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독도 도발에만 흥분하고 중국의 이어도 침탈은 나몰라라

대모달201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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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2011-08-08]

 

요즘 중국은 과거 30년 전의 중국이 아니다. 마치 300년 전의 천상천하 유아독존 시절의 대청제국 같다. 점(點)을 돌려달라는 게 아니라 선(線)과 면(面)을 통째로 삼키고 싶다고 공공연히 부르짖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알려진 대로 중국은 지금 중일 분쟁의 초점이 되고 있는 센카쿠(첨각(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만 원하고 있는 게 아니다.

최근 중국 일각에서는 센카쿠 뿐만 아니라 오키나와(沖繩, Okinawa)를 포함한 140여개 류큐(瑠球, Ryukyu) 전체가 중국 영토라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 가고 있다. 2009년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한 국제심포지엄에서는 쉬융(徐勇) 베이징대 교수를 비롯한 중국 역사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목청을 돋웠다. 일본 메이지(明治) 정부의 강압에 의한 1879년의 류큐 병탄, 2차 세계대전 후인 1972년 미국의 오키나와 반환 등은 국제법상 근거가 없으니 센카쿠는 물론, 류큐 군도내 140여개 섬과 해역 전체를 송두리째 중국에 반환해달라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류큐를 중국 영토라는 주장이 간헐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다가 2006년 이후 다시 수십 편의 논문을 비롯한, 언론 학계의 주장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다. 이에 대해 현재 중국당국은 묵인을 넘어 조장 내지 권장하고까지 있다는 동향마저 감촉되고 있다. 도대체 중국의 이런 움직임은 무엇을 의미하는 건가?

 

바다로 나가자’의 상하이에서 상하이방은 바다로 나갔다

상하이(上海), 아시아 대륙의 최장 민물줄기 장강(양쯔강)이 지구의 육지를 풍덩 다 집어넣어도 남을 만큼 가없이 드넓은 바다 태평양을 향해 행진하다 점차 짠 해수로 농도가 짙어가는 ‘델타 황금 삼각주’ 거기쯤이 바로 오랜 잠에서 깨어난 21세기 중국인의 꿈과 야망이 불꽃놀이를 하는 곳, 이름하여 상하이라는 도시이다.

중국 제1의 경제 무역 금융도시 상하이 도심은 빌딩 바다, 상하이 교외 동쪽 끝은 동중국해와 태평양, 교외 남서북 장쑤성과 저장성 동북부는 가도 가도 끝없는 우리나라 김제평야와 만경들 수백 개 수천 개를 합쳐놓은 듯한 초록 바다이다.

그런데 상하이는 어찌하여 상하이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혹시 바다위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상하이라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전설의 해저도시 아틀란티스 말고 이 세상에 바다 아래 있는 도시가 어디 있겠는가.

중국말로 ‘차를 타자’는 말로 ‘상처’(上車)다. 상하이의 ‘상’(上)은 동사이고 ‘하이’(海)는 명사다. 즉 상하이는 ‘바다로 나가자’는 뜻이다. 바다로 나가자, 이 얼마나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도시 이름인가!  바다로 나가서 장사하겠다는 말은 지난 150여년 동안 상하이의 인근 지역인  저장성의 난징, 양저우(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고향), 장쑤성의 항저우와 닝보 등지에서 성행했다.

뿐만 아니라 멀리 영국의 런던과 미국의 뉴욕 등 세계 각지에서도 유행했다. 당시 세계에서 유일한 무비자 여행도시였던 상하이는 모든 사람들이 상하이에서 창업하는 것을 장려했고 이곳으로 몰리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의 피부색과 머릿속과 가슴속의 칼라를 묻지 않았다.

20세기 후반, 덩샤오핑 역시 색, 즉 컬러를 묻지 않았다. 아니 컬러 구별을 지극히 혐오하였다. 덩샤오핑은 검은 고양이나 흰 고양이나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니,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허튼 색깔놀음에 빠지지 말고 실사구시 정신으로 경제발전에 일로매진하자고 외쳤다. 권좌에 물러나기 직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개혁개방의 신호탄을 광둥 선전이 아니라 상하이 푸동(浦東)에서 쏘아 올려야 했다. 중국의 미래는 상하이에 달려 있고 상하이의 미래는 푸동에 달려있다.”

이러한 덩샤오핑의 술회와 기대는 마치 바둑대국에서 불계승을 거두지 못한 승자의 복기를 연상케 한다. 그가 이토록 안타까워하고 편애한 상하이 푸동은 어디인가? 푸동은 중국 경제 제1의 도시, 상하이 시내를 가로지르며 황푸(黃浦)강 동쪽 땅을 말한다. 서울의 강남인 셈이다.

동방불패 상하이방은 기적의 활을 쏘았다

덩샤오핑은 1989년 천안문 사태를 진압한 후 이를 은밀히 지지했던 자오즈양을 숙청했다. 당시 상하이 제1인자 당서기를 맡고 있던 상하이방(上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