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이야기입니다. 관심없는 분은 뒤로가기를 살포시 눌러 주세요. 궁금해하시는 분이 계신 것 같아 몇 자 적어봅니다.
원죄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나라(천국)에 바로 가지 못함을 믿는자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분들도 모두 알고 있죠. 그런데 믿는 자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분들도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 "원죄"라는 부분입니다. 무엇이 원죄일까요? 선악과를 먹은것? 아담과 하와가 섹스를 한 것?
아담과 하와는 섹스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자손을 낳고 번성하고 번창하도록 말이지요. 아담이 너무 외로워하니 하나님이 갈비뼈를 뽑아서 만들었잖습니까. 여담이지만 이 부분에서 남자와 여자는 원래 한 몸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합일이 되어야 한다는... 이건 대충 넘어가고
그렇다면 선악과를 먹은 것이 원죄가 될까요? 아뇨, 선악과를 먹었다는 행위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죄일까요?
원죄라는 부분을 말하기 이전에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글을 적었더군요. "하나님이 심심해서 만들었어요?" 네, 심심하셔서 만들었습니다. 같이 이야기하고 관계를 맺고 싶어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겁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기 위한 일종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6일에 걸쳐 세상을 만들고 창조하시면서도 이름 하나 붙이지 않았던거죠.
핵심이 나왔죠.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서로 동등한 관계를 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이 창조한 이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습니다. 이름을 부여하고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셨죠. 아담은 그 말에 충실히 따랐구요. 아차차, 한가지 조건이 있었죠.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는.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은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모를리가 없죠. 더불어 슬퍼했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주기로 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어디있느냐"아담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숨어버립니다. "아담아 어디있느냐."마지못해 숨어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왜 숨었냐고 묻습니다. "제가 다 벗고 있어 부끄러워 숨었습니다.""누가 너에게 벗고 있다고 말하였느냐. 선악과를 먹었느냐." 여기서 아담이 만약 회개를 했다면 원죄는 받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와에게 잘못을 떠넘기죠. "저 여자가 꼬셔서 먹었어요!"라고요. 하나님은 다시 참습니다. 하와는 이렇게 말합니다."뱀이 꼬셔서 먹었어요!"
원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짐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남에게 잘못을 떠넘기려고 했었고, 더불어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을 회개하지 못하고 있죠. 이것이 원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짐. 그래서 예수님이 말하는 겁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자가 없다." 라고 말이지요. 예수님을 통해서만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원죄가 사라진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해서 이 관계의 다리를 만들었다고 말하십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이리 말씀하셨지요."다 이루었다" 라고 말입니다.
진정한 원죄란 무엇일까?
원죄라는 것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나라(천국)에 바로 가지 못함을 믿는자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분들도 모두 알고 있죠. 그런데 믿는 자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분들도 오해하시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 "원죄"라는 부분입니다.
무엇이 원죄일까요?
선악과를 먹은것? 아담과 하와가 섹스를 한 것?
아담과 하와는 섹스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자손을 낳고 번성하고 번창하도록 말이지요. 아담이 너무 외로워하니 하나님이 갈비뼈를 뽑아서 만들었잖습니까. 여담이지만 이 부분에서 남자와 여자는 원래 한 몸이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합일이 되어야 한다는...
이건 대충 넘어가고
그렇다면 선악과를 먹은 것이 원죄가 될까요? 아뇨, 선악과를 먹었다는 행위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원죄일까요?
원죄라는 부분을 말하기 이전에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입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글을 적었더군요. "하나님이 심심해서 만들었어요?" 네, 심심하셔서 만들었습니다. 같이 이야기하고 관계를 맺고 싶어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겁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기 위한 일종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6일에 걸쳐 세상을 만들고 창조하시면서도 이름 하나 붙이지 않았던거죠.
핵심이 나왔죠.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를 가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서로 동등한 관계를 말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이 창조한 이 세상을 다스릴 권한을 주셨습니다. 이름을 부여하고 세상을 다스리라고 하셨죠. 아담은 그 말에 충실히 따랐구요.
아차차, 한가지 조건이 있었죠.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는.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은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모를리가 없죠. 더불어 슬퍼했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주기로 합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어디있느냐"아담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숨어버립니다. "아담아 어디있느냐."마지못해 숨어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왜 숨었냐고 묻습니다. "제가 다 벗고 있어 부끄러워 숨었습니다.""누가 너에게 벗고 있다고 말하였느냐. 선악과를 먹었느냐."
여기서 아담이 만약 회개를 했다면 원죄는 받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와에게 잘못을 떠넘기죠. "저 여자가 꼬셔서 먹었어요!"라고요. 하나님은 다시 참습니다. 하와는 이렇게 말합니다."뱀이 꼬셔서 먹었어요!"
원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짐을 의미합니다. 자기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남에게 잘못을 떠넘기려고 했었고, 더불어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이 부분을 회개하지 못하고 있죠. 이것이 원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깨짐. 그래서 예수님이 말하는 겁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자가 없다." 라고 말이지요. 예수님을 통해서만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관계가 회복되는 것은 원죄가 사라진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인해서 이 관계의 다리를 만들었다고 말하십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이리 말씀하셨지요."다 이루었다" 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