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처음으로... 그것도 국내도 아닌 해외에서 혼자 여행을 떠나 보았다. 20대가 지나기 전에 꼭 한번 혼자서 떠나보고 싶었고, 어디로 갈지 많은 시간동안 고민을 하다가 결정을 한곳이 바로 중국 단둥!
단둥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붙어 있는 도시이다. 가깝지만 먼 나라, 한핏줄이지만 군대에서 우리의 적이라고 세뇌(?)를 당할 수 밖에 없던 나라 북한. 그 곳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2011년 8월 9일 오전 9시 30분... 중국 장춘역 근처 맥도날드에서 빅맥버거를 포장해가지고 기차에서 블런치로 먹고자 했으나, 맥모닝타임이라 다른 셋트를 먹고 그냥 기차를 타게 되었다.
10시 10분 정도에 기차의 문이 열리고 탑승이 시작 되었다.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위의 표는 침대칸중에서도 딱딱한 침대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윗층인 자리이다.
창가를 살짝 바라봐 주고 여행을 위한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침대에 올라가 잠을 청하고자 하였다.
위의 사진에서처럼 중국의 침대칸 중 딱딱한 침대인 硬卧는, 3층으로 되어 있고, 1층이 가장 비싸지만 침대와 천장의 높이가 가장 높으며 위로 갈수록 가격은 싸지만 천장과의 높이는 점점 낮아지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윗칸을 좋아라 하는것은 가격이 싼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늑하고 혼자만의 공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에도 가장 윗칸을 타게 되었다.
잠을 자다가 깨고 다시 누워 있자니 너무 심심하였다. MP에 영화라도 넣어서 가져올껄ㅠㅠ
뭔가 할게 없을까 하다가 문득 핸드폰에 있는 테트리스 게임이 생각나 하는데 하다 보니까 신기록을 세우게 되었다ㅋㅋ
테트리스 게임에 열중하다 보니 다시 피곤해져서 자고 일어나서 화장실 갔다가 창밖 경치를 봐주고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7시 47분. 중국 단둥에 기차가 도착하였다. 대략 9시간 걸렸지만 중국에서 이정도의 기차시간은 그저 애기 수준이라고나 할까??
기차에서 내려 역앞으로 나가자 바로 나를 반겨주는 것이 모택동 동상이었다. 중국의 타 도시 기차역에 비해 단둥역은 중국어와 함께 한글이 곳곳에 쓰여져 있었고, 굉장히 깔끔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마치 공항을 연상시켰다.
역시나 어느 도시를 가든 역을 나가면 항상 있는 숙박업소 삐끼(?)가 단둥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숙박업소 직원들과 택시기사들은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要住宿吗?”(숙박하시겠어요?), “要去哪儿?”(어디까지 가세요?) 등의 말을 계속 건냈다. 어느순간부터 삐끼를 쓰는 호텔이나 여관은 가지 않고 역전에서는 택시를 타지 않는 버릇이 생겨 일단은 그냥 걸어보았다.
단둥의 거리를 걷자 한국내의 차이나 타운을 보듯 간판에 중국어와 한국어가 함께 써있었다.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을꺼 같지는 않고, 한국 관광객이 많이 와서 그런거 같지도 않고... 아마도 조선족이 많은 도시라 그런듯 하다.
20분정도 걸었을까? 사람들이 몰려있는 공원 같은 곳이 보였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강이 흐르고 있던 것이다.
밤문화가 없는 중국은 번화가가 아니라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 생활을 하는게 대부분인데 밤 8시가 약간 넘은 어두운 시간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몰려 있었다.
그런데 이강은 무슨 강일까? 라는 생각에 한 상인에게 물어보자, "这条江是鸭绿江。“이라고 하였다!
바로 이곳이... 압록강이란 말인가! 그 말을 듣고 순간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강가를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밤이라 강 건너편 북한 신의주 쪽은 거의 빛이 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단둥과 압록강 그리고 신의주를 번갈아 보며 걸어 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 상점에서 음악이 흘러 나오는데, 영화 쉬리의 OST "When I Dream"이 흘러 나왔다. 순간 쉬리의 마지막 장면인 한석규와 김윤진이 총을 겨누는 장면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고, 가까우면서 먼 나라인 북한을 바라보다, 쉬리의 한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니 왠지 모를 찡한 감동이 가슴을 자극시켰다.
한참을 걷다가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헐... 그러고 보니 압록강이라는 감동에 젖어 나도 모르게 4시간동안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단 말인가?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단둥을 돌아다녀야 하니 일찍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호텔로 갔다.
압록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잠이 들고 싶은 마음에 압록강쪽으로 향해 있는 호텔로 가서 5층에 방을 잡았다.
그러나 날씨때문일까? 북한의 밤문화가 없어서 그런건지, 창밖으로 보이는 압록강과 신의주는 어둠뿐이었다ㅠㅠ
다음날 아침 6시 30분 기상! 나갈 준비를 하고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어제 블런치로 먹은 맥모닝셋트와 기차에서 먹은 옥수수소세지 그리고 홍차와 물만 먹어서 그런지 너무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먹지는 않고 이왕 먹는거 뭔가 좀 특색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뭐 중국에서는 중국음식을 먹어야 제맛이다는 사람도 있다만 압록강변에서는 대부분이 한국식당이었다.
걷다가 당첨된 곳은 바로 이곳! 콩나물 국밥이라고 써있는 콩나물국 전문점인듯 했다.
평소 콩나물국은 해장할때만 먹었는데, 왠지모르게 발길이 이곳으로 끌려 오게 되었다.
아침으로 먹은 콩나물국과 두부조림. 정말 배가 고파서 그렇게 느꼇는지는 모르겠지만, 콩나물국의 국물을 한수저 떠먹고 나서 5회를 연속으로 떠먹게 되었고 5회 연속 감탄사가 나왔다ㅠㅠ
배가 고파서 그렇게 느껴졌을수도 있지만, 정말 맛있었다.
다시 찾은 압록강공원. 낮에 오니 분위기가 달랐다. 군데군데 한복을 대여해 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상점이 있었고, 북한담배와 북한돈, 우표등의 기념품을 파는 상점도 많았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또한 많았다. 낚시는 굉장히 좋아하지만 도구가 없는 관계상 그냥 눈요기만 잠시 할 수밖에 없었으니ㅠㅠ
중국과 북한(중국에서는 북한을 조선이라고 한다)의 국경을 알리는 압록강... 사진에서 보다시피 너무 일찍 나온 탓인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어 압록강은 낮에 다시 오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다른 목적지로 이동을 하였다.
2Km까지 기본료 5원이 적용되고 매 km당 2원이 상승되는 단둥 택시요금
그리고 달려간 곳이 바로 이곳!
항미원조기념관이다. 이곳은 한국전쟁이라 부르는 6.25를 중국에서 기념관으로 만들어 놓다니 처음에는 의아해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 중국이 북한을 도와 압록강에서 38선까지 다시 내려간 사건을 주로 다루며 중국의 군사력을 자뻑(?)하고자 만든 기념관 이었다.
입구에 들어가자 바로 보이는 전차와 야포, 그리고 전투기들 그리고 서바이벌 게임장 처럼 생긴 곳도 있었다.
이곳에서 참 운이 좋았던 것은 단체 여행객들을 위한 매표소가 따로 있었는데, 그곳에서 입장권을 사는줄 알고 서 있던 중 얼떨결에 나도 단체 여행객으로 착각을 하였는지 매표원이 그냥 표를 나에게도 나눠주었다.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김일성과 모택동의 동상이 보였다. 모택동 또한 공산주의혁명가이기에 동지가 필요했을터.. 만약 공산주의사상이 남쪽에서 시작되고 자본주의 사상이 북에서 기반을 잡았더라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봐뀌었을까?
전쟁영웅들이라고 하는데 특급영웅과 1급영웅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육탄10용사나 맥아더장군 같은 영웅이었을듯...
젊은시절 김일성과 모택동의 사진이다.
이것은 苏式卡秋沙炮弹(Soviet katyusha shell)
부상자를 치료하는 위생병
군대에서 초소근무때 썻던 TA-312K가 생각났다.
전쟁장면을 그린 한 폭의 그림.
그 당시의 무기들
인민군의 깔깔이(?)
최초 공격시 북한군의 이동루트도 나와 있었다.
사진은 흐릿하지만 수도사단이라는 부대깃발이 보일 것이다. 지금은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인데 당시 그곳을 침공한 인민군들의 조형이 나타나 있었다.
이것은 북한에서 중국정부 및 중국군에게 전쟁을 도와준 것에 감사의 표시로 쓴 글들이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내용들이 6.25전쟁은 한국전쟁이지만 자신들이 지시를 하여 지원을 해주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연합군이 압록강까지 치고 올라 왔을때, 중국이 나서자 38선까지 다시 내려가게 된 점을 표출하며 자신들의 위상을 나타내는 것 처럼 느껴졌다.
한국전쟁에 대한 상상들과 그때 당시의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잠시나마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다음 장소에 도착한 곳은 바로............
호산장성이다. 여름에는 호산장성을 잘 안오는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중에 다시 단둥시내로 돌아갈때 택시기사와 이야기 하며 알게 된 것은 가을과 봄에 사람이 많이 찾으며 어제밤에 비가 온 이유로 안개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안 왔을 꺼라고 하였다.
만리장성 같아 보이지만 호산장성. 원래 이 곳을 보면 한쪽은 평면인 성벽이고 다른 한쪽이 위의 사진처럼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수비벽이다. 그러나 이 성은 중국의 유물이 아닌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중국의 경우 이 위치에 성을 쌓았더라면 수비벽이 남쪽 즉, 한반도쪽으로 향해 있어야 하지만 수비벽은 북쪽으로 향해 있는 것이었다.
원래 이곳은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진 박작성으로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고구려의 성. 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방어하는 성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이름까지 봐꾸어 버린것이다.
제발... 짱게랑 쪽바리들아 우기지좀 말자!
만리장성을 여러번 올라가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곳은 만리장성에 비교하면 좀... 그랬다ㅋㅋ
그러나 끝까지 올라가면 신의주가 한눈에 보인다고 하여 덥고 습한 날씨에 행군을 하듯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 올라갔다. 올라가기전에 슈퍼에서 물이라도 사올껄 그랬는지 목은 타들어 가고, 땀은 비오듯이 계속 쏟아졌다.
안개가 껴서 어짜피 안보일꺼 같아 쌍안경을 빌리질 않았다. 그러나 저것들을 보는거 보다 더 반가웠던 것은 바로 정상에서 물과 음료를 판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쯤 얼려져 있는 물을 한병 살려고 얼마냐고 하자, 헐... 한병에 5원, 시내 슈퍼에서 1원하는건데 5배나 받아 먹다니... 그래도 생명수다 생각하고 한병을 사서 물을 뜯기전에 물통으로 달궈진 얼굴과 목, 팔등을 좀 식혀주었다.
그리고 물을 따서 마시니 정말 훈련소에서 행군 휴식시간때 마셨던 물맛보다 더 죽여주는 맛이었다.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자, 다리가 후들 거렸다.
다시 택시를 타고 압록강 철교로 향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아침과는 다른 식당을 찾아 들어가 보았다. 너무 더운 나머지 냉면을 먹고 싶었으나, 메뉴판을 보자 설렁탕이 갑자기 땡겨서 설렁탕을 시켜 먹었는데, 안그래도 더운날 설렁탕을 먹으니 호산장성에서 다 못 흘린땀을 설렁탕을 먹으며 빼버린 기분이었다.
이곳이 압록강 단교이다. 압록강 중간에 끊어져 있는데, 6.25당시에 끊어졌다고 한다.
다리 위에서도 중국 상인들의 장사는 계속 되었다. 항상 있는 물품은 북한돈, 우표, 담배등... 그런데 이곳은 한국돈도 있었다. 얼마냐고 물어봐서 환율보다 싸면 그 곳에 파는돈 다 살라고 했는데 역시나 이놈들은 손해보는 장사는 안하는지 10000원을 100위안에 팔더라.
압록강철교 끝부분에 있는 비석(?)
압록강 철교의 끊어진 부위이다.
바로 옆에 30m정도 거리를 두고 하나의 철교가 또 있었는데 그곳은 차도 다니고 사람도 지나 다녔다.
저 사람은 우리가 못가는 나라를 마음껏 걸어서 가다니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압록강 철교에서는 생각보다 신의주마을을 자세하게 볼 수가 없었다. 날씨탓도 있겠지만 중간정도였던 압록강 철교가 끝부분에 다다랐지만 왠지 북한과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철교관광을 끝내고 발길 닿는곳으로 계속 걷다보니 어느덧 6시를 알리는 시계가 단둥거리를 울렸다.
저녁 또한 북한식당을 가장한 조선족 식당으로 가서 먹었다.
순대국과 육회를 시켰는데, 종업원이 공기밥도 먹을 꺼냐고 해서 하나 달라고 했다. 보통 한국은 국을 시키면 밥은 기본으로 주는건데, 중국은 대부분 따로 시켜야 된다.
순대국이 나오자 아차 싶었던게 이 순대는 평양순대를 써서 참쌀이 들어가 있던 것이었다. 게다가...
공기밥은 뭔 농사꾼밥을 펐는지 엄청난 양을 주었고... 육회는 보통 설탕, 소금, 참기름, 다진 마늘&대파등으로 양념후 계란 노른자와 비벼 먹어야 제맛인데 이곳은 북한식인지 초장에 육회를 비벼서 내주었다.
그래도 스스로 이것은 북한 최고의 조리법이다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한 후에 먹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은 후 단둥시내를 돌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마지막 날인 3일차이기도 했고, 돌아가는 기차편은 硬座(딱딱한의자)로 9시간을 버텨야 했기에 12시간동안 취침을 했다.
마지막 날 먹은 브런치는 강변쪽이 아닌 그 뒤쪽 라인에다가 간판도 좀 작은 식당이었다.
압록강인데 압롱강식당이라고 썼다. 뭐 음식만 맛있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단둥 여행동안 매끼를 한식당에서 먹었지만 처음으로 이곳에서 직원의 한국말을 듣게 되었다.
"어서오세요, 한분이세요?"라는 한국말이었는데, 몇일간 한국말을 전혀 못듣다가 들어서 그런지 어색했다.
그 전날 택시기사가 단둥에서는 해산물을 먹어 보라고 추천하여 마지막으로 해산물을 먹으려 했다.
메뉴판을 열어보니 첫장에 내가 제일 조아라 하는 연어회가 있었는데, 냉동이란다-_-
그래서 패스.. 광어는 한국에서 자주 먹는 메뉴라서 패스.... 전골은 혼자 시켜서 절반도 못먹고 다 버릴꺼 같아서 패스...
결국.....
산낙지비빔밥과 조개볶음요리를 시켜 먹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식당을 마지막에 왔는지... 아마 첫날에 왔더라면 매끼를 이곳에서 먹었을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압록강으로 다시 가보니 어제보다는 훠~얼씬 맑은 날씨였다.
그래서 압록강 유람선을 탔다. 배를 탄 이유는 뭐 북한을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랄까?
게다가..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 고배율 망원경을 대여 했다. 웃긴것은 대여료가 한국돈으로는 천원인데 중국돈으로는 10위안이었다. 중국사람들 돈계산은 완전 칼이고, 외국인들한테 더 받아 먹었으면 받아먹었지 깍아주는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지갑에는 한국돈이 10원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중국돈 10원을 내고 대여를 했다ㅠㅠ
곳곳에 김정일 장군 만세, 김일성수령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글들이 쓰여져 있었다. 김일성 죽은지 17년쯤 돼었나? 그런데 마치 사이비 종교처럼 김일성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을 회관처럼 보였는데, 망원경으로 보아도 무슨 글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배는 달리고 달려...
저 곳이 신의주공단이라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카메라 해상도를 최대로 한 후에 최대줌으로 땡겨서 찍었으면 더 자세히 나왔을텐데 배가 다시 항구로 돌아오고나서야 해상도가 3번이라는 것을 알았다ㅠㅠ
카메라 렌즈 앞에 망원경을 대고 찍어보았는데... ㅄ짓이었다ㅋㅋ
곳곳에 보이는 북한 주민들... 손을 흔들자, 그들도 방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음에는 탈때 꼭 대형 새총과 스니커즈, 초코파이, 소세지등의 먹거리를 들고 타서 새총으로 쏴주고 싶었다.
북한의 국기가 보이는 저 배는 화물선 같았다. 배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소리를 쳐도 그저 일만 하기 바뻣는데...
어느덧 신의주와 북한주민 감상에 젖어 있을 무렵 배는 선착장에 도착하였고, 시간은 어느덧 2시를 넘기고 있었다.
슬슬 돌아갈 시간이 왔구나..
돌아가는 기차편은 침대칸이 매진되어 좌석으로 끊었었다. 마지막 압록강을 바라보는 마음이 굉장히 글로 표현하기 힘든 마음이었다.
휴전선 부근은 남북으로 2km씩 4km가 비무장지대이고 그것을 벗어나면 남북한은 대략 20km정도까지 군사지역이다. 때문에 전방에서 군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북한마을을 이렇게 가깝게 볼 수가 없으리라..
조선시대 양반과 평민의 차별을 당하고 일제시대 큰 억압을 당해왔던 그들...
생산수단·생산물의 공동소유와 평등한 소비에 기초해서 무계급사회의 수립을 추구하는 Communism을 꿈꾸며 조선인민공화국을 설립하였지만....
내가 압록강을 건너고 싶은 충동을 느낀 이유는 그저 호기심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오늘도 압록강을 건넌다.
한글이 자주 보이는 단둥의 기차역
이제 다시 돌아간다. 다음 여행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그 곳에서 단둥 못지 않은 감동과 배움이 있길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나홀로여행[중국 단둥](사진엄청有,스압)
안녕하세요~ 판을 즐겨보는 28살 흔남입니다.
이번에 단둥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기행문을 한번 올려 봅니다ㅋㅋ
요즘은 대부분 음슴체로 쓰지만 저는 그냥 제가 편하게 쓸려고 하는데, 양해 하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중국 단둥으로 함께 떠나 볼까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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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기 전부터 나는 최고의 배움은 여행에서 얻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나는 여행자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다.
-파올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
생에 처음으로... 그것도 국내도 아닌 해외에서 혼자 여행을 떠나 보았다. 20대가 지나기 전에 꼭 한번 혼자서 떠나보고 싶었고, 어디로 갈지 많은 시간동안 고민을 하다가 결정을 한곳이 바로 중국 단둥!
단둥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붙어 있는 도시이다. 가깝지만 먼 나라, 한핏줄이지만 군대에서 우리의 적이라고 세뇌(?)를 당할 수 밖에 없던 나라 북한. 그 곳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출발하였다.
2011년 8월 9일 오전 9시 30분... 중국 장춘역 근처 맥도날드에서 빅맥버거를 포장해가지고 기차에서 블런치로 먹고자 했으나, 맥모닝타임이라 다른 셋트를 먹고 그냥 기차를 타게 되었다.
10시 10분 정도에 기차의 문이 열리고 탑승이 시작 되었다.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위의 표는 침대칸중에서도 딱딱한 침대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윗층인 자리이다.
창가를 살짝 바라봐 주고 여행을 위한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침대에 올라가 잠을 청하고자 하였다.
위의 사진에서처럼 중국의 침대칸 중 딱딱한 침대인 硬卧는, 3층으로 되어 있고, 1층이 가장 비싸지만 침대와 천장의 높이가 가장 높으며 위로 갈수록 가격은 싸지만 천장과의 높이는 점점 낮아지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윗칸을 좋아라 하는것은 가격이 싼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늑하고 혼자만의 공간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번에도 가장 윗칸을 타게 되었다.
잠을 자다가 깨고 다시 누워 있자니 너무 심심하였다. MP에 영화라도 넣어서 가져올껄ㅠㅠ
뭔가 할게 없을까 하다가 문득 핸드폰에 있는 테트리스 게임이 생각나 하는데 하다 보니까 신기록을 세우게 되었다ㅋㅋ
테트리스 게임에 열중하다 보니 다시 피곤해져서 자고 일어나서 화장실 갔다가 창밖 경치를 봐주고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7시 47분. 중국 단둥에 기차가 도착하였다. 대략 9시간 걸렸지만 중국에서 이정도의 기차시간은 그저 애기 수준이라고나 할까??
기차에서 내려 역앞으로 나가자 바로 나를 반겨주는 것이 모택동 동상이었다. 중국의 타 도시 기차역에 비해 단둥역은 중국어와 함께 한글이 곳곳에 쓰여져 있었고, 굉장히 깔끔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마치 공항을 연상시켰다.
역시나 어느 도시를 가든 역을 나가면 항상 있는 숙박업소 삐끼(?)가 단둥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숙박업소 직원들과 택시기사들은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要住宿吗?”(숙박하시겠어요?), “要去哪儿?”(어디까지 가세요?) 등의 말을 계속 건냈다. 어느순간부터 삐끼를 쓰는 호텔이나 여관은 가지 않고 역전에서는 택시를 타지 않는 버릇이 생겨 일단은 그냥 걸어보았다.
단둥의 거리를 걷자 한국내의 차이나 타운을 보듯 간판에 중국어와 한국어가 함께 써있었다.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이 많을꺼 같지는 않고, 한국 관광객이 많이 와서 그런거 같지도 않고... 아마도 조선족이 많은 도시라 그런듯 하다.
20분정도 걸었을까? 사람들이 몰려있는 공원 같은 곳이 보였고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강이 흐르고 있던 것이다.
밤문화가 없는 중국은 번화가가 아니라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 생활을 하는게 대부분인데 밤 8시가 약간 넘은 어두운 시간에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몰려 있었다.
그런데 이강은 무슨 강일까? 라는 생각에 한 상인에게 물어보자, "这条江是鸭绿江。“이라고 하였다!
바로 이곳이... 압록강이란 말인가! 그 말을 듣고 순간 배가 고프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강가를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밤이라 강 건너편 북한 신의주 쪽은 거의 빛이 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단둥과 압록강 그리고 신의주를 번갈아 보며 걸어 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한 상점에서 음악이 흘러 나오는데, 영화 쉬리의 OST "When I Dream"이 흘러 나왔다. 순간 쉬리의 마지막 장면인 한석규와 김윤진이 총을 겨누는 장면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고, 가까우면서 먼 나라인 북한을 바라보다, 쉬리의 한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니 왠지 모를 찡한 감동이 가슴을 자극시켰다.
한참을 걷다가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헐... 그러고 보니 압록강이라는 감동에 젖어 나도 모르게 4시간동안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단 말인가?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단둥을 돌아다녀야 하니 일찍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호텔로 갔다.
압록강의 야경을 바라보며 잠이 들고 싶은 마음에 압록강쪽으로 향해 있는 호텔로 가서 5층에 방을 잡았다.
그러나 날씨때문일까? 북한의 밤문화가 없어서 그런건지, 창밖으로 보이는 압록강과 신의주는 어둠뿐이었다ㅠㅠ
다음날 아침 6시 30분 기상! 나갈 준비를 하고 아침밥을 먹으러 갔다. 어제 블런치로 먹은 맥모닝셋트와 기차에서 먹은 옥수수소세지 그리고 홍차와 물만 먹어서 그런지 너무 배가 고팠다.
그렇다고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먹지는 않고 이왕 먹는거 뭔가 좀 특색 있는 음식을 먹고 싶었다.
뭐 중국에서는 중국음식을 먹어야 제맛이다는 사람도 있다만 압록강변에서는 대부분이 한국식당이었다.
걷다가 당첨된 곳은 바로 이곳! 콩나물 국밥이라고 써있는 콩나물국 전문점인듯 했다.
평소 콩나물국은 해장할때만 먹었는데, 왠지모르게 발길이 이곳으로 끌려 오게 되었다.
아침으로 먹은 콩나물국과 두부조림. 정말 배가 고파서 그렇게 느꼇는지는 모르겠지만, 콩나물국의 국물을 한수저 떠먹고 나서 5회를 연속으로 떠먹게 되었고 5회 연속 감탄사가 나왔다ㅠㅠ
배가 고파서 그렇게 느껴졌을수도 있지만, 정말 맛있었다.
다시 찾은 압록강공원. 낮에 오니 분위기가 달랐다. 군데군데 한복을 대여해 주고 사진을 찍어주는 상점이 있었고, 북한담배와 북한돈, 우표등의 기념품을 파는 상점도 많았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또한 많았다. 낚시는 굉장히 좋아하지만 도구가 없는 관계상 그냥 눈요기만 잠시 할 수밖에 없었으니ㅠㅠ
중국과 북한(중국에서는 북한을 조선이라고 한다)의 국경을 알리는 압록강... 사진에서 보다시피 너무 일찍 나온 탓인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어 압록강은 낮에 다시 오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다른 목적지로 이동을 하였다.
2Km까지 기본료 5원이 적용되고 매 km당 2원이 상승되는 단둥 택시요금
그리고 달려간 곳이 바로 이곳!
항미원조기념관이다. 이곳은 한국전쟁이라 부르는 6.25를 중국에서 기념관으로 만들어 놓다니 처음에는 의아해 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대부분 중국이 북한을 도와 압록강에서 38선까지 다시 내려간 사건을 주로 다루며 중국의 군사력을 자뻑(?)하고자 만든 기념관 이었다.
입구에 들어가자 바로 보이는 전차와 야포, 그리고 전투기들 그리고 서바이벌 게임장 처럼 생긴 곳도 있었다.
이곳에서 참 운이 좋았던 것은 단체 여행객들을 위한 매표소가 따로 있었는데, 그곳에서 입장권을 사는줄 알고 서 있던 중 얼떨결에 나도 단체 여행객으로 착각을 하였는지 매표원이 그냥 표를 나에게도 나눠주었다.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김일성과 모택동의 동상이 보였다. 모택동 또한 공산주의혁명가이기에 동지가 필요했을터.. 만약 공산주의사상이 남쪽에서 시작되고 자본주의 사상이 북에서 기반을 잡았더라면... 대한민국의 역사는 봐뀌었을까?
전쟁영웅들이라고 하는데 특급영웅과 1급영웅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육탄10용사나 맥아더장군 같은 영웅이었을듯...
젊은시절 김일성과 모택동의 사진이다.
이것은 苏式卡秋沙炮弹(Soviet katyusha shell)
부상자를 치료하는 위생병
군대에서 초소근무때 썻던 TA-312K가 생각났다.
전쟁장면을 그린 한 폭의 그림.
그 당시의 무기들
인민군의 깔깔이(?)
최초 공격시 북한군의 이동루트도 나와 있었다.
사진은 흐릿하지만 수도사단이라는 부대깃발이 보일 것이다. 지금은 수도기계화보병사단인데 당시 그곳을 침공한 인민군들의 조형이 나타나 있었다.
이것은 북한에서 중국정부 및 중국군에게 전쟁을 도와준 것에 감사의 표시로 쓴 글들이다.
이곳에서는 대부분의 내용들이 6.25전쟁은 한국전쟁이지만 자신들이 지시를 하여 지원을 해주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연합군이 압록강까지 치고 올라 왔을때, 중국이 나서자 38선까지 다시 내려가게 된 점을 표출하며 자신들의 위상을 나타내는 것 처럼 느껴졌다.
한국전쟁에 대한 상상들과 그때 당시의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잠시나마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다음 장소에 도착한 곳은 바로............
호산장성이다. 여름에는 호산장성을 잘 안오는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중에 다시 단둥시내로 돌아갈때 택시기사와 이야기 하며 알게 된 것은 가을과 봄에 사람이 많이 찾으며 어제밤에 비가 온 이유로 안개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안 왔을 꺼라고 하였다.만리장성 같아 보이지만 호산장성. 원래 이 곳을 보면 한쪽은 평면인 성벽이고 다른 한쪽이 위의 사진처럼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수비벽이다. 그러나 이 성은 중국의 유물이 아닌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중국의 경우 이 위치에 성을 쌓았더라면 수비벽이 남쪽 즉, 한반도쪽으로 향해 있어야 하지만 수비벽은 북쪽으로 향해 있는 것이었다.
원래 이곳은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진 박작성으로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고구려의 성. 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방어하는 성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이름까지 봐꾸어 버린것이다.
제발... 짱게랑 쪽바리들아 우기지좀 말자!
만리장성을 여러번 올라가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곳은 만리장성에 비교하면 좀... 그랬다ㅋㅋ
그러나 끝까지 올라가면 신의주가 한눈에 보인다고 하여 덥고 습한 날씨에 행군을 하듯 땀을 뻘뻘 흘리며 계속 올라갔다. 올라가기전에 슈퍼에서 물이라도 사올껄 그랬는지 목은 타들어 가고, 땀은 비오듯이 계속 쏟아졌다.
안개가 껴서 어짜피 안보일꺼 같아 쌍안경을 빌리질 않았다. 그러나 저것들을 보는거 보다 더 반가웠던 것은 바로 정상에서 물과 음료를 판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반쯤 얼려져 있는 물을 한병 살려고 얼마냐고 하자, 헐... 한병에 5원, 시내 슈퍼에서 1원하는건데 5배나 받아 먹다니... 그래도 생명수다 생각하고 한병을 사서 물을 뜯기전에 물통으로 달궈진 얼굴과 목, 팔등을 좀 식혀주었다.
그리고 물을 따서 마시니 정말 훈련소에서 행군 휴식시간때 마셨던 물맛보다 더 죽여주는 맛이었다.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자, 다리가 후들 거렸다.
다시 택시를 타고 압록강 철교로 향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아침과는 다른 식당을 찾아 들어가 보았다. 너무 더운 나머지 냉면을 먹고 싶었으나, 메뉴판을 보자 설렁탕이 갑자기 땡겨서 설렁탕을 시켜 먹었는데, 안그래도 더운날 설렁탕을 먹으니 호산장성에서 다 못 흘린땀을 설렁탕을 먹으며 빼버린 기분이었다.
이곳이 압록강 단교이다. 압록강 중간에 끊어져 있는데, 6.25당시에 끊어졌다고 한다.
다리 위에서도 중국 상인들의 장사는 계속 되었다. 항상 있는 물품은 북한돈, 우표, 담배등... 그런데 이곳은 한국돈도 있었다. 얼마냐고 물어봐서 환율보다 싸면 그 곳에 파는돈 다 살라고 했는데 역시나 이놈들은 손해보는 장사는 안하는지 10000원을 100위안에 팔더라.
압록강철교 끝부분에 있는 비석(?)
압록강 철교의 끊어진 부위이다.
바로 옆에 30m정도 거리를 두고 하나의 철교가 또 있었는데 그곳은 차도 다니고 사람도 지나 다녔다.
저 사람은 우리가 못가는 나라를 마음껏 걸어서 가다니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압록강 철교에서는 생각보다 신의주마을을 자세하게 볼 수가 없었다. 날씨탓도 있겠지만 중간정도였던 압록강 철교가 끝부분에 다다랐지만 왠지 북한과는 너무 멀게 느껴졌다.
철교관광을 끝내고 발길 닿는곳으로 계속 걷다보니 어느덧 6시를 알리는 시계가 단둥거리를 울렸다.
저녁 또한 북한식당을 가장한 조선족 식당으로 가서 먹었다.
순대국과 육회를 시켰는데, 종업원이 공기밥도 먹을 꺼냐고 해서 하나 달라고 했다. 보통 한국은 국을 시키면 밥은 기본으로 주는건데, 중국은 대부분 따로 시켜야 된다.
순대국이 나오자 아차 싶었던게 이 순대는 평양순대를 써서 참쌀이 들어가 있던 것이었다. 게다가...
공기밥은 뭔 농사꾼밥을 펐는지 엄청난 양을 주었고... 육회는 보통 설탕, 소금, 참기름, 다진 마늘&대파등으로 양념후 계란 노른자와 비벼 먹어야 제맛인데 이곳은 북한식인지 초장에 육회를 비벼서 내주었다.
그래도 스스로 이것은 북한 최고의 조리법이다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한 후에 먹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은 후 단둥시내를 돌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마지막 날인 3일차이기도 했고, 돌아가는 기차편은 硬座(딱딱한의자)로 9시간을 버텨야 했기에 12시간동안 취침을 했다.
마지막 날 먹은 브런치는 강변쪽이 아닌 그 뒤쪽 라인에다가 간판도 좀 작은 식당이었다.
압록강인데 압롱강식당이라고 썼다. 뭐 음식만 맛있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단둥 여행동안 매끼를 한식당에서 먹었지만 처음으로 이곳에서 직원의 한국말을 듣게 되었다.
"어서오세요, 한분이세요?"라는 한국말이었는데, 몇일간 한국말을 전혀 못듣다가 들어서 그런지 어색했다.
그 전날 택시기사가 단둥에서는 해산물을 먹어 보라고 추천하여 마지막으로 해산물을 먹으려 했다.
메뉴판을 열어보니 첫장에 내가 제일 조아라 하는 연어회가 있었는데, 냉동이란다-_-
그래서 패스.. 광어는 한국에서 자주 먹는 메뉴라서 패스.... 전골은 혼자 시켜서 절반도 못먹고 다 버릴꺼 같아서 패스...
결국.....
산낙지비빔밥과 조개볶음요리를 시켜 먹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식당을 마지막에 왔는지... 아마 첫날에 왔더라면 매끼를 이곳에서 먹었을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식사를 마치고 압록강으로 다시 가보니 어제보다는 훠~얼씬 맑은 날씨였다.
그래서 압록강 유람선을 탔다. 배를 탄 이유는 뭐 북한을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랄까?
게다가.. 더욱 자세히 보기 위해 고배율 망원경을 대여 했다. 웃긴것은 대여료가 한국돈으로는 천원인데 중국돈으로는 10위안이었다. 중국사람들 돈계산은 완전 칼이고, 외국인들한테 더 받아 먹었으면 받아먹었지 깍아주는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지갑에는 한국돈이 10원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중국돈 10원을 내고 대여를 했다ㅠㅠ
곳곳에 김정일 장군 만세, 김일성수령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글들이 쓰여져 있었다. 김일성 죽은지 17년쯤 돼었나? 그런데 마치 사이비 종교처럼 김일성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을 회관처럼 보였는데, 망원경으로 보아도 무슨 글인지 보이지가 않았다.
배는 달리고 달려...
저 곳이 신의주공단이라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카메라 해상도를 최대로 한 후에 최대줌으로 땡겨서 찍었으면 더 자세히 나왔을텐데 배가 다시 항구로 돌아오고나서야 해상도가 3번이라는 것을 알았다ㅠㅠ
카메라 렌즈 앞에 망원경을 대고 찍어보았는데... ㅄ짓이었다ㅋㅋ
곳곳에 보이는 북한 주민들... 손을 흔들자, 그들도 방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음에는 탈때 꼭 대형 새총과 스니커즈, 초코파이, 소세지등의 먹거리를 들고 타서 새총으로 쏴주고 싶었다.
북한의 국기가 보이는 저 배는 화물선 같았다. 배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소리를 쳐도 그저 일만 하기 바뻣는데...
어느덧 신의주와 북한주민 감상에 젖어 있을 무렵 배는 선착장에 도착하였고, 시간은 어느덧 2시를 넘기고 있었다.
슬슬 돌아갈 시간이 왔구나..
돌아가는 기차편은 침대칸이 매진되어 좌석으로 끊었었다. 마지막 압록강을 바라보는 마음이 굉장히 글로 표현하기 힘든 마음이었다.
휴전선 부근은 남북으로 2km씩 4km가 비무장지대이고 그것을 벗어나면 남북한은 대략 20km정도까지 군사지역이다. 때문에 전방에서 군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북한마을을 이렇게 가깝게 볼 수가 없으리라..
조선시대 양반과 평민의 차별을 당하고 일제시대 큰 억압을 당해왔던 그들...
생산수단·생산물의 공동소유와 평등한 소비에 기초해서 무계급사회의 수립을 추구하는 Communism을 꿈꾸며 조선인민공화국을 설립하였지만....
내가 압록강을 건너고 싶은 충동을 느낀 이유는 그저 호기심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들은 굶어죽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오늘도 압록강을 건넌다.
한글이 자주 보이는 단둥의 기차역
이제 다시 돌아간다. 다음 여행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그 곳에서 단둥 못지 않은 감동과 배움이 있길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再见丹东!
단둥 가보고 싶으신 분은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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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귀찮고 그냥 방콕하고 싶으신 분들 추천!
기타 해외여행 가보고 싶으신 분들 추천!
재미 있었을꺼 같으신 분들 추천!
재미 없을꺼 같고 이 글도 재미 없어서 그냥 스크롤 내리신 분들 추천!
반응 좋으면 다음 여행기도 이어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