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有)) 서울의 귀신 출몰 장소

웃긴애2011.08.11
조회49,064

         

 

 

 

 

      

 

 

 

 

       서울의 귀신 출몰 장소들

 

 

 

 

 

 

 

 

 

 

 

 

 

보통 사람들이 목격하게 되는 귀신들은,

묘지나 외진 산사 (山寺) 등 인적이 드문 곳에 주로 출현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귀신은 외진 곳에서만 출현하는 것일까?

우리가 사는 수도 서울에도 귀신들이 득실득실 거리고 있다면 어떨까?

 

서울은 역사가 600년씩이나 되고 그 전부터도 수많은 사건들과 사고들이 발생하여

죽은 사람들이 많아 다수의 귀신들이 몰려 산다.

 

특히,

귀신이 자주 목격되고 있는 장소들이 있는데

 의외로 이 곳은 외진곳들이 아니라 번화가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이용자 분들은 시간이 나게 되면

 그 곳을 한 번 쯤은 찾아가 보길 바란다.

만약 당신이 혹시 민감한 영체질이라면

 귀신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첫번째]

 

세종 사거리

 

 

 

 

 

 

 

세종로 사거리는 교통이 복잡하고 넓은 곳이다.

 이 곳에서 이순신 장군 동상을 바라보고 남에서 북으로 차를 한 번 몰아보면

말 할 수 없는 압박감 같은 것이 먼 곳으로부터 짓눌러 온다.

 이는 십자로지기의 교차에서 오는 상충살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수많은 영혼들이 뭉터기로 가운데에서 오도가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왜냐하면 세종로 사거리의 한가운데는

그동안 그 근처에서 죽은 원혼들이 똘똘 뭉쳐서

큰 덩어리 모양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높이가 3m정도 되는 기둥형상으로

보이니 그 곳을 지나갈 때는 조심해야 한다.

특히, 가운데 차선의 경우가 위험하다.

 

 

 

 

 실제로 세종로 십자로는 대표적인 교통사고

다발지역으로써 매년 100건 이상의 사고가 발생한다.

 

 

 

 

 

 인신사고도 20% 정도 되는 것을 보면 조심해야 할 귀신출몰지역이다.

 

 

 

더욱 이상한 것은

 

 

광화문에서 동서 방향(종로쪽 길)로

대부분의 사고가 난다는 점이고 남북 방향은 거의 사고가 없다는 점이다.

 

교통 전문가들은 교차로 길이가 300m나 되는 긴 거리라고 그렇다고 설명하지만

신호등까지 정확히 그것에 맞추어 있는 이상 그 해명은 납득이 어렵다.

 

사고의 이유는 덩어리가 된 유령들은 한낮에도

시야를 흐리게 하는 신비한 힘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 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빛의 굴절과 유사한 착시 현상이나 일시적인 맹점 돌입현상이 자주 보인다고 한다.

 

 

 

 

 

 

 

 

[두번째]

 

광화문 비각 뒷길목

 

 

 

 

 

 

지금부터 약 80년 전까지만 해도 여기에 다리 아래에는

사람을 삶아 죽이는 형벌 (烹刑:팽형)을 가하던 돌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정신세계사라는 책방이 들어와 있는 곳과 피맛길 입구 사이 바로 그 근처에

 

비오는 날이면 칼을 목에 두른 죄수가 쓱 서가지고

지나가는 사람이 앞을 가롬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아마도 그 때 형장으로 끌려오던 남자 중 한 사람인 모양이다.

 

 

 

귀신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원한이 어느 정도인지가 중요하다.

 조선시대에는 공금횡령이나 간통사건에 연루된 사람을 이런식으로 처단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의 원한과 고통이 얼마나 크디클까? 

 

 

 

 

 

[세번째]

 

서린호텔 동쪽 골목길

 

                          

 

 

?(위 사진과 장소와의 연관은 없음을 밝힙니다.)

 

 

 

이 곳은 조선시대에 우포도청의 통용문이 있던 자리라서 그런지 지금도 약간 어두운 기운을 준다.

 

 통용문은 옥에서 죽은 사람들을 꺼내오는 문이라서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문이었다.

 

걸어가다가 동아일보 방향으로 얼핏 보면

지금도 그 떄의 귀신들이 허공에 떠서 씩 하는 차가운 웃음을 짓고는 사라진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라서 옥살이라고 하면 반쯤은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병신이 되는 것은 다반사이고, 죽어나오는 시신이 하루에도 두 세명은 되었다고 하니

행형관습이 말이 아니었음이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점은 현재는 병원이 바로 길 건너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눈을 다루는 안과 병원인데 평소에 그 병원의 원장이

좀 기인같은 분이어서 물리치는 힘이 있었기에

당하지 않고 꼿꼿이 버티지 않았나 추측된다고 한다.

 워낙 머리가 비상한 천재였는데, 장수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네번째]

 

태화관 고목

 

 

          

 

 

 

 

여기에서는 이완용 집의 하인 유령이 자주 출몰한다.

 나라를 등쳐먹고 후손에게까지 땅을 억만큼 어치나 물려준 매국노의 집터이지만

그래도 평소에 마음 편하게 살던 자리는 그 곳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재 태화관은 헐려서 사라지고 지금은 고층 빌딩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인지 유령도 그 건물 안에는 얼씬도 못 하고

 

앞에 남아있는 고목에 걸터앉아 있으면서

비 오는 날이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목격 된다고 한다.

 

그 귀신은 나이가 60세쯤 되어 보이는 노인인데

아마도 이완용의 사저에서 머슴으로 일하던 사람일 것이다.

 

 

 

 

 

 

 

 

 

 

[다섯번째]

 

안국동 뒷골목

 

 

 

 

 

 

이 동네는 궁중에서 일하는 중인 계급의 사람들이 길가 집에 살고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양반대가들이 살았던 동네인데,

 영시로서 과거 투시를 해보면 그 당시의 모습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거의 모든 추녀들이 사람 키보다도 훨씬 낮아보인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당시의 길목이 좁았던 탓으로 추정된다.

안국동은 오랜세월 전혀 개발이 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몇 되지 않는 동네 중 하나이다.


?

 

 고개를 쑥 내밀고 사람에게 뭐라고 말을 거는 귀신들이 있다고하고,

어두 컴컴한 해질 녘이면 전신주를 돌아 서는 길목 같은데 우두커니 서 있기도 한다고 한다.  

 
대체로 남자유령이 많은데

이따금 궁녀들의 모습도 스치고 지나가는데

아마도 대비의 별궁이 있었던 자리여서 그럴 것이다.

 


머리를 치레머리로 해 올리고

당옷에 검은 띠를 두른 얼굴이 희 뿌연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서

 목격한 사람들은 굉장히 무서워 한다고 한다.

 

 

 

 

 

 

 

 

 

 

 

 

[여섯번째]

 

탑골공원 뒷길

 

 

  

 


역사적인 3.1독립선언 장소에서 노인들의 소일장소로 변화한 종로의 대명사로 일명

 

"파고다 공원"

 

이라고 하는 탑골공원이 있다.

 

 

몇년 전 종묘 공원이 생기기는 했지만 종로에서는 유일하게 역사를 자랑하는 공원이다. 

그런데 이 공원의 뒷편 길은 언제 보아도 지저분하고 우중충하다.

 사주나 관상장이들이 죽 늘어 앉아 있고 쓰레기가 바람에 날리는 그 곳, 

여기에 무슨 귀신이 있을까 의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지저분한 곳을 좋아한다는 귀신들의 성질을 감안하더라도

서울의 도심인데 무슨 귀신이 나오랴마는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

이 길에는 예상 밖으로 동반자살을 한 귀신,

동성애를 하다가 죽은 귀신,

마약중독자였다가 죽은 귀신들이 우글거린다.
다른 곳과는 달리 대낮에도 상관 없이 태연하게

행인들의 몸속이나 어깨를 타고 다닌다.

 

??

어째서 사랑과 관련된 일로 죽은 사람이 많은가 궁금하여

 한 퇴마사가 여자유령을 불러 물어 보았다고 했는데 대답은 이렇다.

 

 


" 여기는 이왕조시절 본래 원각사라는 사찰이었다가 연산군시대 이후

 불탄 후 수백년간 버려진 땅이에요. 절이 있던 자리는 집을 짓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서울 중심가에 으슥하고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는 여기 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잠시 사랑을 즐기고 싶은 청춘남녀들이 입장료 없이 모이는 자리가 바로 이 동네였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죽는 아이들도 생기고 그래서 아마 그럴거에요 "

 

 


현재 탑골공원 안에는 노인들이 많이 있는데

귀신들도 아마 노인들이 싫었던지 뒷길에서 서성거리는 모양이다.

 

 

 

 

 

 

 

 

 

[일곱번째]

 

종로 3가 뒷골목

 

 


 

 

 

 

지금은 황금을 만들어 내는 서울의 황금시장이 집결된 곳이지만

여기는 불과 30년전에 홍등가가 밀집해 있던 지역이다. 

단성사 뒷골목에서 갈라져 비원 쪽으로 빠지는 아주 좁은 골목이 나있는데

거기는 대낮에도 뭔가 섬뜩한 기운이 감도는 지역이다.
마치 뒤에서 사람이 따라 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장소인데,

중간에 목욕탕이 있던 건물 쯤 가면 영락없이 여자귀신들이 많이 목격된다고 한다.

  홍등가가 사라진지도 벌써 오랜 세월인데 어째서 귀신들이 있는 것일까 ?

 

   ??????

 

귀신들이란

자신이 한 맺힌 생활을 한 자리로 다시 돌아와 사는 버릇이 있다.

 

 

아마도 그 여자유령들은 그 동네에서 피맺힌 사연을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 골목길을 지나가다가 보면 유령의 모습이 자꾸만 보이는 것일 게다.  
요즘 처럼 단순히 틀에 갖혀진 생활이 싫어서 몸을 파는 여성이 많은 시대가 아니라

그 시대는 정말 몸을 팔지 않으면 살기 어려웠던 시대였다.

그들이 점차 저 세상으로 떠나고 귀신이 되어 가지고는

한 맺힌 자리로 다시 돌아와서 남정네의 손목을 끌어 당기고 있다.

 

 

 

 

 

 

 

 

[여덟번째]

 

종묘공원

 

               

 

 


 

지금은 종묘공원이라는 넓은 터가 환하게  열려 있으나

10여년 전에는 그 곳이 밀집된 상가지역이었다.  

 

 


종묘로 들어가는 길에는 아주 작은 골목길들이 수없이 나있고

작은 기와집들이 뒤에 꽉들어찬 동네였다.
당시에 유명한 역학자 백운학 선생의 거처도 주유소 담 바로 뒤의 한옥이었다.


현재의 위치로 보면 종묘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부근인데

그 부근의 벤치에 앉아 있으면 거지귀신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종묘는 익히 잘 알다시피 조선시대에 왕실과 충신들의 제사를 올리는 장소였으며

종묘 건너편 청계천변에는 수 많은 거지들이 뚝방 근처에 살고 있었다.

그들이 나라에 무슨 행사가 있으면 국상 때는 상여도 메주고 천막도 쳐주는 허드렛일을 해 주고 모여 살았다. 
때로는 길거리 청소도 마다 않고 해냈다.

 

 

 그들은 죽은 다음에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가장 공간이 자유로운 곳인 종묘공원에 다시 모여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임에 틀림 없다.  

 

 일부 귀신들은 거기서 낮잠 자는 사람에게 씌여 가지고 진짜 거지로 만들어 버린다.

 직장을 잃고 벤치에 앉아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걸인으로 나서는 식이다.

이처럼 귀신은 씌인 사람을 마음대로 조정하여 자기들이 하고 싶은 행동을 하게 만들어 버린다.

 한번 가보면  틀림 없이 그런 거지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홉번째]

 

서울의대 병원 영안실 옆길

 

 

     

 

 

 

창경궁 정문 바로 길 건너면  서울대 영안실이 있다.

 

이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왕실의 기맥을 끊기 위하여

 일부러 흉한 자리를 만들어 놓은 풍수상의 악랄한 작태이다.

 

 

그런데 영안실 옆에는 하얀 색의 추모비가 서있다.

그 비는 전쟁때 학살 당한 부상군인들의 영혼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6.25때 병원에 실려 왔다가 미처 피난을 하지 못한 군인들이

 침상에서 그대로 총을 맞고 죽은 일은 지금 증언자들에 의해 알려졌다.

 

 

전쟁이 잔인한 것이라지만

부상당하여 누워 있는 군인들을 무참하게 살육한 자들이 바로 인민군들이다.  
죽은 시체를 모두 끌어 내어 한 구덩이에 파묻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20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그 자리에 위령비가 세워졌다.
지금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그 담장을 끼고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함성 비슷한 젊은이들의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열번째]

 

마로니에 공원의 은행나무들

 

 

 

 

 

 

 

지금은 공원의 내력을 새겨 놓은 대형 조형물을 설치하느라 잘리고 없어졌으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가운데에는 400년도 넘은 큰 은행나무가 서있었다.

사람들은 그 주위에 놓인 벤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데

 

그 나무는 대학로가 있는 동숭동 동네의 당목으로 무당들이 굿을 벌이던 나무였다.
말하자면 신기가 듬뿍 서린 나무였는데

 잘려서 사라지게 되자 그 나무의 신기가 옮겨 붙게 되었다. 

 

 

 
지금은 주위의 5그루 나무에 분산되어 있는데,

만일 자신이 훌륭한 배우가 되기를 원하거나 아니면 이름난 작가로 출세를 하고 싶거든

 밤중에 거기서 혼자 기도를 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거기에 서려 있는 신기는 예술적인 능력을 가진 까닭에 그런 일을 하게 만든다.

 예술혼은 기본적으로 샤마니즘(신기,신명)과 관계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부근 공연장에서 하늘위로 날아 다니는 연예인 유령을 목격할수 있다.
그냥 보면 보이지 않고 한참 그 나무 옆에 앉아 있다가 하늘을 보면 잘 보인다고 한다.

 

 

 

 

 

 

 

[마지막]

 

충신 시장 앞길

 

                        

 

 

 

 

동대문에서 이화동으로 빠져 돌아 가는 충신동 고갯길은

아주 작은 낙타고개로 내림과 올림이 있는 길구조로 되어 있다.

 

 그 쑥들어간 부분에 예전에 무당집이 많았다.
그런데 평소에도 거기는 교통사고가 자주 난다.

 

왜냐하면 시야가 확 트이지 않는데다가

이화여대 부속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이 중복되기 때문이다.

 

 

 이 고개길에서는 무당들이 죽고난 다음 귀신이 되어 헤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본래 거기에는 큰 찻길이 없었으나 도시계획으로 인하여 새로 길이 났다.

 

 그러자 거기에서 일하던 무당들이 갈 곳을 잃고

거의 모두 미아리나 창신동 방면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옮기고 나서부터 일이 안 되어 목숨을 잃은 사례가 많다.

 

 

(진무당들이 자리를 자주 옮기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지기변동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거기서 자리를 옮겨가지고 살을 맞은 무당들이 다시 그 동네에 모이다 보니,

 그 주변 길에 서성거리는 무당귀신들이 곧잘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가 병원이 가까이 있으니

거기서 죽어 나오는 귀신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다른 귀신들도 많이 모인다.

 


그래서 이 고갯길에서는 운전할 때 조심해야 하고,

 절대로 남녀가 데이트를 삼가해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홀려서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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