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현대는 세뇌를 일삼기 매우 쉬운 시대라고 한다. 돈벌이와 경쟁과 거짓으로 가득 찬, 그러나 물질만은 풍부한 시대. 그러한 것에 싫증이 난 인간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신흥 종교'나 '자기 계발 세미나'에서 정신의 풍요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그런 조직에는 '고객'을 획득하는 기술에 숙달한 전문가가 함정을 치고 사냥감을 잡는 거미처럼 도사린다.아래의 내용은 그저 일례일 뿐이다. 실제 세뇌에선 기본 병용과 함께, 방법에 변형을 준다.덧붙여 이 기재는, 실재의 집단·개인·사건과 어떤 관계도 없다. 권유 여기 젊은이가 한 명 있다. 그저 그런 대학에서, 공부도 놀이도 하는 둥 마는 둥, 교제가 깊진 않지만, 친구는 많은, '사립 대학 문과에 성적은 그럭저럭'의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젊은이다. 어느 날, 그는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는다. 누군가 하니 수년도 더 된 오랜 친구였다."이번 토요일 한가해?(대개 이성)" 내성적이던 옛날과 달리 말투가 묘하게 자신감이 넘치면서 박력이 있다. "좋은 곳에 가보자" "너에게 도움이 된다" 등으로 말할 뿐 자세히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바쁘다"는 구실을 대 끊어도, 그때부터 매주 전화를 걸어온다. "오랜만에 만나자고 옛 친구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하는 설득과 불평에, 결국 딱 잘라 거절할 수 없어진다. 친구가 데려간 곳은, '진리의 모임 (원주-모 종교 단체와는 관계없습니다. 역주-은(는) 훼이크고 옴진리교. 옴진리교는 현재 알레프라는 이름으로 개명. 한국이라면 대순진리회?)' 이라는 곳이다. "진리"라는 단어에 뭔가 수상함을 느끼지만, 친구가 보는 앞에서 그만둘 순 없다. 접수처에 주소·이름·전화번호를 써넣고 회비 천 엔을 내자, 묘하게 텅 빈 느낌의 방으로 안내받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반 정도는 이 모임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 같았다. 모두 자신처럼 누군가에게 이끌려 들어온 듯하다.이윽고 행사를 시작한다. 검소한 흰옷을 입은 청년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기를 구제하며, 더 나아가 타인을 구제한다. 대승도 소승도 아닌 새로운 불교다. " 하는 내용이다.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는 이게 종교 모임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윽고, 방 모퉁이에 있는 텔레비전에 '스승(원주-모 종교 단체와는 관계없는 거야. 역주-은(는) 훼이크고 아사하라 쇼코.)'이라 불리는 교조의 설법 영상을 틀었다.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나는 얼굴이라, 이 모임이 일부 미디어가 그토록 까는 종교 단체라는 사실을 젊은이는 간신히 깨달았다. 무시하고 친구에게 불평하려 하자, 친구는 이미 눈물을 글썽이며 스승의 고마운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심상치 않은 눈빛에 기가 죽었는데 갑자기 어깨를 얻어맞았다. 조심스레 뒤돌아 보자, 아까의 청년과 함께 같은 옷을 입은 남녀 몇 명이 있었다. 별실에 이끌려 면접 비슷한 것을 받았다. 친구도 동반이다. 그들은 젊은이의 아픈 부분을 찌른다. "우유부단하며 소극적인 자신에 대한 불만"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불만" "1지망 대학에 떨어져 안전빵 학교에 다녀야 하는 좌절감"….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바꾸려면 수행해야 한다고 권유한다. 교묘한 말로 설득한다. "지금을 놓치면 너는 쭉 그대로다" "참가하지 않으면 모처럼의 기회를 잃는 것이다" 등등. 그리고 겉으로 강요는 하지 않는다. "신자가 되라고는 하지 않겠다. 자신의 정신 수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등 우려를 지우려는 듯이 지극히 온화하게 권한다. 일주일이면 끝난다고 했다. 7만 엔이라는 금액도, 텔레비전에서 소란을 피울 정도로 고액은 아니며, 낼 수 없는 액수도 아니다. 친구도 "없으면 빌려준다"고까지 말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타인의 권유를 곧바로 거절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의 지적대로 "자신을 바꾸고 싶다"라는 일념 아래, 마침내 젊은이는 "수행" 참가를 승낙했다.아직 입신한 건 아니다. 입신 권유를 받으면 그때 거절하면 된다. 그 생각이 함정이다.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결정을 번복하는 등 거절하기가 쓸데없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상대는 거기까지 계산에 둔다. 1단계/격리 도쿄와 떨어진, 후지 산이 보이는 야마나시 현의 모처 (원주-모 종교 단체와는 관계없다니까. 역주-은(는) 훼이크고 옴진리교 총본부는 야마나시 현에 위치). 종교 단체 소유의 도장에, 젊은이를 포함한 수명의 '수행자'가 들어섰다. 무려 그 모임의 바로 다음 날이다. "좋은 일은 가능한 한 빠를수록 좋다"고 그들이 말했다. 친구가 집까지 와서 준비를 도와줬다. 친구는 하룻밤 묵고 나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참가자 집합 장소까지 데려다 줬다. 젊은이는 친구의 신속함과 친절함에 감화받는다.그것은, 그 단체에 대한 불필요한 지식을 모르는 상태에서 세뇌해버리기 위함이며, 친구가 베푼 친절 또한 젊은이가 관련 서적·잡지를 찾지 않는가 조사하기 위함이지만 젊은이는 깨닫지 못한다. 2단계/몰아넣기와 주입 그런데 도장에 안내되자마자, 혀를 씹을 것 같은 인도풍 이름의 '~대사(원주-모 종교 단체와는 관계없다고 했다)'라는 인물이 강의를 시작했다. 그 첫 단계로 참가자는 자신의 바꾸고 싶은 싫은 부분을 고백해야 한다. 대사는 교묘한 유도 신문으로 치부를 벗겨 정신적 충격을 준다.그 다음, 활자를 이용한 강의로 옮긴다. 그 내용은 교조가 쓴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설명을 듣는 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수행하면 누구든지 초능력을 쓸 수 있다"는 대목만이 유일하게 젊은이의 흥미를 끌었다. 오전에 최초 강의가 끝나면 점심이 준비돼 있다. 뭔가 수상한 '특제 음료수'와 바나나 하나. 아까의 대사가 설명하기를 "몸속을 정화하는 수행의 일부"라고 한다. 그러려니 하고 별생각 없이 입에 댄다. 그 순간에도, 천장 근처에 고정한 스피커에선 교조의 책을 낭독하는 소리가 계속 흐른다. 식사를 마치고 얼마 안 되는 자유 시간에 화장실을 가보니, 놀랍게도 거기서도 똑같은 설법이 계속 흘러나왔다. 오후에는, 또 다른 대사가 진행하는 요가 시간. 싸구려스러운 워크맨을 건네받는다. 그걸 들으며 요가를 한다. 테이프에는, 고맙게도 교조 스스로 주창한 진언이 녹음돼 있다. 그걸 들으면서 대사의 몸짓을 흉내 낸다. 한 사람씩 보조가 붙어 친절하게 도와준다. 테이프 한 면이 끝나면 뒤집어서 이번엔 명상. 테이프에는 아까처럼 진언이 들어 있지만 다른 점이라면 '뽁뽁'거리는 단조로운 리듬이 시보처럼 들어 있다는 것이다. 생각 없이 듣고 있다 보면 반쯤 잠든 듯해 기분이 좋아진다. 테이프가 끝나면 명상은 종료. 가볍게 몸을 푼 다음 다시 강의를 받는다. 내용은 오전의 것과 같다.오후 6시 저녁 식사. 메뉴는 점심과 같다. 스피커로 낭독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도 같다. 저녁 식사 뒤, 다시 요가→명상→강의의 순서. 시계가 없어서 젊은이는 몰랐지만, 끝났을 때는 새벽 2시가 넘었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설교는, 음량은 작아졌지만, 여전히 계속된다.이틀째, 해도 채 뜨지 않는 새벽에 일어난다.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으며 대사의 주도로 전원이 '옴·옴·옴(원주-옴이란 진언의 일종이며 모 종교 단체와는 관계없습니다)' 하는 소리를 주창한다. 아침 식사에 앞서, 소금물을 1L 마신 다음 토한다. 몸속을 정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침 식사는 똑같은 식단. 오전엔 강의. 전날과 좀 다른 점은, 강의 중간에 선배들이 "이 수행으로 자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수면 부족과 배고픔으로 판단력이 무뎌진 머리에는 평범한 이야기도 감동적으로 들린다.점심 식사→요가→명상→강의→저녁 식사→요가→명상→강의라는, 일과와도 같은 빈틈없는 과정을 진행한다. 횟수를 거듭할 수록 강의는 열기에 넘치며 선배들의 체험담도 감동적이며 영적인 이야기가 돼간다. 취침은 역시 심야에. 스피커로는 24시간 내내 뭔가가 흘러나온다. 사흘째. 이틀째와 같다. 나흘째. 사흘째와 같다. 다만, 저녁 식사의 양이 절반으로 줄었다. 닷새째. 기상한 다음 몸속을 정화하는 소금물의 양이 평상시의 2배가 됨. 게다가 오늘과 내일은 단식이라고 한다. 물도, 교조의 생각을 담은 물이라며 세 배씩 퍼준다. 강의→요가→명상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잠도 잘 수 없다. 시계도 없고 외출도 금지돼 참가자는 시간관념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마비된다. 머릿속이 공백이 되어, 들어오는 것은 진언이나 교조의 말씀과 대사의 설교뿐이다. 이때쯤, 세뇌하는 측은 교묘하게 화제를 살짝 바꾼다. "여러분의 부모는 진리의 빛을 모른다", "교조가 만드는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재산을 가지는 건 죄다" 등, 평소라면 받아들일 리 없는 극론도 이 상태의 참가자는 쉽게 믿어버린다.참가자에겐 이미 개성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없다. 3단계/좌절 극복, 고백과 일체화 엿새 밤. 참가자에겐 이미 시간 감각 따위는 없다. 40시간 전부터 계속되는 배고픔은 극한에 이르렀다. 강의가 끝나면, 자신의 바꾸고 싶은 싫은 부분을 한 사람씩 고백해야 한다. 대사들은, 여태까지보다 더 날카로운 심문으로 참가자의 마음을 도려내 치부를 모두 벗겨버린다. 냉혹하게, 무자비하게. 참가자의 고백이 모두 끝나면 교조의 사진이 나타나는데, 참가자는 그 앞에 몸을 내던지고 모든 것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다. 그리함으로써 바뀔 수 있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준 선배들이 자신들도 그렇게 바뀌었다며 강조한다. 한 사람이 몸을 내던진다. 그러면? 조금 전까지 귀신 판사처럼 날카로운 말을 휘둘렀던 대사들이, 상냥하고 따뜻하게도 고백한 사람을 축복해주는 게 아니겠는가. 모두 고백을 끝내면, 참가자와 대사, 한 술 더 떠 도장에서 거주하는 출가자, 선배들이 모두 모여 저녁 만찬을 연다. 참가자는 스승 아래 끝없는 일체감을 느끼며 결국 스스로 입신한다.이 시점에서, 고백하지 않는 사람에겐, 반강제로 고백하게 한다. 그다음은, 고백하기 전의 삶이란 얼마나 잘못돼 있었는가, 고백이 얼마나 훌륭한 체험이었는가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타이른다. 대사나 선배뿐만이 아니다. 함께 수행한 참가자들도 하나 되어 그를 설득한다. 이리하여 뇌는 강화된다. 4단계/세뇌 강화, 피세뇌자를 재생산 이레째. 모든 과정이 끝났다. 참가자의 눈은 모두 한결같이 초점 없이 텅 비어 있다. 일단은 집에 돌아가며, 각자 재가 수행자가 되거나 출가하거나 한다. 그런데, 그들의 세뇌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그대로 놔두면 세뇌가 풀려버린다. 그렇다고 다시 세뇌할 수도 없다. 거기서 교단은, 세력 확대와 세뇌 강화 수단으로 포교 활동을 시킨다. 그들 신참자는 교단의 가르침이나 세계관을 아직 체계적으로 이해하진 못했다. 가끔 상대방에게 들이대다가 결점을 드러낼 때도 있다. 그러나 가르침이나 세계관을 타인에게 말로 설명하기 위해 전체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와중에 세뇌는 더 깊고 완벽해진다. 정리 한 번 더 간단하게 세뇌의 과정을 복습해보자. 참가자를 일상으로부터 끌어내 격리한다. 정신적 공백 상황에 몰아넣어 세뇌할 내용을 박아 넣는다. 큰 벽을 넘게 해 참가자가 일체감을 느끼도록 한다. 세뇌 내용을 재확인시켜 강화한다. 이상의 네 단계를 거쳐 세뇌를 하는 것이다. 앞서 든 예는 어디까지나 기본이다. 실제로, 2단계에서 육체를 다치게 하거나 해서 상대의 신체적 결함을 욕하여 자존심을 잃게 하는 것은 상투적인 수단이며, 3단계의 '큰 벽'이 살인(친구나 가족, 약자라면 더욱 좋다)이 될 때도 있다. 역세뇌 및 해체 종교 단체를 탈퇴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교단과 동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려 들 것이다. 재세뇌도 시도할 것이다. 신앙을 버리는 사람을 허용하면 그들의 세계가 붕괴하는 것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두겠다는 강한 결의만 있다면 결국 가능하다. 문제는 본인에게 의지가 없어서 가족이 나서는 경우다. 그 경우, 본인 신병 확보가 문제다.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 본인에게 없는 이상, 납치하다시피 데려올 수밖에 없다. 그 도중 "아빠 왜 이래!"라든가 "도와줘!" 등으로 소리치는 탓에 없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전문가에게 의지해야겠다. 본인의 신병을 확보했다면, 방해가 없는, 교단이 눈치챌 수 없는 장소에 격리해야 한다. 도망도 도망이지만, 처음 세뇌했을 때처럼 다시 격리해야 한다.본인은 처음엔 격렬하게 저항한다. 의자나 침대에 붙들어 매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폭언과 매도의 말을 토해내며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기가 죽어선 안 된다. 그의 말이나 태도에 쫄면 역세뇌가 어려워진다. 역세뇌란 신앙의 모순을 찌르는 것이다. 티베트 불교를 기본으로 한 단체라면 그들의 교의가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점을, 기독교라면 그들이 성서의 가르침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가를 지적한다. 끈질기고 끈기있게 실시해야 한다. 그 종교와 교의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춘 인내심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을 것이다.모순을 본인이 눈치챘다면, 이제 거기서부터 무너뜨리면 된다. 그러나 거기까지 도달하기란 쉽지 않다. 며칠에서 가끔 몇 주가 걸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돌파구가 열리면, 본인은 잘못을 깨닫고 참회하며 자신이 세뇌됐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끝난 건 아니다. 세뇌를 막 마쳤을 때처럼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므로, 약간의 자극으로도 원래대로 돌아가 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 때문에 몇 주 정도 격리를 계속해 항상 감시해야 한다. 한 번 역세뇌한 인간이 다시 세뇌 상태가 되면, 이제 돌이키긴 어렵다. 그러나 그 몇 주가 지나면 같은 방법으로 세뇌하기란 어려워진다. 말하자면 면역이 생기는 것인데, 그러면 안심이다. 이제 두 번 다시 같은 위험에 빠지진 않을 것이다. 출처 티스토리 블로그 2
당신도 할수있는 간단한 세뇌강좌
현대는 세뇌를 일삼기 매우 쉬운 시대라고 한다. 돈벌이와 경쟁과 거짓으로 가득 찬,
그러나 물질만은 풍부한 시대. 그러한 것에 싫증이 난 인간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신흥 종교'나 '자기 계발 세미나'에서 정신의 풍요를 찾으려 한다.
그리고 그런 조직에는 '고객'을 획득하는 기술에 숙달한 전문가가 함정을 치고
사냥감을 잡는 거미처럼 도사린다.
아래의 내용은 그저 일례일 뿐이다.
실제 세뇌에선 기본 병용과 함께, 방법에 변형을 준다.
덧붙여 이 기재는, 실재의 집단·개인·사건과 어떤 관계도 없다.
권유여기 젊은이가 한 명 있다.
그저 그런 대학에서, 공부도 놀이도 하는 둥 마는 둥, 교제가 깊진 않지만, 친구는 많은,
'사립 대학 문과에 성적은 그럭저럭'의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젊은이다.
어느 날, 그는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는다. 누군가 하니 수년도 더 된 오랜 친구였다.
"이번 토요일 한가해?(대개 이성)" 내성적이던 옛날과 달리 말투가 묘하게 자신감이 넘치면서 박력이 있다.
"좋은 곳에 가보자" "너에게 도움이 된다" 등으로 말할 뿐 자세히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바쁘다"는 구실을 대 끊어도, 그때부터 매주 전화를 걸어온다.
"오랜만에 만나자고 옛 친구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하는 설득과 불평에, 결국 딱 잘라 거절할 수 없어진다.
친구가 데려간 곳은, '진리의 모임
(원주-모 종교 단체와는 관계없습니다.
역주-은(는) 훼이크고 옴진리교. 옴진리교는 현재 알레프라는 이름으로 개명. 한국이라면 대순진리회?)'
이라는 곳이다.
"진리"라는 단어에 뭔가 수상함을 느끼지만, 친구가 보는 앞에서 그만둘 순 없다.
접수처에 주소·이름·전화번호를 써넣고 회비 천 엔을 내자, 묘하게 텅 빈 느낌의 방으로 안내받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반 정도는 이 모임에 처음 참가한 사람들 같았다.
모두 자신처럼 누군가에게 이끌려 들어온 듯하다.
이윽고 행사를 시작한다. 검소한 흰옷을 입은 청년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기를 구제하며, 더 나아가 타인을 구제한다. 대승도 소승도 아닌 새로운 불교다.
" 하는 내용이다.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젊은이는 이게 종교 모임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이윽고, 방 모퉁이에 있는 텔레비전에 '스승(원주-모 종교 단체와는 관계없는 거야.
역주-은(는) 훼이크고 아사하라 쇼코.)'이라 불리는 교조의 설법 영상을 틀었다.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나는 얼굴이라,
이 모임이 일부 미디어가 그토록 까는 종교 단체라는 사실을 젊은이는 간신히 깨달았다.
무시하고 친구에게 불평하려 하자, 친구는 이미 눈물을 글썽이며
스승의 고마운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심상치 않은 눈빛에 기가 죽었는데 갑자기 어깨를 얻어맞았다. 조심스레 뒤돌아 보자,
아까의 청년과 함께 같은 옷을 입은 남녀 몇 명이 있었다.
별실에 이끌려 면접 비슷한 것을 받았다. 친구도 동반이다.
그들은 젊은이의 아픈 부분을 찌른다.
"우유부단하며 소극적인 자신에 대한 불만"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불만"
"1지망 대학에 떨어져 안전빵 학교에 다녀야 하는 좌절감"….
그리고, 그런 자신을 바꾸려면 수행해야 한다고 권유한다.
교묘한 말로 설득한다. "지금을 놓치면 너는 쭉 그대로다"
"참가하지 않으면 모처럼의 기회를 잃는 것이다" 등등.
그리고 겉으로 강요는 하지 않는다. "신자가 되라고는 하지 않겠다.
자신의 정신 수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등 우려를 지우려는 듯이 지극히 온화하게 권한다.
일주일이면 끝난다고 했다. 7만 엔이라는 금액도,
텔레비전에서 소란을 피울 정도로 고액은 아니며, 낼 수 없는 액수도 아니다.
친구도 "없으면 빌려준다"고까지 말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타인의 권유를 곧바로 거절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의 지적대로 "자신을 바꾸고 싶다"라는 일념 아래,
마침내 젊은이는 "수행" 참가를 승낙했다.
아직 입신한 건 아니다. 입신 권유를 받으면 그때 거절하면 된다.
그 생각이 함정이다.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결정을 번복하는 등
거절하기가 쓸데없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상대는 거기까지 계산에 둔다.
1단계/격리도쿄와 떨어진, 후지 산이 보이는 야마나시 현의 모처
(원주-모 종교 단체와는 관계없다니까. 역주-은(는) 훼이크고 옴진리교 총본부는 야마나시 현에 위치).
종교 단체 소유의 도장에, 젊은이를 포함한 수명의 '수행자'가 들어섰다.
무려 그 모임의 바로 다음 날이다. "좋은 일은 가능한 한 빠를수록 좋다"고 그들이 말했다.
친구가 집까지 와서 준비를 도와줬다.
친구는 하룻밤 묵고 나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참가자 집합 장소까지 데려다 줬다.
젊은이는 친구의 신속함과 친절함에 감화받는다.
그것은, 그 단체에 대한 불필요한 지식을 모르는 상태에서 세뇌해버리기 위함이며,
친구가 베푼 친절 또한
젊은이가 관련 서적·잡지를 찾지 않는가 조사하기 위함이지만 젊은이는 깨닫지 못한다.
2단계/몰아넣기와 주입그런데 도장에 안내되자마자,
혀를 씹을 것 같은 인도풍 이름의 '~대사(원주-모 종교 단체와는 관계없다고 했다)'라는 인물이
강의를 시작했다.
그 첫 단계로 참가자는 자신의 바꾸고 싶은 싫은 부분을 고백해야 한다.
대사는 교묘한 유도 신문으로 치부를 벗겨 정신적 충격을 준다.
그 다음, 활자를 이용한 강의로 옮긴다.
그 내용은 교조가 쓴 책을 읽고 그에 대한 설명을 듣는 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수행하면 누구든지 초능력을 쓸 수 있다"는 대목만이 유일하게 젊은이의 흥미를 끌었다.
오전에 최초 강의가 끝나면 점심이 준비돼 있다.
뭔가 수상한 '특제 음료수'와 바나나 하나. 아까의 대사가 설명하기를
"몸속을 정화하는 수행의 일부"라고 한다.
그러려니 하고 별생각 없이 입에 댄다.
그 순간에도, 천장 근처에 고정한 스피커에선 교조의 책을 낭독하는 소리가 계속 흐른다.
식사를 마치고 얼마 안 되는 자유 시간에 화장실을 가보니,
놀랍게도 거기서도 똑같은 설법이 계속 흘러나왔다.
오후에는, 또 다른 대사가 진행하는 요가 시간.
싸구려스러운 워크맨을 건네받는다. 그걸 들으며 요가를 한다.
테이프에는, 고맙게도 교조 스스로 주창한 진언이 녹음돼 있다.
그걸 들으면서 대사의 몸짓을 흉내 낸다. 한 사람씩 보조가 붙어 친절하게 도와준다.
테이프 한 면이 끝나면 뒤집어서 이번엔 명상.
테이프에는 아까처럼 진언이 들어 있지만 다른 점이라면 '뽁뽁'거리는 단조로운 리듬이
시보처럼 들어 있다는 것이다.
생각 없이 듣고 있다 보면 반쯤 잠든 듯해 기분이 좋아진다.
테이프가 끝나면 명상은 종료. 가볍게 몸을 푼 다음 다시 강의를 받는다. 내용은 오전의 것과 같다.
오후 6시 저녁 식사. 메뉴는 점심과 같다. 스피커로 낭독이 계속 흘러나오는 것도 같다.
저녁 식사 뒤, 다시 요가→명상→강의의 순서.
시계가 없어서 젊은이는 몰랐지만, 끝났을 때는 새벽 2시가 넘었다.
스피커에서 흐르는 설교는, 음량은 작아졌지만, 여전히 계속된다.
이틀째, 해도 채 뜨지 않는 새벽에 일어난다.
떠오르는 아침해를 맞으며 대사의 주도로 전원이
'옴·옴·옴(원주-옴이란 진언의 일종이며 모 종교 단체와는 관계없습니다)' 하는 소리를 주창한다.
아침 식사에 앞서, 소금물을 1L 마신 다음 토한다.
몸속을 정화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침 식사는 똑같은 식단.
오전엔 강의. 전날과 좀 다른 점은, 강의 중간에 선배들이
"이 수행으로 자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수면 부족과 배고픔으로 판단력이 무뎌진 머리에는 평범한 이야기도 감동적으로 들린다.
점심 식사→요가→명상→강의→저녁 식사→요가→명상→강의라는,
일과와도 같은 빈틈없는 과정을 진행한다.
횟수를 거듭할 수록 강의는 열기에 넘치며 선배들의 체험담도 감동적이며 영적인 이야기가 돼간다.
취침은 역시 심야에. 스피커로는 24시간 내내 뭔가가 흘러나온다.
사흘째. 이틀째와 같다.
나흘째. 사흘째와 같다. 다만, 저녁 식사의 양이 절반으로 줄었다.
닷새째. 기상한 다음 몸속을 정화하는 소금물의 양이 평상시의 2배가 됨.
게다가 오늘과 내일은 단식이라고 한다.
물도, 교조의 생각을 담은 물이라며 세 배씩 퍼준다.
강의→요가→명상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잠도 잘 수 없다. 시계도 없고 외출도 금지돼 참가자는 시간관념을 비롯한 모든 감각이 마비된다.
머릿속이 공백이 되어, 들어오는 것은 진언이나 교조의 말씀과 대사의 설교뿐이다.
이때쯤, 세뇌하는 측은 교묘하게 화제를 살짝 바꾼다. "여러분의 부모는 진리의 빛을 모른다",
"교조가 만드는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 "재산을 가지는 건 죄다" 등,
평소라면 받아들일 리 없는 극론도 이 상태의 참가자는 쉽게 믿어버린다.
참가자에겐 이미 개성이라 부를 수 있는 건 없다.
3단계/좌절 극복, 고백과 일체화엿새 밤. 참가자에겐 이미 시간 감각 따위는 없다.
40시간 전부터 계속되는 배고픔은 극한에 이르렀다.
강의가 끝나면, 자신의 바꾸고 싶은 싫은 부분을 한 사람씩 고백해야 한다.
대사들은, 여태까지보다 더 날카로운 심문으로
참가자의 마음을 도려내 치부를 모두 벗겨버린다.
냉혹하게, 무자비하게.
참가자의 고백이 모두 끝나면 교조의 사진이 나타나는데,
참가자는 그 앞에 몸을 내던지고 모든 것을 고백하며 용서를 구한다.
그리함으로써 바뀔 수 있다.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준 선배들이 자신들도 그렇게 바뀌었다며 강조한다.
한 사람이 몸을 내던진다.
그러면?
조금 전까지 귀신 판사처럼 날카로운 말을 휘둘렀던 대사들이,
상냥하고 따뜻하게도 고백한 사람을 축복해주는 게 아니겠는가.
모두 고백을 끝내면, 참가자와 대사, 한 술 더 떠
도장에서 거주하는 출가자, 선배들이 모두 모여 저녁 만찬을 연다.
참가자는 스승 아래 끝없는 일체감을 느끼며 결국 스스로 입신한다.
이 시점에서, 고백하지 않는 사람에겐, 반강제로 고백하게 한다.
그다음은, 고백하기 전의 삶이란 얼마나 잘못돼 있었는가,
고백이 얼마나 훌륭한 체험이었는가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타이른다.
대사나 선배뿐만이 아니다.
함께 수행한 참가자들도 하나 되어 그를 설득한다.
이리하여 뇌는 강화된다.
4단계/세뇌 강화, 피세뇌자를 재생산이레째. 모든 과정이 끝났다. 참가자의 눈은 모두 한결같이 초점 없이 텅 비어 있다.
일단은 집에 돌아가며, 각자 재가 수행자가 되거나 출가하거나 한다.
그런데, 그들의 세뇌는 아직 완전하지 않다.
그대로 놔두면 세뇌가 풀려버린다. 그렇다고 다시 세뇌할 수도 없다.
거기서 교단은, 세력 확대와 세뇌 강화 수단으로 포교 활동을 시킨다.
그들 신참자는 교단의 가르침이나 세계관을 아직 체계적으로 이해하진 못했다.
가끔 상대방에게 들이대다가 결점을 드러낼 때도 있다.
그러나 가르침이나 세계관을 타인에게 말로 설명하기 위해
전체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와중에 세뇌는 더 깊고 완벽해진다.
정리한 번 더 간단하게 세뇌의 과정을 복습해보자.
참가자를 일상으로부터 끌어내 격리한다. 정신적 공백 상황에 몰아넣어 세뇌할 내용을 박아 넣는다. 큰 벽을 넘게 해 참가자가 일체감을 느끼도록 한다. 세뇌 내용을 재확인시켜 강화한다.이상의 네 단계를 거쳐 세뇌를 하는 것이다. 앞서 든 예는 어디까지나 기본이다.
실제로, 2단계에서 육체를 다치게 하거나 해서
상대의 신체적 결함을 욕하여 자존심을 잃게 하는 것은 상투적인 수단이며,
3단계의 '큰 벽'이 살인(친구나 가족, 약자라면 더욱 좋다)이 될 때도 있다.
역세뇌 및 해체종교 단체를 탈퇴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교단과 동료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하려 들 것이다.
재세뇌도 시도할 것이다. 신앙을 버리는 사람을 허용하면
그들의 세계가 붕괴하는 것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두겠다는 강한 결의만 있다면 결국 가능하다.
문제는 본인에게 의지가 없어서 가족이 나서는 경우다.
그 경우, 본인 신병 확보가 문제다. 집으로 돌아올 생각이 본인에게 없는 이상,
납치하다시피 데려올 수밖에 없다.
그 도중 "아빠 왜 이래!"라든가 "도와줘!" 등으로 소리치는 탓에 없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전문가에게 의지해야겠다.
본인의 신병을 확보했다면, 방해가 없는, 교단이 눈치챌 수 없는 장소에 격리해야 한다.
도망도 도망이지만, 처음 세뇌했을 때처럼 다시 격리해야 한다.
본인은 처음엔 격렬하게 저항한다. 의자나 침대에 붙들어 매야 할지도 모른다.
그는 폭언과 매도의 말을 토해내며 원망할 것이다.
그러나 기가 죽어선 안 된다. 그의 말이나 태도에 쫄면 역세뇌가 어려워진다.
역세뇌란 신앙의 모순을 찌르는 것이다.
티베트 불교를 기본으로 한 단체라면 그들의 교의가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점을,
기독교라면 그들이 성서의 가르침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가를 지적한다.
끈질기고 끈기있게 실시해야 한다.
그 종교와 교의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춘 인내심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할 수 없을 것이다.
모순을 본인이 눈치챘다면, 이제 거기서부터 무너뜨리면 된다.
그러나 거기까지 도달하기란 쉽지 않다. 며칠에서 가끔 몇 주가 걸리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최초의 돌파구가 열리면, 본인은 잘못을 깨닫고 참회하며 자신이 세뇌됐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끝난 건 아니다. 세뇌를 막 마쳤을 때처럼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므로,
약간의 자극으로도 원래대로 돌아가 버릴 가능성이 있다.
그 때문에 몇 주 정도 격리를 계속해 항상 감시해야 한다.
한 번 역세뇌한 인간이 다시 세뇌 상태가 되면, 이제 돌이키긴 어렵다.
그러나 그 몇 주가 지나면 같은 방법으로 세뇌하기란 어려워진다.
말하자면 면역이 생기는 것인데, 그러면 안심이다.
이제 두 번 다시 같은 위험에 빠지진 않을 것이다.
출처 티스토리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