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이 털가죽으로 중요부분만 가린 채 육욕에 찬 눈빛으로 짐승처럼 산야를 누빌 때, 나일강의 축복 아래 태양의 아들을 섬긴 이 민족이 만든 위대한 고대문명에 경의와 찬사가 말문을 막는다. 산업혁명 이후, 미개한 과거를 숨기려는 듯 수탈과 살육의 제국주의 깃발 아래 파라오의 흔적들을 훔쳐가 자국의 나라에 소장하며 문명국이라는 허풍과 오만을 떠는 백안의 족속들을 조소하는 듯 카르낙신전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장엄한 위용 그 자체이다.
과거의 영광스런 유적으로 오늘의 후손들이 먹고사는 문화관광도시 '룩소'는 굳이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와 비견되는 곳이다.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60여 km 떨어진 나일강 동안에 있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 테베의 남쪽 교외에 해당하는데, 룩소르신전, 카르낙신전, 합셰수트 장제전, 멤논의 거상 등의 유적이 있다. 그중 유명한 룩소르신전은 약 3,500년 전인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건립했다는데, 대탑문 앞의 오벨리스크는 한 쌍 있었으나 북쪽의 것은 현재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 옮겨져 있단다.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가 보아야 할 50곳 중, 순위 34위인 투탕카멘왕의 안식처 이집트 룩소...... 고대 이집트 중왕국의 수도 테베의 일부인 룩소는 최전성기인 기원전 1,500년에는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 대도시-그때 유럽에 인구 10만 명이 넘는 도시가 있었던가?-로 전해지며, 호머의 '일리아드'에도 그 화려함이 묘사돼 있다. 뜨겁고 황량한 가운데 유유히 흐르는 나일강 사이로 우리는 3천 5백여 년 전의 화려한 풍경은 상상해내기 어렵지만 흘러간 역사 가운데 룩소는 그렇게 오늘도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세계문화 유산을 관리하는 유네스코 관계자들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세계 문화재 1호로 지정한 후 이곳을 방문하고는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실수했다"고 한탄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로 그 웅장한 규모와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문화권력의 파워게임에 진 약소민족의 위대한 신전이 주홍빛 야간 경관조명 속에서 신비함으로 다가오고 화려한 원색으로 채색되었던 수천년 전을 상상하니 온몸에 알 수 없는 전율이 땀과 함께 도도히 흐른다.
룩소르신전에 기대어 불멸의 고대 문명을 상상해 본다.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연간 8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70억 달러(약 7조원)의 관광 수입을 올리는 ‘이집트’ 하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과 황량한 그 곳을 주인처럼 지키고 있는 피라미드이다. 끝간 데 없이 펼쳐지는 모래의 무덤에 우뚝 선 인공산 피라미드는 수천년을 이어오며 백성들의 피와 땀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북아프리카의 명물이며 이집트의 자부심과 긍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현재 이집트는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있으며, 정식 명칭은 이집트 아랍 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이다. 언어는 아랍어를 사용하며 이슬람교가 국교이나 고대에는 다신교를 믿었기 때문에 신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신들의 세계가 여러 피라미드에 아름답게 새겨져 있어 과거에 대한 궁금함과 신비함을 부채질한다.
역대 왕들은 자신의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하듯이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다. 카이로는 아라비아어로 '승리자' 를 의미한다.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카이로는 지리적인 특성상 동양과 서양, 그리고 아프리카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이색지대이기도 하다. 피라미드는 여러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해도 카이로의 기자 지역 피라미드이다. 가장 웅장하고 가장 심혈을 기울인 석조건축의 백미이다. 인류역사상 초기에 이렇게 위대한 유적이 어디 있었는가. 가장 초기라고 자부심의 돌덩이, 영국의 스톤핸지 조차 피라미드보다 약 500년이나 후에 건설되었다.
이곳 피라미드 앞 특설무대에서 매년,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이집트의 청년장교 라다메스와 포로인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이탈리아의 작곡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공연된단다. 장중하고 화려한 음악과 호화찬란하고 이국적인 정취의 무대장치와 조명으로 연출된 오페라는 감동 그 자체일 것이며, 타임머신을 타고 수천년 전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여행의 전율에 휩싸일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돌도끼로 날짐승을 때려잡고 있을 때 이 위대한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피라미드와 같은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만들고 있는 수준에 달했던 것이다. 예전에는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으나 현재는 잘못된 정치에 의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이집트, 대부분 왕릉은 도굴꾼들에게 약탈당하고 ‘도굴꾼 마을’ 까지 있는 나라...... 그러나 토지만은 매우 비옥하여 식량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가?
관광객들이 많이 구입하는 기념품 중에 하나가 파피루스라는 종이에 그린 그림이다.
대부분 신화나 역사, 신전벽화를 그렸다. 내가 어린시절 학교에서 상식으로 인류 최초의 종이가 파피루스라고 가르쳤다. 파피루스는 나일강 유역에서 많이 나는 갈대와 같은 식물류인데, 아주 질긴 이 식물을 물에 삶고 가공하여 그 위에 그림을 찍어낸다. 이집트는 기원전 3,000년에 문자를 발명하였다. 글과 그림, 건축 등 골고루 발달한 고도문명이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면서 세계 최초의 수도원도 이집트에서 탄생하였다. 그리하여 성서와 순교자들의 삶에 대한 번역물이 주를 이루는 콥트문학이 이집트에서 발달했다.
전세계적으로 붐을 일으켰던 소설 '다빈치코드'를 보면 미스테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고대문자인 콥트어 해독이 필수임을 보아도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문명의 발달 역시 나일강과 관계가 있다. 나일강이 매년 범람하여 비옥한 토지를 만들어주면 그들이 자연스레 식량 걱정에서 벗어나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강은 생명의 젖줄이요. 자연의 어머니이다.
피라미드는 기원전 2,660년에 즉위한 파라오 제세르(Djeser)가 제일 먼저 건설하였다.
그는 재주가 뛰어나고 총명하기로 이름난 ‘이모텝’ 이란 건축가를 스카웃하여 피라미드 이외에도 세기에 남을 걸작 건축물들을 여럿 탄생시켰다. 왕의 은총과 믿음을 등에 업고 자신의 뛰어난 기술을 백분 발휘한 그는 당시 왕과 같은 권세를 누리며 자신이 만든 건축물에 왕과 함께 본인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그는 시대를 앞질러 태어난 천재였다고 생각되어진다. 피라미드는 건축학과 천문학을 동원한 치밀한 연구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모텝 이전의 건축가들은 진흙을 뭉쳐 굳힌 벽돌로 건축을 하였다. 그가 제일 먼저 돌로 만든 피라미드를 만들어내기 시작하였고, 이는 또한 일자리 창출이 되기도 하여 이 시기에는 민심이 아주 좋았고, 살기 좋은 시대였다고 전해진다.
왕손인 순수 혈통 파라오 이외에 신으로 추앙받는 이도 이모텝이 유일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기자지구의 피라미드는 쿠프(Khufu)왕의 피라미드의 경우 약 260만 여개 정도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었으며 각기의 무게가 최하 2톤에서 5톤에 이른다. 피라미드 중 가장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하루 4천 명의 인원이 1년에 3,4개월씩 30여 년 동원된 어마어마한 공사로서 용도는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겉표면에 있었던 돌 17만여 개는 아랍과 터키 점령시에 건축자재로 재활용 되느라 유실되었다.
그리스 철학자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50년간 통치한 쿠프왕은 모든 신전을 폐쇄하고 제사를 금지시키고 자기만을 숭배토록 했다.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위하여 돌을 옮길 둑길을 만드는 데만 무려 10년이 소모되었다고.... 피라미드 내부 벽에는 상형 문자로 이 일에 동원된 일꾼들이 먹어치운 무, 양파, 마늘의 양이 기록되어 있다. 마늘과 양파는 기력을 살려주는 강장제와 같기에 매끼 먹여 더욱 힘을 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두 번 째로 큰 피라미드는 카프레(Khafre)왕의 피라미드이다. 그는 쿠프왕의 동생으로 56년간 왕조를 통치하였다. 형제가 합이 106년간을 통치하였다. 그리고 세 번 째로 여섯 번 째 왕인 멘카우레(Menkure)의 피라미드가 가장 크다. 이처럼 위대한 문명을 간직하고 있으나 현재는 기자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랍 난민촌에 살고 있다. 거친 모래가 섞인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고 카이로 시내는 쓰레기가 썩는 냄새가 공기 중에 부유한다.
백성들을 혹사시켜 내세에서도 영생을 누리기 위해 불가사의한 피라미드를 건설한 왕들의 이기와 현재까지도 독재자의 탄압아래 고통 받았던 이집트 국민들은 피라미드의 저주를 받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이들의 거친 맨발을 보고 눈물이 고인다.
이집트에 가면 꼭 빠지지 않아야 하는 곳이 수도 카이로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가면 이집트에서 약탈해 온 보물들이 매우 많다. 그 중 인기가 많은 유적이 ‘미이라’인데 죽은 자의 몸을 방부 처리하여 수천년의 세월을 썩지 않고 살아내 온 시신을 보면 기이하기 짝이 없다. 영혼은 어디론가 증발하였고 육탈이 잘 된 껍데기만이 온갖 진귀품으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약탈의 왕국에서 호사를 누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British Museum 소장품전을 전국 박물관을 돌며 순회전시를 하였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보물이 ‘불행의 미라’였다. 배로 싣고 오는 중에도 풍랑이 일어 항해가 위험했었고,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중에 미라가 들어있는 두꺼운 방탄유리가 이유도 없이 산산조각 나서 화제였다. 카메라로 얼굴 부분을 찍어보니 독기를 잔뜩 품은 여성의 모습이 언뜻 비치었다고 하는데 세상엔 과학으로도 증명이 되지 않는 신기한 일들이 많기도 하다. 미라의 기를 누르기 위해 부처님 상을 맞은편에 두었더니 이후론 아무 사건 없이 잠잠해졌다는 후일담이 재미있다.
이집트는 문명이 발생하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함께 서양역사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요. 동방과 서방에 큰 영향을 끼친 위대한 문명이었으나, 현재는 선조가 남긴 문화유산 덕으로 먹고 사는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한 여인, 독사에 물려 자살한 여인인 이집트 최후의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의 아슬아슬한 곡예가 이집트 오는 길에 경유한 두바이와 오브랩 된다.
사막 한가운데서 천일야화 속의 낙원을 실현시키는 중동의 허브, 두바이의 창의성!
두바이는 외국인 60만 명을 제외하면 자국민은 70만 명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로 이웃 산유국들처럼 천연자원도 보잘 것 없는 국가이다. 부족한 자원을 창의성으로 극복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두바이는 1000억 달러를 관광 인프라스트럭처에 투자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단다. 중국의 베이징이 올림픽을 준비하며 300억 달러, 상하이가 엑스포를 추진하며 100억 달러, 마카오가 60억 달러를 관광 인프라스트럭처에 투자했던 것에 비하면 더욱 놀라울 뿐이다. 2012년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유치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들 나라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국도 관광분야 투자와 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하지않을까? [글/여행칼럼리스트, 수필가 윤혜영]
[이집트] 고대 문화관광도시로 떠나는 시간여행
[이집트] 고대 문화관광도시로 떠나는 시간여행
-위대한 고대 문명 발상지, 이집트의 카이로와 룩소
이집트의 고도 룩소의 세계 최대 신전, 사막빛 카르낙에 들어섰다.
유럽인들이 털가죽으로 중요부분만 가린 채 육욕에 찬 눈빛으로 짐승처럼 산야를 누빌 때, 나일강의 축복 아래 태양의 아들을 섬긴 이 민족이 만든 위대한 고대문명에 경의와 찬사가 말문을 막는다. 산업혁명 이후, 미개한 과거를 숨기려는 듯 수탈과 살육의 제국주의 깃발 아래 파라오의 흔적들을 훔쳐가 자국의 나라에 소장하며 문명국이라는 허풍과 오만을 떠는 백안의 족속들을 조소하는 듯 카르낙신전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장엄한 위용 그 자체이다.
과거의 영광스런 유적으로 오늘의 후손들이 먹고사는 문화관광도시 '룩소'는 굳이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와 비견되는 곳이다.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660여 km 떨어진 나일강 동안에 있다. 고대 이집트 신왕국시대의 수도 테베의 남쪽 교외에 해당하는데, 룩소르신전, 카르낙신전, 합셰수트 장제전, 멤논의 거상 등의 유적이 있다. 그중 유명한 룩소르신전은 약 3,500년 전인 제18왕조의 아멘호테프 3세가 건립했다는데, 대탑문 앞의 오벨리스크는 한 쌍 있었으나 북쪽의 것은 현재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에 옮겨져 있단다.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가 보아야 할 50곳 중, 순위 34위인 투탕카멘왕의 안식처 이집트 룩소...... 고대 이집트 중왕국의 수도 테베의 일부인 룩소는 최전성기인 기원전 1,500년에는 인구가 1천만 명이 넘는 대도시-그때 유럽에 인구 10만 명이 넘는 도시가 있었던가?-로 전해지며, 호머의 '일리아드'에도 그 화려함이 묘사돼 있다. 뜨겁고 황량한 가운데 유유히 흐르는 나일강 사이로 우리는 3천 5백여 년 전의 화려한 풍경은 상상해내기 어렵지만 흘러간 역사 가운데 룩소는 그렇게 오늘도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세계문화 유산을 관리하는 유네스코 관계자들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세계 문화재 1호로 지정한 후 이곳을 방문하고는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실수했다"고 한탄했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로 그 웅장한 규모와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문화권력의 파워게임에 진 약소민족의 위대한 신전이 주홍빛 야간 경관조명 속에서 신비함으로 다가오고 화려한 원색으로 채색되었던 수천년 전을 상상하니 온몸에 알 수 없는 전율이 땀과 함께 도도히 흐른다.
룩소르신전에 기대어 불멸의 고대 문명을 상상해 본다.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연간 8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70억 달러(약 7조원)의 관광 수입을 올리는 ‘이집트’ 하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광활하게 펼쳐진 사막과 황량한 그 곳을 주인처럼 지키고 있는 피라미드이다. 끝간 데 없이 펼쳐지는 모래의 무덤에 우뚝 선 인공산 피라미드는 수천년을 이어오며 백성들의 피와 땀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북아프리카의 명물이며 이집트의 자부심과 긍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현재 이집트는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있으며, 정식 명칭은 이집트 아랍 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이다. 언어는 아랍어를 사용하며 이슬람교가 국교이나 고대에는 다신교를 믿었기 때문에 신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신들의 세계가 여러 피라미드에 아름답게 새겨져 있어 과거에 대한 궁금함과 신비함을 부채질한다.
역대 왕들은 자신의 위대함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하듯이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다. 카이로는 아라비아어로 '승리자' 를 의미한다. 역사적, 문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카이로는 지리적인 특성상 동양과 서양, 그리고 아프리카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이색지대이기도 하다. 피라미드는 여러 유적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 해도 카이로의 기자 지역 피라미드이다. 가장 웅장하고 가장 심혈을 기울인 석조건축의 백미이다. 인류역사상 초기에 이렇게 위대한 유적이 어디 있었는가. 가장 초기라고 자부심의 돌덩이, 영국의 스톤핸지 조차 피라미드보다 약 500년이나 후에 건설되었다.
이곳 피라미드 앞 특설무대에서 매년,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이집트의 청년장교 라다메스와 포로인 에티오피아의 공주 아이다와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이탈리아의 작곡가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공연된단다. 장중하고 화려한 음악과 호화찬란하고 이국적인 정취의 무대장치와 조명으로 연출된 오페라는 감동 그 자체일 것이며, 타임머신을 타고 수천년 전의 역사 속에 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여행의 전율에 휩싸일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돌도끼로 날짐승을 때려잡고 있을 때 이 위대한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피라미드와 같은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만들고 있는 수준에 달했던 것이다. 예전에는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으나 현재는 잘못된 정치에 의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이집트, 대부분 왕릉은 도굴꾼들에게 약탈당하고 ‘도굴꾼 마을’ 까지 있는 나라...... 그러나 토지만은 매우 비옥하여 식량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하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가?
관광객들이 많이 구입하는 기념품 중에 하나가 파피루스라는 종이에 그린 그림이다.
대부분 신화나 역사, 신전벽화를 그렸다. 내가 어린시절 학교에서 상식으로 인류 최초의 종이가 파피루스라고 가르쳤다. 파피루스는 나일강 유역에서 많이 나는 갈대와 같은 식물류인데, 아주 질긴 이 식물을 물에 삶고 가공하여 그 위에 그림을 찍어낸다. 이집트는 기원전 3,000년에 문자를 발명하였다. 글과 그림, 건축 등 골고루 발달한 고도문명이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면서 세계 최초의 수도원도 이집트에서 탄생하였다. 그리하여 성서와 순교자들의 삶에 대한 번역물이 주를 이루는 콥트문학이 이집트에서 발달했다.
전세계적으로 붐을 일으켰던 소설 '다빈치코드'를 보면 미스테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고대문자인 콥트어 해독이 필수임을 보아도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문명의 발달 역시 나일강과 관계가 있다. 나일강이 매년 범람하여 비옥한 토지를 만들어주면 그들이 자연스레 식량 걱정에서 벗어나 다른 일에 관심을 돌릴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강은 생명의 젖줄이요. 자연의 어머니이다.
피라미드는 기원전 2,660년에 즉위한 파라오 제세르(Djeser)가 제일 먼저 건설하였다.
그는 재주가 뛰어나고 총명하기로 이름난 ‘이모텝’ 이란 건축가를 스카웃하여 피라미드 이외에도 세기에 남을 걸작 건축물들을 여럿 탄생시켰다. 왕의 은총과 믿음을 등에 업고 자신의 뛰어난 기술을 백분 발휘한 그는 당시 왕과 같은 권세를 누리며 자신이 만든 건축물에 왕과 함께 본인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그는 시대를 앞질러 태어난 천재였다고 생각되어진다. 피라미드는 건축학과 천문학을 동원한 치밀한 연구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모텝 이전의 건축가들은 진흙을 뭉쳐 굳힌 벽돌로 건축을 하였다. 그가 제일 먼저 돌로 만든 피라미드를 만들어내기 시작하였고, 이는 또한 일자리 창출이 되기도 하여 이 시기에는 민심이 아주 좋았고, 살기 좋은 시대였다고 전해진다.
왕손인 순수 혈통 파라오 이외에 신으로 추앙받는 이도 이모텝이 유일하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기자지구의 피라미드는 쿠프(Khufu)왕의 피라미드의 경우 약 260만 여개 정도의 화강암으로 구성되었으며 각기의 무게가 최하 2톤에서 5톤에 이른다. 피라미드 중 가장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하루 4천 명의 인원이 1년에 3,4개월씩 30여 년 동원된 어마어마한 공사로서 용도는 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겉표면에 있었던 돌 17만여 개는 아랍과 터키 점령시에 건축자재로 재활용 되느라 유실되었다.
그리스 철학자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따르면 50년간 통치한 쿠프왕은 모든 신전을 폐쇄하고 제사를 금지시키고 자기만을 숭배토록 했다. 피라미드를 건축하기 위하여 돌을 옮길 둑길을 만드는 데만 무려 10년이 소모되었다고.... 피라미드 내부 벽에는 상형 문자로 이 일에 동원된 일꾼들이 먹어치운 무, 양파, 마늘의 양이 기록되어 있다. 마늘과 양파는 기력을 살려주는 강장제와 같기에 매끼 먹여 더욱 힘을 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두 번 째로 큰 피라미드는 카프레(Khafre)왕의 피라미드이다. 그는 쿠프왕의 동생으로 56년간 왕조를 통치하였다. 형제가 합이 106년간을 통치하였다. 그리고 세 번 째로 여섯 번 째 왕인 멘카우레(Menkure)의 피라미드가 가장 크다. 이처럼 위대한 문명을 간직하고 있으나 현재는 기자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랍 난민촌에 살고 있다. 거친 모래가 섞인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고 카이로 시내는 쓰레기가 썩는 냄새가 공기 중에 부유한다.
백성들을 혹사시켜 내세에서도 영생을 누리기 위해 불가사의한 피라미드를 건설한 왕들의 이기와 현재까지도 독재자의 탄압아래 고통 받았던 이집트 국민들은 피라미드의 저주를 받고 있는 것일까. 나는 아이들의 거친 맨발을 보고 눈물이 고인다.
이집트에 가면 꼭 빠지지 않아야 하는 곳이 수도 카이로에 있는 국립 박물관이다.
영국의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에 가면 이집트에서 약탈해 온 보물들이 매우 많다. 그 중 인기가 많은 유적이 ‘미이라’인데 죽은 자의 몸을 방부 처리하여 수천년의 세월을 썩지 않고 살아내 온 시신을 보면 기이하기 짝이 없다. 영혼은 어디론가 증발하였고 육탈이 잘 된 껍데기만이 온갖 진귀품으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약탈의 왕국에서 호사를 누리고 있다.
한국에서도 British Museum 소장품전을 전국 박물관을 돌며 순회전시를 하였다.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보물이 ‘불행의 미라’였다. 배로 싣고 오는 중에도 풍랑이 일어 항해가 위험했었고,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중에 미라가 들어있는 두꺼운 방탄유리가 이유도 없이 산산조각 나서 화제였다. 카메라로 얼굴 부분을 찍어보니 독기를 잔뜩 품은 여성의 모습이 언뜻 비치었다고 하는데 세상엔 과학으로도 증명이 되지 않는 신기한 일들이 많기도 하다. 미라의 기를 누르기 위해 부처님 상을 맞은편에 두었더니 이후론 아무 사건 없이 잠잠해졌다는 후일담이 재미있다.
이집트는 문명이 발생하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함께 서양역사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요. 동방과 서방에 큰 영향을 끼친 위대한 문명이었으나, 현재는 선조가 남긴 문화유산 덕으로 먹고 사는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한 여인, 독사에 물려 자살한 여인인 이집트 최후의 파라오 클레오파트라의 아슬아슬한 곡예가 이집트 오는 길에 경유한 두바이와 오브랩 된다.
사막 한가운데서 천일야화 속의 낙원을 실현시키는 중동의 허브, 두바이의 창의성!
두바이는 외국인 60만 명을 제외하면 자국민은 70만 명밖에 안되는 작은 나라로 이웃 산유국들처럼 천연자원도 보잘 것 없는 국가이다. 부족한 자원을 창의성으로 극복하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두바이는 1000억 달러를 관광 인프라스트럭처에 투자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단다. 중국의 베이징이 올림픽을 준비하며 300억 달러, 상하이가 엑스포를 추진하며 100억 달러, 마카오가 60억 달러를 관광 인프라스트럭처에 투자했던 것에 비하면 더욱 놀라울 뿐이다. 2012년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유치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이들 나라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국도 관광분야 투자와 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하지않을까? [글/여행칼럼리스트, 수필가 윤혜영]
...욕망이 다한 폐허를 택해
숲의 입구에 무릎 꿇고 엎드렸던
시절을 생각한다.
한 때 나의 유년을 비상했던 새는
아직 멀리 묻어둘 수 없어서
가슴 어디께의 빈 무덤으로 잊지 않았는데...
알렉산더 대왕의 꿈을 꾸며
이집트 원정을 떠났던
평민 출신...나폴레옹 황제의
문화적 허기와 콤플렉스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