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공식 일정으로 동경도교육청 방문이 있는데 단장으로부터 일본 교육제도와 동경도교육청 기록을 지시 받았으므로 오늘은 좀 기록준비와 관찰에 신경 좀 써야 하는 날이다. 그리고 오후에는 동경여행, 아니 일본연수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자유시간이 있는 소중한 날이다. 동경도교육청은 첨단건물로 유명한 동경도청 내 25-27층을 사용하고 있는데이 지역은 서울의 강남 같은 번화가로 청소년들이 모이는 곳이나 최근 대형빌딩이 들어서서 중심업무지역으로 변모하였다.
우리가 회의실에 자리잡자 유아교육담당 여자 지도주사(指導主事, 장학사)와 총무과 남자 국제교류담당자가 인사를 하고 지도주사가 유인물을 배포하였는데 우리가 일한문화기금에서 받았던 한글판 “동경의 교육”이었다. 한 시간 이 상 길게 동경의 교육시책을 설명하였는데 이미 사전지식이 생기데다 유인물을 설명하는 식이어서 새로움이나 감동은 크지 못했다. 그러나 질의응답 후 사무실을 견학했는데 점심시간이라 직원은 많지 않았지만 칸막이 없이 툭 트인 사무실에 책상이 빽빽이 들어찼고 책상 주변에는 문서와 책들이 산적해 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와이셔츠 바람으로 문서와 씨름하는 모습에 동병상린…
동경도교육청에 오기 전 혹시 일행들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어떻하나 은근히 걱정도 했는데 곧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어찌나 질문이 계속되는지 가이드가 제지해야 했고 난 가만히 듣고 메모만 해도 됐다. 질문시간이 모자라 질의답변이 끝났는데도 개별질문을 하는 단원이 적지 않았다. 인근 식당에서 1인당 3000엔짜리 한식 불고기로 포식한 다음 자유시간을 같도록 했는데 흩어지지 않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져 한참 기다렸다가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젯밤에도 오늘 자유시간을 위하여 고심했었는데 그것이 주어지자 혼자 구석에서 지도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가이드의 권고를 참작하여 낮에는 아사쿠사로 가서 절을 보고 밤에는 화려함과 자유로움과 젊음을 좇아 여기에 다시 오기로 하고 전철노선을 연구하며 한번 갈아타고 아사쿠사(淺草)로 향했다. 가이드의 말이 아사쿠사는 에도시대에 가부키 등 서민예술이 절 앞에서 발달했고 2차대전 전화의 피해를 덜 입어 도쿄 중에서는 비교적 옛 모습이 남아 있다 한다.
지하철 출구를 나와 현란한 산문(山門)을 들어서니 그 진입로 양쪽에 상점과 연등이 무수하고 고기타는 연기와 냄새가 역한데 행인들은 그저 즐거운 모양이다. 절이라기 보다 시장이고 축제의 장 같은데 다만 향태우는 향기롭지 못한 내음이 여기가 종교의 영역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정도였다. 지갑과 선물을 재보다가 그만두고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센소지(淺草寺) 입구에 절 이름의 유래를 그림으로 그려 놓아 나도 짐작은 할 수 있었는데 그 줄거리는 어느 어부가 꿈의 계시에 따라 호수의 물풀이 있는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니 금부처가 걸려나와 이에 따라 절을 지었다는 설화 같다. 아사쿠사는 옛날 동경 동쪽 하루거리에 위치하고 관문과 시장, 큰 절이 있어 상업과 예술이 발달하였으며 신앙의 중심으로 가마쿠라 이래로 역대 막부의 장군도 자주 왕림하였던 곳임을 또한 그림으로 알 수 있었다. 절은 생각보다 커서 5층탑, 아니 일본식으로 五重塔(목조)의 위용이 범상치 않았다. 수 많은 남녀노소가 부처 앞에 동전을 던지고 복을 빌었다.
또 복을 비는 행렬 중에는 엄마의 자전거에 실려 온 연보라빛 전통(?)옷을 입은 아이들이 엄마손에 이끌려 들어와 엄마를 따라 손뼉치고 허리 숙여 빌고 또 빈다. 이른 바 시치고산(7.5.3)이다. 여자 아이는 3살 7살, 남자아이는 5살 때 무사히 자랐음을 감사드리고 앞으로 건강히 성장케 해달라고 비는 민간신앙인데 미신이라 버리지 않고 오늘날도 온존히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서양 문화, 종교에 매몰되어 너무 쉽게 자신의 옷을 벗어버리고 맞지 않는남의 옷을 입고 있는 오늘 우리의 어중띤 모습이 떠오른다. 부모 마음은 어디나 같다.
절을 나와 지하철을 타려다 안내도를 보니 스미다가와(隅田川)강이 지척에 있기에 다시 밖으로 가 둘러보니 꽤 넓은 강이 있고 다리가 있어 건너 갔다. 건너 가면 얼마 안 있어 전철역이 나오려니 했는데 방향과 목적지가 자꾸 혼동이 되어 구석에 가서 지도를 보았지만 별무성과…. 자기 위치를 모르면 지도는 무용지물이다. 일본에 와서 기특(?)하게 느껴지는 것은 모든 안내도에 꼭 빨간색으로 “현재위치(You are here)"를 명기하고 있는 점이다. 참 덕 많이 봤다. 그래서 귀국하여 전철역, 거리, 아파트, 병원 등에서 현재위치 표시를 살펴보니 ”현위치(standing point 또는 HERE) 표시가 아직 없는 곳도 적지 않았고 영문자 또는 한자표시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으며 역시 빨간 색으로 표시하기 했으나 크기가 너무 작아 얼른 식별하기 곤란했다. 외국인은 커녕 내국인도 객지에서는 고생이 꽤 클 것이다. 도로표지판을 따라 시골길을 달리다 시내에 들어서서 방향을 잃은 것이 그 얼마냐?
대낮에 길을 잃다니 좀 한심하였으나 무작정 전철역을 찾아 걷기는 피곤도 하고 거리가 중심가도 아닌 탓에 구경꺼리도 별로 없어 지나가는 버스를 보노라니 풍주(豊洲) 부두라고 써 있다. 버스정류장의 버스노선 안내도를 보니 30-40분 거리로 추측되고, 지니고 있는 지도로 보아 부두 근처에서 시내로 가는 전철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과감히 승차했다. 처음으로 버스에 탄 것이다. 눈치를 보니 요금은 200엔, 승차시 요금함에 넣는 우리나라와 같은 방식으로 남의 시선에 신경을 세웠지만 다행히 아무도 이방인임을 눈치채지 못한다.
지도! 이 얼마나 신통한 물건가? 국내에서도 처음 가본 산골도로를 따라 가면 마을, 다리, 산, 갈림길이 지도의 차례로 나타났듯이 일본의 이 약간 변두리 거리에서도 모든 것이 지도대로 창밖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것이 요술이 아니고 무엇이랴! 지도 없이 여행한다는 것은 맹목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 하나는 버스가 신호대기 중에 시동을 끈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차들이 그랬다는 말은 들었지만 미국이든 일본이든 이걸 실시하는 나라가 아닌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버스 종점에 다다르니 부두 분위기가 나긴 했지만 아파트도 있고 하여 생각 외로 주변은 조용하고 깨끗하다. 창고 건물을 돌아가니 소형 화물선이 정박해 있는데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고 주차장에 차량만 약간 있다. 바닷가에는 출입금지가 표시된 것 같은데 두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다. 마침 석양이라 하늘과 바다가 붉게 물들어 멀리서 그리고 혼자서 찾아온 고독하고 당돌한 나그네를 환영, 격려한다. 우리가 첫 날 건넜던 레인보우 브리지도 멀리 보이고 큰 유람선이 건너편 해안쪽을 따라 지나간다.
담배! 외로운 나그네에게 이 얼마나 큰 벗인가? 전철역에서, 상가에서, 절에서, 그리고 지금 황혼의 부두에서, 담배 한 대는 나그네에게 여유를 되찾게 해주고 피로를 회복시킨다. 부드러운 해풍 속에 담배 연기 흩어지고, 내 마음의 불안도 외로움도 함께 흩어 보낸다. 자! 또 가야지. 어디로? 신주쿠로… 왜 이 밤에 지친 몸을 이끌고?
전철을 타러 가다가 신주쿠행 버스가 눈에 띄어 올라타고 시내로 들어가니 처음 잘 달리던 버스도 황거 주변 도심에 다가갈수록 차츰 기어간다. 아침에 지났던 황거(皇居)_도 어둠에 싸여 있다. 신주쿠 삼정목(新宿 三町目)이란 정류장에서 더 참지 못하고 내렸다. 이미 19:30분경으로 신주쿠의 밤은 떼지어 모여든 청소년들, 혼자 기타 들고 소리 높여 노래하는 젊음으로 부산하다. 나신의 미희가 그려진 티켓을 나누어지며 호객하는 청년(값을 보니 5,000엔에서 7,000엔, 술값 같은데 정확히 무얼 하는 가격인지는 모르겠음), 대조제(大鳥祭) 라는 축제의 등불로 불야성을 이룬 화원신사(花園神社)에서 기원하는 인간들(버스에도 축제 광고가 부착되어 있었음), 남미에서 온 듯한 음악연주 그룹의 기타음과 팬플루의 합주음이 나그네 마음을 흔들고… 누가 듣건 말건 그들은 부른다… 청춘 해방구!
밤이란 이런가? 아니면 방향감각이 둔한가? 아니면 신주쿠 탓인가? 그만 방향을 잃고 거리를 맴돌다 다시 역에 오고 말았다. 가로등 밑에서 지도를 펴놓고 궁리 끝에 다시 전진, 이제 남행한다. 무슨 공사 설명판에 신주쿠의 역사를 써 놓은 글을 행운이다 싶어 더듬더듬 읽기도 하고, 한참 걸으니 어두운 공원이 나오고 공원 옆길을 도로표지 읽기와 궁리와 헤매임 속에 걷고 또 걸으니 요요기(代代木) 국립경기장에 닿았다. 여학생들 다수가 삼삼오오 모여 있기도 하고 주변에는 텐트가 쳐져 있기도 한데 여학생들이 경기장 울타리 안쪽을 향해 “피제이! 피제이!”하며 환호한다. 다가가서 보니 축구단 버스가 막 떠나고 있었다. 여학생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걸어 다다른 하라주쿠(原宿)에서는 흑인청년들과 아가씨들이 뭔가 서로 흥정을 하는 것 같은데 글세…
우연히 안내판이 있어 보니 에도시대의 옥천(玉川) 상수도 기념비를 보며 나 아니면 이런 귀중한 기념물을 누가 볼 수 있으랴 격려하며 증명으로 한방 찍는다. 또 걸으니 건물 한 벽에 사진이 수백장 빽빽히 붙어 있어 뭔가 했더니 학원 강사진 사진이었고 그 옆에 동대(東大) 1200명 합격 운운… 한 학원에서 그렇게 많이 합격시킬 수 있나 의문을 가지며 별로 크지 않은 건물의 그 학원을 지났다.
JR선만 따라 가면 어렵지 않을 것 같은 길도 가보면 막히고 으슥하고 어둡고 하여 넓고 사람 많은 곳으로 따라 가다보면 애를 써도 결국 지름길을 놓치게 마련이다. 이리하여 메이지신궁전역, 표참도역, 오차노미즈역 등 여러 역을 거치게 되었다. 학생들이 길게 줄지어 섰기에 뭔가 싶어 살펴보니 학원 아마도 외국어학원 등록하려는 줄인 것 같았다. 일본에는 신주쿠도 있고 오차노미즈도 있고 노래 부르는 자도 있고 학원 앞에 줄서는 자도 있다.
어쨋든 시부야 방향을 잡아 걷다보니 21:00시 무렵 마침내 시부야역 네온사인이 보인다. 이미 한시간 반을 걸었다. 배가 고프고 목도 마르고 피곤하여 우선 먹어야겠고 쉬어야겠기에 그리고 일본 술집(이자게야)에도 들어가봐야 겠기에 여러 집을 망설이다가 골목의 건물 지하에 있는 작은 술집에 들어갔다. 나홀로 두 번 째…
손님이 두 팀이 있는데 그 사람들과 떨어져 구석에 앉으니 40대 주인여자가 다가와 뭐라고 하더니 스탠드바를 가리키며 앉으라 한다. 왼쪽에 중년 남녀가 얼큰히 취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신경이 쓰였으나 조용히 앉은 다음 안주 하나를 가리키고 이어 “비루!” 했더니 한잔 갖다준다. 목마른 참이라 순식간에 들이키고 다시 “사케” 하니 뭐라고 하는데 못 알아들으니까 외국인인 줄 알고 작은 도자기 술병 두 개를 들고 나온다. 그 중 작은 병으로 하나 시켜 마시니 기분이 좋아지고 옆 남자를 보니 담배를 피우는지라 한참 있다 나도 88라이트를 탁자에 올려놓고 맛있게 피웠다.
주인 여자가 담배를 보더니 에이티에잇이라고 읽으며 뭐라 하기에 한 대 권하니 갖고 가서 피운 후 와서 “마일드!”하며 자기 담배를 권한다. 피워보니 매우 순한 담배로 맛이 좋다. 이후 토막 영어로 의사를 소통하는데 주인남자는 웃기만하고 대화에는 끼지 않는다. 내가 단원 명찰을 꺼내 보이니 교원임을 알고 “홧 티처?” 하기에 역사라고 하니까 “유 아 베리 굿 티춰“하며 추어준다. 그리고 숙소, 여행 기간 등 여러 가지를 물으며 관심을 보이고 호텔명을 묻길래 알려주니 ”베리 굿 호텔“이라 하면서 호텔에 가는 길을 아는 지 염려까지 해준다. 기분이 좋아 청주 한 병 더 시키고 얼큰 해진 후 지불했다. 여기서는 계산서에 끈을 달아 손님의 의자에 걸어 놓는데 계산서에는 2,300엔이라 기재되어 있었다. 결국 먹고 마시는데 이 여행 중 가장 큰 돈을 쓴 셈이다.
이제 제법 친숙해진 순환선을 타고 귀가하면서 그 전철 정산기를 실험하기 위해 일부러 요금보다 적게 표를 끊은 다음 오사키역에서 긴장하며 정산기에 표를 넣었더니 30엔 뭐라 나오는데 모자란다는 의미같다. 30원을 넣었더니 찰칵하며 표가 나왔다. 이 표를 개찰기에 넣으니 역시 아리가토고자이마스하며 인사한다. 23:00시경 쑤시는 다리를 끌며 귀가(?)하여 겨우 씻은 다음, 맥주와 차를 마시며 며칠 간의 일기까지 썼다. 왜? 짧은 여행 길게 보내기 위해…
짧은 여행 길게 보내는 법 - 제4일 _
‘99.11.05(금) 맑음 제4일
오늘은 공식 일정으로 동경도교육청 방문이 있는데 단장으로부터 일본 교육제도와 동경도교육청 기록을 지시 받았으므로 오늘은 좀 기록준비와 관찰에 신경 좀 써야 하는 날이다. 그리고 오후에는 동경여행, 아니 일본연수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자유시간이 있는 소중한 날이다. 동경도교육청은 첨단건물로 유명한 동경도청 내 25-27층을 사용하고 있는데이 지역은 서울의 강남 같은 번화가로 청소년들이 모이는 곳이나 최근 대형빌딩이 들어서서 중심업무지역으로 변모하였다.
우리가 회의실에 자리잡자 유아교육담당 여자 지도주사(指導主事, 장학사)와 총무과 남자 국제교류담당자가 인사를 하고 지도주사가 유인물을 배포하였는데 우리가 일한문화기금에서 받았던 한글판 “동경의 교육”이었다. 한 시간 이 상 길게 동경의 교육시책을 설명하였는데 이미 사전지식이 생기데다 유인물을 설명하는 식이어서 새로움이나 감동은 크지 못했다. 그러나 질의응답 후 사무실을 견학했는데 점심시간이라 직원은 많지 않았지만 칸막이 없이 툭 트인 사무실에 책상이 빽빽이 들어찼고 책상 주변에는 문서와 책들이 산적해 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와이셔츠 바람으로 문서와 씨름하는 모습에 동병상린…
동경도교육청에 오기 전 혹시 일행들이 질문을 하지 않으면 어떻하나 은근히 걱정도 했는데 곧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어찌나 질문이 계속되는지 가이드가 제지해야 했고 난 가만히 듣고 메모만 해도 됐다. 질문시간이 모자라 질의답변이 끝났는데도 개별질문을 하는 단원이 적지 않았다. 인근 식당에서 1인당 3000엔짜리 한식 불고기로 포식한 다음 자유시간을 같도록 했는데 흩어지지 않고 다니는 것처럼 느껴져 한참 기다렸다가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젯밤에도 오늘 자유시간을 위하여 고심했었는데 그것이 주어지자 혼자 구석에서 지도를 놓고 고민을 하다가 가이드의 권고를 참작하여 낮에는 아사쿠사로 가서 절을 보고 밤에는 화려함과 자유로움과 젊음을 좇아 여기에 다시 오기로 하고 전철노선을 연구하며 한번 갈아타고 아사쿠사(淺草)로 향했다. 가이드의 말이 아사쿠사는 에도시대에 가부키 등 서민예술이 절 앞에서 발달했고 2차대전 전화의 피해를 덜 입어 도쿄 중에서는 비교적 옛 모습이 남아 있다 한다.
지하철 출구를 나와 현란한 산문(山門)을 들어서니 그 진입로 양쪽에 상점과 연등이 무수하고 고기타는 연기와 냄새가 역한데 행인들은 그저 즐거운 모양이다. 절이라기 보다 시장이고 축제의 장 같은데 다만 향태우는 향기롭지 못한 내음이 여기가 종교의 영역임을 잊지 않게 해주는 정도였다. 지갑과 선물을 재보다가 그만두고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센소지(淺草寺) 입구에 절 이름의 유래를 그림으로 그려 놓아 나도 짐작은 할 수 있었는데 그 줄거리는 어느 어부가 꿈의 계시에 따라 호수의 물풀이 있는 얕은 곳에 그물을 던지니 금부처가 걸려나와 이에 따라 절을 지었다는 설화 같다. 아사쿠사는 옛날 동경 동쪽 하루거리에 위치하고 관문과 시장, 큰 절이 있어 상업과 예술이 발달하였으며 신앙의 중심으로 가마쿠라 이래로 역대 막부의 장군도 자주 왕림하였던 곳임을 또한 그림으로 알 수 있었다. 절은 생각보다 커서 5층탑, 아니 일본식으로 五重塔(목조)의 위용이 범상치 않았다. 수 많은 남녀노소가 부처 앞에 동전을 던지고 복을 빌었다.
또 복을 비는 행렬 중에는 엄마의 자전거에 실려 온 연보라빛 전통(?)옷을 입은 아이들이 엄마손에 이끌려 들어와 엄마를 따라 손뼉치고 허리 숙여 빌고 또 빈다. 이른 바 시치고산(7.5.3)이다. 여자 아이는 3살 7살, 남자아이는 5살 때 무사히 자랐음을 감사드리고 앞으로 건강히 성장케 해달라고 비는 민간신앙인데 미신이라 버리지 않고 오늘날도 온존히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서양 문화, 종교에 매몰되어 너무 쉽게 자신의 옷을 벗어버리고 맞지 않는남의 옷을 입고 있는 오늘 우리의 어중띤 모습이 떠오른다. 부모 마음은 어디나 같다.
절을 나와 지하철을 타려다 안내도를 보니 스미다가와(隅田川)강이 지척에 있기에 다시 밖으로 가 둘러보니 꽤 넓은 강이 있고 다리가 있어 건너 갔다. 건너 가면 얼마 안 있어 전철역이 나오려니 했는데 방향과 목적지가 자꾸 혼동이 되어 구석에 가서 지도를 보았지만 별무성과…. 자기 위치를 모르면 지도는 무용지물이다. 일본에 와서 기특(?)하게 느껴지는 것은 모든 안내도에 꼭 빨간색으로 “현재위치(You are here)"를 명기하고 있는 점이다. 참 덕 많이 봤다. 그래서 귀국하여 전철역, 거리, 아파트, 병원 등에서 현재위치 표시를 살펴보니 ”현위치(standing point 또는 HERE) 표시가 아직 없는 곳도 적지 않았고 영문자 또는 한자표시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으며 역시 빨간 색으로 표시하기 했으나 크기가 너무 작아 얼른 식별하기 곤란했다. 외국인은 커녕 내국인도 객지에서는 고생이 꽤 클 것이다. 도로표지판을 따라 시골길을 달리다 시내에 들어서서 방향을 잃은 것이 그 얼마냐?
대낮에 길을 잃다니 좀 한심하였으나 무작정 전철역을 찾아 걷기는 피곤도 하고 거리가 중심가도 아닌 탓에 구경꺼리도 별로 없어 지나가는 버스를 보노라니 풍주(豊洲) 부두라고 써 있다. 버스정류장의 버스노선 안내도를 보니 30-40분 거리로 추측되고, 지니고 있는 지도로 보아 부두 근처에서 시내로 가는 전철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판단하고 과감히 승차했다. 처음으로 버스에 탄 것이다. 눈치를 보니 요금은 200엔, 승차시 요금함에 넣는 우리나라와 같은 방식으로 남의 시선에 신경을 세웠지만 다행히 아무도 이방인임을 눈치채지 못한다.
지도! 이 얼마나 신통한 물건가? 국내에서도 처음 가본 산골도로를 따라 가면 마을, 다리, 산, 갈림길이 지도의 차례로 나타났듯이 일본의 이 약간 변두리 거리에서도 모든 것이 지도대로 창밖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이것이 요술이 아니고 무엇이랴! 지도 없이 여행한다는 것은 맹목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 하나는 버스가 신호대기 중에 시동을 끈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차들이 그랬다는 말은 들었지만 미국이든 일본이든 이걸 실시하는 나라가 아닌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버스 종점에 다다르니 부두 분위기가 나긴 했지만 아파트도 있고 하여 생각 외로 주변은 조용하고 깨끗하다. 창고 건물을 돌아가니 소형 화물선이 정박해 있는데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고 주차장에 차량만 약간 있다. 바닷가에는 출입금지가 표시된 것 같은데 두 사람이 낚시를 하고 있다. 마침 석양이라 하늘과 바다가 붉게 물들어 멀리서 그리고 혼자서 찾아온 고독하고 당돌한 나그네를 환영, 격려한다. 우리가 첫 날 건넜던 레인보우 브리지도 멀리 보이고 큰 유람선이 건너편 해안쪽을 따라 지나간다.
담배! 외로운 나그네에게 이 얼마나 큰 벗인가? 전철역에서, 상가에서, 절에서, 그리고 지금 황혼의 부두에서, 담배 한 대는 나그네에게 여유를 되찾게 해주고 피로를 회복시킨다. 부드러운 해풍 속에 담배 연기 흩어지고, 내 마음의 불안도 외로움도 함께 흩어 보낸다. 자! 또 가야지. 어디로? 신주쿠로… 왜 이 밤에 지친 몸을 이끌고?
전철을 타러 가다가 신주쿠행 버스가 눈에 띄어 올라타고 시내로 들어가니 처음 잘 달리던 버스도 황거 주변 도심에 다가갈수록 차츰 기어간다. 아침에 지났던 황거(皇居)_도 어둠에 싸여 있다. 신주쿠 삼정목(新宿 三町目)이란 정류장에서 더 참지 못하고 내렸다. 이미 19:30분경으로 신주쿠의 밤은 떼지어 모여든 청소년들, 혼자 기타 들고 소리 높여 노래하는 젊음으로 부산하다. 나신의 미희가 그려진 티켓을 나누어지며 호객하는 청년(값을 보니 5,000엔에서 7,000엔, 술값 같은데 정확히 무얼 하는 가격인지는 모르겠음), 대조제(大鳥祭) 라는 축제의 등불로 불야성을 이룬 화원신사(花園神社)에서 기원하는 인간들(버스에도 축제 광고가 부착되어 있었음), 남미에서 온 듯한 음악연주 그룹의 기타음과 팬플루의 합주음이 나그네 마음을 흔들고… 누가 듣건 말건 그들은 부른다… 청춘 해방구!
밤이란 이런가? 아니면 방향감각이 둔한가? 아니면 신주쿠 탓인가? 그만 방향을 잃고 거리를 맴돌다 다시 역에 오고 말았다. 가로등 밑에서 지도를 펴놓고 궁리 끝에 다시 전진, 이제 남행한다. 무슨 공사 설명판에 신주쿠의 역사를 써 놓은 글을 행운이다 싶어 더듬더듬 읽기도 하고, 한참 걸으니 어두운 공원이 나오고 공원 옆길을 도로표지 읽기와 궁리와 헤매임 속에 걷고 또 걸으니 요요기(代代木) 국립경기장에 닿았다. 여학생들 다수가 삼삼오오 모여 있기도 하고 주변에는 텐트가 쳐져 있기도 한데 여학생들이 경기장 울타리 안쪽을 향해 “피제이! 피제이!”하며 환호한다. 다가가서 보니 축구단 버스가 막 떠나고 있었다. 여학생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걸어 다다른 하라주쿠(原宿)에서는 흑인청년들과 아가씨들이 뭔가 서로 흥정을 하는 것 같은데 글세…
우연히 안내판이 있어 보니 에도시대의 옥천(玉川) 상수도 기념비를 보며 나 아니면 이런 귀중한 기념물을 누가 볼 수 있으랴 격려하며 증명으로 한방 찍는다. 또 걸으니 건물 한 벽에 사진이 수백장 빽빽히 붙어 있어 뭔가 했더니 학원 강사진 사진이었고 그 옆에 동대(東大) 1200명 합격 운운… 한 학원에서 그렇게 많이 합격시킬 수 있나 의문을 가지며 별로 크지 않은 건물의 그 학원을 지났다.
JR선만 따라 가면 어렵지 않을 것 같은 길도 가보면 막히고 으슥하고 어둡고 하여 넓고 사람 많은 곳으로 따라 가다보면 애를 써도 결국 지름길을 놓치게 마련이다. 이리하여 메이지신궁전역, 표참도역, 오차노미즈역 등 여러 역을 거치게 되었다. 학생들이 길게 줄지어 섰기에 뭔가 싶어 살펴보니 학원 아마도 외국어학원 등록하려는 줄인 것 같았다. 일본에는 신주쿠도 있고 오차노미즈도 있고 노래 부르는 자도 있고 학원 앞에 줄서는 자도 있다.
어쨋든 시부야 방향을 잡아 걷다보니 21:00시 무렵 마침내 시부야역 네온사인이 보인다. 이미 한시간 반을 걸었다. 배가 고프고 목도 마르고 피곤하여 우선 먹어야겠고 쉬어야겠기에 그리고 일본 술집(이자게야)에도 들어가봐야 겠기에 여러 집을 망설이다가 골목의 건물 지하에 있는 작은 술집에 들어갔다. 나홀로 두 번 째…
손님이 두 팀이 있는데 그 사람들과 떨어져 구석에 앉으니 40대 주인여자가 다가와 뭐라고 하더니 스탠드바를 가리키며 앉으라 한다. 왼쪽에 중년 남녀가 얼큰히 취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신경이 쓰였으나 조용히 앉은 다음 안주 하나를 가리키고 이어 “비루!” 했더니 한잔 갖다준다. 목마른 참이라 순식간에 들이키고 다시 “사케” 하니 뭐라고 하는데 못 알아들으니까 외국인인 줄 알고 작은 도자기 술병 두 개를 들고 나온다. 그 중 작은 병으로 하나 시켜 마시니 기분이 좋아지고 옆 남자를 보니 담배를 피우는지라 한참 있다 나도 88라이트를 탁자에 올려놓고 맛있게 피웠다.
주인 여자가 담배를 보더니 에이티에잇이라고 읽으며 뭐라 하기에 한 대 권하니 갖고 가서 피운 후 와서 “마일드!”하며 자기 담배를 권한다. 피워보니 매우 순한 담배로 맛이 좋다. 이후 토막 영어로 의사를 소통하는데 주인남자는 웃기만하고 대화에는 끼지 않는다. 내가 단원 명찰을 꺼내 보이니 교원임을 알고 “홧 티처?” 하기에 역사라고 하니까 “유 아 베리 굿 티춰“하며 추어준다. 그리고 숙소, 여행 기간 등 여러 가지를 물으며 관심을 보이고 호텔명을 묻길래 알려주니 ”베리 굿 호텔“이라 하면서 호텔에 가는 길을 아는 지 염려까지 해준다. 기분이 좋아 청주 한 병 더 시키고 얼큰 해진 후 지불했다. 여기서는 계산서에 끈을 달아 손님의 의자에 걸어 놓는데 계산서에는 2,300엔이라 기재되어 있었다. 결국 먹고 마시는데 이 여행 중 가장 큰 돈을 쓴 셈이다.
이제 제법 친숙해진 순환선을 타고 귀가하면서 그 전철 정산기를 실험하기 위해 일부러 요금보다 적게 표를 끊은 다음 오사키역에서 긴장하며 정산기에 표를 넣었더니 30엔 뭐라 나오는데 모자란다는 의미같다. 30원을 넣었더니 찰칵하며 표가 나왔다. 이 표를 개찰기에 넣으니 역시 아리가토고자이마스하며 인사한다. 23:00시경 쑤시는 다리를 끌며 귀가(?)하여 겨우 씻은 다음, 맥주와 차를 마시며 며칠 간의 일기까지 썼다. 왜? 짧은 여행 길게 보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