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될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관심에, 그리고 저를 좋게 봐 주시는 분들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소중한 댓글 하나하나 다 읽어보았습니다. 당장헤어져 같은 애교는 가끔 눈에 띄지만 거의가 응원해주시는 글이라서 여자친구에게 기분좋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응원해주시는 만큼 서로 더욱 아끼며 예쁘게 사랑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87년생 남자 대학생입니다. 반오십년을 사는 동안 몇번의 인연이 있었지만 항상 일방통행이었습니다. 제가 좋으면 그쪽이 싫고 그쪽이 좋으면 제가 별로 마음이 없는 .. 하지만 이번엔 제목대로 1년 6개월간 2전 3기하여 모태솔로에서 탈출했습니다. 헤헤 얼마전까지 전우였던 솔로분들을 비하하거나 염장을 지르거나 하려는 의도가 아닌 축하받고 또 응원받고 싶은 일이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 글이 다소 길고 난잡하며 주관적일 것이므로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괜히 읽어서 기분 상하지 마시고 백스페이스 눌러주세요. 2010년 4월 대학 내의 고등학교 동문회 신입생 환영식이 있었습니다. 전역 후 바로 외국에서 1년을 살다 와서 복학한 터라 아직은 대학이 조금 낯설고 동문 선후배들과의 술자리가 불편했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눈에 확 띄는 외모에 붙임성 있게 말도 잘 하는 그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첫눈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괜히 만날 이유를 만들어서 자주 보며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2010년 5월 5월 7일은 그녀의 생일이었습니다. 여자친구 생기면 선물해야지 했었던 향수를 그날 선물했습니다. 3일 후 장미꽃을 건네며 열심히 연습했던 이적님의 '다행이다' 를 불러주며 고백했습니다. ...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장 싫어하는 노래는 '좋은오빠 동생으로만' 과 '다행이다' 입니다. 무튼 결과는 퇴짜. 저는 휴 이번에도 아니구나 하며 포기했.. 아니 포기하려 했습니다. 2010년 9월 여름방학 기간에는 서로 문자한통 하지 않은 채 새 학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둘 다 동문회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같은 대학, 같은 단대 건물을 쓰다 보니 캠퍼스에서나 단대 복도에서나 마주칠 일이 잦았습니다. 제가 좀 편하고 만만한 스타일이라 도와달라고 하면 다 도와줄 것 같이 생겼나 봅니다. 과목이나 교수님에 대한 질문, 영어작문, 레포트 따위를 도와주며 다시 가까워 졌습니다. 그러던 중 이 친구에게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며칠간 매일같이 저녁에 함께 캠퍼스를 걸으며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2010년 10월 지원했던 교환학생에 합격하였습니다. 계속 이 친구에게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10월 3일 개천절날 다시 한번 고백했습니다. 교환학생을 1년간 가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말을 해야할까? 말아야할까? 라고 물었더니 말 하라고 합니다. 그거 너야 라고 했더니 얼마간 말이 없다가 1년 기다릴 자신이 없다며 또 다시 퇴짜. 하지만 좋은 오빠 동생으로 계속 지내기로 했습니다. 2010년 12월 12월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제 생일이었던 12월 7일, 친구들과 술한잔 하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설명을 붙이자면 제가 살던 기숙사는 무인 택배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서 누군가가 물건을 라커에 넣고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면 문자로 비밀번호가 전송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잉 누구지? 이런거 보낸다고 한 사람 없는데??? 술자리가 파하고 나서 밤늦게 라커를 열어보니 택배가 아닌 그녀가 보내는 선물상자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악어상표 알록달록 양말 두켤레, 제가 교환학생 가게 될 도시에 비가 많이 온다며 넣어둔 우산, 지가 좋아하는 초코과자 -_-; , 그리고 '엄선된 ㅇㅑ동, 밤에 혼자 볼것' 이라고 노란 포스트 잇이 붙어있는 CD 한장이 있었습니다. CD안에는 생일축하해 그동안 잘해줘서 고마웠어 미국 잘 갔다와 올때 선물사와 라는 내용의 저에게 보내는 4분짜리 사진 + 음악 + 영상편지가 있었습니다. 그 동안 많은 생일 선물들을 받아봤지만 그 중 가장 감동적인 선물이었습니다. 그 다음날인 12월 8일은 ㅁㄹ에셋에서 해외 교환장학생 발표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운이 좋게 선발된 저는 이 친구와 ㅂㅣ~싼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 선발 되면 제가, 안되면 이친구가 밥 사기로 사전에 약속했었습니다) 마침 창가에 앉아 있는데 창밖에 첫눈이 펑펑 내려주어서 하늘에게도 고마웠던 날입니다. 12월 25일, 저도 비슷한 편지를 CD에 넣어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손목시계와 함께 선물했습니다. 2시간동안 덜덜떨며 기다렸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2011년 1월 1월 4일 그녀가 학교에서 선발하는 단기 연수 프로그램에 뽑혀 호주로 떠났습니다. 1월 10일 저는 교환학생으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2011년 3월 한달간의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그녀와 자주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왔었습니다. 욕심이 지나쳤던 제가 마음에 없는 말들로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서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2011년 5월 그동안 오해를 풀고 다시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그녀의 생일에 저는 영상통화로 케이크에 촛불을 켜놓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약올라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방학때 미국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었는데 5월 21일 학기가 끝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서였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녀 때문이었습니다. 귀국하고나서 연락하지 않다가 학교 축제때 짜잔 하고 나타났습니다. 2011년 6월 그녀는 기말고사에, 저는 다른 일들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2011년 7월 그녀가 학교에서 진행하는 한달짜리 기숙형 영어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던 저도 함께 수강하였습니다. 같은 강의실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매일 볼 수 있어서 마냥 좋았던 수업이었습니다. 7월 12일, 저녁에 함께 산책하다가 빈손으로, 맨정신에 도로가에서 고백했습니다. 대놓고 티를 낸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그녀도 제가 아직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워낙 친구들을 좋아하는 그녀라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은지라 고민하는 모습이었지만 결국 제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 처음 며칠간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믿어지지 않아서 침대에 누운 채로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는 ♡를 보고 혼자 빙신같이 미소짓곤 했습니다. 2011년 8월 데이트하고 여행도 가고 하며 추억을 만들어 가는 가운데 얼마 남지 않은 복귀날짜에 안타까웠습니다. 편지를 썼는데 그냥 주기에는 좀 심심해서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만든 음성편지와 그 동안 모아둔 함께했던 영수증, 기차표, 영화표 등으로 액자를 만들어서 주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꼭 비행기 타고나서 읽으라며 편지를 두 통 주었습니다. 그리고 8월 20일, 정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인천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지금 미국의 한 대학 기숙사에 있습니다.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인적사항이 빠져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저는 가진것도 없고 어디하나 내세울 곳 없는 흔남중의 흔남입니다. 그녀는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외모조차 한 미모하는 훈녀이십니다. ( 대시하는 남자가 한달에 한번은 꼭 있습니다 ) 그녀의 마음을 잘 알기에 불안하지는 않지만 깨가 쏟아져야 할 시기에 이렇게 저 때문에 떨어지게 되어 너무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앞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그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자친구가 되도록 열심히 살아서 멋진 모습으로 다시 그녀앞에 서려고 합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저희를 응원해 주세요. 응원은 마음으로만 하는것이 아니고 그녀가 이 글을 볼 수 있도록 마우스로 하는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71025
짝사랑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제 글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될 줄 몰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관심에, 그리고 저를 좋게 봐 주시는 분들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소중한 댓글 하나하나 다 읽어보았습니다.
당장헤어져 같은 애교는 가끔 눈에 띄지만
거의가 응원해주시는 글이라서 여자친구에게 기분좋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응원해주시는 만큼 서로 더욱 아끼며 예쁘게 사랑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87년생 남자 대학생입니다.
반오십년을 사는 동안 몇번의 인연이 있었지만 항상 일방통행이었습니다.
제가 좋으면 그쪽이 싫고 그쪽이 좋으면 제가 별로 마음이 없는 ..
하지만 이번엔 제목대로 1년 6개월간 2전 3기하여 모태솔로에서 탈출했습니다. 헤헤
얼마전까지 전우였던 솔로분들을 비하하거나 염장을 지르거나 하려는 의도가 아닌
축하받고 또 응원받고 싶은 일이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
글이 다소 길고 난잡하며 주관적일 것이므로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괜히 읽어서
기분 상하지 마시고 백스페이스 눌러주세요.
2010년 4월
대학 내의 고등학교 동문회 신입생 환영식이 있었습니다.
전역 후 바로 외국에서 1년을 살다 와서 복학한 터라 아직은 대학이 조금 낯설고
동문 선후배들과의 술자리가 불편했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눈에 확 띄는 외모에 붙임성 있게 말도 잘 하는 그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날 첫눈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고 괜히 만날 이유를 만들어서 자주 보며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2010년 5월
5월 7일은 그녀의 생일이었습니다.
여자친구 생기면 선물해야지 했었던 향수를 그날 선물했습니다.
3일 후 장미꽃을 건네며 열심히 연습했던 이적님의 '다행이다' 를 불러주며 고백했습니다.
...
죄송합니다. 반성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가장 싫어하는 노래는 '좋은오빠 동생으로만' 과 '다행이다' 입니다.
무튼 결과는 퇴짜.
저는 휴 이번에도 아니구나 하며 포기했.. 아니 포기하려 했습니다.
2010년 9월
여름방학 기간에는 서로 문자한통 하지 않은 채 새 학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둘 다 동문회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지만
같은 대학, 같은 단대 건물을 쓰다 보니 캠퍼스에서나 단대 복도에서나 마주칠 일이 잦았습니다.
제가 좀 편하고 만만한 스타일이라 도와달라고 하면 다 도와줄 것 같이 생겼나 봅니다.
과목이나 교수님에 대한 질문, 영어작문, 레포트 따위를 도와주며 다시 가까워 졌습니다.
그러던 중 이 친구에게 큰 고민이 생겼습니다.
며칠간 매일같이 저녁에 함께 캠퍼스를 걸으며 고민을 들어주었습니다.
2010년 10월
지원했던 교환학생에 합격하였습니다.
계속 이 친구에게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10월 3일 개천절날 다시 한번 고백했습니다.
교환학생을 1년간 가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말을 해야할까? 말아야할까?
라고 물었더니 말 하라고 합니다.
그거 너야
라고 했더니 얼마간 말이 없다가
1년 기다릴 자신이 없다며
또 다시 퇴짜.
하지만 좋은 오빠 동생으로 계속 지내기로 했습니다.
2010년 12월
12월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제 생일이었던 12월 7일, 친구들과 술한잔 하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설명을 붙이자면 제가 살던 기숙사는 무인 택배 시스템으로 되어 있어서
누군가가 물건을 라커에 넣고 핸드폰 번호를 입력하면 문자로 비밀번호가 전송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잉 누구지? 이런거 보낸다고 한 사람 없는데???
술자리가 파하고 나서 밤늦게 라커를 열어보니
택배가 아닌 그녀가 보내는 선물상자가 들어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악어상표 알록달록 양말 두켤레, 제가 교환학생 가게 될 도시에 비가 많이 온다며 넣어둔 우산,
지가 좋아하는 초코과자 -_-; , 그리고 '엄선된 ㅇㅑ동, 밤에 혼자 볼것' 이라고 노란 포스트 잇이 붙어있는
CD 한장이 있었습니다.
CD안에는 생일축하해 그동안 잘해줘서 고마웠어 미국 잘 갔다와 올때 선물사와 라는 내용의
저에게 보내는 4분짜리 사진 + 음악 + 영상편지가 있었습니다.
그 동안 많은 생일 선물들을 받아봤지만 그 중 가장 감동적인 선물이었습니다.
그 다음날인 12월 8일은 ㅁㄹ에셋에서 해외 교환장학생 발표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운이 좋게 선발된 저는 이 친구와 ㅂㅣ~싼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 선발 되면 제가, 안되면 이친구가 밥 사기로 사전에 약속했었습니다)
마침 창가에 앉아 있는데 창밖에 첫눈이 펑펑 내려주어서 하늘에게도 고마웠던 날입니다.
12월 25일, 저도 비슷한 편지를 CD에 넣어서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손목시계와 함께 선물했습니다.
2시간동안 덜덜떨며 기다렸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2011년 1월
1월 4일 그녀가 학교에서 선발하는 단기 연수 프로그램에 뽑혀 호주로 떠났습니다.
1월 10일 저는 교환학생으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2011년 3월
한달간의 연수를 마치고 귀국한 그녀와 자주 연락하며 친하게 지내왔었습니다.
욕심이 지나쳤던 제가 마음에 없는 말들로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습니다.
서로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2011년 5월
그동안 오해를 풀고 다시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그녀의 생일에 저는 영상통화로 케이크에 촛불을 켜놓고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그녀는 제가 케이크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약올라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방학때 미국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었는데 5월 21일 학기가 끝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서였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녀 때문이었습니다.
귀국하고나서 연락하지 않다가 학교 축제때 짜잔 하고 나타났습니다.
2011년 6월
그녀는 기말고사에, 저는 다른 일들로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2011년 7월
그녀가 학교에서 진행하는 한달짜리 기숙형 영어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던 저도 함께 수강하였습니다.
같은 강의실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매일 볼 수 있어서 마냥 좋았던 수업이었습니다.
7월 12일,
저녁에 함께 산책하다가 빈손으로, 맨정신에 도로가에서 고백했습니다.
대놓고 티를 낸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에
그녀도 제가 아직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워낙 친구들을 좋아하는 그녀라서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은지라
고민하는 모습이었지만
결국 제 마음을 받아주었습니다.
처음 며칠간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믿어지지 않아서
침대에 누운 채로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는 ♡를 보고 혼자 빙신같이 미소짓곤 했습니다.
2011년 8월
데이트하고 여행도 가고 하며 추억을 만들어 가는 가운데
얼마 남지 않은 복귀날짜에 안타까웠습니다.
편지를 썼는데 그냥 주기에는 좀 심심해서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만든
음성편지와 그 동안 모아둔 함께했던 영수증, 기차표, 영화표 등으로 액자를 만들어서 주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꼭 비행기 타고나서 읽으라며 편지를 두 통 주었습니다.
그리고 8월 20일, 정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인천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
글을 쓰고 있는 저는 지금 미국의 한 대학 기숙사에 있습니다.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인적사항이 빠져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저는 가진것도 없고 어디하나 내세울 곳 없는 흔남중의 흔남입니다.
그녀는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외모조차 한 미모하는 훈녀이십니다.
( 대시하는 남자가 한달에 한번은 꼭 있습니다 )
그녀의 마음을 잘 알기에 불안하지는 않지만
깨가 쏟아져야 할 시기에 이렇게 저 때문에 떨어지게 되어 너무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앞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그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자친구가 되도록 열심히 살아서
멋진 모습으로 다시 그녀앞에 서려고 합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저희를 응원해 주세요.
응원은 마음으로만 하는것이 아니고 그녀가 이 글을 볼 수 있도록 마우스로 하는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