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시작하는 가장 첫 번째 순간은 출발하기 전날, 설렘에 잠 못 드는 밤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홍콩 여행 전날, 아침 첫 비행기를 탈 생각을 하니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뒤척이는 밤을 보내고 나니 나는 어느새 인천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차창 밖으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이른 새벽이라 버스는 텅 비었지만 여행을 위한 기대감만큼은 나를 꽉 채우고 있었다.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blackcap과는 5,6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알게 돼 지금까지 그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다녀온 홍콩여행 이야기를
blackcap의 블로그를 찾는 이들에게 들려준다고 생각하니 쑥스러운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나는 어느덧 직장 생활만 10년을 넘긴 베테랑 직장인으로,
짬이 생길 때마다 떠날 궁리만 하며 유목민이 '되고 싶은' 남자 정도로 소개하고 싶다.
비행기에 오른 뒤 3시간정도 눈을 부쳤나.. 겨우 세 시간뿐이었는데 친구와 나는 어느덧 이국 땅에 도착해 있었다. ‘허유산’ 홍콩공항에 도착하니 망고주스가 문득 생각났는데, 이곳에는 오면 꼭 들러야 한다는 유명한 망고주스 가게가 있기 때문이다.
망고주스는 홍콩 달러로 한잔에 27달러이니 우리 돈 4000원이 안 되는 가격이었다. 특이한 점은 망고 주스 속에 알로에, 코코넛, 티피오카 등이 들어간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론 코코넛이 제일 좋았다. 이곳 망고주스를 먹으니 홍콩에 왔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나는 것 같았다.
망고 주스도 한잔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전철을 타고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홍콩은 비교적 교통시설이 잘 되어 있는 편인데, 공항 철도가 시내까지 빠르게 연결되고 시내에서도 다른 교통수단을 손쉽게 갈아탈 수 있다.
공항 철도(AEL:Airport Express Line)를 기다리는 모습은 한국과 다를 게 없었다.
기다림은 무엇을 기다리느냐에 따라 그 시간이 지루해지거나 설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기다리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을 기다리는 것은 천지 차이다. 홍콩섬에 있는 숙소에 가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할 생각을 하니 우리는 설렘이 앞섰다. 망고주스와 함께 느껴지는 홍콩의 정취는 어서 여행을 시작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기차로 홍콩역으로 가는 길은 서울에서 공항으로 가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자연의 정취가 한국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이국적인 느낌은 나를 쉽사리 잠들지 못하게 했다.
여행에서 느끼는 이질감은 익숙한 것을 되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는 것 같다. 낯선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여행을 떠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친구는 홍콩역에 내리자마자 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홍콩에는 운행지역에 따라 색깔이 다른 레드, 그린, 블루 세 종류의 택시가 있는데 노선에 따라 색깔이 다른 우리나라의 시내버스와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는 홍콩 전 지역을 운행하는 빨간 택시를 타고 홍콩 시내로 들어섰다.
홍콩을 거쳐가는 이들이 아닌, 이곳에서 삶을 보내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아시아인이지만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의 모습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홍콩에서 이틀을 보낼 렁콰이펑 호텔까지는 홍콩역에서 약 15분 정도가 걸렸는데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돌아 언덕에 이르니 어딘가 정겹게 느껴지는 조그만 호텔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 성수기 시즌에는 대체적으로 어딜가나 숙박요금이 높기 때문에 보통 힐튼이나 메리오트 같은 유명 프렌차이즈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국의 향취를 좀 더 가까이서 느끼고 싶은 마음에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똑같은 분위기의 호텔대신 시내 작은 골목의 호텔은 선택했다. 호텔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약간의 걱정도 있었지만 직접 본 모습은 꽤 훌륭했다.
란콰이펑 호텔은 오리엔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부띠끄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규모지만 전통성과 세련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런콰이펑은 작지만 독창성이 있는 홍콩의 모습과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까다로운 친구 역시 이곳의 분위기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런콰이펑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지리상 시내 중심부와 가깝고 이동이 편리하다는 점이다. 홍콩의 중심지인 센트럴까지 걸어 갈 수 있고, 명물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도 꽤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장점이 지리상의 위치라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경치가 좋았단 점이다. 호텔에서 내려다보면 홍콩의 시내뿐만 아니라 마카오로 가는 페리와 항구가 한눈에 들어 온다. 유명호텔 부럽지 않은 경치와, 이곳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는 앞으로 홍콩 여행을 할 이들에게도 추천해줄 만하다.
이틀간 묵을 방은 26층 항구가 한눈에 보이는 하버뷰라는 이름의 방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객실과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보니 다시 한 번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묵은 객실은 특이하게도 창틀이 좌식 티 테이블로 되어 있었다. 짐을 풀기도 전에 홍콩의 이국적인 풍경에 취해 다비도프 한 대를 피웠다. 리치 블루의 향이 홍콩의 거리를 모습을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것 같았다.
짐을 풀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시내로 나섰다. 이곳은 IFC몰에 위치한 ‘크리스탈 제이드’라는 곳인데
한국에도 지점이 있어 홍콩 요리 맛집으로 소개되기도 하던 곳이다.
메뉴는 한국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런치타임이 끝난 후라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몇 개 되지 않았다. 배가 고픈 마음에 그간 한국에서 맛 보았던 메뉴들을 신속하게 골랐다. 친구와 별 다른 말도 없이 허기를 채우고 나니 아뿔싸, 사진을 찍지 않은 게 생각났다. ‘크리스탈 제이드’의 훌륭했던 홍콩 요리들은 아쉽지만 기억으로만 남아있어야 했다.
‘IFC몰’은 센트럴에 위치한 홍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쇼핑몰이다. 200개가 넘는 해외 브랜드가 입점해 있기 때문에 무척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특히 고급 백화점 ‘레인 크로포드’가 입점해 있는 층은 분위기마저 사뭇 다르다.
왁자지껄한 인간미와 현란한 분위기가 떠 오르는 홍콩의 이미지와는 달리 ‘레인 크로포드’ 만큼은 차분하고 한 결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띈 곳은 ‘씨티 슈퍼’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세계 각국의 식자재를 모아 판매하는 곳이다.
나는 음식이 그 나라를 함축하고 있는 가장 상징적인 문화 코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음식 재료들이 있는 ‘씨티 슈퍼’는 전 세계의 소소한 문화들을 한 꺼 번에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마자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이 있었는데
통째로 훈제한 그 상태에서 바로 바로 썰어주는 하몽이었다.
살라미와 비슷한 하몽은 삼겹살 다음으로
모든 술에 어울리는 궁극의 안주라고 생각할 정도로 즐겨 먹는 편이다. 저 다리 한 짝만 있어도 두고두고 잘라가며 몇 해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친구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본격적으로 하몽 삼매경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몽은 흑돼지로 만든 이베리코 하몽과 흰 돼지로 만든 세라노 하몽이 있다. 흑 돼지에도 종류가 있는데 cebo는 사료를 먹여 우리에서 키운 낮은 등급의 상품이며 bellota는 들판에 방목해 도토리를 먹여 키운 최고급 상품이다.
우리는 하몽 중에 최고라 할 수 있는 이베리코 bellota 하몽을 사기로 했다. 흰 돼지로 만든 하몽 세라노는 큰 덩어리를 보통 기계로 썰어주는데 이베리코 하몽은 직접 나이프로 한 장씩 슬라이스 해 주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기계의 열 때문에 맛이 손상되는 것을 막아 씹는 맛을 더욱 좋게 하기 위해서다. 이곳 역시 이베리코 하몽은 직접 슬라이스 해 주었다.
작은 차이지만 음식에 대한 이런 생각들은 만드는 이와 먹는 이,
모두를 고려하는 나름의 음식철학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런 작은 부분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과 함께 문화가 만들어 지는 게 아닐까.
정신 없이 쇼핑몰을 헤집고 다녔더니 창 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밥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피자 익스프레스’는 별생각 없이 허기에 이끌려 들어섰던 곳이지만 꽤 훌륭한 곳이었다. 기본적으로 세팅 되는 마늘 올리브와 칠리 올리브, 따로 시키지 않아도 음료에 레몬을 넣어주는 센스는 홍콩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서비스였다.
화덕에서 구워 나온 피자는 참나무 향이 배어있어 입맛을 더욱 돋구어 주는 것 같았다.
한 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친구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기껏 홍콩에 왔는데 만국 공용 음식인 피자를 먹고 있다니… 근데 너무 맛있다.” 맞는 말이라고 웃어 넘겼는데 지금에 와서도 자꾸 생각나는 순간이다. 홍콩에 왔으니 홍콩음식을 제대로 즐겨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피자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먹었던 것 보다 훨씬 맛있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일 아닌가? 친구와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맛있게 접시를 비우고 나왔건만 우리는 결국 홍콩 전통 식당으로 향하고 말았다.
피자의 참나무 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도착한 곳은 재스민 가든 중식당이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빈 자리 찾기가 힘들만큼
관광객들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었다.
배가 부르니 여유가 있게 사진도 남기고 고량주도 한잔 하는 여유가 생겼다. 친구는 샥스핀 수프를 주문했는데 느끼하지 않도록 고수를 달라고 하니, 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지만 홍콩 식으로 먹기 시작했는데 친구는 느끼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반 이상 남기고 말았다.
친구는 홍콩을 상징하는 전통음식을 먹어 봐야 한다며 이 식당에 온 것이 새삼 후회되는 눈치였다. 식당을 나서면서 피자만큼 전 세계인의 입맛을 골고루 사로잡은 음식도 없을 거라며, 새삼 피자예찬론을 펼치는 친구에게 다비도프를 건넸다.
그러자 친구는 내가 한국이든 유럽이든, 어딜 가든지 꼭 다비도프를 피우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고유의 특성을 지닌 음식이라도 결국은 입맛에 맞고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나. 이날 식도락의 결론은 결국 ‘어딜 가든 입에 맞는 걸로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로 끝을 맺은셈이다.
홍콩 도착한 후로 센트럴 역 근처에서만 세 끼를 해결 했더니 지쳐서가 아니라 배가 불러 이동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결국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향하는데 맞은 편에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이 보였다. 바로 장국영이 생을 마감한 그곳.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영웅본색 속 장국영의 모습을 떠 올리며 테마곡 ‘단녕정’을 흥얼거렸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공간으로나마 느끼고 되짚어 볼 수 있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 아닐까…
숙소의 도착해서는 다음 날 또 다른 ‘유목’의 기쁨을 맞이 할 생각에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지에서의 밤은 늘 여행 속의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는 거점 시간인 듯한 생각이 들곤 한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뒤척이다가 겨우겨우 잠에 들었다. 다음 날은 센트럴 지역을 떠나 침사추이로 가볼 예정이었다.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낯선 순간들은 어떻게든 내 안에서 변화를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정한 기억으로 남아 언제든지 다시금 떠올라 누군가를 자극시킨다. 이번 홍콩 여행은 우리의 삶이 결국 낯선 이들과 함께하는 삶의 연속이라는 깨달음과
삶의 흔적이 숨쉬는 홍콩 여행 스케치, 첫 번째
여행을 시작하는 가장 첫 번째 순간은 출발하기 전날, 설렘에 잠 못 드는 밤의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홍콩 여행 전날, 아침 첫 비행기를 탈 생각을 하니 쉽사리 잠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뒤척이는 밤을 보내고 나니 나는 어느새 인천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차창 밖으론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이른 새벽이라 버스는 텅 비었지만 여행을 위한 기대감만큼은 나를 꽉 채우고 있었다.
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blackcap과는 5,6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알게 돼 지금까지 그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친구와 함께 다녀온 홍콩여행 이야기를
blackcap의 블로그를 찾는 이들에게 들려준다고 생각하니 쑥스러운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나는 어느덧 직장 생활만 10년을 넘긴 베테랑 직장인으로,
짬이 생길 때마다 떠날 궁리만 하며 유목민이 '되고 싶은' 남자 정도로 소개하고 싶다.
비행기에 오른 뒤 3시간정도 눈을 부쳤나..
겨우 세 시간뿐이었는데 친구와 나는 어느덧 이국 땅에 도착해 있었다.
‘허유산’ 홍콩공항에 도착하니 망고주스가 문득 생각났는데,
이곳에는 오면 꼭 들러야 한다는 유명한 망고주스 가게가 있기 때문이다.
망고주스는 홍콩 달러로 한잔에 27달러이니 우리 돈 4000원이 안 되는 가격이었다.
특이한 점은 망고 주스 속에 알로에, 코코넛, 티피오카 등이 들어간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론 코코넛이 제일 좋았다.
이곳 망고주스를 먹으니 홍콩에 왔다는 사실이 새삼 실감나는 것 같았다.
망고 주스도 한잔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전철을 타고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홍콩은 비교적 교통시설이 잘 되어 있는 편인데,
공항 철도가 시내까지 빠르게 연결되고 시내에서도 다른 교통수단을 손쉽게 갈아탈 수 있다.
공항 철도(AEL:Airport Express Line)를 기다리는 모습은 한국과 다를 게 없었다.
기다림은 무엇을 기다리느냐에 따라 그 시간이 지루해지거나 설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기다리는 것과 하고 싶은 일을 기다리는 것은 천지 차이다.
홍콩섬에 있는 숙소에 가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할 생각을 하니 우리는 설렘이 앞섰다.
망고주스와 함께 느껴지는 홍콩의 정취는 어서 여행을 시작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기차로 홍콩역으로 가는 길은 서울에서 공항으로 가는 것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자연의 정취가 한국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이국적인 느낌은
나를 쉽사리 잠들지 못하게 했다.
여행에서 느끼는 이질감은 익숙한 것을 되돌아보게 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시야를 넓혀주는 것 같다.
낯선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여행을 떠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친구는 홍콩역에 내리자마자 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홍콩에는 운행지역에 따라 색깔이 다른 레드, 그린, 블루 세 종류의 택시가 있는데
노선에 따라 색깔이 다른 우리나라의 시내버스와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는 홍콩 전 지역을 운행하는 빨간 택시를 타고 홍콩 시내로 들어섰다.
홍콩을 거쳐가는 이들이 아닌, 이곳에서 삶을 보내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같은 아시아인이지만 다른 언어,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의 모습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홍콩에서 이틀을 보낼 렁콰이펑 호텔까지는 홍콩역에서 약 15분 정도가 걸렸는데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돌아 언덕에 이르니 어딘가 정겹게 느껴지는 조그만 호텔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행 성수기 시즌에는 대체적으로 어딜가나 숙박요금이 높기 때문에
보통 힐튼이나 메리오트 같은 유명 프렌차이즈 호텔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국의 향취를 좀 더 가까이서 느끼고 싶은 마음에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똑같은 분위기의 호텔대신 시내 작은 골목의 호텔은 선택했다.
호텔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약간의 걱정도 있었지만 직접 본 모습은 꽤 훌륭했다.
란콰이펑 호텔은 오리엔탈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부띠끄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작은 규모지만 전통성과 세련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런콰이펑은
작지만 독창성이 있는 홍콩의 모습과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까다로운 친구 역시 이곳의 분위기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런콰이펑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지리상 시내 중심부와 가깝고 이동이 편리하다는 점이다.
홍콩의 중심지인 센트럴까지 걸어 갈 수 있고, 명물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도 꽤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장점이 지리상의 위치라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경치가 좋았단 점이다.
호텔에서 내려다보면 홍콩의 시내뿐만 아니라 마카오로 가는 페리와 항구가 한눈에 들어 온다.
유명호텔 부럽지 않은 경치와, 이곳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는
앞으로 홍콩 여행을 할 이들에게도 추천해줄 만하다.
이틀간 묵을 방은 26층 항구가 한눈에 보이는 하버뷰라는 이름의 방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객실과 눈앞에 펼쳐진 경치를 보니 다시 한 번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묵은 객실은 특이하게도 창틀이 좌식 티 테이블로 되어 있었다.
짐을 풀기도 전에 홍콩의 이국적인 풍경에 취해 다비도프 한 대를 피웠다.
리치 블루의 향이 홍콩의 거리를 모습을 더욱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것 같았다.
짐을 풀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시내로 나섰다.
이곳은 IFC몰에 위치한 ‘크리스탈 제이드’라는 곳인데
한국에도 지점이 있어 홍콩 요리 맛집으로 소개되기도 하던 곳이다.
메뉴는 한국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런치타임이 끝난 후라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몇 개 되지 않았다.
배가 고픈 마음에 그간 한국에서 맛 보았던 메뉴들을 신속하게 골랐다.
친구와 별 다른 말도 없이 허기를 채우고 나니 아뿔싸, 사진을 찍지 않은 게 생각났다.
‘크리스탈 제이드’의 훌륭했던 홍콩 요리들은 아쉽지만 기억으로만 남아있어야 했다.
‘IFC몰’은 센트럴에 위치한 홍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쇼핑몰이다.
200개가 넘는 해외 브랜드가 입점해 있기 때문에 무척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특히 고급 백화점 ‘레인 크로포드’가 입점해 있는 층은 분위기마저 사뭇 다르다.
왁자지껄한 인간미와 현란한 분위기가 떠 오르는 홍콩의 이미지와는 달리
‘레인 크로포드’ 만큼은 차분하고 한 결 여유로운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띈 곳은 ‘씨티 슈퍼’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세계 각국의 식자재를 모아 판매하는 곳이다.
나는 음식이 그 나라를 함축하고 있는 가장 상징적인 문화 코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음식 재료들이 있는 ‘씨티 슈퍼’는 전 세계의 소소한 문화들을 한 꺼 번에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매장에 들어서자 마자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이 있었는데
통째로 훈제한 그 상태에서 바로 바로 썰어주는 하몽이었다.
살라미와 비슷한 하몽은 삼겹살 다음으로
모든 술에 어울리는 궁극의 안주라고 생각할 정도로 즐겨 먹는 편이다.
저 다리 한 짝만 있어도 두고두고 잘라가며 몇 해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친구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본격적으로 하몽 삼매경에 빠지기 시작했다.
하몽은 흑돼지로 만든 이베리코 하몽과 흰 돼지로 만든 세라노 하몽이 있다.
흑 돼지에도 종류가 있는데 cebo는 사료를 먹여 우리에서 키운 낮은 등급의 상품이며
bellota는 들판에 방목해 도토리를 먹여 키운 최고급 상품이다.
우리는 하몽 중에 최고라 할 수 있는 이베리코 bellota 하몽을 사기로 했다.
흰 돼지로 만든 하몽 세라노는 큰 덩어리를 보통 기계로 썰어주는데
이베리코 하몽은 직접 나이프로 한 장씩 슬라이스 해 주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기계의 열 때문에 맛이 손상되는 것을 막아 씹는 맛을 더욱 좋게 하기 위해서다.
이곳 역시 이베리코 하몽은 직접 슬라이스 해 주었다.
작은 차이지만 음식에 대한 이런 생각들은 만드는 이와 먹는 이,
모두를 고려하는 나름의 음식철학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런 작은 부분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과 함께 문화가 만들어 지는 게 아닐까.
정신 없이 쇼핑몰을 헤집고 다녔더니 창 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밥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근처 식당으로 향했다.
‘피자 익스프레스’는 별생각 없이 허기에 이끌려 들어섰던 곳이지만 꽤 훌륭한 곳이었다.
기본적으로 세팅 되는 마늘 올리브와 칠리 올리브,
따로 시키지 않아도 음료에 레몬을 넣어주는 센스는 홍콩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서비스였다.
화덕에서 구워 나온 피자는 참나무 향이 배어있어 입맛을 더욱 돋구어 주는 것 같았다.
한 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친구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기껏 홍콩에 왔는데 만국 공용 음식인 피자를 먹고 있다니… 근데 너무 맛있다.”
맞는 말이라고 웃어 넘겼는데 지금에 와서도 자꾸 생각나는 순간이다.
홍콩에 왔으니 홍콩음식을 제대로 즐겨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는 피자라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먹었던 것 보다 훨씬 맛있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일 아닌가?
친구와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맛있게 접시를 비우고 나왔건만
우리는 결국 홍콩 전통 식당으로 향하고 말았다.
피자의 참나무 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도착한 곳은 재스민 가든 중식당이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빈 자리 찾기가 힘들만큼
관광객들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었다.
배가 부르니 여유가 있게 사진도 남기고 고량주도 한잔 하는 여유가 생겼다.
친구는 샥스핀 수프를 주문했는데 느끼하지 않도록 고수를 달라고 하니, 아무도 알아듣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지만 홍콩 식으로 먹기 시작했는데
친구는 느끼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반 이상 남기고 말았다.
친구는 홍콩을 상징하는 전통음식을 먹어 봐야 한다며 이 식당에 온 것이 새삼 후회되는 눈치였다.
식당을 나서면서 피자만큼 전 세계인의 입맛을 골고루 사로잡은 음식도 없을 거라며,
새삼 피자예찬론을 펼치는 친구에게 다비도프를 건넸다.
그러자 친구는 내가 한국이든 유럽이든, 어딜 가든지 꼭 다비도프를 피우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고유의 특성을 지닌 음식이라도 결국은 입맛에 맞고 맛있는 걸 먹어야 한다나.
이날 식도락의 결론은 결국 ‘어딜 가든 입에 맞는 걸로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한다’로 끝을 맺은셈이다.
홍콩 도착한 후로 센트럴 역 근처에서만 세 끼를 해결 했더니 지쳐서가 아니라
배가 불러 이동하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결국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향하는데 맞은 편에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이 보였다.
바로 장국영이 생을 마감한 그곳.
숙소로 돌아올 때까지 영웅본색 속 장국영의 모습을 떠 올리며 테마곡 ‘단녕정’을 흥얼거렸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공간으로나마 느끼고 되짚어 볼 수 있다는 것은 여행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이 아닐까…
숙소의 도착해서는 다음 날 또 다른 ‘유목’의 기쁨을 맞이 할 생각에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지에서의 밤은 늘 여행 속의 또 다른 여행을 준비하는 거점 시간인 듯한 생각이 들곤 한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뒤척이다가 겨우겨우 잠에 들었다.
다음 날은 센트럴 지역을 떠나 침사추이로 가볼 예정이었다.
여행지에서 경험하는 낯선 순간들은 어떻게든 내 안에서 변화를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정한 기억으로 남아 언제든지 다시금 떠올라 누군가를 자극시킨다.
이번 홍콩 여행은 우리의 삶이 결국 낯선 이들과 함께하는 삶의 연속이라는 깨달음과
그것을 환기시킬 수 있는 기억을 남겨준 것 같다.
나의 경험이 홍콩 여행 스케치를 통해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전달 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세 얼간이>로 본 발리우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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