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성부 19금 논란에 대해서 한마디 하겟습니다 (고3수험생)

김정재2011.08.25
조회460

 

 

 

여기 저기서 봐서 알겠지만 여성부에서 19금으로 지정한 노래들 입니다.

 

여성부에 있는 사람들은 문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고3수험생입니다...ㅋ 욕하지 마세요 ㅎㅎ..

 

언어에서 술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가지가 있지만은 술은 기본적으로 슬픔,고독,즐거움 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배우는 고전문학인 청산별곡에서도 강술이라고 나옵니다.

 

 

 

위에서 주목해야할 부분은

'술'의 힘을빌어 잠시나바 지독한 외로움과 고통을 잊으려 한다 입니다.

 

그리고 밑에 글을 읽어주세요.. 길지만은....

 

급하신분들은 빨간색 글자만 봐도 됩니다....

술과 문학


                                                                     



1. 아름다운 폐인(廢人)


 술과 문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특히 술과 시가 그렇다. 논의에 앞서 우리는 전제를 달아야 한다. ‘술’을 유해한 물질로만 보지 말 것, 그리고 ‘술 문화’할 때 으레 등장하는 왁자지껄하고 반윤리적인 그림을 상상하지 말 것. 이런 전제를 염두에 두면 ‘술’은 곧바로 시요, 사람 냄새 가득하고 풋풋한 살가운 육체요 정겨운 동무가 된다. 오래 전부터 술은 문학의 주제와 소재로 쓰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쓸쓸한 시인은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을 것이다. 맑은 소주 한 잔 마시고 안주 한 젓갈 입 안에 털어 넣으면 하루 종일 머릿속을 헛 맴돌던 시 구절이 떠오르지 않을까. 바로 이것이다. 술은 시인의 창조 능력을 극대화한다. 알코올 성분 덕택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인과 술의 관계가 불러일으킨 화학 작용 때문이다. 시인이 술을 그리워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술은 시인의 그리움을 함께 나누는 동반자요 하늘의 뜻을 은밀하게 헤아리는 도반(道伴)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절창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러므로,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혼자 앉아 있을 것이다

완전히 늙어서 편안해진 가죽부대를 걸치고

등 뒤로 시끄러운 잡담을 들어주면서

먼 눈으로 술잔의 수위만을 아깝게 바라볼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름다움 폐인(廢人)을 내 자신이

견딜 수 있는가, 이리라

- 황지우,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 중에서


 “그런 아름다운 폐인”이라니. 바야흐로 세사(世事)의 모진 바람과 역경을 헤치고 지나온 시인에게 앳된 청년기 때부터 함께 해 온 술잔이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쉽사리 수긍할 수 있는 표현이다. 온갖 그리움과 미움들을 떠올리며 마주 앉은 술은 독한 상념을 부드럽고 순하게 어루만져 주는 동무였던 것이다. 술과 함께 사랑을 나누었고 술과 함께 야망을 키웠을 시인은 “시끄러운 잡담을 담담하게 들어주”는 현명한 늙은이가 되어 있다. ‘폐인’이라 자학하는 심사 속에는 인생의 참뜻을 은은하게 깨닫게 된 고요한 황홀이 자리 잡고 있다. 무엇이 시인으로 하여금 참회하게 만들었는지는 단박에 알 수 있다.

 시와 술, 그리고 시인과 술의 관계는 문학과 세상, 인간과 우주의 관계만큼이나 현묘하다. 이 현묘하지만 매혹적인 관계를 대충이나마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2. 일상의 의미를 뛰어넘은 매개로서 술이 지니는 기능


 아마도 그 자신부터 술을 애용했음에 틀림없어 보이는 어떤 연구자는 이렇게 말했다.


종이 조각들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가는 것처럼 술이 일상적 의미의 굴레를 넘어서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마술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술은 문학 속에서 대단히 기능적인 매개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술이 ‘알코올’이라는 성분을 가지고 있어 취하게 하고, 과도하게 마시면 주망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외면에 집착한다면, 술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는 발견할 수 없다.

- 정병헌, 「한국 고전문학과 술 문화」중에서, 『한국어와 문화』 제3집. 9~10쪽.


 술의 “외면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의 비일상적인 기능에 주목하자는 요지의 발언이다. 사람이 살면서 먹고 마시는 일차적인 기능이 아니라 “일상적 의미의 굴레를 넘어서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마술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왜 시인들 대부분이 술을 가까이 하고 술을 매개로 해서 창작 소재부터 시작하여 창작방법과 능력을 한껏 끌어올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술을 마시면 취할 때가 있다. 취하면 흥이 절로 나고 흥이 나면 제 속의 신명에 눈을 뜬다. ‘몽롱해진다’는 말은 의식의 경계 속에 갇혀있는 일상의 자아가 무의식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자아와 서로 맞부딪치는 데서 비롯하지는 않았을까. 무릇 일상인의 의식 수준을 뛰어넘는 활성화된 창조적 상상력을 펼쳐야 하는 예술가일수록 그런 황홀경을 겪는 수가 많다. 비단 술의 힘을 빌지 않더라도 깊은 명상에 빠지거나 구경(究竟)의 경지에 이르는 경우에도 그런 느낌을 수반할 것이다. 시인이나 예술가가 아닌 보통 사람이 술에 취했을 때는 평소 제 속에 가둬놓은 감정을 분출하는데 그칠 뿐이고 극단의 상상력으로 창조하는 데까지는 가지 못한다. 술은 임자를 잘못 만나면 모든 비난과 욕설과 한탄의 대상이 되어 버리지만 주인을 제대로 만나면 뮤즈의 신과 대동하는 신비로운 영약(靈藥)이 되는 것이다.

 우리 현대시에서 술을 제재로 한 작품들이 많은데, 다음에 인용하는 시는 예술과 일상이 술을 매개로 해서 일치가 된 어느 시인의 체험 고백을 잘 보여준다.


술 없이는 나의 생을 생각 못한다.

이제 막걸리 왕대포집에서

한잔 하는 걸 영광으로 생각한다.


젊은 날에는 취하게 마셨지만

오십이 된 지금에는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아내는 이 한잔씩에도 불만이지만

마시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을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

- 천상병, 「술」전문


 거두절미하고 “마시는 것이 이렇게 좋을 줄을/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란 한마디면 족한 것이다. 시인은 말 그대로의 술을 좋아하고 줄곧 마셔왔음을 고백하지만, 이 고백록 자체가 아주 훌륭한 시가 되었다. 2연에서도 나오듯이 젊을 때는 멋모르고 취할 때까지 마셨지만 “오십”에 이르러 “마시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시인의 말은 그야말로 술에 관한 한 경지에 이른 대가의 잠언이 아니겠는가. 가타부타 설명 없이 내던지는 한마디가 삶과 문학의 정점을 건드린다.

 술에 관해서라면 이미 신화가 되어버린 이백(李白)은 일찍이 이런 시를 읊었다.


兩人對酌 山花開 둘이서 마시자니 산에는 꽃이 피고

一杯一杯 復一杯 한 잔 한 잔 기울이다 끝없이 마셨네

我醉欲眼 卿且去 취했으니 자고 싶네 그대는 가게나

明朝有意 抱琴來 내일 아침 생각나면 거문고 안고 다시 만나세

- 이백(李白), 「山中與幽人對酌」 전문


 단지 ‘애주가’ 차원은 아닌 듯하다. 시인과 자연과 술과 음악과 시가 한 몸이 된 차원에서는 이렇듯 여여(如如)한 기분이 되어버리는가 보다. 앞서 인용한 천상병의 시가 맑고 순진한 아이 같은 시인의 평소 인품이 잘 녹아있다면, 이백의 시는 호연지기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술은 취하는 정도의 외적 변화조차 무마하는 영험한 요소를 지닌다. 천진난만함으로 이끌고 성속(聖俗)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면서 풍진 세상을 건너는 다리가 되어 주는 것이 술이다. 이와는 다른 맥락에서 술을 의분의 표출이나 아이러니의 한 매개로 활용하는 시들도 적지 않다. 수많은 시인들이 대개 이런 기능으로 술을 소재로 끌어들인다. 손쉬운 방법이지만, 그만큼 냉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시인의 외로움과 고독을 짐작케 한다.


① 외로움보다 더 가파른 절벽은 없지

   살다보면 엉망으로 취해 아무 어깨나 기대

   소리 내서 울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 김수영, 「로빈슨 크루소를 생각하며, 술을」 중에서


②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 김영승, 「반성16」 전문


 ①에서 술은 “외로움”을 달래는 기능을 한다. 음주의 흔한 변명이기도 하고 마치 그것이 제일의적 효능인 양 널리 생각해 온 것이기도 하다. 소시민의 삶과 의식을 시에서 주로 표현한 김수영답게 그의 지향은 필부의 소박한 심경에 가깝다. ②의 경우는 ①과 다르다. 이 시에서 술은 시인이 발 딛고 서 있는 현실 세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세계를 잇는 촉매제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시인은 술에 취해서 보는 세상이 참된 세상이고 술을 깬 상태의 세상은 요지경 세상이다. 주객전도다. 아니다. 오히려 세상이 잘못되고 거꾸로 된 것은 아닐까. 술을 마셔야만 세상을 바로 볼 수가 있다는 원리는 역설적이게도 술이 거짓으로 뒤덮여 있는 세상의 껍질을 벗기는 노릇을 한다는 말과 같다. ‘술 주정’ 속에 나온 말이 진실인 것이다.



3. 술과 삶의 심연, 그리고 무아지경으로서 시와 술


 술이 사고의 깊이를 더해준다는 사실은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각성’의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의학 지식으로 술의 효능을 나열하는 일은 별로 재미없다. 알코올의 성분과 신체 기관의 상관관계는 저 잘난 의사에게나 맡기자. 우리가 밥의 성분과 효능을 익히 잘 알고 있어서 세 끼 밥을 챙겨먹는 게 아니지 않는가. 오로지 옛 선인들과 문사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갈 뿐이다. 아니 이 말은 무책임하고 줏대 없는 말일 것이다. 시인이 술을 즐겨먹는 까닭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냥 술이 앞에 있기 때문이요, 술을 마셔 생각이 더욱 깊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흥을 북돋우기 때문이다. 평소에 잠자고 있던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올라 대낮에는 그 존재 여부조차 알지 못했던 거룩하고 아름다운 언어가 얼굴을 불쑥 내밀기 때문이다. 만취하기 직전, 그러니까 얼큰하게 달아오를 무렵 머릿속을 횡단하는 말들은 자아의 조정 능력과 맞물려 새로운 작품을 낳는다. 다음의 시들을 보자.


① 내가 말없이 술잔 비우는 건

   윤회를 꿈꾸는 세월에 주먹을 치며 나를 달래는 일이다.

   내 가슴 일부를 누구 스친 바 없는 시간에 미리 섞는 일이다.

   허기진 공복에 잔을 씻고 씻으며

   미지의 시간을 위로해주려는 그런 마음이란 말이다.

   - 강태민, 「내가 술을 마시는 건」 중에서


② 그 독특한 절의 모양새 안타까워 술을 마신다

   절 앞 수백 년 먹었을 팽나무

   어느 날 포크레인에 흔적도 없이 파여날까 염려돼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마신 술 점차 올라

   줄줄대는 계곡 물소리 들리지 않는다

   - 조해훈, 「대운산에서 동동주를 마신다」 중에서


③ 언제나 새벽은 편하다, 자유롭다

   늦게까지 글을 쓰다가

   새벽녘이면 으레 포장마차

   합천집으로 간다

   동향인 주인아주머니와 이런, 저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로

   날은 뿌옇게 새고

   새벽이슬 받으며

   술기운에 쓰는 글 나부랭이도

   이땐 자유롭게 술술 풀려져

   합천집 소주가 나의 잡문인지

   나의 잡문이 그집 소주인지…

   - 최원준, 「술맛을 배우며」 중에서


 ①은  견딜 수 없는 현생의 허기를 술로 어루만지는 시인의 심정이 잘 드러나는 시다. 역으로 말해서 술을 마시고는 “윤회”의 수레바퀴에 어쩔 수 없이 끼어 있는 존재의 허약함을 발견한다. 생명의 순환을 깨닫는 자는 마침내 다가오고야 말 “미지의 시간”에 온몸을 열어둔다. 시인과 술이 만나는 지점에 솟아난 절경이다. ②의 경우에는 시인이 산을 내려오다 들른 술집에서 동동주를 마시면서 느낀 소회를 시로 표현했다. 시인도 썼듯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마신 술”로 “계곡 물수리 들리지 않는” 때는 바뀐 절 모양도 나무도 물소리도 꿈처럼 아득할 뿐이다. 현상의 삿된 경계에 집착하는 자아의 욕망이 차차 술을 마시면서 그것이 부질없고 어리석은 일인 양 앞질러 유추해 본다. ③은 밤늦게 글을 쓰다가 포장마차에 들러 이른 아침까지 술을 마시는 시인이 술과 글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며 ‘혼몽’의 상태를 경험한다. “합천집 소주가 나의 잡문인지/나의 잡문이 그집 소주인지”의 표현에서 ‘소주’와 ‘잡문’의 차별이 사라지는 것이다. 실상 시든 글이든, 다만 세상살이를 혼으로 풀며 엮는 정돈된 양식이 아닌가. 궁극에는 삶이 있고 사람이 있는 것이다. 술도 시인을 만나서 한층 드높은 문화 정취 속의 일부가 된다. 시인과 술이 관계 맺는 소박한 정경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담박한 풍경 속에 어른거리는 인생의 묘미를 잡아낼 수 있는 작품이다.

 ‘술자리’란 말을 쓴다. ‘술’과 ‘자리’를 합친 말이다. ‘술상’이란 말도 있다. 술을 차린 상이다. 술상을 둘러 싼 자리가 술자리다. 술자리는 수직이나 직선의 자리가 아니다. 높낮이가 없이 쭉 둘러앉는 자리이다. 생각에 위아래가 없듯 술자리에 귀천이 없다. 평등한 자리요 서로를 보듬어 주는 자리다. 듬성듬성 빈자리가 있을 수 있고 앉을 자리조차 없을 정도로 꽉 찬 술자리가 있다. 어쨌든 정겨운 사람들끼리 오순도순 술잔을 주고받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곳이다. 그곳에 시가 있다면 두말 할 나위 없이 훌륭할 것이다. 시가 광활한 우주에 던지는 쓸쓸한 물음표라면, 술과 어우러져 그 물음의 진폭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우리가 끝내 이 삶의 종지부로 외롭게 마침표를 찍을 터지만, 그 마침표와 물음표 사이 술자리가 깊어질수록 새록새록 돋는 느낌표들을 만나자. 그것은 세상의 온갖 추문들을 후려치는 쇠방망이요, 때론 잃어버린 사랑에 흘려보내는 눈물이다. 땅 위를 하염없이 걷다가 지겨워서 바다를 훌쩍 뛰어넘어 발 내딛는 곳에 생겨난 외딴 섬이다. 삶과 문학과 눈물과 쓸쓸함은 그렇게 술을 만난다. 그리고 술은 이 모든 것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가슴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줄로 안다./2010.9.4/또따또가 축전/수이재 ‘주전한담’행사 발제문

[출처] [문학과 술]술과 문학|작성자 등에

 

 

음악에서 가사는 작사가가 쓴 하나의 문학작품 입니다. 

 

그러므로 앞뒤 문맥을 파악하지 못하고 유해판정을 내리는 여성부는 문학을 배

 

우고 있는 우리 중,고등학생 들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부는 자신들의 무식함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이번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님들 생각은 어떠합니까? 제가 생각하는게 틀렸다고 그 누가 말할수 있겠습니까??

 

여성부 이런일에 신경쓰지마시고 여성부를 만들었던 처음 으로 돌아가서 여성을 위한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