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은 부자급식이 결코 아니다.

아라비아의별 201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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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은 부자급식이 결코 아니다.

겉으로만 보면 무상급식 문제와 관련된 논쟁은 이념적 지형이 정반대로 뒤집어진 상황에
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진보적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
들이 부잣집 자제에게도 공짜점심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언가 이상한 일이다.
그들이 평소 주장하는 바가 부자들의 이익을 더 크게 만들어 주자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
이다.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부자급식’이란 선동적 표현을 써가며 무상급식에 반대하
는 것을 보면 머리가 더욱 갸우뚱해진다. 그들은 대체로 ‘부자감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
닌가? 왜 부자감세는 지지하면서 부자급식에는 반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일까?
양심상 부자급식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부자감세도 당연히 반대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들이 금과옥조처럼 되뇌고 있는 재정 건전성의 관점에서 보면 부자감세가 훨씬 더 큰 위
협인데 말이다.

“무상급식은 부자급식이다.”라는 말이 선동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엄밀하게 따져보면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무상급식 프로그램의 실시에 따르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문제를 완전히 무시한 말이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사람이 하늘에
서 떨어지는 돈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할 수 있다고 주장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당연히 추
가적인 조세부담이 불가피할 것임을 알고 있으며, 누가 얼마만큼 더 부담해야 할지도 예측
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의 조세부담은 그리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일부
부유층에 의한 탈세 때문에 월급쟁이의 지갑만 유리지갑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다.
그러나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함에 따라 연간 2조원 정도의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면 아무
래도 부유층에 속하는 사람의 부담이 더 커질 게 분명하다. 이들이 공짜점심에서 얻는 혜택
보다 추가적인 조세부담으로 인해 지불하는 비용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이 현실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지금 무상급식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논쟁이 올바른 이념적
지형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부유층에게
돌아갈 추가적인 조세부담 때문에 이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기에 말이다. 그들은 부자급식이
란 말로 현실을 왜곡하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은 부자급식이 아니라
바로 ‘부자증세’다.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입만 열면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무
상급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다. 무상급식과
재정 건전성 사이에는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에 자신 있게 무상급식 실시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효과 없는 부자감세를 철회하기만 해도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 부자감세를 무상급식으로 대체함으로써 재정
건전성이 더욱 탄탄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이다.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보다 더 시급한 과제가 많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상급식에 쓸 돈이 있으면 그런 사업에 우선적으로 써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무상급식보
다 더 시급한 과제가 있다는 말이 아주 틀렸다고 보지는 않는다. 샅샅이 뒤져보면 무상급
식보다 더 우선적인 고려가 필요한 과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논점을
교묘하게 왜곡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전략적 논리에 불과하다.

일단 무상급식 문제가 이슈로 등장한 이상 이보다 더 시급한 과제가 있는지의 여부는 부
차적 차원의 고려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 정부의 정책을 그런 관점에서 논의하기 시작하면
어느 것 하나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없다. 논의 대상이 된 정책보다 더 시급하다고 생각되
는 과제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논의 대상이 된 정책을 헐뜯기에 이
것보다 더 쉬운 방법은 없다.

무상급식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올바른 접근방법은 정부가 현재 그것보다 ‘덜’ 시급한 과
제를 수행하고 있느냐의 여부를 따지는 일이다. 일정한 재정지출의 범위 안에서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이런 방법밖에 쓸 수 없다.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논거는 현재 정부가 이
보다 우선순위가 더 낮은 과제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무상급식 쪽으로 돌릴 수 있는 재원
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너무나 뻔한 얘기라 하고 할 필요조차 없다고 느끼지만, 4대강사업
하나만 접어도 10년 이상 무상급식을 실시할 수 있는 재원이 마련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무상급식의 실시가 재정 건전성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어불성설이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추가적인 조세부담을 지우게 만들어야 할지 아
니면 불요불급한 사업을 접게 만들어야 할지의 선택뿐이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시나리오를 짜서 이것을 실시하면 마치 나라 살림이 거덜이라도 날 듯 호들
갑을 떨고 있다. 무상급식 하나로 거덜 날 나라 살림이라면 쓸모없는 토목공사에 쓴 수십
조원으로 이미 거덜이 났어야 했다.

나는 지난번에 쓴 글에서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가치관 충돌의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만약 부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세금 부담을 안기는 것이 싫다면 무상급식에 반대해
야 한다. 또한 무상급식보다 4대강사업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하면 무상급식에 반대해
야 한다. 나는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구태여 가치관을 바꾸라고 강요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나 무상급식이 부자급식이어서 반대한다는 말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무상급식의 본
질은 부자급식이 아니라 부자증세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상급식을 하면 재정 건전성
이 위협을 받을 수 있어 반대한다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무상급식을 실시한다 해서 재
정 건전성에 위협이 생길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진실과 동떨어져 있는 주장
으로 논점을 흐리는 것은 건전한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어린이들에게 점심을 주기 위해 얼마간의 세금을 더 내라고 한다면
기꺼이 그 부담을 짊어질 용의를 갖고 있다. 그것이 우리 사회를 좀 더 밝고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런 조세부담쯤은 얼마든 감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실 그 추가적 조세부담이
란 것이 서민의 허리를 꺾을 만큼 무거운 것도 아니다. 입으로만 상생, 친서민을 부르짖으
면서 부유층에게 돌아갈 약간의 추가적 조세부담에도 눈살을 찌푸린다면 누가 그 말의 진정
성을 선뜻 믿으려 하겠는가?

 

 

재정학전문가 서울대 교수 이준구

 

이준구 교수의 다른글(경기도에서 김문수지사와 경기도 의회간 무상급식문제로 알력이 있을 때 쓴 글)

 

무상급식 논쟁을 보며

초등학교의 전면 무상급식 실시 문제가 다가올 지방선거의 중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전면 무상급식을 추진하려는 경기도 교육감과 이를 저지하려는 경기도 의회
사이의 갈등을 통해 이미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상태다. 이 문제가 새삼스럽게 지방
선거의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보수와 진보 사이의 정책대결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동안 이 문제에 대해 줄곧 침묵을 지켜왔다. 글을 써서 의견을 발표한 적이 없었
음은 물론, 강의실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뭐라고 말한 적이 없다. 무엇보다 우선 내 생각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말할 처지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와 관련된 논쟁에서 양측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
문에 무 자르듯 어느 편의 논리가 맞는다고 단언할 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더 이상 침묵을 지킬 수 없다는 생각에서 문제의 본질을 찬찬히 뜯어보기로 결심
했다. 재정학을 전공하고 있는 내가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책임 회피
에 해당하는 일일지 모른다. 재정학은 정부의 경제적 행위에 대한 분석을 주요한 연구대상
으로 삼는 경제학의 한 분야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재정학의 고유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재정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의당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논쟁을 관찰해 보면, 논점 그 자체의 설정이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
을 받는다. 양측 모두 초등학교생에 대한 무상급식을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데, 그것은 잘못된 접근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무상급식이 사회복지와 관련을 갖는 것은 사
실이지만, 사회복지정책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이 문제에 개입
해야 하는 당위성의 주요한 근거는 다른 데 있기 때문이다.

현대 정부는 다양한 경제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국방
서비스나 경찰서비스 같은 공공재를 생산, 공급하는 일이다. 아무리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공공재와 관련한 정부 개입의 당위성을 부정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
다. 공공재와 더불어 정부 개입을 정당화하는 또 다른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치재
(merit goods)라는 상품이다.

가치재와 공공재가 가끔 혼동되기도 하나 그 둘은 엄연하게 다른 개념이다. 가치재라는
것은 특정한 상품의 경우 모든 국민이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의 혜택이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정부가 직접 생산, 공급하는 상품을 뜻한다. 의료, 주택, 교육서비스가 그
좋은 예로 공공재의 성격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의무교육은 교육이 가치재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하는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무료급식을 사회복지정책의 일종이라고 보면 부유층에게 무료급식의 혜택을 주는 것은 부
당한 일이다. 정부가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에게만 혜택을 제한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기 때
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치재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순
간 결론은 180도 달라진다. 공공재나 가치재의 성격을 갖는 상품의 경우에는 무상 배분이
원칙이다. 따라서 부유층 자제에 대한 무상급식이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
게 된다.

초등학교 교육을 의무화한 것은 그것이 가치재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국민에게 평
등하게 그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취지가 그 밑에 깔려 있다. 급식도 초등교육의 일부라고
할 수 있고, 그렇다면 그것이 가치재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또한
모든 아동이 균형 잡힌 식단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관점에서 볼 때도 급식은
가치재의 성격을 분명하게 갖고 있다.

부유층의 자제가 초등학교 수업료를 내지 않는 데 대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교육
이 가치재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의무교육이란 제도를 만들었고,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제
공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부유층이든 서민층이든 정
말 공짜로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내는 세금으로 의무교육과 관
련된 비용이 충당되는 것이니만큼 공짜라고 말할 수 없다.

공공재나 가치재의 성격을 갖는 상품의 배분은 거의 모두 이와 같은 기본구도하에서 이루
어진다. 즉 소득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누구나 무상으로 배분을 받는 대신 세금으로 그
비용을 충당하는 기본원칙이 적용된다는 말이다. 부유층이 급식에 대해 직접적 대가를 지불
하지 않더라도 그만큼 세금을 더 내면 형평성의 문제는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면
무료급식이 형평성의 원칙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그런 방안은 생각
해 보지도 않고 무조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정부, 여당 일각에서는 전면 무료급식을 ‘좌파포퓰리즘’으로 몰아가고 있다. 비록 적은 금
액이지만 부유층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을 좌파로 모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 아닐 수 없
다. 진정한 좌파라면 부유층에게 한층 더 무거운 부담이 돌아가게 만들 방법을 궁리해야 마
땅한 일이 아닐까? 본질적으로 전면 무료급식의 실시 여부를 둘러싼 논쟁은 좌우의 이념대
립과는 무관한 문제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모두 ‘좌빨’로 모는 나쁜 버릇이 도져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고 있다.

빈곤층의 자제에게만 무료급식의 혜택을 제한하면 그들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는 우려
는 그냥 넘겨버릴 일이 아니다. 티 없이 맑게 자라야 할 어린 아이들이 인생의 출발점부터
그런 정신적 부담을 안고 자라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부유층의 자제에게도 무상급식의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빈곤층의 자제가 그런 정신적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에 드는
추가적 비용은 가치 있는 투자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이 사업에 천문학적인 추가 비용이 소요된다면 경우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상식적
으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많은 비용이 들 것 같지 않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학생의 한 끼를
해결해 주는 데 무슨 비용이 그리 많이 들겠는가? 정부가 1년에 몇 백조 원이나 되는 돈을
쓰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에만 돈을 쓰고 있는지 묻고 싶다. 일례로 멀쩡히 흐르는 강을
보로 막아 물을 썩게 만들려고 2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고 있지 않은가?

전면 무료급식의 실시가 전반적인 정책 우선순위의 틀 안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을 부
정하지는 않는다. 이것보다 더욱 시급하고 중요한 사업이 있다면 정부의 예산이 그것에 우
선적으로 투입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렇게 객관적인 입장에서 전면 무료급식의 실시가
바람직한지의 여부가 논의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말도 되지 않는다는
둥 좌파포퓰리즘이라는 둥 비판을 위한 비판에만 골몰해서는 바람직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
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무료급식을 사회복지정책의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
니다. 그것이 가치재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데 얼마의 비용이 드는지를 파악한 다음, 전반적인
정책 우선순위의 틀 안에서 그것의 실시 여부를 냉철하게 고려하는 게 올바른 길이다. 이런
올바른 길을 걸어야만 진정으로 합리적인 대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구태여 강조할 필요
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