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해, 팩토리는 앤디 워홀의 아지트였던 셈이었습니다. 아지트. 사전의 딱딱한 정의로는
‘근거지’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활동을 비밀리에 지도하는 본부’
등으로 되어 있는데요, 그 뉘앙스가 마치 은둔한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품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예술가들에게는 창작활동에 몰두 할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한데,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오롯이 쏟아내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고립된, 혹은 자신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경향도 있습니다.
<좀머씨 이야기>로 유명한 독일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자신의 소설에서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외치는 은둔자에 빗대어 그의 삶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매체 인터뷰 등 일체 외부 활동을 거절하며 은둔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예술가에게 고립된 공간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고립된 공간으로서의 아지트는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고립’ 돼 보일 수도 있지만,
예술가들에게는 굉장히 활발하게 생산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팩토리 걸>의 팩토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간에서는 팩토리에 대해 ‘앤디를 위한 에디의 스폰서’라고 비아냥거렸지만, 실제로 팩토리는 앤디와 에디의 사랑과 열망, 명성 등 두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꽃을 피우던 곳이었습니다.
결국 팩토리는 앤디와 에디가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두 사람만의 세계를 가꾼 아지트였던 셈입니다.
오늘 소개할 곳은 복합문화공간을 꿈꾸는 놀이터 개념의 카페&바인 아티트라는 곳입니다. 가로수 길의 메인 길도 아니고 2층인 데다가 외관이 화려하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숨겨진 나만의 놀이터나 아지트에 온 것처럼 색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을 해도 허용될 듯 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지는데요,
직원마저 바에서 식사를 하고 자기 할 일을 하는데,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습니다.
푹푹 찌는 듯한 더위 때문에 갈증을 해소해 줄 음료를 찾다 루이보스 슈가플럼 티를 주문했습니다. 각종 과일 향이 나면서도 달지 않고 깔끔한 맛이 인상적인 루이보스 슈가플럼 티는
화사하지만 절제가 느껴지는 듯한 향이 돋보입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제 격인 음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지트에서는 가끔 뮤지션 공연도 하고 음악도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 인디음악 위주로 흐르는데,
세상에서 한 발짝 떨어진 나만의 아지트라는 느낌이 들만큼 이채롭습니다. 이곳은 마치 아이들이 뛰어 노는 놀이터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와 인테리어가 돋보입니다. 진열장에 놓인 인형들과 그래피티를 연상시키는 벽의 그림들이 동심의 세계로 안내하죠.
한편 아지트는 동심의 세계를 반영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어른이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지트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겁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어른들 몰래 친구들과 함께 도색 잡지를 보거나 거사(?)를 위해 작당 모의를 했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생기죠. 또 장난감을 가지고 아지트에서 놀았던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아지트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속박 받지 않고 자유를 추구할 수 있었던 우리들만의 유토피아였습니다.
어른들은 가끔 피터팬 콤플렉스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나이 먹지 않은 아이’처럼 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동심으로 돌아가면 그만큼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바비 인형에 열광했던 소녀는 어른이 된 후에도 화장품으로 그 때의 열정을 이어가고,
장난감 자동차의 매력에 푹 빠졌던 소년도 어른이 되면 자동차에 애정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지트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공간인 셈이죠.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책임져야 할 일도 많고, 규칙적인 생활 안에서 삶을 살아야하죠.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도 많습니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자유롭게 노닐던 동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이따금씩 해방과 일탈을 꿈꿉니다. 아지트는 그런 어른들의 심리적 반항을 실현할 수 있는 ‘꿈의 공간’이죠.
오늘도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고단한 하루를 보냈다면, 가로수 길 ‘아지트’로 가서 노근한 기분을 달래보면 어떨까요?
[가로수길 카페] 아늑한 해방촌의 '아지트'
조지 하이켄루케 감독의 <팩토리 걸>은 예술가 앤디 워홀과
그의 뮤즈 에디 세즈윅의 찬란했던 시기를 조명한 영화입니다.
발칙한 상상과 도발적인 해석으로 현대 미술의 개념을 송두리째 뒤흔든 앤디 워홀은
그의 영혼과 예술적 열망을 에디 세즈윅을 통해 쏟아 냈는데,
그 공간적 배경이 됐던 곳이 바로 '팩토리'였습니다.
팩토리는 '예술가들의 놀이터' 정도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요,
이곳은 앤디의 철학과 소신에 걸맞는 형태의 예술을 구현할 수 있는 창조의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팩토리에서는 앤디의 친구들이자 당대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팩토리를 즐겨 찾았는데,
영화 제작가 제라드 말란가, 아트 큐레이터 샘 그린, 대니 필즈 등의 멤버들이 모여
낮에는 창작 활동을, 밤에는 파티를 열어 사교적인 모임을 갖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팩토리는 앤디 워홀의 아지트였던 셈이었습니다.
아지트. 사전의 딱딱한 정의로는
‘근거지’ ‘사회에서 합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활동을 비밀리에 지도하는 본부’
등으로 되어 있는데요, 그 뉘앙스가 마치 은둔한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품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예술가들에게는 창작활동에 몰두 할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이 필요한데,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오롯이 쏟아내기 위해서는 외부로부터 고립된, 혹은
자신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경향도 있습니다.
<좀머씨 이야기>로 유명한 독일의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자신의 소설에서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라고 외치는 은둔자에 빗대어 그의 삶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매체 인터뷰 등 일체 외부 활동을 거절하며 은둔자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예술가에게 고립된 공간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하지만 고립된 공간으로서의 아지트는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고립’ 돼 보일 수도 있지만,
예술가들에게는 굉장히 활발하게 생산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팩토리 걸>의 팩토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간에서는 팩토리에 대해 ‘앤디를 위한 에디의 스폰서’라고 비아냥거렸지만,
실제로 팩토리는 앤디와 에디의 사랑과 열망, 명성 등 두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꽃을 피우던 곳이었습니다.
결국 팩토리는 앤디와 에디가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두 사람만의 세계를 가꾼 아지트였던 셈입니다.
오늘 소개할 곳은 복합문화공간을 꿈꾸는 놀이터 개념의 카페&바인
아티트라는 곳입니다.
가로수 길의 메인 길도 아니고 2층인 데다가 외관이 화려하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숨겨진 나만의 놀이터나 아지트에 온 것처럼 색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을 해도 허용될 듯 한 자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지는데요,
직원마저 바에서 식사를 하고 자기 할 일을 하는데,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습니다.
푹푹 찌는 듯한 더위 때문에
갈증을 해소해 줄 음료를 찾다 루이보스 슈가플럼 티를 주문했습니다.
각종 과일 향이 나면서도 달지 않고 깔끔한 맛이 인상적인 루이보스 슈가플럼 티는
화사하지만 절제가 느껴지는 듯한 향이 돋보입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제 격인 음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지트에서는 가끔 뮤지션 공연도 하고 음악도 잘 알려지지 않은 외국 인디음악 위주로 흐르는데,
세상에서 한 발짝 떨어진 나만의 아지트라는 느낌이 들만큼 이채롭습니다.
이곳은 마치 아이들이 뛰어 노는 놀이터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와 인테리어가 돋보입니다.
진열장에 놓인 인형들과 그래피티를 연상시키는 벽의 그림들이 동심의 세계로 안내하죠.
한편 아지트는 동심의 세계를 반영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어른이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지트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겁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어른들 몰래 친구들과 함께 도색 잡지를 보거나
거사(?)를 위해 작당 모의를 했던 기억을 떠올릴 때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생기죠.
또 장난감을 가지고 아지트에서 놀았던 기억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아지트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속박 받지 않고
자유를 추구할 수 있었던 우리들만의 유토피아였습니다.
어른들은 가끔 피터팬 콤플렉스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나이 먹지 않은 아이’처럼 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동심으로 돌아가면 그만큼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입니다.
바비 인형에 열광했던 소녀는 어른이 된 후에도 화장품으로 그 때의 열정을 이어가고,
장난감 자동차의 매력에 푹 빠졌던 소년도 어른이 되면 자동차에 애정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지트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공간인 셈이죠.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책임져야 할 일도 많고, 규칙적인 생활 안에서 삶을 살아야하죠.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들도 많습니다.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자유롭게 노닐던 동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이따금씩 해방과 일탈을 꿈꿉니다.
아지트는 그런 어른들의 심리적 반항을 실현할 수 있는 ‘꿈의 공간’이죠.
오늘도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고단한 하루를 보냈다면,
가로수 길 ‘아지트’로 가서 노근한 기분을 달래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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