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독이다 2 서론- 수호천사는 있다. 내가 10년간내 아들의 골프입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과거 학창시절의 월간 팦송만큼이나....) 모 스포츠 사이트가 경영난으로 폐쇄될 상황이다. 허접한 글이지만,돈보다도 더 귀한 내 글들이 사장될 운명이다. 서둘러 옮겨야겠다. 수정은 다음 문제다. ----------------------------------------------------------------------------------- 백 세라! (1975~1992) 조카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간 세월입니다. 조카와의 짧은 기억이 있습니다. 형님이 죽기 살기로 형수님에게 구애에 성공하여 결혼하신것이 20세일겁니다. 아마도 교회에 다니시던 형수님에게 반하셨던것 같습니다. 지적 미모를 겸비하신 분이죠! 어린 두분 사이에서 조카가 탄생합니다. 내가,고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다닐때 였을겁니다. 1975년 방과후 늘 그랬듯이 책가방안에 월간 팦송책 딸랑하나,,, 옆구리에 끼고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딮퍼플의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당시 천하의 명보컬 이언길런의 후임으로 애송이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비틀즈의<예스터데이>로 무려 800대1의 오디션 테이프 심사에서 리치블랙모어의 합격점을 받아 장차 전세계 록 보컬의 영웅으로 등극하게되는 그런 뉴스소식과 함께 ..."과연 이언길런의 아성을 뛰어넘을수있을까?" 당시 모든 평론가들이 비관적으로 `딮퍼플은 끝났다`라고 단언하던 시절 새앨범의 BURN을 afkn으로 들으며 젊은 야수 커버데일에 전율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가던... 어느날중 하루 이였을 겁니다. 형수님이 입원해있는 산부인과병원으로부터 산통이 있다는 급한 전화를 받고 형수님의 산후조리를 제가 합니다. 형님은 아마도 직장에 출근한 상태였을것이고, 집안에 어른들이 무슨일이였는지는 몰라도 그때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정보다 몇일 빨랐던 모양입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제가 제일 먼저 얼굴을 봤으니까요. 천사같이 아주 조그마한 얼굴이였습니다. 여름철이라 더웠던것 같아서 산모에게 시원한 삼강 하드 하나와,약과 한봉지를 사다드렸던것 같습니다.산모에게는 차가운게 금기인줄도 모르고요.... 그래도 형수님은 그때 일을 생각하며 웃으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달고 ,시원하고, 맛있었다고요...' 내 어릴적 조카와의 단상은 기억력이 영민한, 천사같은...해 맑은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내 기억은 그게 다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모습은 1992년 봄에 보게 됩니다. 다소 서론같이 길지만, 아들의 골프 입문기에 형님과 조카의 이야기를 먼저 기억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만,그해 1975년 골프계는 아주 특별한 해입니다. 골프역사상 가장위대한 항금곰을 능가 하게될 천재 골퍼,검은호랑이가 태평양 넘어 탄생! 그린을 완전 장악,평정하며... 전세계 골프팬들을 환호하게 만듭니다. 바로 타이거 우즈 입니다. ^^ ------------------------------계속 1992년(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어 형어쩐일에요` `머라고요?세라가...`(순간 머리에망치로맞은듯 멍하니...) 달리는 택시안에서 난 제발 거짖말 이려니 했습니다천호동 길병원으로 들어서며창백하신 형수님, 어머니 아버지 가족 모두들 허탈한모습!!! 불과 한 달 전만해도,,,형님이 기뻐하시며 야 아우야 ?이젠 고생 끝난 것 같다 (당시 공주 금성여고3학년 재학중에...) 구 옥희프로가 세라를 내 제자1호로 삼아 주시겠단다,, 그 말 할때가 3월1일였는데.... 정말 그 당시 조카의 골프 실력은 내가 몰랐었습니다. 지금 아들의 골프를 11년동안 지켜보면서 새삼 느끼는것은 아! 정말 대단했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당시 전국 주니어 최강자는 같은 학교의 박세리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내 조카는 비교적 늦은 나이 고1... 2학기때부터 골프를 시작했고, 일본에서 귀국한 구옥희프로의 첫번째 내제자로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고 기뻐했던것을 떠올릴때면... 정말 조카의 재능이 박세리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는것을 이제 알것같습니다. (그러니 형님의 가슴에 묻어둔 딸이 얼마나 크게 자리잡았겠습니까?) 아마도 내가 추측컨데 이때부터 형님이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걸으실려고 작정하신것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내 추측으로는... 아마도 이때부터 어떤 골프단을 창단 하실 생각을 품으셨던것 같습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그 날은... 1992년 4월1일 였습니다. 아들녀석 범이가 4살때였나 봅니다. /////////////////////////////////////////////////////////////////////////////////////////// 추억이라기 보다는 짧은 기억입니다. 그리고 형님에게 하고싶은 고맙다는 이야길 죽은 조카에게 대신 하고 싶기도 하고요. 글을 쓰면서 다소 불편한 기억들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쓰고나면 가슴이 후련해집니다. 그래서 자꾸 이것 저것 잊어버리기 쉬운 기억들을 억지로 끄집어 내는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미안하고...형님에게 미안하고... 언제부터인가 아들의 골프재능은 특별한게없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죽은 조카의 재능은 정말 아까웠습니다. 구옥희프로가 먼저 알아봤을정도니까요. 조카이외에 그후로 후학양성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만, 조훈현기사가 이창호를 내제자로 받은것과 비슷한 감정이였습니다. 다만 아들 녀석이...10년이 넘게 포기하지 않고 (아! 몇번 위기는 있었습니다.2002년과2007년골프를 포기했던적이... ^&^) 지금까지 왔다는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만족을 하려면 어느 시점이 좋을까?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미프로지만,2부리그에서 경험을 쌓아나가는 이때가 아닐까?생각해봅니다. 비록 2부리그지만,여기서 선수생명이 끝나고 어디 레슨프로가 되어 아이들을 지도해도 좋고,또 정진하여 정회원이되고 시드프로가되는 과정을 기록하게되도 좋고.... 뭐 나로서는 만족입니다. 당시 전혀 골프를 할수없는 상황에서 골프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온것만도 내게는 행운이였으니까요. 다시 기억해봐도 기적같은 일 같아서 글쓰기가 재미있습니다. 말이 씨가된 날도 아마...1993년 4월1일 입니다. 조카의 죽음 1주년 때였죠. 원래 결혼도 안한 아이의 무덤을 쓰는게 법도에 어긋났지만 무덤이라도 만들어 형님 내외가 보고싶어했기에 완고하신 집안 어른들도 반대하진 않으셨습니다. 충남 서천 선산땅 양지 바른곳에 조카의무덤이 있습니다. 비석에는 골프클럽과 골프공을 새겨 넣어주었습니다. 하늘나라 구름위에서 마음껏 라운딩 하라고요. 그때1주년때!! 별 의미없이 한마디 툭 ! '형 정말 골프에 미련 있으면 범이를 한번 시켜봐요' 아들녀석이 5살때 였을겁니다. //////////////////////////////////////////////////////////////////////////// 그날 ! 조카의 죽음,1주년 때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날 '형님 ?범이를 골프ㅡ를 한번 시켜볼까요?'했던기억이 가물거립니다. 그런데 그 말을 형님이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또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들 녀석의 골프는 그렇게 시작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초등학교 4학년2학기 아니 5학년때의 일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요즘 천암함 침몰 사고로 온통 가슴아픈 실종자 가족들을 보려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더구나 시신조차 찿을수ㅡ없는 나머지 가족들의 모습은 더욱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형님이 그렇습니다.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 지금도 범인이 누군지도 모 른...뺑쏘니 차량에 에의한 사고입니다. 더구나 선천적으로 거부를 할줄 몰랐던 조카입니다. 그날 모 선수가 늘 타고 타니던 차량을 바꿔 타자고 했답니다./ 조카는 그러마 했고 바로 그 날로...20년도 안되는 짧은 生을 마감했던겁니다. 기가 막히고 안타까운 일이였죠. 내 추측으로는 그 사고 이후에... 신학교에 입학하시어 목회자의 길을 걸으시며,어떤 영감에 의해 00원 골프단이란것을 창단 하신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지금까지 내가 기억 하는 모든 기억 속에 함축 됐으리라 여겨 집니다. 지금 부터 쓰고 싶은 이야기는... 형님과 00원 골프단을 창단하고 ... 또 결별하고...다시또 하게된 이야깁니다. 1997년 나는 이혼을 합니다. (가정사는 기억하고 싶지않습니다. 내 딸 세은이에게 너무 미안하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99년 형님은 그 어떤 계획을 맨땅에 헤딩하듯 실행에 옮기십니다. 충남 개태산이 마주보이는 연산시의 0000 꿈나무 골프단! 내 아들의 이상한 골프 입문은 말 그대로 이상한 곳 즉 특수시설원 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아원이라는 곳이죠. 고아원이라는 명칭이 부적격스럽다하여 지금은 보육원으로 불리어지는 곳이죠. 이 이야기는 소설속에나 나올만한 공포의 외인구단같은 자전적 경험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 2000년 기준으로 벌써 11년째입니다. 두번의 위기는 있었지만 은요... 어느 세미 프로골퍼의 이야기 입니다. 골프를 시작해서 행복하기도 했고,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시절, 갈등의 기억들을 좀 모아봤습니다. 좀 재미 있을수도 있는 부분이 있더군요. ^&^ 4월에... 하늘나라의 조카를 .... 꼭 기억하고 싶었다. 먼저 축하해줄 사람이있다. 5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벨 마이크로 클래식에서의 박세리선수 최근 우승이다! 나의조카와 공주 금성여고출신 동문이다. (죽은 조카가 1~2년 선배일것임) 정말 축하한다, 박세리선수를 빼고 한국여자골프를 논할순없을거다. 많은사람들이 죽은 조카와 혼동한다, 이름도 비슷해서인지... 뺑소니에의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실을 모르는 많은 분들이... '어 !그 아이는 틀림없이 될줄알았어' 제 형님의딸인줄도 모르고,,,, 앞으로의 수많은 프로대회 게임에서 틀림없이 수호천사로 나올것 같은 예감에 조카의기억을 모아보기로 햇습니다 이제 조카의 기억은 자주 하게 될 것입니다. '세라야! 정말 고맙다.' '범이를 계속 지켜다오!' 나의 ..아니,.내 아들의 수호천사, 조카의 이름은 백 세라 입니다.
- 수호천사-
나는 감독이다 2
서론-
수호천사는 있다.
내가 10년간내 아들의 골프입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과거 학창시절의 월간 팦송만큼이나....)
모 스포츠 사이트가 경영난으로 폐쇄될 상황이다.
허접한 글이지만,돈보다도 더 귀한 내 글들이 사장될 운명이다.
서둘러 옮겨야겠다.
수정은 다음 문제다.
-----------------------------------------------------------------------------------
백 세라!
(1975~1992)
조카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간 세월입니다.
조카와의 짧은 기억이 있습니다.
형님이 죽기 살기로 형수님에게 구애에 성공하여 결혼하신것이 20세일겁니다.
아마도 교회에 다니시던 형수님에게 반하셨던것 같습니다.
지적 미모를 겸비하신 분이죠!
어린 두분 사이에서 조카가 탄생합니다.
내가,고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다닐때 였을겁니다.
1975년
방과후 늘 그랬듯이 책가방안에 월간 팦송책 딸랑하나,,, 옆구리에 끼고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딮퍼플의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당시 천하의 명보컬 이언길런의 후임으로 애송이 데이비드 커버데일이 비틀즈의<예스터데이>로 무려 800대1의 오디션 테이프 심사에서 리치블랙모어의 합격점을 받아 장차 전세계 록 보컬의 영웅으로 등극하게되는 그런 뉴스소식과 함께 ..."과연 이언길런의 아성을 뛰어넘을수있을까?"
당시 모든 평론가들이 비관적으로 `딮퍼플은 끝났다`라고 단언하던 시절
새앨범의 BURN을 afkn으로 들으며 젊은 야수 커버데일에 전율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가던...
어느날중 하루 이였을 겁니다.
형수님이 입원해있는 산부인과병원으로부터 산통이 있다는 급한 전화를 받고 형수님의 산후조리를 제가 합니다.
형님은 아마도 직장에 출근한 상태였을것이고, 집안에 어른들이 무슨일이였는지는 몰라도 그때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정보다 몇일 빨랐던 모양입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제가 제일 먼저 얼굴을 봤으니까요.
천사같이 아주 조그마한 얼굴이였습니다.
여름철이라 더웠던것 같아서 산모에게 시원한 삼강 하드 하나와,약과 한봉지를 사다드렸던것 같습니다.산모에게는 차가운게 금기인줄도 모르고요....
그래도 형수님은 그때 일을 생각하며 웃으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달고 ,시원하고, 맛있었다고요...'
내 어릴적 조카와의 단상은 기억력이 영민한, 천사같은...해 맑은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내 기억은 그게 다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모습은 1992년 봄에 보게 됩니다.
다소 서론같이 길지만, 아들의 골프 입문기에 형님과 조카의 이야기를 먼저 기억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만,그해 1975년 골프계는 아주 특별한 해입니다.
골프역사상 가장위대한 항금곰을 능가 하게될 천재 골퍼,검은호랑이가 태평양 넘어 탄생!
그린을 완전 장악,평정하며...
전세계 골프팬들을 환호하게 만듭니다.
바로 타이거 우즈 입니다.
^^
------------------------------계속
1992년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어 형어쩐일에요`
`머라고요?세라가...`
(순간 머리에망치로맞은듯 멍하니...)
달리는 택시안에서 난 제발 거짖말 이려니 했습니다
천호동 길병원으로 들어서며
창백하신 형수님, 어머니 아버지 가족 모두들 허탈한모습!!!
불과 한 달 전만해도,,,
형님이 기뻐하시며 야 아우야 ?이젠 고생 끝난 것 같다
(당시 공주 금성여고3학년 재학중에...)
구 옥희프로가 세라를 내 제자1호로 삼아 주시겠단다,,
그 말 할때가 3월1일였는데....
정말 그 당시 조카의 골프 실력은 내가 몰랐었습니다.
지금 아들의 골프를 11년동안 지켜보면서 새삼 느끼는것은 아! 정말 대단했구나...하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당시 전국 주니어 최강자는 같은 학교의 박세리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내 조카는 비교적 늦은 나이 고1... 2학기때부터 골프를 시작했고, 일본에서 귀국한 구옥희프로의 첫번째 내제자로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고 기뻐했던것을 떠올릴때면... 정말 조카의 재능이 박세리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는것을 이제 알것같습니다.
(그러니 형님의 가슴에 묻어둔 딸이 얼마나 크게 자리잡았겠습니까?)
아마도 내가 추측컨데 이때부터 형님이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목회자의 길을 걸으실려고 작정하신것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내 추측으로는... 아마도 이때부터 어떤 골프단을 창단 하실 생각을 품으셨던것 같습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 그 날은...
1992년 4월1일 였습니다.
아들녀석 범이가 4살때였나 봅니다.
///////////////////////////////////////////////////////////////////////////////////////////
추억이라기 보다는 짧은 기억입니다.
그리고 형님에게 하고싶은 고맙다는 이야길 죽은 조카에게 대신 하고 싶기도 하고요.
글을 쓰면서 다소 불편한 기억들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쓰고나면 가슴이 후련해집니다.
그래서 자꾸 이것 저것 잊어버리기 쉬운 기억들을 억지로 끄집어 내는것 같습니다.
아들에게 미안하고...형님에게 미안하고...
언제부터인가 아들의 골프재능은 특별한게없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죽은 조카의 재능은 정말 아까웠습니다.
구옥희프로가 먼저 알아봤을정도니까요.
조카이외에 그후로 후학양성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만,
조훈현기사가 이창호를 내제자로 받은것과 비슷한 감정이였습니다.
다만 아들 녀석이...10년이 넘게 포기하지 않고 (아! 몇번 위기는 있었습니다.2002년과2007년골프를 포기했던적이... ^&^) 지금까지 왔다는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간혹 만족을 하려면 어느 시점이 좋을까?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미프로지만,2부리그에서 경험을 쌓아나가는 이때가 아닐까?생각해봅니다.
비록 2부리그지만,여기서 선수생명이 끝나고 어디 레슨프로가 되어 아이들을 지도해도 좋고,또 정진하여 정회원이되고 시드프로가되는 과정을 기록하게되도 좋고....
뭐 나로서는 만족입니다.
당시 전혀 골프를 할수없는 상황에서 골프에 입문하여 지금까지 온것만도 내게는 행운이였으니까요.
다시 기억해봐도 기적같은 일 같아서 글쓰기가 재미있습니다.
말이 씨가된 날도 아마...1993년 4월1일 입니다.
조카의 죽음 1주년 때였죠.
원래 결혼도 안한 아이의 무덤을 쓰는게 법도에 어긋났지만 무덤이라도 만들어 형님 내외가 보고싶어했기에 완고하신 집안 어른들도 반대하진 않으셨습니다.
충남 서천 선산땅 양지 바른곳에 조카의무덤이 있습니다.
비석에는 골프클럽과 골프공을 새겨 넣어주었습니다.
하늘나라 구름위에서 마음껏 라운딩 하라고요.
그때1주년때!!
별 의미없이 한마디 툭 !
'형 정말 골프에 미련 있으면 범이를 한번 시켜봐요'
아들녀석이 5살때 였을겁니다.
////////////////////////////////////////////////////////////////////////////
그날 !
조카의 죽음,1주년 때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날 '형님 ?범이를 골프ㅡ를 한번 시켜볼까요?'했던기억이 가물거립니다.
그런데 그 말을 형님이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또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들 녀석의 골프는 그렇게 시작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초등학교 4학년2학기 아니 5학년때의 일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요즘 천암함 침몰 사고로 온통 가슴아픈 실종자 가족들을 보려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더구나 시신조차 찿을수ㅡ없는 나머지 가족들의 모습은 더욱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형님이 그렇습니다.
단순 교통사고가 아닌 ....
지금도 범인이 누군지도 모 른...뺑쏘니 차량에 에의한 사고입니다.
더구나 선천적으로 거부를 할줄 몰랐던 조카입니다.
그날 모 선수가 늘 타고 타니던 차량을 바꿔 타자고 했답니다./
조카는 그러마 했고 바로 그 날로...20년도 안되는 짧은 生을 마감했던겁니다.
기가 막히고 안타까운 일이였죠.
내 추측으로는 그 사고 이후에...
신학교에 입학하시어 목회자의 길을 걸으시며,어떤 영감에 의해 00원 골프단이란것을 창단 하신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지금까지 내가 기억 하는 모든 기억 속에 함축 됐으리라 여겨 집니다.
지금 부터 쓰고 싶은 이야기는...
형님과 00원 골프단을 창단하고 ...
또 결별하고...다시또 하게된 이야깁니다.
1997년 나는 이혼을 합니다.
(가정사는 기억하고 싶지않습니다. 내 딸 세은이에게 너무 미안하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99년 형님은 그 어떤 계획을 맨땅에 헤딩하듯 실행에 옮기십니다.
충남 개태산이 마주보이는 연산시의 0000 꿈나무 골프단!
내 아들의 이상한 골프 입문은 말 그대로 이상한 곳
즉 특수시설원 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아원이라는 곳이죠.
고아원이라는 명칭이 부적격스럽다하여 지금은 보육원으로 불리어지는 곳이죠.
이 이야기는 소설속에나 나올만한 공포의 외인구단같은 자전적 경험의 실제 이야기입니다)
/////////////////////////////////////////////////////////////////////////////////////
2000년 기준으로 벌써 11년째입니다.
두번의 위기는 있었지만 은요...
어느 세미 프로골퍼의 이야기 입니다.
골프를 시작해서 행복하기도 했고,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시절,
갈등의 기억들을 좀 모아봤습니다.
좀 재미 있을수도 있는 부분이 있더군요.
^&^
4월에...
하늘나라의 조카를 ....
꼭 기억하고 싶었다.
먼저 축하해줄 사람이있다.
5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벨 마이크로 클래식에서의 박세리선수 최근 우승이다!
나의조카와 공주 금성여고출신 동문이다.
(죽은 조카가 1~2년 선배일것임)
정말 축하한다,
박세리선수를 빼고 한국여자골프를 논할순없을거다.
많은사람들이 죽은 조카와 혼동한다,
이름도 비슷해서인지...
뺑소니에의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실을 모르는 많은 분들이...
'어 !그 아이는 틀림없이 될줄알았어'
제 형님의딸인줄도 모르고,,,,
앞으로의 수많은 프로대회 게임에서 틀림없이 수호천사로 나올것 같은 예감에 조카의기억을 모아보기로 햇습니다
이제 조카의 기억은 자주 하게 될 것입니다.
'세라야! 정말 고맙다.'
'범이를 계속 지켜다오!'
나의 ..아니,.내 아들의 수호천사, 조카의 이름은 백 세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