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有)요즘학생들은 상상도 못할 90년대 초, 중, 고

써니텐2011.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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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톡은 안됐지만 집 지었습니다ㅎㅎ 뚝딱뚝딱~ㅋㅋ
 그리고 제가 다녔던 학교들이랑 기억나는 선생님 성함 적어보겠습니다.
 기억 안나는 분들을 찾을려고 그 학교 홈피 찾아서 가봤지만 교직원 명단이 없네요~ㅎ
 그리고 많은 분들이 헷갈려 하시는거 같은데 1995년 12월에 교육법을 개정하여96년 3월1일부터 국민학교->초등학교로 봐뀌었습니다.
고로 96년(89년생)부터 초등학교 입학자들은 오리지널 초등학생인 것이죠~ㅎ

91년(1학년) 경기도 양주군 봉암국민학교 입학, 담임선생님 성함 기억안남93년 2월(2학년 봄방학전)경남 함안군 아라국민학교 전학2학년 담임 : 서정금 선생님94년 2월(3학년 봄방학전)경남 통영시 유영국민학교 전학 3학년 담임 : 기억 안남4학년 담임 : 남자선생님이셨다가 김애랑(글에 나오는)선생님으로 봐뀜5학년 담임 : 이때 담임이 총 2번 봐뀌어 3명이 있었는데 처음 담임선생님 성함이 조진순 선생님, 2번째분이 정말 좋았는데 기억이ㅠㅠ 3번째가 김남연 선생님96년 3월(6학년초) 경남 창원시 도계초등학교 전학6학년 담임 : 기억 안남
97년(중1)창원 명서중학교 입학97년 입학식다음날(중1) 대구 수성구 경신중학교 전학중1 담임 :김귀자 선생님중2 담임 : 전승철 선생님99년 2월(중2 봄방학전) 서울 관악구 광신중학교 전학뭐 이렇게 됩니다.   중3담임 : 조명일 선생님고등학교이후는 글에 나오지 않으므로 패스~
 혹시나 저를 아시는 분 제 블로그 한번 와서 확인해 주시고 방명록 써주시는거 아시죠?ㅋ
 행복했던 그 시절... 같이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며 점심시간과 쉬는시간에 제기차기, 땅따먹기, 말타기, 오재미, 축구, 농구도 하고...

 오락실 갔다가 걸려서 개패듯이 또 맞고, 지금 생각하면 바보같던 짓들도 많이 했지만, 그때가 정말 재밌었던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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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베스트1입니다! 관심 가져주심 톡커님들 감사드리구요... 


 이대로 톡까지 달려 BoA요ㅋㅋㅋㅋㅋ 


 톡되면 공개한다는 약속 꼭!!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나의 어릴적 친구들... 갑자기 너무 생각나네요..


얘들아! 우리 다시 만날 수 있겠지?ㅠㅠ






안녕하세요~ 판을 즐겨보는 84년생(쥐띠)의 한 흔남입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저도 음슴체한번 해볼께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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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91년도에 국민학교를 입학했었음.   요즘 초, 중, 고에서는 상상도 못하겠지만 그때당시까지만 해도 학교에서의 체벌은 정말 당연한 것이었음.  오죽했으면 애들이 교사를 꿈꾸는 이유가 스트레스 받을때 학생들을 맘대로 패고 벌세울 수 있어서 라고 함.
뭐 숙제를 안해왔다거나, 준비물을 안챙겨 왔다거나, 혹은 뭔가 정말 자신이 인정하는 잘못을 했다라면 맞아도 쌈ㅎㅎ 그런데 요즘 학생들이 들으면 정말 이해가 안되는 사례들을 적어 보겠음
 혹시 이글 읽고 "어디서 9라를 쳐?" 혹은 "자작 쩌네."등의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임..
 아마 내 생각이다만 마지막으로 국민학교 입학한 88년생까지는 이정도 일을 겪었을수도 있음
 본인은 아버지의 직업상 이사를 많이 다닌 탓에 국민학교때만 전학을 3번 다녀 총 4개의 학교를 다녔고, 중학교때는 전학을 2번 하여 총 3개의 중학교를 다녔음. 고등학교때는 전학을 안다녔지만...
 그래서 아마 전국은 아니지만 90년대 초의 한국교육을 대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임
 억울 했던 사연 1번째... 
 아마 국민학교 4학년때까지(94년도)이 것은 시행 되었을 거라 기억남. 뭐 그 전에 끝났을 수도 있지만..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번 폐품을 모으는 날이 있었음 뭐 말로는 재활용품을 분리수거 하여 다시 자원으로 쓰이는 것에 대한 교육?? 뭐 그렇게 말을 했지만 그거 때문에 매주 폐품 수거 전날 놀이터, 쓰레기장등을 뒤지며 빈병, 캔, 신문등을 찾는 아이들이 많았음
 우리집의 경우 신문을 구독해서 신문은 안주워도 됐지만, 종류별로 모아와야 했기 때문에 캔과 병등은 매주 주우러 돌아다녔음 
 그런데 폐품이 뭐 학비도 아니고 학교측에서 어짜피 그거 팔아서 돈을 학생들한테 다시 나눠줄것도 아니고 뭐에 쓰일지는 모를지만 교장이나 선생들이 쓰지 학생들이 쓰지는 않을꺼 아님??
 뭐 폐품판돈 얼마나 된다고?라고 하는 사람 있을꺼임. 폐품 판돈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전교생이 다 모은 폐품이라면 나름 큰돈좀 될꺼라 생각되기도 함.
 문제는 폐품을 사정상 못구해 오거나 안가져 온 애들을 패는 거임-_- 다른애들은 가져 오는데 왜 안가져 오냐고 하면서... 뭔가 삥뜯는데 돈 없는 애들 패는 깡패가 아닌가 생각됌.
 억울 했던 사연 2번째...
초2때의 일이었음 이때 본인은 경기도 양주군에 있는 B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음.
 울반에 어떤 애가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져서 팔에 깁스하는 일이 발생한적이 있었음그런데 그 다음날 학교에서 방송을 통해 교장선생님이 한마디 하는것임. "학생들이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가 나는 사례가 있습니다. 담임선생님들께서는 안전교육을 시켜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는데 그 방송이 끝나고 담임이 하는 말"롤러 탄사람이나 자전거 탄적 있는사람 앞으로 다 나와!"라고 크게 호통을 치더니 앞에 나온 애들을 다 패는거임.
 안전교육 하랬지 패라 그랬냐? 그리고 롤러나 자전거는 당연히 그때 국딩들이 자기돈으로 샀을리 만무하고 부모님들이 타라고 사주신거일텐데 그거 탔다고 그리고 과거에 탔던적있고 현재는 안타는데 그 애들까지 다 나오라 하고 팼음.  
 그리고 아침에 학교를 가면 자습시간이었는데, 자습은 말 그대로 자율학습이라 알아서 공부하는 건데 칠판에다가 오늘의 자습이라고 읽기책(국어책이 말하기듣기, 쓰기, 읽기로 나눠져 있었음)본문 중에 하나를 노트에 3번 많게는 5번 적으라는 거임.  매일 청소가 끝나면 선생이 청소검사를 하고 검사가 끝나면 내일 자습을 칠판에 적고 퇴근함.
 뭔 뻘짓이냐?-_- 그런데 자습시간이 그렇게 긴것은 아니었고, 그 시간안에 하기는 좀 벅차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교를 갔었음. 엄마가 왜 학교를 이렇게 빨리 가냐고 하면 자습해야 된다고 하고 일찍 나감
 그런데 정 시간에 학교에 도착해서 자습을 하면 정말 어린애들이 끝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한데 그것을 못한 애들은 또 타작당함.

 억울 했던 사연 3번째...
국3학년일때 본인은 경남 함안쪽에 A국민학교를 다녔었음. 그때 진짜 억울했던거는....
소풍때 학생들이 김밥이나 치킨, 간식거리등 많이 싸오잖슴.  그때 본인은 조아라 했던 페리카나 치킨을 반반나눠 2개로 포장해 달라고 하고 하나는 누나가 가져 가고 하나는 본인이 챙겨 갔음. 소풍가서 김밥먹을때 애들하고 같이 나눠 먹을려고 했는데, 갑자기 담임이 오더니 하는 말이 "얘야, 미안한데 학교에 남아서 업무 보시는 선생님들 드려야 되니까 그 치킨 선생님 줘라."라고함-_- 진짜 안믿기는 사람 있겠지만 100%리얼임.
 그때는 어릴때고 뭐 시대가 어쩌고 하면 웃기지만 그 시절에는 진짜 선생님 말이라면 다 들어야 되는 거라 생각하고 그렇게 먹고 싶던 치킨을 그냥 선생님께 줄수 밖에 없었음. 그건 진짜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음. 왜 소풍날 선생이라는 작자가 애들한테 사탕하나라도 주지 못할 망정 애가 소풍날이라고 어머니께서 사주신 치킨을 뺏어감??
억울했던 사연 4번째...
초4때의 일임 그때 본인은 경남 통영의 Y국민학교를 다녔었음.  학교에서 줄넘기를 가져와서 배우는 시간이 있어서 줄넘기를 가져 갔는데, 운동장에서 체육시간에 애들끼리 줄넘기하다가 체육시간에는 보통 애들끼리 장난치고 그러지 않슴?  그래서 애들은 줄넘기를 정석대로 하다가 나중에는 연결해서 단체줄넘기도 하고 다른식으로 놀기도 했음.  그런데.....
 선생이 갑자기 화를 내더니 교실로 다 오라는 것임. 뭔가 하고 올라 갔는데 책상위에 다 꿇어 앉아서 의자들라는 것임.  그러더니 설교를 막하면서 마치 학생 전체를 없는 죄를 만들어서 갈구는 것임.
 왜 줄넘기 하는 시간인데 니들 맘대로 단체줄넘기를 하고 다른 장난을 치냐고 하면서 군대에서 상병이 이등병 꼬투리 잡아 갈구는 것을 넘어 북한 인민재판식으로 우리를 죄인이라 새뇌교육을 했음.
 그러더니 한명한명 정성껏 패주는 것임. 지금 생각으로는 그때 선생이 20대 후반쯤 되었던거 같은데, 아마 남친한테 차였는지 그날이라서 스트레스 받아 팬거 같음
 그 선생은 위와 같은 일이 허구한날 있었음.  지금 이 나이가 되서 생각해봐도 어린애들이 당연히 할 수 있는 행동들에 대해 심오하게 설교를 하며 끝은 항상 지휘봉으로 팼음

억울했던 사연 5번째...
 그 후에 경남 창원의 D초등학교에서는 그닥 억울했던 사연은 없었던거 같음. 아니 그 전의 학교에서 워낙 X같은 일이 많아서 왠만큼 큰일 아니면 별 반응이 없어서 그런건지도...? 아니면 그나마 시대가 좀 흘러서 교육이 조금이나 봐뀌었을수도?
그러나... 중학교 입학후 바로 대구의 K중학교로 전학을 갔음.
 그곳에서는 정말 선생들의 별명이 많았는데 기억나는 선생들의 닉네임은 맥K, 사무라이, 황마담, 싸이코, 피바다, 볼트론, SexPower 이정도??
 암튼 그학교에서 중1때(97년) 담임이었던 사람은 영어교사인 K교사 였음.  그 사람의 영어교육은 지금 외국생활을 하며 많은 외국어를 접하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인정함.
 중간 기말고사에 얽매여 교과서 위주로만 공부하지 말고, 8종교과서(그때당시는 지정교과서 몇과목 외에 8개의 출판사에 교과서를 출판해 학교마다 교제가 틀렸음)를 종합한 내용의 참고서를 구입하여 공부해야 하고 본문을 외워 A,B나누어 회화를 시키고 주1회 외국인강사가 와서 회화수업도 했음.
 그러나 그 사람은.... 너무 성적에 집착이 심했음.  시험이 하나 끝나게 되면 1등한 애들이 있을꺼고 또한 꼴등한 애들도 있을수밖에 없지 않음.  그리고 전교로 봤을때도 그 시험에서 1등반이 있으면 꼴지반이 있을 것이고...
 그때 당시 담임이 하는 말이 예전에는 그냥 장난삼아 선생들끼리 어디반이 꼴지했냐?라고 물어보기만 했다지만 요즘은 한 시험이 끝나고 그 시험때 만약 1학년 1반이 꼴지반이 되면 1반 담임은 시말서를 써야 한다고 함. 
 그래서 너희들이 더욱 성적관리를 해야 한다고 하며 잔소리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성적순으로 자리를 배치했음.  뭐 나름 효율성이 있던거는 1등과 꼴지를 짝을 이루게 하고 중간쯤 하는 애들은 같이 앉혀서 서로 공부를 도와주라고 하는 거임. 뭐 그거야 좋은 발상이다만 덧붙여서 공부 잘 하는 애가 못하는 애를 패도 된다고 하는거임.
  그럼 만약 공부 잘 하는 애가 먼저 시비걸어서 싸움이 나면 공부 못하는 애는 정당하게 싸워도 담임은 공부 못하는 애한테 뭐라고 하며 그 외에 매사의 모든 일에 성적으로 인한 차별이 너무 심했었음.
 그리고 그때 당시 대구에서는 일반고가 학생수에 비해 적어 상위 60%까지만 일반고 진학이 가능하고 나머지는 실업고로 가야 하는데 항상 하는 말이 이거였음
"공부 잘해서 일반고 가게 되면 좋은대학가서 잘 사는거고, 공부 못해서 공고나 상고, 아니면 농고 같은데 가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  대학도 못가고 공장 같은데 가서 평생 따라지로 사는거다."
 그때 반 애들 부모님 중에 사정상 대학을 못나온 분들도 계실꺼고, 공장에 다니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그런식으로 사람 비하를 많이 했었음.  
만약 지금 정신으로 그때로 돌아간다면 진심 한마디 외칠수 있을꺼 같음. 말끝마다 "니는 공부도 못하는게... 공부도 못하는게 공부도 못하는게..." 라는 대사가 입에 붙은 선생이었는데, "당신도 당신 교과목 빼고 타과목 다 시험 봐보시죠.  누가 더 공부 잘하나 봅시다!"
98년 1학기 중반정도쯤에 교육부에서 체벌금지라는 말이 최초로 나왔었음.  그런데... 그냥 무시하고 다 팼음
 나무뱃트, 알루미늄뱃트, 공사장 강목, 하키스틱, 목검, 죽도등이 학생부에 무기 진열해 놓듯 진열되어 있었고, 그때는 정말 이유없이 많이 맞았던거 같음.

 


억울했던 사연 6번째...
 위와 같은 중1 때였음.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약 한달 반정도 여름방학이고 12월 말부터 2월 초까지 또 한달 반정도 겨울방학이 진행되고 2월 중순에서 3월1일까지 봄방학이라고 있었음. 요즘 봄방학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은거 같은데 아직도 있던가??
 뭐 암튼 문제는 여름, 겨울 방학때 그 학교는 보충수업이라는 것을 했음.  그것도 방학시즌 중간타임에 하게 되어 여름에 여행을 가거나 놀거나 혹은 다른 계획을 세워 무언가를 하지도 못하게 했음.
 그런데 보충수업비라고 그때당시 상당히 비싼금액을 거둬 갔던거로 기억됌. 거기에 강제...
 그리고 방학이랍시고 매과목 선생들은 방학숙제를 내줬음.  그럼 방학숙제도 해야 되고 보충수업이라 학교도 나와야 하고... 방학을 차라리 안하는게 낫다는 학생들이 많았음.
 요즘 이런일 있었다가는 교육부 사이트 폭발할지도?ㅋㅋ
 그 후에는 나름 교사다운 선생님들을 만나 억울했던 일이 별로 없었던거 같음.


 뽀너스~ㅎ 학창시절 추억들...

 




 


 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세월은 흘러 모든 것들이 변해 가도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추억들, 
한참을 뛰어가다 돌아볼때 어김없이 
내 머릿 속을 뒤집어 놓는 아픔 속의 기억들. 

내게 상처가 된 당신의 거짓말 
이유도 모른 채 맞아야 했던 지난 날 
그럼에도 존경받기를 원하셧던 그 모습에 
내가 배운 것은 보잘 것도 없는 일할 

매 맞고 침묵 하는 법과 
타인과 날 끊임없이 비교해대는 법 
시기와 질툴, 키우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까지 

나의 추억을 되돌려 놔줘 uh! 
산산히 부서져 버린 꿈들과 yo! 

닫혀진 내 입과 억눌린 감정과 
네게 짓밟혀 숨어버린 웃음까지 모두다 

내 외침이라도 들어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인걸 uh! 

억눌렸던 모든 것들을 토해 저 위 하늘 향해 
끝까지 난 외쳐 볼꺼야 uh! 


부푼 꿈 가슴 안고, 첫발을 내딛을 때 
누구나가 그렇듯이 설레임에 가득 찼지 
온가족 함께 나와 모두 내 주윌 감싸 
넌 잘 할 수 있을거라 내 어깨를 살짝 두드렸지 

하지만 첫날부터 악몽은 바로 시작됐지 
하늘 날던 꿈들은 땅속 끝으로 곧바로 추락했지 
약자의 비굴함과 강자의 오만방자 
아직 어린 난 그곳에서 악랄한 사회를 경험했지 

내 인생의 책속 찢지 못한 페이지 
내맘 깊은곳 잊지 못할 그때지 
담장 밖이 내게 준건 내 전부의 구할 
담장안 내가 받은것은 남은 일할 

수많은 악칙과 악법, 연필보단 주먹 
동료가 되기 전에는 적, 

그 중에서 내가 살아가는데 도움된건, 
내가 가진 상상력을 이 많은 법들 앞에 굴복 시키는 것 

나의 추억을 되돌려 놔줘 uh! 
산산히 부서져 버린 꿈들과 yo! 

닫혀진 내 입과 억눌린 감정과 
네게 짓밟혀 숨어 버린 웃음까지 모두 다 

내 외침이라도 들어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인걸 uh! 

억눌렀던 모든 것들을 토해 저 위 하늘 향해 
끝까지 난 외쳐 볼꺼야!uh! 



 톡이되면 위에 말한 교사의 실명과 실제 학교이름 다 공개하겠습니다!
 명예회손으로 고소니 어쩌니 저 지금 외국생활 중이라 그런거 신경 안써서 괜찮음ㅋㅋㅋㅋㅋ

새 학기 시작! 초, 중, 고

 여러분! 힘내세요~ 








추천하면 이런 억울한 

사연 안생긴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