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것이 알고 싶다. - 주검으로 돌아온 엄마의 한 달’편을 보셨거나 그 사건에 대하여 들어 보셨나요?
저는 월드컵이 한창이었던 지난 2002년 6월 5일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 집에서 실종 돼 23일 만에 옥상 물탱크 실에서 발견된 故 강정숙 씨의 딸 입니다.
당시 저희 가족은 아버지 송현섭, 어머니 故 강정숙, 오빠 송기석, 그리고 저 이렇게 네 식구가 여느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사실 아주 평범하다 할 수는 없겠네요, 어릴 적 아버지가 큰 교통사고로 몸이 많이 불편하세요. 제가 4살 때 사고가 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까지 약 5년간 부산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여러 차례 대 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아빠의 사고는 가족의 환경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그 생활 속에서 집을 이끌어 나갔던 사람은 저희 엄마셨죠. 집도 아빠 병원 옆 단칸방으로 옮겨 아빠의 병수발을 들면서 저희 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제 어릴 적 기억이지만 그 당시 엄마는 비록 아빠가 장애인이시더라도 저희들은 떳떳하고,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애쓰셨습니다. 아빠와 저희 남매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셨고 퇴원 후 아빠 사고의 보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알뜰살뜰 생계를 꾸렸습니다.
제 나이 초등학교 3학년에 청주로 이사를 왔고 아빠의 보상금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원룸빌라 두 채를 짓고 월세를 받아 생활해 나갔습니다. 점점 안정을 찾으며 행복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죠. 하지만 저희 남매가 중학교에 가면서 좀 더 나은 교육을 시키려 돈을 벌고자 화장품 회사에 취직을 하셨다가 저희에게 소홀해 지시는 것 같다며 낮에는 학부모회를 쫓아다니시고 밤에는 대리운전 일을 하시며 그렇게 저희만을 위해 사셨습니다. 단 한 번도 아침밥을 거르게 하지 않을 정도로 저희를 사랑하시고 항상 강인하고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엄마의 보살핌 덕에 저희 네 가족은 열심히 살았고 또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엄마의 실종과 사망으로 저희 가족의 삶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엄마의 사망은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몸도 성치 않고 마음도 여린 아버지와 고1, 중3이었던 어린 저희 남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기억으로 아직까지도 남아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꿈같은 나날이었고 엄마를 잃은 슬픔에 이성적인 생각과 행동이 불가능 했고 경제적인 생활고까지.. 상황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집으로 소문이 나자 세입자들이 모두 다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도 없자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결국 여러 차례 뿔뿔이 이사를 다니며 아빠는 한 쪽 팔로 온갖 장사를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억울하게 돌아가신 제 엄마의 한을 풀어 드리지 못한 채로는 그 끔찍한 기억을 지우고 살아 갈 자신이 없어
엄마의 사건을 한 번이라도 정확하게 알고 싶어 재수사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지난 2010년 청주 택시연쇄살인사건이 알려지면서 저희 엄마 뿐 아니라 죄 없는 여러 희생자가 있음을 알았고 엄마의 죽음도 꼭 밝혀내리라 다짐하며 인터넷에 아래 글을 썼습니다.
2010년 작성한 제 글입니다 http://pann.nate.com/talk/201461825
글을 쓴 후 저희 엄마의 사건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여기저기 알려지기 시작했고 방송국에서까지 연락이 왔습니다.
SBS ‘큐브’라는 프로그램의 이수진 작가님과 한정구 피디님을 비롯한 관계자여러분들께서 진심으로 도움을 주시려 하셨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저희들을 대신해서 많은 것을 알아보고자 많이 노력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방송을 하려면 어느 정도 경찰 쪽의 협조가 필요한데 경찰 쪽에서 저희 어머니 사건에 대해서 답변조차도 하지 않으려한다고 했습니다.
그냥 무조건 모른다고만 했답니다.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니 놀라 일이 커질까 그러는 거겠지만 저희 피해자가족들이 찾아가 알아보려고 해도 그냥 다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인터넷상에서 이슈가 되었고 많은 분들이 격려와 관심을 주시고 계셔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뭉클해졌지만
과연 저희가 이 사건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정말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고 또다시 그렇게 점점 묻혀 가는 듯 했습니다.
정말로 제가 엄마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을지 너무 겁이 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1년 반 정도 지난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큐브 작가님의 부탁을 받고 박진용PD님을 비롯한 분들이 제게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으로 그 당시의 기억을 다 지우고 살았고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오빠는 그 일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끔찍한 모든 기억을 되살렸고 실은 다시 그 당시의 심리 상태로 돌아가 힘들어 합니다. 저도 방송을 통해 그 지난 기억을 돌이키다 보니 너무나 무섭고 겁이 납니다.
하지만 이대로 다시 그 때처럼 시간이 그냥 지나버릴까 더욱 더 무섭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이지만 당시 CCTV사진은 너무나 정확하게 범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태연한 얼굴을 하고, 중3이었던 제가 잊지 못 할 만큼 인상적인 그 얼굴을 이제는 사진이 아닌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을 알고 싶습니다.
제발 저희밖에 몰랐던 제 엄마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002년 청주 수곡동 부녀자 살인사건 다시 재수사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한 가지 더 말씀 드릴 것 은 제가 글을 썼을 때에도 이번에 방송을 하면서도 경찰들을 탓하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지어낸 부분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경찰들의 허술한 조사에 너무나도 화가 나고 안타깝지만 분명 저희 가족이 가장 큰 잘못을 해왔거든요, 그냥 아무것도 못하고 흐지부지 다 묻히게 놔두었으니까요.
어찌 보면 다 핑계이겠지만 저와 오빠는 너무나 어렸고 저희 아버지도 당시 너무나 큰 충격으로 정상적인 생각과 생활이 불가능했고 범인을 잡으려던 생각보다는 엄마를 잃은 슬픔에 감당하기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엄마의 사건이 묻혀가고 경찰들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고 손을 떼고 그렇게 아무런 희망도 없어져 갈 때 까지도 제가 길가다 남자만 보면 다 쫓아다니며 얼굴을 확인하고 매일 밤 범인과 엄마의 꿈을 꾸고 그렇게 힘들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아빠도 제가 잊고 살기를 바라셔서 갖고 있던 사진마저도 못 보게 하려다보니 저희에게 남아있던 범인의 자료들이 그렇게 없어져 버렸던 것 같습니다.
저희 아빠는 이제 와서 후회하고 해봤자 소용없지만 정말로 저와 오빠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번 방송에 나온 그 당시 경찰의 인터뷰를 보고도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물론 가족이 제 1의 용의자가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자신의 감이 그렇다고 하면서 지체장애인1급이신 아빠를 의심하고 증거가 명확한 것을 보고도 지금까지 아빠만을 범인이라 믿고 있다는 말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제 아빠를 의심하더라도 강도나 실종 사건의 기본이 되는 지문수사나 건물수사 하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엄마의 사체가 발견 된 곳인 물탱크 실에 처음부터 있었는지 존재여부조차 정확한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처음에는 그 곳에 없었다고 했으나 경찰은 아닐 것 이라고만 합니다.
그때, 엄마가 발견되기 전에, 실종 되었을 때 확실히 수사해서 확인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건물들을 일찍 수색했다면 물탱크 실에 있었어도 일찍 발견해서 증거가 더욱 많았을 지도 모르고, 없었다면 건물 내 다른 곳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심증이 있었어도 여러 가지 수사를 병행하며 진행했어야 하는 게 경찰이 할 일입니다. 그 경찰의 인터뷰 내용 중에 가장 제 가슴을 찢어 놓은 말은 “억울하면 분신자살을 하지 경찰서에 드나들지 않을 거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시절 어린 제가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경찰이 그런 분이었다는 것이 너무나 어이가 없고 허무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엄마의 한을 풀어드리고자 글도 쓰고 방송도 했지만 저는 마음 약한 제 아빠께서 증거를 어쩌다 다 버리고 경찰 탓만 하는지 자신의 잘못이 컸다고 마음아파하시고 또한 지금까지도 범인일지 모른다는 말에 상처를 받으시고 속상해하실까 걱정이 됩니다.
이제 저희 아빠와 가족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그 삶속에서 다시 한 번 엄마를 위한 용기를 내었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그 당시 경찰의 태도에 분노하시며 경찰서나 여기저기에 방송을 재수사 해 달라고 많은 글들을 올려주셨습니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엄마의 사건을 흘러가게 하지 않고 재수사를 할 수 있는 건지
너무 답답해서 이렇게 탄원서를 씁니다.
평소에 전 항상 웃습니다.
제 아픈 마음을 숨기려고 웃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생활 속에서 웃고 살고 있습니다.
제 친구들이 항상 저를 웃게 하려고 많이들 노력했고
또한 제가 웃고 살아야 그렇게 가신 엄마가 저를 많이 걱정하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진심으로 웃고 살면 제 인생에도 웃음가득한일만 생길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인의 얼굴을 떠올리면, 그리고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면, 엄마를 그렇게 빼앗아 간 그 범인이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것에 다시 저는 마음의 웃음을 잃기도 합니다.
저는 엄마가 저희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것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범인을 잡고 엄마가 어떠한 고통 속에서 마지막을 보내셨고 한을 다 풀어 드린 뒤의 꿈입니다.
제가 방송을 하면서 한 번 더 느낀 것이 인복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참 인복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항상 엄마가 제게 내린 선물 같았습니다.
진심으로 저희의 이야기와 마음에 동감해주셨던 많은 분들과
방송을 취재하고 촬영하는 과정에서 만난 경찰 분들은
지난 엄마의 사건 때처럼 자신의 일만 생각하는 이기적이신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자료공개신청을 하러 찾아간 흥덕경찰서 민원실에서 안내를 해 주셨던 황경숙 경위님께서는 이런 사건의 유가족이었냐며 예쁘게 잘 큰 것 같아 다행이라며 마음 따뜻한 한마디라도 해 주시고 몸이 편찮으신 제 아버지께서 엘리베이터가 운행하지 않는 4층까지 걸어가 힘드실까 걱정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수 있게 직접 4층까지 안내해주시는 경찰이셨고,
엄마의 사건에 대해 여쭈어 보러 형사과에 갔을 때 계셨던 형사님들도 자신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최대한 많은 도움을 주고자 여기저기 당시 형사에 대하여 알아봐 주시던 모습의 경찰 분들의 모습도 제게는 너무나 큰 감동이었습니다.
또한 전북경찰청 과학수사팀에 계신 박주호수사관님은 오빠의 최면수사를 해주시며 단순한 도움이 아닌 인간적인 마음으로 대해주시며 힘내서 행복하게 웃으며 살라고 말씀해 주시는 모습에 이런 경찰들도 있기에 다시 한 번 믿고 재수사를 부탁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금 쓰는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도 제가 평생 동안 잊지 않고 감사드릴 수 있는 그런 분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것이알고싶다 2002년 청주 부녀자 살인사건 재수사 요청 서명 부탁드립니다.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운동 중입니다. 도와주세요.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111066
안녕하세요.
혹시 지난 8월 20일일에 방송 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 주검으로 돌아온 엄마의 한 달’편을 보셨거나 그 사건에 대하여 들어 보셨나요?
저는 월드컵이 한창이었던 지난 2002년 6월 5일 청주시 흥덕구 수곡동 집에서 실종 돼 23일 만에 옥상 물탱크 실에서 발견된 故 강정숙 씨의 딸 입니다.
당시 저희 가족은 아버지 송현섭, 어머니 故 강정숙, 오빠 송기석, 그리고 저 이렇게 네 식구가 여느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사실 아주 평범하다 할 수는 없겠네요, 어릴 적 아버지가 큰 교통사고로 몸이 많이 불편하세요. 제가 4살 때 사고가 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까지 약 5년간 부산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셨고 여러 차례 대 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지만 아빠의 사고는 가족의 환경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습니다. 그 생활 속에서 집을 이끌어 나갔던 사람은 저희 엄마셨죠. 집도 아빠 병원 옆 단칸방으로 옮겨 아빠의 병수발을 들면서 저희 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제 어릴 적 기억이지만 그 당시 엄마는 비록 아빠가 장애인이시더라도 저희들은 떳떳하고,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 애쓰셨습니다. 아빠와 저희 남매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셨고 퇴원 후 아빠 사고의 보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알뜰살뜰 생계를 꾸렸습니다.
제 나이 초등학교 3학년에 청주로 이사를 왔고 아빠의 보상금과 가족들의 도움으로 원룸빌라 두 채를 짓고 월세를 받아 생활해 나갔습니다. 점점 안정을 찾으며 행복한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죠. 하지만 저희 남매가 중학교에 가면서 좀 더 나은 교육을 시키려 돈을 벌고자 화장품 회사에 취직을 하셨다가 저희에게 소홀해 지시는 것 같다며 낮에는 학부모회를 쫓아다니시고 밤에는 대리운전 일을 하시며 그렇게 저희만을 위해 사셨습니다. 단 한 번도 아침밥을 거르게 하지 않을 정도로 저희를 사랑하시고 항상 강인하고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엄마의 보살핌 덕에 저희 네 가족은 열심히 살았고 또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엄마의 실종과 사망으로 저희 가족의 삶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습니다.
엄마의 사망은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몸도 성치 않고 마음도 여린 아버지와 고1, 중3이었던 어린 저희 남매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기억으로 아직까지도 남아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꿈같은 나날이었고 엄마를 잃은 슬픔에 이성적인 생각과 행동이 불가능 했고 경제적인 생활고까지.. 상황은 순식간이었습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집으로 소문이 나자 세입자들이 모두 다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도 없자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결국 여러 차례 뿔뿔이 이사를 다니며 아빠는 한 쪽 팔로 온갖 장사를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지만 억울하게 돌아가신 제 엄마의 한을 풀어 드리지 못한 채로는 그 끔찍한 기억을 지우고 살아 갈 자신이 없어
엄마의 사건을 한 번이라도 정확하게 알고 싶어 재수사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지난 2010년 청주 택시연쇄살인사건이 알려지면서 저희 엄마 뿐 아니라 죄 없는 여러 희생자가 있음을 알았고 엄마의 죽음도 꼭 밝혀내리라 다짐하며 인터넷에 아래 글을 썼습니다.
2010년 작성한 제 글입니다 http://pann.nate.com/talk/201461825
글을 쓴 후 저희 엄마의 사건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여기저기 알려지기 시작했고 방송국에서까지 연락이 왔습니다.
SBS ‘큐브’라는 프로그램의 이수진 작가님과 한정구 피디님을 비롯한 관계자여러분들께서 진심으로 도움을 주시려 하셨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저희들을 대신해서 많은 것을 알아보고자 많이 노력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방송을 하려면 어느 정도 경찰 쪽의 협조가 필요한데 경찰 쪽에서 저희 어머니 사건에 대해서 답변조차도 하지 않으려한다고 했습니다.
그냥 무조건 모른다고만 했답니다.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니 놀라 일이 커질까 그러는 거겠지만 저희 피해자가족들이 찾아가 알아보려고 해도 그냥 다 모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실 인터넷상에서 이슈가 되었고 많은 분들이 격려와 관심을 주시고 계셔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뭉클해졌지만
과연 저희가 이 사건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정말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고 또다시 그렇게 점점 묻혀 가는 듯 했습니다.
정말로 제가 엄마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을지 너무 겁이 났습니다.
시간이 흘러 1년 반 정도 지난얼마 전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큐브 작가님의 부탁을 받고 박진용PD님을 비롯한 분들이 제게 연락을 해오셨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 다시보기
http://wizard2.sbs.co.kr/w3/template/tp1_review_detail.jsp?vVodId=V0000010101&vProgId=1000082&vMenuId=1001376&cpage=1&vVodCnt1=00814&vVodCnt2=00&vSection=V5&vCompressCode=T1
엄마의 사건을 재조명하고 해결할 실마리를 잡을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저희 가족은 이 방송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으로 그 당시의 기억을 다 지우고 살았고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오빠는 그 일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끔찍한 모든 기억을 되살렸고 실은 다시 그 당시의 심리 상태로 돌아가 힘들어 합니다. 저도 방송을 통해 그 지난 기억을 돌이키다 보니 너무나 무섭고 겁이 납니다.
하지만 이대로 다시 그 때처럼 시간이 그냥 지나버릴까 더욱 더 무섭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이지만 당시 CCTV사진은 너무나 정확하게 범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태연한 얼굴을 하고, 중3이었던 제가 잊지 못 할 만큼 인상적인 그 얼굴을 이제는 사진이 아닌 그 사람의 진짜 얼굴을 알고 싶습니다.
제발 저희밖에 몰랐던 제 엄마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002년 청주 수곡동 부녀자 살인사건 다시 재수사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한 가지 더 말씀 드릴 것 은 제가 글을 썼을 때에도 이번에 방송을 하면서도 경찰들을 탓하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지어낸 부분은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경찰들의 허술한 조사에 너무나도 화가 나고 안타깝지만 분명 저희 가족이 가장 큰 잘못을 해왔거든요, 그냥 아무것도 못하고 흐지부지 다 묻히게 놔두었으니까요.
어찌 보면 다 핑계이겠지만 저와 오빠는 너무나 어렸고 저희 아버지도 당시 너무나 큰 충격으로 정상적인 생각과 생활이 불가능했고 범인을 잡으려던 생각보다는 엄마를 잃은 슬픔에 감당하기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엄마의 사건이 묻혀가고 경찰들도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고 손을 떼고 그렇게 아무런 희망도 없어져 갈 때 까지도 제가 길가다 남자만 보면 다 쫓아다니며 얼굴을 확인하고 매일 밤 범인과 엄마의 꿈을 꾸고 그렇게 힘들어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아빠도 제가 잊고 살기를 바라셔서 갖고 있던 사진마저도 못 보게 하려다보니 저희에게 남아있던 범인의 자료들이 그렇게 없어져 버렸던 것 같습니다.
저희 아빠는 이제 와서 후회하고 해봤자 소용없지만 정말로 저와 오빠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번 방송에 나온 그 당시 경찰의 인터뷰를 보고도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물론 가족이 제 1의 용의자가 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자신의 감이 그렇다고 하면서 지체장애인1급이신 아빠를 의심하고 증거가 명확한 것을 보고도 지금까지 아빠만을 범인이라 믿고 있다는 말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제 아빠를 의심하더라도 강도나 실종 사건의 기본이 되는 지문수사나 건물수사 하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 엄마의 사체가 발견 된 곳인 물탱크 실에 처음부터 있었는지 존재여부조차 정확한 확인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처음에는 그 곳에 없었다고 했으나 경찰은 아닐 것 이라고만 합니다.
그때, 엄마가 발견되기 전에, 실종 되었을 때 확실히 수사해서 확인을 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건물들을 일찍 수색했다면 물탱크 실에 있었어도 일찍 발견해서 증거가 더욱 많았을 지도 모르고, 없었다면 건물 내 다른 곳에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심증이 있었어도 여러 가지 수사를 병행하며 진행했어야 하는 게 경찰이 할 일입니다. 그 경찰의 인터뷰 내용 중에 가장 제 가슴을 찢어 놓은 말은 “억울하면 분신자살을 하지 경찰서에 드나들지 않을 거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시절 어린 제가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경찰이 그런 분이었다는 것이 너무나 어이가 없고 허무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엄마의 한을 풀어드리고자 글도 쓰고 방송도 했지만 저는 마음 약한 제 아빠께서 증거를 어쩌다 다 버리고 경찰 탓만 하는지 자신의 잘못이 컸다고 마음아파하시고 또한 지금까지도 범인일지 모른다는 말에 상처를 받으시고 속상해하실까 걱정이 됩니다.
이제 저희 아빠와 가족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고 그 삶속에서 다시 한 번 엄마를 위한 용기를 내었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그 당시 경찰의 태도에 분노하시며 경찰서나 여기저기에 방송을 재수사 해 달라고 많은 글들을 올려주셨습니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엄마의 사건을 흘러가게 하지 않고 재수사를 할 수 있는 건지
너무 답답해서 이렇게 탄원서를 씁니다.
평소에 전 항상 웃습니다.
제 아픈 마음을 숨기려고 웃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생활 속에서 웃고 살고 있습니다.
제 친구들이 항상 저를 웃게 하려고 많이들 노력했고
또한 제가 웃고 살아야 그렇게 가신 엄마가 저를 많이 걱정하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진심으로 웃고 살면 제 인생에도 웃음가득한일만 생길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인의 얼굴을 떠올리면, 그리고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면, 엄마를 그렇게 빼앗아 간 그 범인이 어디선가 잘 살고 있을 것에 다시 저는 마음의 웃음을 잃기도 합니다.
저는 엄마가 저희 가족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것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범인을 잡고 엄마가 어떠한 고통 속에서 마지막을 보내셨고 한을 다 풀어 드린 뒤의 꿈입니다.
제가 방송을 하면서 한 번 더 느낀 것이 인복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참 인복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항상 엄마가 제게 내린 선물 같았습니다.
진심으로 저희의 이야기와 마음에 동감해주셨던 많은 분들과
방송을 취재하고 촬영하는 과정에서 만난 경찰 분들은
지난 엄마의 사건 때처럼 자신의 일만 생각하는 이기적이신 분들이 아니었습니다.
자료공개신청을 하러 찾아간 흥덕경찰서 민원실에서 안내를 해 주셨던 황경숙 경위님께서는 이런 사건의 유가족이었냐며 예쁘게 잘 큰 것 같아 다행이라며 마음 따뜻한 한마디라도 해 주시고 몸이 편찮으신 제 아버지께서 엘리베이터가 운행하지 않는 4층까지 걸어가 힘드실까 걱정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수 있게 직접 4층까지 안내해주시는 경찰이셨고,
엄마의 사건에 대해 여쭈어 보러 형사과에 갔을 때 계셨던 형사님들도 자신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최대한 많은 도움을 주고자 여기저기 당시 형사에 대하여 알아봐 주시던 모습의 경찰 분들의 모습도 제게는 너무나 큰 감동이었습니다.
또한 전북경찰청 과학수사팀에 계신 박주호수사관님은 오빠의 최면수사를 해주시며 단순한 도움이 아닌 인간적인 마음으로 대해주시며 힘내서 행복하게 웃으며 살라고 말씀해 주시는 모습에 이런 경찰들도 있기에 다시 한 번 믿고 재수사를 부탁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지금 쓰는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도 제가 평생 동안 잊지 않고 감사드릴 수 있는 그런 분이라 믿고 있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재수사해서 제 엄마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도록 꼭 좀 도와주세요.
다음 아고라에서 서명운동 중입니다. 도와주세요.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111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