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연애처럼 1편

세헤라자데 2011.07.30
조회262

 

 

안녕하세요 여러분.

 

많은 분들 글을 읽다 보니 저도 문득, 신랑과 결혼하기 까지 있었던 일이 퐁퐁 샘솟아서 한번 써보자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30살, 결혼 9개월째. 짧은 연애후 결혼을 해서 지금도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고 있어요(남들은 한 10년연애하다 결혼한것 같다고 하지만..)^^;

 

그럼 2009년도로 시간여행 쓩~!

 

회고 형식으로 존대어는 생략합니다.

 

 

************

 

 

 

 

★1편 : 여자, 남자를 만나다★

 

 

 

등장인물

 

1.세헤라자데.

 

(2009년 기준)

 

나이 28

 

성별 여자(생물학적)탈을 쓴 남자(사회학적)

 

직업 병원일

 

가족관계 아버지, 어머니, 오빠, 올케언니, 나, 강아지 두마리.

 

취미 온라인 게임, 책읽기

 

이 여자의 정의 집-직장-집-직장-집-직장의 히키코모리. 활동적인 생활하고는 거리가 먼 온라인 게임 매니아.

 

 

 

2009년 11월.

 

 

키우던 개들이 털뭉치가 되어 있었다.

 

 

 

"엄마. 나 동물 병원가서 개 털밀어 주고 올게"

 

"알았다"

 

 

동물병원은 집에서 자가용으로 30분 거리.

 

꽤 먼거리이긴 한데, 워낙에 수의사 선생님들이 친절하고 잘봐주셔서 바꾸기가 좀 어려웠다.

 

펀드 하나가 어찌저찌 중박은 내준 덕분에 올케 언니가 끌던 거의 무옵에 가깝던 소형차 한대를 부조대신 해서 내가 샀다. 9년간의 장롱면허였지만 그럭저럭 사고 없이 끌고 다닌다.

 

집은 수도권인데 동네 자체는 시골이라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장이 걸어서 20분정도고 지하철 한번 타려면 도보로는 1시간, 버스타고는 도보20분+버스 20분 해서 40분은 걸리는 곳이니 차가 없으면 불편했다.

 

직장도 편도 20km거리였고.

 

여튼 한가한 일요일 오전 개 두마리를 차에 잘 싣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동물 병원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개들의 미용을 인수 받았고, 두시간은 있다가 오라고 하길래 근처 피시방에서 시간 죽일까 하다가 어머니께서 잠깐 심부름을 시키시는 바람에 다시 집으로 가고 있었다.

 

 

'아, 이 도로 정말 싫다. 저 큰 교회땜에 도로 절반이 주차장이네.. 왕복 8차선 도로가 어떻게 왕복 4차선이 되냐. 정말 짜증난다...'

 

 

그랬다. 동물 병원 가는 길에는 꽤나 큰 교회가 있었다. 일요일이니 예배하러 온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천 주차장이 있지만 이미 꽉차서 편도 4차선중 2차선은 이미 교회차들의 주차장화 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차머리를 들이미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차 한대를 여유롭게 껴줬더니 어떤 인간이 머리부터 들이민다.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잡았는데 그 순간 몸이 휘청했다.

 

 

'이런 젠...'

 

 

다른 차들 안끼워 주려고 똥집운전을 하던 뒷차가 브레이크를 잡은 내 차에 그대로 박아버린 것이다.

 

아... 젠장. 차 산지-중고차지만-4개월밖에 안됐는데...

 

가뜩이나 차가 밀리는 도로에서 사고가 나자 당황부터 됐다. 내려서 봤더니 어떤 여자사람이 핸드폰을 들고 내린다. 차를 보니 십자가 걸려있다. 저 교회에서 나오다가 저리 됐나보다.

 

 

"아주머니, 일단 도로가 복잡하니 저쪽으로 차를 빼지요"

 

"네 그래요"

 

 

사고가 워낙 빈번한 곳이다 보니 렉카차가 대기하고 있었는지 두대가 나란히 우리차들 뒤로 붙는다.

 

내 차의 상태는.. 뭐 여러가지 문제가 있긴 하지만 강판 자체는 튼튼하기로 유명한 회사 차라 뒷범퍼와 사제로 달았던 후방센서만 박살나 있었고, 분명 가볍게 난 사고인데 상대방차는 후일담으로 폐차했다고 들었다. 여튼 그 여자분 차는 참담했다.

 

 

"보험 처리 하죠"

 

"네"

 

 

그 여자분은 그리 말했다. 보험처리 하는게 편할것이다. 본인이 갖다 박은걸 어쩌겠는가.

 

결국 내 첫번째 교통사고는 그렇게 발생했고, 그게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보험 합의금은 100여만원이 나왔다. 차 수리비는 상대방 보험회사에서 처리했고, 보험 컨설턴트의 능력이 좋았던지 입원도 안했는데 상당금액을 보상받았다.

 

그때의 난.. 최악이었다.

 

그때의 내 마음가짐은...

 

한놈만 걸려봐라. 너 디진다. 였으니.

 

여러가지 직장 스트레스로 에너지는 바닥이었고, 직장이 병원-심지어 정형외과-이다 보니 사고후 엑스레이를 찍어보았는데 어깨쪽에 중증도의 질환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목디스크가 걱정되었었는데 어깨라니. 상당히 의외였고, 지속적인 물리치료와 약물치료가 없다면 향후 10년안에 어깨가 굳어버릴 거라고 했다. 내 나이 28.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인데 그 말을 들고 나니

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더 컸다.

 

운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검도는, 한놈만 걸려봐라의 연장선 상에 있었다.

 

항상 죽도를 가지고 다녔다. 하루에 두시간씩 도장에서 죽도를 휘둘렀다.

 

그래도 공허했다. 이렇게 열심히 해봐야 결국에는 어깨가 굳어버릴텐데.

 

그때 같은 직장에 있던 선생님이 나에게 제안을 했다.

 

 

"세헤라자데샘, 스키장 안갈래염?"

"스키장? 나 태어나서 스키 딱 두번 타봤는데요.."

"우리도 초보임. 그냥 하얀 눈 보면서 마음이나 달래자구요"

 

 

그때 그 샘한테 참 고맙게 생각하는게.. 정말 많이 마음과 몸이 지쳐있을때 누군가 생각해 준다는건 정말 많은 위안과 용기를 준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운전은 하고 있었지만 경기권-이 뭐냐, 집-직장밖에 안다니는데..-밖으로 운전 해본적이 없던 나는 직장에서 가장 가까웠던 용인에 위치한 스키장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몰라도 나는 회사 근처 지역의 스키 동호회를 찾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배워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스키라는 스포츠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작용했었던 거였다. 마침 공돈 100여만원도 생겼겠다 미친척 동호회에 가입하고 시즌권도 구매했다. 장비까지 질렀다. 그러고 나니 100여만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쉽게 얻은 돈은 쉽게 쓰라 했으니 미련도 없었다.

 

 

스키장에 가자고 말은 꺼낸 선생님들은 스케쥴이 밀려 쉽게 날짜를 잡지 못했고 나는 어차피 시즌권도 샀겠다 동호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스키/보드 동호회였는데 요즘은 확실히 대세가 보드라서 보드를 타는 회원이 대부분이었다. 스키는 나 포함해서 6명정도(회원수는 100여명이었고 말한 6명은 스키장 죽돌이라고 할만큼 자주 얼굴을 비추는 회원의 수다).

 

두번의 경험이라고 해봐야 그냥 플레이트에 몸을 맡기고 직활강 하는 수준이었던 터라-지금생각하면 정말 겁도 없이 무서운 짓을 했었다-그당시 스키 교육담당자인 '창이'님을 선생님으로 지정받았다.

 

 

 

등장인물

 

 

2.창이.

 

(2009년 기준)

 

나이 29

 

성별 Man(생물학적) of  man(사회학적)

 

직업 회사원

 

가족관계 어머니, 형, 창이

 

취미 스키

 

이 남자의 정의 남자라면 스키

 

 

창이님이 나에게 느낀 첫인상은...

 

'아, 얘는 한 두어번 나오다가 말 회원이겠구나'

 

였다고 한다.

 

짧은 높이에 말수도 없고 사교성이라고는 없어보이는 나에 대해 창이님은 별 기대 안했다고 한다.

 

창이님의 교육방식은 상당히 스파르타였다.

 

천재-창이님이 천재라는 얘기는 아님, 단순히 예-는 교육자로서의 자질은 없다고 했던가.

 

나는 안되는데 왜 그게 안되냐고 답답해 하니 나야말로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업/다운을 확실히 하라고요"

 

"확실히 하고 있는데요"

 

"더 하시라구요"

 

"이렇게요?"

 

"그렇게 타면 후경이잖아요. 도가니 나가고 싶어요?"

 

'야 이 XXXXXXXXXXXXX같은 놈아'

 

 

나라고 척하니 안하고 싶겠나. 안되는 걸 어쩌라고.

 

본래 성격같아서는 막 쏘아부치고 싶은데.. 당장 스키장비며 시즌권값이 얼만에 잘 배워서 타고 다녀야지 하는 생각에 그냥 깨갱하면서 지냈다.

 

창이님은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그냥 사소하게 던지는 농담이... 너무 내 취향이었다.

 

*혹자는 3류 쓰레기 개그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3류 쓰레기 개그에 약했다. 웃기기 너무 간단한 나는 쉬운 여자;;*

 

솔직히 성인 남/녀가 맨투맨으로 교육을 받다 보니, 호감이라는게 전혀 안생기지는 않았다(창이님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 동호회는 연애가 금지되어 있었다.

 

커플이 같이 가입은 가능하지만, 연애를 목적으로 가입하여 본래 취지인 스키/보드를 즐기자에 반하는 사람들은 가차 없이 잘라냈다.

 

그리고 그냥 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은 느꼈지만 스키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창이님에 대한 흥미보다는 스키 자체의 흥미가 더 컸다.

 

연애의 공백은 길었지만 굳이 연애는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병을 가지고 누군가의 인생을 함께 내 인생으로 끌어들일수는 없었다.

 

거기에 대해서 우리 가족-특히 어머니-은 큰 좌절을 했고, 병을 진단 받은 후 더더욱 집에서 한발자욱도 안나가던 내가, 스키장은 꼬박꼬박 다니면서 그날 그날 있었던 일을 즐거운 듯 말하는 걸 보며 동호회 사람들에게 참 많은 고마움을 느끼셨다고.

 

 

여튼 연애 금지인 동호회에서 굳이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냥 스키를 타는게 즐거웠고,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재밌었다.

 

직장 동료샘들과는 여전히 스키장에 못가고 있었지만 그당시 나는 일주일에 5일 이상을 용인으로 차를 몰고 다녔으니 지금 생각해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가 났던 내 차는 수리도 다 되었고, 카풀이 쉽지가 않아(시간적, 공간적 제약) 결국 용인까지 매일 운전을 하고 다니게 되었다. 창이님은 BMW(Bus-Metro-Walk)족이었다. 회사도 가깝고, 회사 동료가 스키 동호회 사람이라서 그 분 차를 타고 매일 용인으로 왔다.

 

그리고 달이 바뀌어 12월.

 

(메신저)

-세헤라자데, 내일 용인갈거야?

-일요일이라서 사람 많지 않을까요?

-오전만이라면 그렇게 안많을 거야.

-그런가요?

-어. 내일 형(회사동료)이 볼일 있어서 못간다는데 나 카풀도 해주고

-넹

 

 

우리 어머니께서 지금도 창이님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무려 '장판과 일체화 된' 나를 일요일에 끄집어 냈다는 데에 있다.

 

결국 일요일 아침, 나는 창이님과 카풀하기로 한 약속장소로 갔다.

 

 

"세헤라자데, 용인 말고 원주 안갈래? 거기 리프트권 50%할인권있데. 동호회 사람들 당일 원정 떠났다는데"

"....저는.. 경기권 밖으로 운전을 해본적이 없는데요"

"괜찮아. 직진만 하면 돼"

"....................."

 

 

창이님은 면허는 있었지만.. 내 차를 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보험이랄지, 보험이랄지, 보험이랄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처음으로 강원도 까지 운전을 하게 되는 동호회에서 당일 원정을 가게 되었다.

 

 

동호회 사람들은 모두 선발팀으로 떠났으니.. 내 차엔 창이님과 나, 둘만 있을 뿐이다.

 

할말이 딱히 없었다. 직장이 공통적인 것도 아니었고, 스키 얘기로는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호구조사까지 오게 되었다.

 

 

"저는 위로 오빠 하나요. 결혼해서 천안 살아요"

"나는 쌍둥이 형이 있어. 일란성이야"

"헐. 일란성요?"

"어. 쌍둥이 치고는 꽤 출산 시간도 차이가 나서 형이라고 부르고 있어. 그리고 형 성격이 좀 개야"

"헐"

"쌍둥이니까 중학교때는 형이라고 부르기 좀 갖잖잖아. 그래서 이름 불렀는데 식탁의자로 내 머리 찍어서 눈떠보니까 구급차였어"

 

 

음... 꽤나 하드코어 적인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창이님.

 

 

원주까지는 정말로 직진만 하면 끝나는 곳이었고...

 

그날이 나에게 있어서는 창이님은 참 재미있는 사람에서 창이님은 알고 싶은 사람으로 바뀌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