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초·중·고교 역사수업 시간에 '민주주의'와 관련해선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밖에 가르칠 수 없는 것일까?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9일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초·중·고교 역사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에 대해, 교육 현장에선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4·19 혁명과 6월 민주항쟁 등 시민운동에 대한 교육이 퇴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주로 '반공'과 동일시되고, 이렇게 되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의 독재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었다고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교과부가 고시한 개정 교육과정의 교과별 각론은 앞으로 제작될 교과서 개발의 토대가 되고, 교과서를 검정할 때 기준이 되는 세부지침이다. A4용지로 56쪽에 이르는 역사 교육과정 각론에는 역사 과목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교과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 교육 방향과 핵심이 단원별로 적시돼 있다.
검정 교과서 출판사의 집필진은 이 내용을 토대로 이미 교과서 밑그림 제작에 들어간 상태다. 교과부는 내년 4월 검정 교과서가 각론에 맞게 제작됐는지 여부를 심의한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 교사들과 교과서 필자들은 역사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수정돼 근현대사 교육이 크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우선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 미화에 악용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검정 교과서를 집필하다 보면 교과부의 검정 합격이 목표이기 때문에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그냥 '민주주의'라고 하면 해방 이후 한국사가 독재에 대항한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이기 때문에,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극복하는 과정으로서의 역사 서술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을 기본으로 두고, '6·25 전쟁에서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를 수호했다'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어, 이승만의 공과 중 공에 대한 내용이 부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사 교과서 필자인 서울의 또다른 고교 교사는 "보통 이승만 독재에 저항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인데, 이번 각론의 변화로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를 시작하고 지켜낸' 인물로 서술될 것"이라며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는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에서 논의된 '민주 공화정'인데, 이승만이 민주주의를 새로 만든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고 있는 경기도의 한 고교 교사는 "이승만과 박정희 등 민주주의에 반하는 독재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서 4·19 혁명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의 역사를 서술해왔는데, 각론대로라면 이승만과 박정희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국가를 만들거나 경제를 발전시킨 인물이라는 점이 강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개념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협소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ㅁ고의 한 역사 교사는 "뉴라이트 학자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로 한정되고, 이 밖에는 민주주의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며 "민주주의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고 꼭 자유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가 아닌데, 이런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되면 학생들의 사고의 폭도 함께 협소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 대표(서울 신현고 교사)는 "1945년 제헌의회가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는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우리 헌법에는 민주적 사회권을 보장하는 경제 조항 등이 충분히 표현돼 있는데, 자유민주주의 개념은 민주적 기본권 교육에서 사회권 관련 부분을 배제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신철 성균관대 교수(사학과)는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민주화운동사나 정치사가 아니라, △경제성장 중심 △근대화 중심 △산업화 중심의 제도사 교육으로 바꿀 위험성이 있다"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의 경제성장이 가능했고, 시장경제가 발전해서 민주주의도 더 발전했다는 순환논법이 그 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과목 교육과의 개념 충돌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서울 ㅂ중의 역사 교사는 "각론의 역사 교육과정에는 자유민주주의가 포함됐지만, 중학교 '일반사회'와 고등학교 '법과 사회' 등 다른 사회과 과목에는 자유민주주의란 말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며 "교육 현장에서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꿨나?
[한겨레신문 2011-08-22]
근현대사 교육현장 혼란
앞으로 초·중·고교 역사수업 시간에 '민주주의'와 관련해선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밖에 가르칠 수 없는 것일까?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9일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초·중·고교 역사 교육과정을 고시하면서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바꾼 것에 대해, 교육 현장에선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4·19 혁명과 6월 민주항쟁 등 시민운동에 대한 교육이 퇴보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주로 '반공'과 동일시되고, 이렇게 되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등의 독재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었다고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교과부가 고시한 개정 교육과정의 교과별 각론은 앞으로 제작될 교과서 개발의 토대가 되고, 교과서를 검정할 때 기준이 되는 세부지침이다. A4용지로 56쪽에 이르는 역사 교육과정 각론에는 역사 과목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교과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등 교육 방향과 핵심이 단원별로 적시돼 있다.
검정 교과서 출판사의 집필진은 이 내용을 토대로 이미 교과서 밑그림 제작에 들어간 상태다. 교과부는 내년 4월 검정 교과서가 각론에 맞게 제작됐는지 여부를 심의한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 교사들과 교과서 필자들은 역사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로 수정돼 근현대사 교육이 크게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우선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 미화에 악용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검정 교과서를 집필하다 보면 교과부의 검정 합격이 목표이기 때문에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그냥 '민주주의'라고 하면 해방 이후 한국사가 독재에 대항한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이기 때문에, 이승만·박정희 독재를 극복하는 과정으로서의 역사 서술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을 기본으로 두고, '6·25 전쟁에서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를 수호했다'는 개념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어, 이승만의 공과 중 공에 대한 내용이 부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사 교과서 필자인 서울의 또다른 고교 교사는 "보통 이승만 독재에 저항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인데, 이번 각론의 변화로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를 시작하고 지켜낸' 인물로 서술될 것"이라며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는 3·1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에서 논의된 '민주 공화정'인데, 이승만이 민주주의를 새로 만든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역시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고 있는 경기도의 한 고교 교사는 "이승만과 박정희 등 민주주의에 반하는 독재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서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등의 역사를 서술해왔는데, 각론대로라면 이승만과 박정희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국가를 만들거나 경제를 발전시킨 인물이라는 점이 강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개념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협소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 ㅁ고의 한 역사 교사는 "뉴라이트 학자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로 한정되고, 이 밖에는 민주주의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며 "민주주의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고 꼭 자유민주주의만이 민주주의가 아닌데, 이런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게 되면 학생들의 사고의 폭도 함께 협소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 대표(서울 신현고 교사)는 "1945년 제헌의회가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는 공식적으로 논의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우리 헌법에는 민주적 사회권을 보장하는 경제 조항 등이 충분히 표현돼 있는데, 자유민주주의 개념은 민주적 기본권 교육에서 사회권 관련 부분을 배제하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신철 성균관대 교수(사학과)는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민주화운동사나 정치사가 아니라, △경제성장 중심 △근대화 중심 △산업화 중심의 제도사 교육으로 바꿀 위험성이 있다"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의 경제성장이 가능했고, 시장경제가 발전해서 민주주의도 더 발전했다는 순환논법이 그 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과목 교육과의 개념 충돌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서울 ㅂ중의 역사 교사는 "각론의 역사 교육과정에는 자유민주주의가 포함됐지만, 중학교 '일반사회'와 고등학교 '법과 사회' 등 다른 사회과 과목에는 자유민주주의란 말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며 "교육 현장에서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신문 김민경 이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