
호러소설 작가라고 하니까 잘 좀 취재해 와. 자네도 대학 다닐 때 글 꽤 썼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내가 특별히 자네한테 일 맡기는 거니까 신경써서 인터뷰 잘 하라고"
편집장은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유들유들하게 잘도 둘러댔다.
"사전 지식도 없이 가도 되는 겁니까? 인터뷰할 거리가 하나도 없는데요?"
"뭘 그런걸로 고민하고 그러나, 원래 작가란 사람들은 자기 세계에 심취한 사람들이니
작품성향이나 뭐 그런것들 물으면 지들 혼자 줄줄 떠들기 마련이니까
대충 인터뷰하고 자네가 알맞게 윤색해서 기사 써내"
정말이지 뻔뻔스러운 사람이다.
8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문 앞에서 육중한 아파트 철제 문을 바라보고
서 있자니 어쩐지 한숨이 나왔다.
난 이사람에 대해서 정말 아는 것이 없다.
게다가 난 겁이 많은 편이어서 호러 소설을 싫어한다.
".. 누구세요 "
벨을 누르자 어쩐지 음울해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인터폰을 타고 흘러나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인터뷰 하기로 한 잡지사에서 온 박기자라고 합니다"
나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쾌활하게 인사를 했다.
곧 딸깍 소리가 나며 안에서 문을 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준 남자는 현관 앞에 서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남자는 후줄근한 트레이닝 복 차림에 며칠은 감지 않은 듯한 부스스한 머리,
게다가 바싹 야윈 몸에 퀭한 눈을 가지고 있어 정말 병자처럼 보였다.
타인과 만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괴상한 성격의 호러소설 작가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만들어져 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들어갈까 말까를 짧은 순간동안
현관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뭐해요, 인터뷰 안할겁니까?"
약간 귀찮음이 묻어있는 그의 말에 나는 아, 네 하며 엉겁결에 얼른 집안으로 들어섰다.
집안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게다가 온통 창이 활짝 열려있어 환하기까지 했다.
"앉으세요"
그가 거실에 있는 쇼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쇼파에 엉덩이를 걸쳐놓으며 주방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응시했다.
"뭐 드실래요?"
"네? .. 아, 저"
"어? 커피랑 녹차 밖에 없네요"
"그럼 커피 주십시오"
음침하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는 싹싹하게 굴었다.
키도 제법 컸고, 꾀죄죄한 몰골이지만 생긴건 꽤 깔끔해 보였다.
나이는 28에서 30살 정도로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그가 커피 두 잔을 가지고 와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그가 건내준 뜨끈한 커피를 홀짝대며 주섬주섬 가방에서 녹음기와 수첩을 꺼내들고
인터뷰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의례적인 질문만 하기로 했다.
"음, 한참 인터넷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호러 소설을 연재하신다고요?"
"아, 인터뷰 시작인가요?"
내가 녹음기의 버튼을 누르고 그에게 묻자 그가 마시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네_ 부담갖지 마시고 그냥 편하게 대답해주시면 되요"
"그렇군요, 흐음 _ 인기몰이라. 오래전부터 활동하고 있던 호러 동호회에
꾸준히 소설을 올렸었는데 많은 분들이 재밌게 읽어주셔서 저도 감사할 따름이죠"
"호러 소설은 언제부터 쓰셨습니까?"
그는 나의 질문에 잠시 눈을 위로 치켜뜨고 생각하더니 3년이네요, 하고 대답했다.
"본격적으로 인터넷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3년이지만, 사실은 훨씬 전부터 쓰고 있었죠.
원래 글쓰는 걸 좋아했고, 호러쪽 분야도 좋아했거든요"
"와, 꽤 오래 쓰셨네요! 호러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계시다고 했는데 어느 동호회입니까?"
"『심령연구회』라는 동호회에요. 전에는 주로 심령 현상의 비밀이나 미스테리를
메인으로 하는 동호회였지만, 사이트 재건후에는 제 소설 동호회로 바뀌었습니다"
심령연구회, 라는 동호회 이름을 발음하며 그의 얼굴이 조금 미묘하게 굳어갔다.
나는 그가 들려준 말을 수첩에 적어내려가는 척 하며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다음에 할 질문들을 생각해내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음, 그럼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내리는 평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뭐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하지만 대부분 리얼하다는 게 주된 반응입니다.
참, 기자님은 제 작품 읽어보셨나요?"
그가 나에게 되물어왔고 예상치 못한 그의 질문에 나는 순간 뜨끔했다.
"아, 저 저 .."
당황한 듯한 나의 모습에 그가 괜찮다는 듯이 싱긋 웃어주더니 자리에서 일어서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남겨진 나는 난처함과 당황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 대답에 그가 기분이 상한건가, 읽었다고 거짓말을 했어야 했나
사전지식없이 인터뷰를 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알아야 했다고 나를 자책하며
멍하니 앉아있는데 곧 그가 종이 몇 장을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이게 뭡니까 하고 묻자 그가 다시 한번 악의없이 웃어주며 말했다.
"바쁘게 오신 것 같아 제 작품 못 읽으신 것 같네요. 급하게 몇 개 프린트 했습니다"
나는 그의 배려가 고마워서 황송한 생각마저 들었고
곧 부끄러운 마음으로 그의 작품을 받아들고 속독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의 작품을 읽는 동안 그는 조용히 쇼파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그의 작품은 아까 그가 말한 것처럼 정말 리얼리즘이 살아있었다.
사실 괴담형식으로 풀어나가는 그의 스토리에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인물과 묘사 하나하나가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베껴 낸 듯 해서
절로 몸에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체질적으로 무서운 것을 싫어하는 나인지라 몇 편 읽고 나니
피부에 그 형상들이 와 닿는 것 같아 속이 메스꺼워졌다.
"와아, 정말 _ 대단하십니다"
내가 프린트물들을 정리해 테이블 위로 올려놓자 그가 가져가라는 듯이 까딱 손짓을 했다.
"정말 리얼한 묘사인데요!"
"그렇죠? 마치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리얼하죠?"
"하하, 네 그렇네요 _"
농담을 던지는 그의 말투가 묘하게 거슬렸다.
"필명이 박작가이시군요"
"네, 꽤 오래전부터 박작가로 활동해 왔습니다"
"소설은 자주 쓰십니까?"
"그런 편이죠, 자꾸 채근을 해대서"
"아, 팬들이요?"
내 말에 그는 별 대답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괴담 스토리를 많이 쓰시나 봐요?"
나는 서둘러 다른 질문을 던졌고,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죠. 사실 괴담류에는 그다지 인과관계가 적어 스토리상의 결함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때문에 더욱 극적이고 흥미있는 재미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호러 소설에서의 그 흥미는 결국 독자들에게 더욱 쭈뼛함과 메스꺼움을 선사하는 거구요"
"쭈뼛함과 메스꺼움 .. 이라구요?"
나는 잠시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고개를 든 그의 표정은 무엇에 질린 듯한 지겨운 표정이었다.
"사람들이 공포물을 찾는 이유가 그것 아니겠습니까, 불쾌하고 두려운 쾌감의 추구.
때문에 더럽고 징그럽고 더욱 무섭게 상상할 수 있는 '괴담' 이 필요한 것이지요.
호러 소설만큼 많은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소설류도 드물어요.
그것은 한순간이라도 독자들이 그들을 기억해 준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글을 읽고 난 후 어두워 지거나 혹은 조금만 두려워지는 상황이 되어도
독자들은 글 속에 있는 그들을 다시금 떠올려 낼 수 있거든요"
"하하, 마치 괴담의 주인공들을 부활시키려는 의도같은 발언이네요!"
나는 제법 진지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작게 웃음을 내뱉았다.
"그렇죠, 누구든 잊혀지는 존재가 되는 건 두려우니까요"
침체되어진 분위기를 애써 바꾸려 밝게 말을 꺼낸 나의 웃음이 잦아들기도 전에
그가 싸늘한 눈을 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어쩐지 갑자기 주위가 서늘해지는 듯 하여 서둘러 인터뷰를 끝내려 마음먹었다.
아까 읽은 괴담의 내용들도 머릿속에서 한데 섞여 자꾸만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질문할 거리를 찾으려 머리를 굴려봤지만 한번 이미지화 된 귀신들의 모습은
쉽게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앞으로 소, 소설은 계속 쓰실겁니까?"
결국 내가 진땀을 흘려가며 질문 하나를 겨우 던지자 그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야죠_ 그럴 수 밖에 없구요. 내가 죽을때까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업이죠"
"아, 소설 쓰는 일이 즐거우신가 보군요"
" ..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라는 말도 있잖아요 하하하"
그의 어색한 웃음에 잠시 섬짓해져 나는 서둘러 다음 질문을 내놓았다.
"인터넷 상에서 인기있는 작가이신데 출판계획은 없으십니까? 연락 많이 올 것 같은데요"
"네, 아무래도 저도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는 편이 좋으니, 출판 계획은 있습니다.
현재도 출판사들과 여러차례 연락중이구요"
"그렇군요, 한국에서는 공포 문학계가 굉장히 침체되어 있는 상황인데
아무쪼록 박작가님의 책이 대중문학계에
공포문학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하하, 네 감사합니다"
"네, 그럼 인터뷰는 이것으로 마치고 사진 촬영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서둘러 인터뷰를 마치고 가방속에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녹음기와 수첩을 챙기면서 솔직히 무슨 말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는 내 말에 집안을 한번 휘휘 둘러보더니 어디서 찍을까요 하고 물었다.
"아, 뭐 인터넷 작가이시니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도 괜찮을 것 같구요,
아무래도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으니까 편하게 포즈 취해 주십시오"
그는 사진을 찍힌다는 게 약간은 어색한 모양인지 컴퓨터 앞에 엉거주춤하게 앉아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삐삑 _ 하는 기계음을 터뜨리며 내가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세 장 정도 같은 사진을 찍고 제대로 찍혔는지 확인하기 위해 버튼을 눌러 액정을 살펴보았지만
그의 모니터에서 방출되는 빛 탓인지 뿌연 기운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정면을 향하고 있어 얼굴의 윤곽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나는 그에게 다른 포즈를 요구했다.
"모니터 빛 때문에 얼굴이 잘 나오지 않네요. 그럼, 아! 저기 쇼파위에 편하게 앉아주실래요?"
방은 어두운데 모니터 빛 때문에 부옇게 나오나 보다 생각한 내가
거실에 아까 내가 앉았던 쇼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고개를 끄덕하고 쇼파끝에 앉았다.
"아뇨, 그쪽말고 조금 더 안쪽으로 네네, 그쪽"
그는 잠시 옆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손으로 자리를 탁탁 털어내었다.
그리고 조금 굳어진 얼굴로 쇼파에 기대앉았다.
삐삑 _ 다시 그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아내었다.
이번에는 각기 다른 각도에서 다섯 장 쯤 찍고 돌려보았지만
이상하게 이번 사진들에도 그의 모습이 부옇게 나와 있었다.
"이상하네요, 박작가님_ 제 카메라가 이상한지 자꾸만 사진이 부옇게 나오네요"
그 말에 그가 내게 다가와서 카메라 액정을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이 내게 가까이 밀착되자 훅 하고 불쾌한 냄새가 진동했다.
잘 씻지 않아서 나는 냄새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나는 애써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지웠다.
"그러게요, 것 참 이상하네요"
그가 한참이나 카메라의 액정을 들여다보더니 잘 모르겠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럼 뭐 제가 포토샵으로 살짝 손 보겠습니다. 집 내부 사진 좀 찍어가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컴컴한 그의 방에 놓여있는 파란 빛을 내는 컴퓨터를 촬영하고
현관쪽에서 그의 거실 내부를 촬영했다.
"박기자 님이라고 하셨죠?"
주방으로 컵을 가지고 들어가며 그가 난데없이 물었다.
"네"
"저는 박작가라는 필명이고, 그쪽분은 박기자라 하하_ 어쩐지 반가운 느낌이네요"
"아, 그렇군요!"
그의 말에 나도 작게 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호러 글에 관심 많으신가요?"
그의 질문에 조금 난처해졌지만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사실, 덩치는 이래도 무서움을 많이 타서 호러 문학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시군요 _ 그럼 글은 잘 쓰세요?"
"아 뭐,"
나는 조금 쑥쓰러워져 카메라를 든 손으로 뒷통수를 벅벅 긁었다.
"남들만큼 쓰는 편입니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좋아하긴 하죠"
"기자시니까 눈에 보이는 걸 보다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잘 묘사하시겠네요"
그가 주방쪽에서 나를 바라보며 아까처럼 싱긋 웃어보였다.
"박기자님, 호러 소설 작가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호러 소설 작가요? 호러 소설을 쓰는 사람이죠"
내가 약간 어이 없게 대답하자 그가 껄껄 웃었다.
"그렇네요, 하지만 적어도 저는 "
그가 나를 바라보며 이제까지 입에 걸고 있던 웃음기를 싸악 지우고 말했다.
"보이는 걸 그대로 옮겨내는 사람이랍니다"
머리로는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미 팔뚝에는 소름이 좌악 올라오고 있었다.
"하하, 바, 박작가님_ 농담도 .."
"그들은 항상 요구하죠.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사람들에게서 잊혀지지 않게 해달라고"
가뜩이나 묘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더욱 추워지는 걸 느끼며 몸을 움츠렸다.
"그들은 날 살려두었어요, 내가 좋든 싫든 그런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말이죠
하지만 견딜 수 없었어요. 매일같이 침대맡에 죽은 친구들이 서 있는 것
옷장을 열면 불에 탄 아이들이 울고 있는 것, 개수대 속에서 여자의 손가락이 보이는 것
.. 그리고 당신의 머리 위에서는 투신한 여자가 눈 한쪽으로 날 거꾸로 내려다 보는 것"
순간, 난 그대로 얼어버렸다.
그가 지금 내뱉는 말이 설령 농담이라 하더라도 엄청나게 무서워서 주저앉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정말 그의 말처럼 고개를 위로 들어올리면
투신자살한 여자의 한쪽밖에 없는 눈알이 보일 것 같았다.
내가 아무말 하지 못하고 몸을 덜덜 떨면서 그를 바라보자 그가 다시 작게 웃었다.
"나는 사실 4개월전에 자살했어요"
주방쪽에서 매캐한 냄새가 맡아져왔다.
그리고 뒤돌아선 그가 치직_ 라이터를 켰다.
"그래도 당신이어서 다행입니다 .. 앞으로 부탁드려요, 박기자님"
꿈인가?!
지독한 악몽이다.
나는 얼얼해진 머리를 부여잡고 가까스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삣 _ 삣 _ 삣 _ 삣
낯설음 기계음 소리와 함께 왼쪽팔에 꽂혀있는 링거와 흰 침대시트가 눈에 들어왔다.
어? 여기, 병원인가?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옆쪽으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어, 엄마!"
내가 작게 소리내어 몇 번 부르자 어머니는 그제야 게슴츠레 눈을 뜨고 나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래, 정신이 들어? 간호사, 간호사!!"
곧 간호사 몇 명이 들이닥쳤고, 삣삣 거리던 기계등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기분은 어때요? 자, 발가락 한번 움직여 볼래요?"
나는 간호사의 말에 따라 왼쪽 오른쪽 발가락과 손가락을 등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제가 왜 병원에 있습니까?"
그 말에 어머니가 내 손을 꼬옥 쥐시며 말했다.
"너 그때 취재갔다가 하필 가스 폭발 사고를 당해서 이리로 실려온거야.
나는 너 깨어나지 못하는 줄 알고 .. 흑"
어머니는 목이 멘 소리로 말을 잇다가 결국 작게 울음을 터뜨리고 마셨다.
아, 가스 폭발 _
박작가의 집에서 마지막으로 본 섬광같은 불꽃들, 가스 폭발이었구나.
"아드님이 정말 억게세 운 좋은 사람이네요. 폭발 충격으로 8층 베란다 밖으로 추락했는데
골절이나 화상없이 경미한 부상만 입고 깨어나다니요"
간호사가 팔에 주사를 놓으며 웃는 목소리로 말했다.
"몇 가지 검사 받아보신 후에 곧 퇴원하실 수 있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침에는 소식을 듣고 편집장과 한기자가 출근 전 내게 잠깐 들렀다.
"어때, 몸은 좀 괜찮나?"
편집장은 약간 미안한 기색으로 물었다.
"괜찮습니다. 병원에서는 저더러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하하"
한기자가 내 말에 따라웃더니 말을 이었다.
"크게 액땜했다 생각해, 얼른 나아서 이제는 큰 취재만 맡으라고_ 알았지?"
그들은 출근 시간때문에 병실에 잠시 머물러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곧 일어섰다.
"아, 그 박작가라는 분은 어떻게 됐어요?"
내 말에 편집장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 .. 죽었네, 그 친구는. 이런 말 하기 좀 뭣하지만 .. "
그가 말을 하려다 말고 말끝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왜요?"
"시체가 성하지 못한채로 발견됐어, 이상한 건 죽은지 한 5개월은 된 듯 썩어있더라고.
물론 폭발때문에 시체가 훼손되었을거라 추정하네만 "
싸한 기운이 온몸을 훑어내렸다.
4개월전에 자살했어요, 라며 내게 말하던 그의 말과 훅 맡아져오는 불쾌한 악취가 떠올랐다.
그럼 그런 그와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촬영하고 커피를 함께 마셨던 나는 뭐란말인가!
나는 편집장과 한기자가 돌아간 후 침대 속에서 진저리치며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상기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을 옮겨낸다는 박작가의 말과 생생하게 써내려간 그의 글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부탁드려요 박기자님 _ 하던 그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나는 침대옆에 어머니가 갖다놓은 노트북을 펴 들고 그의 동호회를 찾기위해
검색창에 '심령연구회'를 쳤다.
그러자 그의 동호회 주소와 함께 자잘한 신문 기사들이 주르륵 모니터에 함께 떴다.
【심령연구회 정모 중 큰 사고 .. 】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제목을 클릭하자 곧 사진과 함께 기사가 보여졌다.
【심령연구회 야유회 중 큰 교통사고, 생존자 1명
x월 x일 심령연구회 라는 인터넷 동호회에서 야유회를 위한 여행 중
고속도로에서 큰 추돌사고를 당해 많은 사상자를 내는 사고가 발생했다.
... 일각에서는 심령동호회 (심령현상이나 미스테를 연구하는 동호회) 라서
운이 좋지 않았다는 등의 억측도 난무하고 있다. 이 날 사고로 인해
버스에 타고 있던 회원 전원이 사망했으며, 승용차로 뒤따라가던 회원들 중
두 명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한명은 끝내 사망하고 말았다.
유일한 생존자인 박씨(29)는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경미한 부상이어서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박작가였다!
유일한 생존자인 박씨는 박작가가 틀림없었다.
그는 나처럼 최악의 조건에서 정말 운좋게, 기적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날 살려뒀어요. 내가 좋든 싫든 그런건 상관하지 않고 말이죠.
그들은 항상 요구하죠.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사람들에게서 잊혀지지 않게 해달라고
.. 보이는 걸 그대로 옮겨내는 사람입니다'
"아아아.."
나는 잠시 인터뷰 내용을 떠올리며 작게 몸서리쳤다.
침대 머리맡에 항상 보인다던 죽은 친구들, 불에 탄 아이, 투신한 여자 _
정말일까?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제 그들의 이야기는 누가 쓰게 되지?
끼익 _ 끼익 _
어디선가 철제로 만든 이음새가 끽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나는 어쩐지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철제로 만들어진 침대 아래쪽이었다.
시퍼렇고 창백한 가늘은 손이 침대 밑에서 손을 뻗어 왼쪽 다리쪽의 침대 기둥을 붙잡고는
앞뒤로 끽끽 거리며 흔들어대고 있었다.
"아아아악"
나는 몸을 바둥거리며 소스라치는 비명을 지르고는 침대 위쪽으로 기어올라갔다.
턱, 흔들_
뒤로 물러서던 내 목 뒤로 무언가 서늘한 것이 닿았다.
"아, 아아아아 "
나는 한숨같은 소리를 뱉아내가며 차마 돌아볼 용기가 없어 두려움에 눈물을 주륵 쏟았다.
발가락, 발가락이었다.
차갑게 굳어진 발가락이 내 목에 부딪혀 조금씩 흔들 흔들 움직거리고 있었다.
목 뒷덜미로부터 척추를 따라 싸하고 오싹한 기운이 온몸을 마비시켰다.
오늘따라 간호사도 들어오지 않는다.
누구라도 좋으니 병실로 들어와서 이 악몽같은 상황을 벗어나게 해주면 좋으련만.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해서 목덜미에 차가운 기운을 느끼며 꼼짝않고 울고만 있는데
어느 순간 목덜미에 닿던 차가운 기운이 스윽 사라졌다.
가위에서 풀린건가, 아니면 악몽에서 깨어난 건가 싶었지만
여전히 침대 아래쪽에서 끽끽 거리는 소리는 들려왔다.
'깨어나, 깨어나 _ 꿈이야'
나는 스스로 암시를 걸며 뒤로 홱 고개를 돌렸다.
아아!? 박작가였다!
박작가가 내 침대 머리맡에 서서 천장에서 목을 메고 흔들거리던
여인의 발목이 내 뒷목에 가 닿지 못하도록 양손으로 잡고 있었다.
" .. 안녕하세요, 박기자님"
그가 내게 인사했다.
죽은 여자의 발목을 잡고 있는 뭉턱 잘려나간 왼쪽 손목에서 여전히 더운 피를 흘린채.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사직서를 제출했다.
편집장은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사고 후유증때문에
더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일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편집장의 사무실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오면서도 나는 그의 사무실 창문 밖에서
손톱이 빠져버린 손가락으로 유리를 마구 긁으며 울고 있는 여자를
애써 모른척 하며 침착하게 말을 잇고 나왔다.
물건을 정리해서 집으로 돌아가자 박작가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다음은 누구야?"
정리해온 물건들을 책상위에 올려놓으며 내가 묻자 박작가가 침대밑을 가리켰다.
그러자 침대밑에서 상체뿐인 여고생이 파리한 얼굴로 내장을 질질 끌며 기어나왔다.
"오늘안에 네 이야기 써줄 테니까, 제발 잘때 침대 좀 흔들지 마"
내가 질책하듯 말하자 그녀가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그때, 책상위에 올려두었던 폰이 드르륵 진동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박작가님, 지난달에 연락드렸던 출판사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원고는 잘 받았습니다. 내일쯤 출판사로 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전화를 끊고 돌아서자 박작가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였다.
"우리들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대요"
여전히 이야기가 미뤄지고 있는 박작가의 동호회 사람들이 내 말에 환호성을 질렀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박작가님"
박작가가 잘려진 왼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다섯 달 뒤, 책이 나왔다.
90년대 초 이후로 호러 소설 시장은 상당이 위축되었으므로
사람들은 호러 소설을 단순히 화장실 유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읽을 수 있고, 리얼한 묘사가 주를 이루는 박작가와 나의 괴담집은
의외로 팍팍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일탈감을 주는 코드로 작용했다.
사람들은 기괴한 이야기들을 혐오하고 무서워하면서도 즐겨 찾았다.
나에게는 하루에도 수십 통씩 인터뷰며, 출판 계약 건이며, 영화사에서 전화가 걸려왔지만
나는 되도록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 계속해서 미친듯이 글을 써댔다.
집에는 이제 더이상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나와 박작가의 책이 사람들에게서 유명해 질수록 나를 찾아오는 그들의 수도 늘어났다.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집안을 헤집고 다니는 그들이
이제는 무섭다기 보다는 화가 나고 지겨워져갔다.
끊임없이 글을 써내는 나의 노고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흉측한 몰골을
들이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하소연하는 그들 _
나는 점점 퀭하게 말라가고, 모든 일에 의욕을 잃어갔다.
그때 문득 며칠전 인터뷰 요청건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박작가입니다.
아, 네 _ 인터뷰 요청 하셨죠, 인터뷰 할까 해서요 네,
기자분을 저희 집으로 보내주시겠습니까? 집이 아니면 어디서도 만나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괜찮습니까? 네 _ 그럼 이따가 뵙 .. 아 잠깐요!
혹시 박씨 성을 가진 기자분이 있다면 그 분으로 보내주십시오 네, 그럼"
전화를 끊었다.
곧 박씨 성을 가진 기자가 나의 아파트를 방문하게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컴퓨터 옆에 줄지어 서서 아우성치는 박작가와 그의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박작가님, 나 이제 정말 지쳤어요 "
나의 말에 박작가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딩동 _
그의 아파트 벨을 누르자 퀭한 모습의 박작가가 문을 열어주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오늘 취재나온 박기자라고 합니다"
박작가는 그런 박기자의 모습에 싱긋 웃어주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기자님 "
『 부족한 글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글 퍼가실 때에는 적월매혹 이라는 제 필명과
제 홈피 주소를 함께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
written by_赤月魅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