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슥한 골목. 새벽이 가까워오는 어름에 건물의 뒷골목쯤 되면 인기척이라고는 없어야 정상이다.
도시 한가운데 형성된 무법천지라 원래부터 사람들이 꺼리는 곳인데다 이 시간이면 지나가는 양아치 하나도 드물 법 하다.
그런데 남자들도 잘 다니지 않는 이 길에, 그것도 새벽이 가까운 심야에 낮은 콧노래 소리와 함께 조그마한 인영이 나타났다.
이 곳에 잘못 들어온 여자들이 어떤 험한 꼴을 당했는지 안다면 저렇게 경쾌한 걸음으로 걷지는 못할 것이었다.
대낮에도 제대로 다니기 어렵다는 곳을 한밤중에 단발을 찰랑거리며 걷다니.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서둘러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나중에라도 그 곳에 대해 들었을 때 등줄기에 돋는 소름만 경험하고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아예 가로등 아래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너무 늦어버렸나."
귀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고는 아예 두다리를 쭉 뻗어버렸다. 품새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인간과는 다른 청력을 가진 귀에 희미하게 거친 대화가 들려왔다.
그녀는 다시 한번 생긋 웃고 웃차 하며 몸을 일으켰다.
"젠장, 오늘 일진은 왜 이 모양이야?"
"그러게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고."
"그 새끼가 갑자기 튈 줄 누가 알았어? 씨발. 잡히기만 해봐, 아예 포를 떠놓을 테니까."
요란한 욕설과 함께 건장한 체구의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이 거리를 주무대로 삼고 밑천 안 들이는 장사를 하는 '이무기파'의 조무래기들이었다. 조무래기라고는 해도 이들 중에는 간부의 조카가 끼어 있다. 아직 어려서 별다른 직책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분이라 방약무인한 태도에도 그저 눈쌀을 찌푸리며 묵인해주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위세를 믿고 이들이 벌이는 행각은 한심하기 이를데 없는 수준으로,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다 하고 돌아다니는 놈들이다.
큰소리로 새벽의 정적을 짖으며 다가오던 그들의 눈에 먹이감이 포착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몸을 풀지 못해 찝찝하던 찰나에 어리고 예쁜 여자가 눈에 띈 것은 여자에게는 불행이지만 그들에게는 천행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리더인 안철진이 걸음을 멈추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짓을 본 패거리 네명은 음흉한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슬슬 흩어져 여자를 포위해 들어갔다.
손발을 맞춘지 벌써 삼년이 다 되어가니 이제는 얼굴만 봐도 의사가 통하는 수준이 되었다. 물론 나쁜 짓에 한해서지만.
"어이, 이쁜 아가씨가 밤늦게 이런 데에 어슬렁거리면 안 되지."
"무슨 말을 그렇게 섭하게 하냐. 이 오빠들 심심할까봐 놀아주러 나왔구만."
"낄낄. 그래, 오빠들이 화끈하게 놀아줄 테니까 걱정말고 놀다가라고."
음담패설을 섞어가며 다가드는 남자들의 눈은 벌써부터 타올랐다. 소녀라고밖에 할 수 없는 앳되고 가녀린 육체가 그들의 욕심을 북돋웠다.
입맛을 다시며 다가가는 그들의 귀에 그녀의 차디찬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도 그들은 손 안에 쥔 먹이감을 몰 듯 소녀를 말로 희롱하고 있었다.
신수의 형(神獸之形) 6
으슥한 골목.
새벽이 가까워오는 어름에 건물의 뒷골목쯤 되면
인기척이라고는 없어야 정상이다.
도시 한가운데 형성된 무법천지라 원래부터 사람들이 꺼리는 곳인데다
이 시간이면 지나가는 양아치 하나도 드물 법 하다.
그런데 남자들도 잘 다니지 않는 이 길에,
그것도 새벽이 가까운 심야에
낮은 콧노래 소리와 함께 조그마한 인영이 나타났다.
이 곳에 잘못 들어온 여자들이 어떤 험한 꼴을 당했는지 안다면
저렇게 경쾌한 걸음으로 걷지는 못할 것이었다.
대낮에도 제대로 다니기 어렵다는 곳을 한밤중에 단발을 찰랑거리며 걷다니.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
서둘러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나중에라도 그 곳에 대해 들었을 때
등줄기에 돋는 소름만 경험하고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아예 가로등 아래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너무 늦어버렸나."
귀여운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고는 아예 두다리를 쭉 뻗어버렸다.
품새가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인간과는 다른 청력을 가진 귀에 희미하게 거친 대화가 들려왔다.
그녀는 다시 한번 생긋 웃고 웃차 하며 몸을 일으켰다.
"젠장, 오늘 일진은 왜 이 모양이야?"
"그러게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고."
"그 새끼가 갑자기 튈 줄 누가 알았어?
씨발. 잡히기만 해봐, 아예 포를 떠놓을 테니까."
요란한 욕설과 함께 건장한 체구의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이 거리를 주무대로 삼고 밑천 안 들이는 장사를 하는 '이무기파'의 조무래기들이었다.
조무래기라고는 해도 이들 중에는 간부의 조카가 끼어 있다.
아직 어려서 별다른 직책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분이라
방약무인한 태도에도 그저 눈쌀을 찌푸리며 묵인해주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위세를 믿고 이들이 벌이는 행각은 한심하기 이를데 없는 수준으로,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다 하고 돌아다니는 놈들이다.
큰소리로 새벽의 정적을 짖으며 다가오던 그들의 눈에 먹이감이 포착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대로 몸을 풀지 못해 찝찝하던 찰나에
어리고 예쁜 여자가 눈에 띈 것은 여자에게는 불행이지만
그들에게는 천행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그들의 리더인 안철진이 걸음을 멈추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짓을 본 패거리 네명은 음흉한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
슬슬 흩어져 여자를 포위해 들어갔다.
손발을 맞춘지 벌써 삼년이 다 되어가니
이제는 얼굴만 봐도 의사가 통하는 수준이 되었다.
물론 나쁜 짓에 한해서지만.
"어이, 이쁜 아가씨가 밤늦게 이런 데에 어슬렁거리면 안 되지."
"무슨 말을 그렇게 섭하게 하냐.
이 오빠들 심심할까봐 놀아주러 나왔구만."
"낄낄. 그래, 오빠들이 화끈하게 놀아줄 테니까 걱정말고 놀다가라고."
음담패설을 섞어가며 다가드는 남자들의 눈은 벌써부터 타올랐다.
소녀라고밖에 할 수 없는 앳되고 가녀린 육체가 그들의 욕심을 북돋웠다.
입맛을 다시며 다가가는 그들의 귀에
그녀의 차디찬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도
그들은 손 안에 쥔 먹이감을 몰 듯 소녀를 말로 희롱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한끼 식사로는 좀 많지만 쓰레기니까 맛은 좋을거야. 그치?"
일순 그들은 멈춰서서 서로 얼굴을 보았다.
자신이 들은 것이 맞는지 한순간 귀를 의심했다가 갑자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쓰레기? 야, 쓰레기라고 했냐?"
"이 년이 미쳐도 오라지게 미쳤구만."
"에이, 퉤. 미친년은 먹어도 찝찝하단 말이야."
"깔개가 되고 나면 누가 더 쓰레긴지 한번 따져보자, 이년아.
뭐, 그때까지 살아있다면 말이지만."
쓰레기에게 쓰레기라고 하면 좋아할 쓰레기는 없다.
그런 당연한 이치를 가르쳐 주듯이 이들은 반쯤 눈이 돌아
소녀를 찢어발길 생각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소녀는 조금도 두려움을 내비치지 않고 -오히려 빙긋 웃었다!-
험악한 기세의 남자들에 당당히 맞섰다.
막 안철진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을 때였다.
남자는 소녀의 손목을 잡은 채로 굳었다.
소녀의 손목 아래에서 꿈틀대는 무언가가 자신의 손등을 덮었기 때문이다.
공포감에 차마 볼 수가 없었다.
남자는 그 축축하고 차가운 감촉에 온 몸을 떨었다.
이윽고 그 것이 스물거리며 옷 속으로 들어왔을 때 남자는 참았던 비명을 토해냈다.
"아아악! 살려줘, 살려줘!"
낄낄거리며 리더의 행사를 지켜보던 남자들은
그제서야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꼈던 팔장을 풀며 한걸음 그들에게로 다가섰다.
"앗, 저게 뭐야?"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걸음 주춤 물러나서 경악에 입을 떡 벌렸다.
소녀의 손에 잡힌 남자는 꿈틀거리는 촉수 같은 살덩이에
한쪽 어께부터 먹혀들어가고 있었다.
스멀스멀 기어서 남자의 어깨와 가슴을 감싼 촉수는
츠읍츠읍 하는 젖은 소리를 냈다.
조그마한 소녀의 양팔에서 쏟아져 나온 촉수는
언뜻 보기에도 백여개는 되는 것 같았다.
가느다랬던 촉수는 남자로부터 영양분을 빨아들이면서
조금씩 굵어지고 윤기가 흘렀다.
물론 거기에 반비례해 남자의 몸뚱이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는 이제 소리칠 기운조차 없이
멍하니 자신의 몸이 쭈그러드는 광경을 보고 있어야 했다.
물론 입을 굵은 촉수가 틀어막고 있었으니 소리치고 싶어도 못 쳤겠지만.
그 끔찍한 광경에 나머지 남자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폭력과 잔인함으로 무장한 그들이었지만
인간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만이 수비범위다.
인간을 상대하는 거라면 포락(포烙)을 구경한다해도
태연히 눈앞에서 웃을 수 있었지만 이런 악몽은 논외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 자리에 선채 소리만 지르던 그들의 뇌리에
갑자기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선 살고 봐야 했다.
나중의 일은 다음에 생각하면 된다.
아니, 지금으로선 도저히 다시 집밖으로 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동시에 네 명이 뛰기 시작했다.
소녀는 황홀한 얼굴로 먹이를 음미하고 있다가 살짝 눈쌀을 찌푸렸다.
식사시간에 소란을 피우는 것들은 딱 질색이야.
천천히 차례를 기다릴 것이지.
불만어린 얼굴로 그들을 보던 소녀의 몸에서
또 촉수가 한덩어리 쏟아져 나왔다.
남자들의 뒤를 적당한 간격을 두고 쫓으며
그녀는 먹이감을 마음껏 희롱했다.
모는 대로 죽어라 도망치는 모습이 육식동물의 잔인성에 만족을 주었다.
근 30분간을 미친듯이 달아났는데도
결국 그 자리로 돌아온 것을 발견한 남자들은
두려움에 질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울고 웃다가 발작적으로 품속에서 나이프를 빼들었다.
소녀는 그 광경에 조금 불쾌한 얼굴을 했다.
인간들의 무기가 그리 위협적은 아니었지만
먹을 것이 세운 가시에 상처를 입는다면
식사시간이 완전히 즐거운 것이 못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식사를 방해받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남자들이 나이프를 들고 덜덜 떨고 있을 때
그녀는 이제 다 빨아먹은 껍데기를 퉤 뱉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리더였던 악명높은 안철진은
이제 바싹 마른 나무뭉치처럼 공허한 소리를 내며 바닥을 굴렀다.
그 모양에 남자들은 으허헉 하는 바람빠진 소리를 냈다.
전신을 짓눌러 오는 공포에 오줌을 지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촉수를 움직여 달아나려는 남자들을 전부 움켜쥐었다.
촉수와 함께 안으로 밀려드는 비명에 그들은 정신을 잃어버렸다.
츠읍츠읍. 얼마 지나지 않아 젖은 살을 빠는 소리도 사라졌다.
소녀의 앞에는 다섯 개의 껍데기만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촉수를 전부 몸안으로 거두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입가를 닦았다.
악한들의 맛은 늘 각별하다.
"여기로 오길 잘 했어.
메마른 땅에서 조그마한 하등마물을 먹는데엔 질려버렸다고."
그녀의 뒤에서 어둠이 솟아올랐다.
"식사후엔 꼭 뒤처리를 해주세요.
인간계에선 이런 것들이 발견되면 소란스러워진답니다."
살풋 밝아오는 하늘 아래 솟은 어둠은 밤과도 닮아있었지만
그보다는 더 근원적인 어둠과 비슷했다.
예전 인간들이 밤을 낮처럼 사용하기 전의 밤,
공포와 낭만, 인간과 요물이 뒤섞여 있던 때로서의 밤에 보였던 어둠이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아, 알고 있어."
그녀는 조금 귀찮은 어조로 그렇게 말하고
허공에 대고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허공에서부터 꾸물거리며 무언가가 기어나왔다.
큰 머리통에 가느다란 몸.
손바닥에 올려놓아도 될 작은 것이지만
귀엽다는 말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특히나 그것들이 떼로 있는 경우라면 더욱.
겁에 질린듯한 눈을 희번뜩거리며 주위를 살피다가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먹어도 좋아."
그녀의 말에 그것은 끼이 하며 기쁘다는 듯이 울고는 이내 시체에 달려들었다.
다섯개의 껍데기는 순식간에 그것들로 덮여 자취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