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성 심장기형인 활로씨 4징과 폐동맥협착이라는 병을 가지고 태어난 기문이는 태어나자마자 심장병 진단을 받고 지난 2년간 이대목동병원에서 수술 3회, 심장조영술 2회를 받았습니다만 7월22일 마직막 수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다 그만 숨을 거두었습니다.
원통하고 분한 마음에 울고 또 울고 가슴이 찢어질 듯 합니다.
저희는 이번이 마지막 수술이고 이 수술만 끝나면 다른 아이같이 뛰어 놀 기문이를 상상하며 수술이 무사히 마치기를 기도하였죠.
7월22일 오전8시 수술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기문이는 "윙크"와 "안녕"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재롱을 마지막 모습으로 남기고 수술을 시작하였습니다.
수술 전, 오후 3~4시경이면 수술이 끝날것으로 설명듣고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가 나오질 않아 저녁 7시경 수술장으로 연락을 하니 아직 수술이 안끝났는데 보호자면 빨리 수술실앞으로 들어오란 말을 듣고 기문이 수술실앞으로 갔더니 의사선생님께서 "이미 3시경에 수술은 끝났지만 폐동맥혈압이 너무 높아 아이가 힘들것 같다고 마지막인사라도 하게 엄마를 수술실로 데리고 들어오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무나 놀랍고 당황하여 눈물밖에는 나질 않더군요. 그리고, 아내는 임신 6개월로 이 사실을 듣고 반응할 아내를 상상하니 끔찍하고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아내의 임신사실과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제발 살려달라고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럼 일단 펌프로 트라이를 계속해보겠다고 말씀하셔서, 저는 최대한 진정을 하고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처제 앞에서 이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데 정말 가슴이 탁 막히면서 아무말도 못하겠더군요.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모두가 눈물을 보이며 무슨일이냐고 저를 다그쳐서 "현재 우리 아이 기문이가 힘든상황에 놓여있지만 선생님들께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 진정하고 기다려 보자"는 말밖에는 못하였습니다.
밤 10시경 기문이는 수술장에서 나와 중환자실로 옮겨지게 되었고 저희 아내는 기문이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거의 실신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의 기문이는 의식이 없었고 가슴에 커다란 천을 덮은채로 누워있었는데 의사선생님께서는 이런 경우 살아난 환자는 없고 살아날 가능성은 단 1%도 없다고 하시더군요. 기문이 외할머니는 의사선생님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우리 기문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울며 매달렸더니 선생님도 가능성은 없지만 약물투여를 최고 수준으로 계속 투입해보겠다고 말씀 하셨죠.
이에, 저는 아내에게 기문이가 위험한 상황이지만 기적을 믿고 기다리고 아직 계속 치료하고 있으니 희망을 가져보자고 말하며 '기문이는 중환자실에서 저희는 보호자 대기실의 의자'에서 밤낮을 지내는 기문이와의 마지막 1주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1주일 동안, 기문이가 벌떡일어나 "엄마"하며 달려나오는 기적을 바라고 임신한 아내와 뱃속 둘째아기의 안전만을 기원하였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중환자실의 기문이에게 찾아가서 " 기문아 오늘은 어땠어?","힘들지만 조금만 참고 잘해보자", "오늘은 아빠 친구 00가 기문이 보러 왔다"며 기문이의 힘겨운 마지막 시간을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기문이 엄마는 이렇게라도 기문이를 볼수만 있다면, 평생을 보고싶다며 이젠 "기문이를 놓아주자"란 친척분들의 말에 울며 기문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하더군요. 아빠로서 해줄것이 고작 기문이 옆에서 "힘내라 기문아"란 말과 의사선생님의 설명을 이성적(?)으로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너무 원통했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임신한 아내를 생각해서 기문이를 살려두지만 이런 상황에서 살아난 케이스는 없다라고 말씀하셨죠. 저는 기문이와 같은 다른 케이스를 찾아보고 다른 치료방법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역시 들을 수 있는 말은 가능성이 없고 다른 치료방법도 없다구 하루하루가 힘겨운 상황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의사선생님께서는 저에게 이성적이길 주문했고 수술전에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는 말씀을 계속 하시더군요.
제가 그 순간에 의사선생님께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은 "이렇게 한번해봅시다"였는데....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 기문이의 마지막 일요일(7/27)은 다가왔습니다. 아침 7시에 아내가 기문이를 보러 중환자실에 들어갔더니 의사선생님께서 이제는 장기전이 될 것 같으니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서 중환자가족대기실의 딱딱한 의자에서 자지말고 집에가서 좀 쉬어라는 말씀을 들었다더군요. 아내는 기문이의 상태가 이런 상태라도 유지되는줄 알고 집에 잠깐 쉬러 들어가려고 하더군요. 그러나, 10시경 의사선생님께서 저를 보자고 하셔서 갔더니 기문이 상태가 안 좋다고 오늘이라도 당장 안좋게 될 것 같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듯하다고 하시더군요.
이제 정말 마지막인가? 가슴은 답답하고 아내에게 어떻게 얘기하지하며 걱정을 하다 기문이의 상태를 아내에게 말했더니 펑펑울며 기문이를 살려달라고 저를 잡고 애원하더군요...
아내는 병상의 기문이 옆을 지키며 기문이에게 "어린 애기가 엄마 옆을 놓아두고 어디 먼데 가려구하냐구" 울며 기문이 손을 잡고 안놓더군요. 저는 옆에서 답답한 가슴을 치며 기문이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후 4시경 기문이를 놓아두고 아내와 저는 중환자가족대기실에서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는데 6시경 다시 의사선생님께서 아빠인 저만 들어오라고 해서 갔더니 이미 기문이의 숨이 멎어 있었습니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에 복받치더군요. 기문이를 부여잡고 제 인생에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울었습니다. 조금후, 아내가 들어와서는 거의 실신을 하여 휠체어에 실려 중환자실을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애통하게도 기문이는 7월27일 오후 17:40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지난 2년동안 기문이는 이 수술을 위해 준비하고 준비했었는데 수술날 아침의 "안녕"이란 귀여운 인사가 영원한 작별인사가 될 줄이야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이런 일이 찾아온 그날과 의사선생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사실, 수술전 기문이 할머니와 외할머니께서 기문이 수술을 다른 병원에서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저에게 말씀하실때 수술하시는 선생님께서 좋은 의대를 졸업하고 심장병 전문병원에서 훈련받은 선생님이시니까 한번 더 믿어보고싶다며 이대목동병원에서 수술할 것을 결정하였죠. 저의 판단이 틀리게 된 셈이 되었습니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만 워낙에 의사선생님들을 믿고 따랐던 저의 불찰을 탓할 수 밖에....
친척분들은 선천성 심장병이지만 잘먹고 잘놀고하는 아이를 죽인 의료사고라며 펄쩍펄쩍 뛰며 원통해하셨지만 우리 아기 기문이를 중환자실에서 데리고나와 영안실로 옮겼습니다.
2.기문이를 영안실에 눕펴놓고
7월28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기문이가 하늘로 간 후 처음 맞이한 날이였었죠. 저는 기문이의 장례를 위해 화장장을 예약하고 저희 집안 종교가 천주교라서 장례미사 준비 등 기문이를 위한 마지막 의식을 준비하는 한편 나중의 일을 대비하여 기문이 병상기록을 흉부외과와 소아과에 신청을 하였습니다.
소아과 기록을 신청하니 간호사분들이 예의 다 그렇다는 듯 수납을 먼저하라더군요. 수납을 해보니 특진비가 붙은15,910원이 청구되더군요. 병원기록을 원하는 대상 의사분이 기문이 주치의선생님이신 교수님이라 특진비가 붙는다라고 하더군요. 기분이 묘해지고 참 참담해졌던 순간이였습니다.
그리고, 이대목동병원 법무팀장을 만나 우리는 억울하고 원통하다. 기문이 치료과정 2년간 우리가 부담했던 비용을 돌려달라 그리고, 충분한 보상을 해달라는 요구와 기문이 주치의 두분을 만나뵙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이대목동병원의 법무팀장께서는 마지막 병원비 중 우리부담금인 600여만원 중 일부를 도의적 책임을 지고 감면해줄 수는 있지만 나머지는 좀 어려울 것 같지만 병원 내 위원회 위원들에게 우리 요구조건을 가지고 협의하겠다며 협의 결과는 다음날(7월29일)까지 알려주겠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분 의사선생님은 퇴근하신 것 같다고 전화로 알려주었습니다.
저희는 보상과는 별개로 기문이 장례를 치르기로 하고 7월29일 아침 8시에 장례식장에서 발인하고 10시에 성당에서 장례미사, 1시 30분에 화장 등 이런 순서로 장례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장례식날(7월29일) 아침 7시 20분경 이대목동병원 법무팀장이 만나잔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장례식을 도와주던 저의 회사동료가 가서 만났더니 병원비 600만원 중 선택진료비 400만원은 감면해줄 수 있지만 나머지 200여만원은 병원비를 납부해야한다는 말을 하고 만약 납부하지 않으면 기문이 시신이 나갈 수 없다고 말하였다군요. 또한, 8시 발인인데 8시반에 두분 의사선생님과 법무팀장자신과 유가족분들이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법무팀장실에 저와 아내 그리고 친척분들이 가게되었습니다.
그 순간 법무팀장이 두분의사선생님께 의학적인 질문이 있으면 다하고 기타 다른 문제는 자기가 말하겠노라고 말하였는데 저희는 의사선생님께 우리 기문이가 "어떻게 죽었고 어떻게 치료했고" 이런 말을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였는데 법무팀장은 회의 내내 의사선생님들은 잘못이 없다. 정 뭐하면 정식 소송해라는 등 자극적인 말과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200만원때문에 발인을 막는것이 비윤리적인 것이고 비상식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하자 오히려 병원은 아무 잘못이없고 병원비를 내고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며 저희의 항의를 무시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다시 들어오고를 반복하였습니다.
한참을 실갱이를 하다 저와 아내는 두분 의사선생님만의 면담에서 저희가 뵙고 싶었던 목적은 선생님들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난 3월에 제가 해외출장을 가면서 사두었던 넥타이를 선물해드리기 위해서임을 밝히고 우리 기문이는 살리지 못했지만 다른 아이는 꼭 살려달라고 말씀드리고 기문이의 마음으로 넥타이를 드렸습니다.
의사선생님들께서는 울먹이시며 저와 집사람의 손을 잡으시더군요. 특히, 저희 집사람의 손을 잡으며 한참을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후 저와 회사동료, 기문이 이모부 이렇게 3명과 법무팀장과의 면담에서 법무팀장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병원비 600만원 중 400만원은 면제해주고 200여만원은 장례식 후 의논해보자 그리고, 발인을 해라'(이미 시간은 12시를 넘어선 때)
그래서, 저희는 어떻게 발인을 하느냐 장례미사도 취소되었고 화장시간도 취소되었는데 어떻게 발인을 하느냐라고 항의하자 법무팀장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장례야 오늘안되면 내일해도 되고 모레해도 되고 3일후에 해도 되고'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았던 분노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대목동병원 법무팀장이란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법무팀장이라면 일단 오늘일은 미안하다. 장례에 최선을 다해 협조해주겠다 뭐 이런말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였더니 잠시 말을 못하더군요.
너무나 원통하고 분합니다... 자식이 죽어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것도 원통하고 분한데 돈 200만원 안내면 시신도 못나간다고 말하며 기문이를 위한 마지막 의식조차도 가로막은 이대목동병원측의 처사에 분노하고 그런 것에 더해 그래 장례식 못치르면 연기해서 하면되지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여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이대목동병원 법무팀장의 인성에 치가 떨립니다. 이런 병원에 내가 내자식을 맡기다니.....
저희는 분노하며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대목동병원측 있음을 주지시키고 책임있는 사과표시를 하라며병원장이나 법무팀장이 협의한다는 위원회분들과의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면담요청은 거부하고 오후4시까지 답변을 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오후 4시가 되자, 법무팀장은 저와 저의 직장동료만 만나고 싶다고 하여 가서 만났더니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600만원의 병원비는 전액 감면해주겠고 장례에 대한 행정상의 편의를 제공해주겠다라고 말하더군요. 행정상의 편의는 비용이 수반되지 않는 화장장예약, 이대목동병원 주차비 5대 면제등과 같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희가 거세게 항의하자 법무팀장은 또 다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병원도 비즈니스다. 당신들도 회사다니니 알지 않느냐"고 오히려 훈계를 하더군요.
저의 직장동료가 아니 세상에 병원비때문에 죽은자의 영원한 안식을 방해하는 행위를 하는 비즈니스가 어디있냐 병원비는 장례식 후 청구를 해도 되고 청구해서 안내면 채권추심업체에 넘기면 되는데 그렇게까지 할필요가 있었냐고 말하자 이대목동병원 법무팀장은 또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채권추심업체에 넘기면 수수료를 떼이지 않느냐", "식당가서 밥먹고 돈내고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것이 자식을 잃은 애비앞에서 할 소리입니까? 제 자식의 시신조차 비즈니스로 만들어 버리는 이대목동병원 이것이 당신들의 비전인 "이화의 사랑으로 21세기 건강사회를 이끌자"라는 구호와 맞는 행위입니까?
그리고, 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이대목동병원 법무팀장으로 임명하여 업무를 위임하고 관리감독하고 있는것입니까?
책임있는 답변을 듣고자 병원장님 면담을 다시한번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해 병원장실로 가서 만나줄것을 요구하자 병원장님은 외출중이란 답변과 병원장님에게 연락해주거나 병원장님 연락처를 요구하자 그럴 의무가 없다며 사무적으로 말하는 비서실 직원의 말....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차가운 시신으로 영안실에 누워있는 기문이와 임신 6개월의 편치 않은 몸으로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슬퍼할 겨를도 없는 아내를 장례식장의 컴컴한 가족대기실 한켠에 남겨두어야만하는 이 못난 가장인 제가 한없이 원통합니다......
7월30일은 하루 종일 기다렸습니다. 이대목동병원측에서 책임있고 성실한 자세를 보여줄 것이라고.... 그러나,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들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고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려워 장례미사와 화장시간을 예약했습니다. 내일 8월1일이면 발인을 해야되는 상황인데 그들이 또 막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지금 저는 이 글을 올리기 위해 장례식장에서 벗어나 아내와 모텔에서 하루밤을 청하고 있습니다. 기문이가 저희집과 목동 외가에서 2년의 짧은 삶의 반반을 나눠 살아서 현재 저희는 기문이의 추억이 있는 그 곳에 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수술을 시키다 죽인것도 억울한데, 시신조차 비즈니스대상이 되어 마음대로 영면하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나라 의료계현실이 슬픕니다. 못난 애비를 만나 죽어버린 우리 기문이와 능력없는 남편을 만나 고통받는 저의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사연이 너무 기가막혀 올려봅니다.. 힘을 보태 주세요~~~
http://bbs3.agora.media.daum.net/gaia/do/story/read?bbsId=S103&articleId=13791
.수술과 중환자실
다음달이면 2돌이 되는 우리 기문이는 지난 7월27일 하늘로 갔습니다.
선천성 심장기형인 활로씨 4징과 폐동맥협착이라는 병을 가지고 태어난 기문이는 태어나자마자 심장병 진단을 받고 지난 2년간 이대목동병원에서 수술 3회, 심장조영술 2회를 받았습니다만 7월22일 마직막 수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힘겨운 삶을 이어가다 그만 숨을 거두었습니다.
원통하고 분한 마음에 울고 또 울고 가슴이 찢어질 듯 합니다.
저희는 이번이 마지막 수술이고 이 수술만 끝나면 다른 아이같이 뛰어 놀 기문이를
상상하며 수술이 무사히 마치기를 기도하였죠.
7월22일 오전8시 수술장으로 들어가기 직전 기문이는 "윙크"와 "안녕"하며 고개를 꾸벅
숙이는 재롱을 마지막 모습으로 남기고 수술을 시작하였습니다.
수술 전, 오후 3~4시경이면 수술이 끝날것으로 설명듣고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가 나오질 않아 저녁 7시경 수술장으로 연락을 하니 아직 수술이
안끝났는데 보호자면 빨리 수술실앞으로 들어오란 말을 듣고 기문이 수술실앞으로 갔더니
의사선생님께서 "이미 3시경에 수술은 끝났지만 폐동맥혈압이 너무 높아 아이가 힘들것 같다고
마지막인사라도 하게 엄마를 수술실로 데리고 들어오란"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무나 놀랍고 당황하여 눈물밖에는 나질 않더군요.
그리고, 아내는 임신 6개월로 이 사실을 듣고 반응할 아내를 상상하니 끔찍하고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아내의 임신사실과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제발 살려달라고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럼 일단 펌프로 트라이를 계속해보겠다고 말씀하셔서, 저는 최대한 진정을 하고 아내와 장모님
그리고 처제 앞에서 이 사실을 말하려고 하는데 정말 가슴이 탁 막히면서 아무말도 못하겠더군요.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모두가 눈물을 보이며 무슨일이냐고 저를 다그쳐서 "현재 우리 아이 기문이가
힘든상황에 놓여있지만 선생님들께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금 진정하고 기다려 보자"는 말밖에는 못하였습니다.
밤 10시경 기문이는 수술장에서 나와 중환자실로 옮겨지게 되었고 저희 아내는 기문이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거의 실신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의 기문이는 의식이 없었고 가슴에 커다란 천을 덮은채로 누워있었는데 의사선생님께서는 이런 경우 살아난 환자는 없고 살아날 가능성은 단 1%도 없다고 하시더군요. 기문이 외할머니는 의사선생님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우리 기문이를 살려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울며 매달렸더니 선생님도 가능성은 없지만 약물투여를 최고 수준으로 계속 투입해보겠다고 말씀 하셨죠.
이에, 저는 아내에게 기문이가 위험한 상황이지만 기적을 믿고 기다리고 아직 계속 치료하고 있으니 희망을 가져보자고 말하며 '기문이는 중환자실에서 저희는 보호자 대기실의 의자'에서 밤낮을 지내는 기문이와의 마지막 1주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마지막 1주일 동안, 기문이가 벌떡일어나 "엄마"하며 달려나오는 기적을 바라고 임신한 아내와 뱃속 둘째아기의 안전만을 기원하였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중환자실의 기문이에게 찾아가서 " 기문아 오늘은 어땠어?","힘들지만 조금만 참고 잘해보자",
"오늘은 아빠 친구 00가 기문이 보러 왔다"며 기문이의 힘겨운 마지막 시간을 아빠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습니다.
기문이 엄마는 이렇게라도 기문이를 볼수만 있다면, 평생을 보고싶다며 이젠 "기문이를 놓아주자"란 친척분들의 말에 울며 기문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하더군요. 아빠로서 해줄것이 고작 기문이 옆에서 "힘내라 기문아"란 말과 의사선생님의 설명을 이성적(?)으로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너무 원통했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임신한 아내를 생각해서 기문이를 살려두지만 이런 상황에서 살아난 케이스는 없다라고 말씀하셨죠.
저는 기문이와 같은 다른 케이스를 찾아보고 다른 치료방법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역시 들을 수 있는 말은 가능성이 없고 다른 치료방법도 없다구 하루하루가 힘겨운 상황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의사선생님께서는 저에게 이성적이길 주문했고 수술전에 이런저런 설명을 했다는 말씀을 계속 하시더군요.
제가 그 순간에 의사선생님께 제일 듣고 싶었던 말은 "이렇게 한번해봅시다"였는데....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나 기문이의 마지막 일요일(7/27)은 다가왔습니다. 아침 7시에 아내가 기문이를 보러 중환자실에 들어갔더니 의사선생님께서 이제는 장기전이 될 것 같으니 뱃속의 아이를 생각해서 중환자가족대기실의 딱딱한 의자에서 자지말고 집에가서 좀 쉬어라는 말씀을 들었다더군요. 아내는 기문이의 상태가 이런 상태라도 유지되는줄 알고 집에 잠깐 쉬러 들어가려고 하더군요. 그러나, 10시경 의사선생님께서 저를 보자고 하셔서 갔더니 기문이 상태가 안 좋다고 오늘이라도 당장 안좋게 될 것 같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듯하다고 하시더군요.
이제 정말 마지막인가? 가슴은 답답하고 아내에게 어떻게 얘기하지하며 걱정을 하다 기문이의 상태를 아내에게 말했더니
펑펑울며 기문이를 살려달라고 저를 잡고 애원하더군요...
아내는 병상의 기문이 옆을 지키며 기문이에게 "어린 애기가 엄마 옆을 놓아두고 어디 먼데 가려구하냐구" 울며 기문이 손을 잡고 안놓더군요. 저는 옆에서 답답한 가슴을 치며 기문이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후 4시경 기문이를 놓아두고 아내와 저는 중환자가족대기실에서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는데 6시경 다시 의사선생님께서 아빠인 저만 들어오라고 해서 갔더니 이미 기문이의 숨이 멎어 있었습니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에 복받치더군요. 기문이를 부여잡고 제 인생에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에 울었습니다.
조금후, 아내가 들어와서는 거의 실신을 하여 휠체어에 실려 중환자실을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렇게 허망할 수가.... 애통하게도 기문이는 7월27일 오후 17:40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지난 2년동안 기문이는 이 수술을 위해 준비하고 준비했었는데 수술날 아침의 "안녕"이란 귀여운 인사가 영원한 작별인사가 될 줄이야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이런 일이 찾아온 그날과 의사선생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사실, 수술전 기문이 할머니와 외할머니께서 기문이 수술을 다른 병원에서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저에게 말씀하실때 수술하시는 선생님께서 좋은 의대를 졸업하고 심장병 전문병원에서 훈련받은 선생님이시니까 한번 더 믿어보고싶다며 이대목동병원에서 수술할 것을 결정하였죠. 저의 판단이 틀리게 된 셈이 되었습니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만 워낙에 의사선생님들을 믿고 따랐던 저의 불찰을 탓할 수 밖에....
친척분들은 선천성 심장병이지만 잘먹고 잘놀고하는 아이를 죽인 의료사고라며 펄쩍펄쩍 뛰며 원통해하셨지만 우리 아기 기문이를 중환자실에서 데리고나와 영안실로 옮겼습니다.
2.기문이를 영안실에 눕펴놓고
7월28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기문이가 하늘로 간 후 처음 맞이한 날이였었죠.
저는 기문이의 장례를 위해 화장장을 예약하고 저희 집안 종교가 천주교라서 장례미사 준비 등 기문이를 위한 마지막 의식을 준비하는 한편 나중의 일을 대비하여 기문이 병상기록을 흉부외과와 소아과에 신청을 하였습니다.
소아과 기록을 신청하니 간호사분들이 예의 다 그렇다는 듯 수납을 먼저하라더군요. 수납을 해보니 특진비가 붙은15,910원이 청구되더군요. 병원기록을 원하는 대상 의사분이 기문이 주치의선생님이신 교수님이라 특진비가 붙는다라고 하더군요. 기분이 묘해지고 참 참담해졌던 순간이였습니다.
그리고, 이대목동병원 법무팀장을 만나 우리는 억울하고 원통하다. 기문이 치료과정 2년간 우리가 부담했던 비용을 돌려달라 그리고, 충분한 보상을 해달라는 요구와 기문이 주치의 두분을 만나뵙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이대목동병원의 법무팀장께서는 마지막 병원비 중 우리부담금인 600여만원 중 일부를 도의적 책임을 지고 감면해줄 수는 있지만 나머지는 좀 어려울 것 같지만 병원 내 위원회 위원들에게 우리 요구조건을 가지고 협의하겠다며 협의 결과는 다음날(7월29일)까지 알려주겠노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분 의사선생님은 퇴근하신 것 같다고 전화로 알려주었습니다.
저희는 보상과는 별개로 기문이 장례를 치르기로 하고 7월29일 아침 8시에 장례식장에서 발인하고 10시에 성당에서 장례미사, 1시 30분에 화장 등 이런 순서로 장례를 진행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장례식날(7월29일) 아침 7시 20분경 이대목동병원 법무팀장이 만나잔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장례식을 도와주던 저의 회사동료가 가서 만났더니 병원비 600만원 중 선택진료비 400만원은 감면해줄 수 있지만 나머지 200여만원은 병원비를 납부해야한다는 말을 하고 만약 납부하지 않으면 기문이 시신이 나갈 수 없다고 말하였다군요.
또한, 8시 발인인데 8시반에 두분 의사선생님과 법무팀장자신과 유가족분들이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법무팀장실에 저와 아내 그리고 친척분들이 가게되었습니다.
그 순간 법무팀장이 두분의사선생님께 의학적인 질문이 있으면 다하고 기타 다른 문제는 자기가 말하겠노라고 말하였는데 저희는 의사선생님께 우리 기문이가 "어떻게 죽었고 어떻게 치료했고" 이런 말을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였는데 법무팀장은 회의 내내 의사선생님들은 잘못이 없다. 정 뭐하면 정식 소송해라는 등 자극적인 말과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200만원때문에 발인을 막는것이 비윤리적인 것이고 비상식적인 것이 아니냐고 말하자 오히려 병원은 아무 잘못이없고 병원비를 내고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며 저희의 항의를 무시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다시 들어오고를 반복하였습니다.
한참을 실갱이를 하다 저와 아내는 두분 의사선생님만의 면담에서 저희가 뵙고 싶었던 목적은 선생님들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난 3월에 제가 해외출장을 가면서 사두었던 넥타이를 선물해드리기 위해서임을 밝히고 우리 기문이는 살리지 못했지만 다른 아이는 꼭 살려달라고 말씀드리고 기문이의 마음으로 넥타이를 드렸습니다.
의사선생님들께서는 울먹이시며 저와 집사람의 손을 잡으시더군요. 특히, 저희 집사람의 손을 잡으며 한참을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후 저와 회사동료, 기문이 이모부 이렇게 3명과 법무팀장과의 면담에서 법무팀장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병원비 600만원 중 400만원은 면제해주고 200여만원은 장례식 후 의논해보자
그리고, 발인을 해라'(이미 시간은 12시를 넘어선 때)
그래서, 저희는 어떻게 발인을 하느냐 장례미사도 취소되었고 화장시간도 취소되었는데 어떻게 발인을 하느냐라고 항의하자 법무팀장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장례야 오늘안되면 내일해도 되고 모레해도 되고 3일후에 해도 되고'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참았던 분노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대목동병원 법무팀장이란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법무팀장이라면 일단 오늘일은 미안하다. 장례에 최선을 다해 협조해주겠다 뭐 이런말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하였더니 잠시 말을 못하더군요.
너무나 원통하고 분합니다... 자식이 죽어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것도 원통하고 분한데 돈 200만원 안내면 시신도 못나간다고 말하며 기문이를 위한 마지막 의식조차도 가로막은 이대목동병원측의 처사에 분노하고 그런 것에 더해 그래 장례식 못치르면 연기해서 하면되지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여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이대목동병원 법무팀장의 인성에 치가 떨립니다. 이런 병원에 내가 내자식을 맡기다니.....
저희는 분노하며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이대목동병원측 있음을 주지시키고 책임있는 사과표시를 하라며병원장이나 법무팀장이 협의한다는 위원회분들과의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면담요청은 거부하고 오후4시까지 답변을 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오후 4시가 되자, 법무팀장은 저와 저의 직장동료만 만나고 싶다고 하여 가서 만났더니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600만원의 병원비는 전액 감면해주겠고 장례에 대한 행정상의 편의를 제공해주겠다라고 말하더군요. 행정상의 편의는 비용이 수반되지 않는 화장장예약, 이대목동병원 주차비 5대 면제등과 같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저희가 거세게 항의하자 법무팀장은 또 다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병원도 비즈니스다. 당신들도 회사다니니 알지 않느냐"고 오히려 훈계를 하더군요.
저의 직장동료가 아니 세상에 병원비때문에 죽은자의 영원한 안식을 방해하는 행위를 하는 비즈니스가 어디있냐
병원비는 장례식 후 청구를 해도 되고 청구해서 안내면 채권추심업체에 넘기면 되는데 그렇게까지 할필요가 있었냐고 말하자 이대목동병원 법무팀장은 또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채권추심업체에 넘기면 수수료를 떼이지 않느냐", "식당가서 밥먹고 돈내고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억장이 무너집니다. 이것이 자식을 잃은 애비앞에서 할 소리입니까?
제 자식의 시신조차 비즈니스로 만들어 버리는 이대목동병원 이것이 당신들의 비전인 "이화의 사랑으로 21세기 건강사회를 이끌자"라는 구호와 맞는 행위입니까?
그리고, 정상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이대목동병원 법무팀장으로 임명하여 업무를 위임하고 관리감독하고 있는것입니까?
책임있는 답변을 듣고자 병원장님 면담을 다시한번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해 병원장실로 가서 만나줄것을 요구하자 병원장님은 외출중이란 답변과 병원장님에게 연락해주거나 병원장님 연락처를 요구하자 그럴 의무가 없다며 사무적으로 말하는 비서실 직원의 말....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차가운 시신으로 영안실에 누워있는 기문이와 임신 6개월의 편치 않은 몸으로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슬퍼할 겨를도 없는 아내를 장례식장의 컴컴한 가족대기실 한켠에 남겨두어야만하는 이 못난 가장인 제가 한없이 원통합니다......
7월30일은 하루 종일 기다렸습니다. 이대목동병원측에서 책임있고 성실한 자세를 보여줄 것이라고.... 그러나,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그들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고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려워 장례미사와 화장시간을 예약했습니다. 내일 8월1일이면 발인을 해야되는 상황인데 그들이 또 막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지금 저는 이 글을 올리기 위해 장례식장에서 벗어나 아내와 모텔에서 하루밤을 청하고 있습니다.
기문이가 저희집과 목동 외가에서 2년의 짧은 삶의 반반을 나눠 살아서 현재 저희는 기문이의 추억이 있는 그 곳에 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수술을 시키다 죽인것도 억울한데, 시신조차 비즈니스대상이 되어 마음대로 영면하지 못하는 지금의 우리나라 의료계현실이 슬픕니다. 못난 애비를 만나 죽어버린 우리 기문이와 능력없는 남편을 만나 고통받는 저의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해야합니까? 답답하고 억울합니다. 여러분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