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의 여왕’ 연수영 」(평해거사 황원갑 원작·정천 김재암 편작)5안시성, 그리고 장산군도 ⑶

김종욱201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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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산군도대첩(長山群島大捷)

 

645년 8월 15일 새벽. 아직 먼동도 트지 않은 어둠 속으로 병사 1만 8천여명을 태운 고구려의 군선 250척이 대장산도 노백성 기지를 출발해 항해하기 시작했다. 척후선단을 통해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장량은 10만 군사와 1천 2백척 정도의 함선을 거느리고 비사성에서 출항했다고 한다. 장량은 이번 싸움에서 아예 결판을 내려고 달려드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개전 초에 묘도열도 근해에서 비사성주 우소가 이끄는 고구려 수군 주력함대의 자멸을 구경하다시피 했고, 이어서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비사성을 점령했으므로 이번 전쟁에서는 만사 자신의 뜻대로 승승장구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가면 갈수록 매사가 꼬였다.

 

창려·해양도·건안성 앞바다와 묘도·대흠도·광록도 등지에서 고구려 수군과 부딪쳤다 하면 왕창 왕창 깨졌다. 가까스로 고구려 수군의 눈을 피해 패수 하구까지 함대를 보냈으나 평양성은 건드려 보지도 못한 채 연개소문에게 쥐어터지고 온데다, 귀중한 군창까지 태워먹고,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목 하나밖에 없으니 죽든지 살든지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결전을 더 미룰 수도, 달아날 곳도 없었다.

 

그래서 장량은 굳은 결심을 하고, 제딴에는 치밀한 전략을 세운 뒤에 전 함대를 이끌고 나선 것이었다. 그의 전략은 요동반도 남해안, 발해만 서쪽과 서해 북부 장산군도 해역을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으로 샅샅이 훑으며 동진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고구려 수군을 만나면 만나는 대로 분쇄하고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다는 것이 장량의 궁극적 목표였다.

 

제해권만 완전히 장악하면 안시성에서 절절매는 황제에게 원활하게 군량을 보급하고, 계속해서 함대를 보내 압록수나 패수 쪽으로 진공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황제의 지겨운 잔소리를 더는 듣지 않아도 될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이번 작전에서 고구려 수군을 몽땅 쳐부수고 제해권을 장악하기만 한다면 황제는 잔소리는커녕 틀림없이 많은 상을 내리고 벼슬도 형부상서보다 높은 재상급으로 올려줄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고구려 정벌을 완수하면 혹시 요동후(遼東侯)나 조선왕(朝鮮王)으로 봉할지도 모른다……. 그런 속셈에 들떠 장량은 씨익 괴소를 날렸다.

 

장량은 중국 역사상, 아니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해전에서는 최대 규모인 1천 2백여척의 전함을 거느리고 비사성에서 출전했다. 그리고 고구려 수군의 본영을 찾아 장산군도로 항진했다.

 

장량이 출전하기 전에 파악한 고구려 수군의 규모는 기껏해야 전함 1백여척에 병사 1만여명이었다. 이는 당 수군 척후대의 첩보 수집 능력이 고구려 수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졌으므로 절반 정도만 파악하여 보고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정면승부를 선택한 장량의 의도를 간파한 연수영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은 두 가지였다. 접전과 후퇴. 하지만 정면대결을 하자니 전력이 너무나 심하게 열세였다. 5대나 되는 적군과 대결한다면 당연히 위험부담이 컸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소리가 나올 만했다. 그렇다고 해서 후퇴할 수도 없었다. 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리고 후퇴하여 흑도·대록도·소록도나 압록수 하구를 지킨다는 구상도 해보았지만 그건 전략도 아니고 전술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후퇴는 곧 패배를 뜻했다. 한 번 밀리면 끝장이다.

 

적군은 승세를 타고 파죽지세, 일사천리로 추격하여 압록수 하구에서 상륙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아군의 뒤를 끊고 태종의 본군과 동서 양면에서 고정의 대원수의 요동방면군을 협공할 것이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뿐이다. 오래 고민할 틈이 없었다.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목숨 걸고 싸우는 수밖에 없구나! 연수영은 작전회의를 소집하여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제장이 잘 알다시피 결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전면전이 될 것이며, 우리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죽음을 생각하며 싸워야 하오! 우리에게는 참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소! 적장 장량은 지금 위로는 내장산해협, 아래로는 외장산해협의 모든 해로를 틀어막고 조여오고 있소. 적세는 우리보다 다섯 배나 많다고 하오. 따라서 우리는 함대를 수십 척씩 나눌 수도 없는 형편이오. 오로지 뭉쳐서 적선들을 부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보오.”

 

연수영은 잠깐 말을 멈추고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금세라도 터질듯이 팽팽한 분위기였다. 선임 장수인 대형 장운형을 비롯하여 고성운·고대수·강철우·모청호·안고 등과 낭자군 수령 해란봉(解蘭峰)까지 휘하 장수 모두 숨소리까지 죽인 채 주장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연수영이 말허리를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리 겁부터 먹고 절망할 건 없소. 전략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 제장이 모두 잘 알다시피 고금의 어떤 전쟁에서도 변수는 있게 마련이었소. 적은 수효의 군사로 월등히 우세한 적군과 싸워 이긴 경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지. 30년 전 수(隨)의 오랑캐들이 쳐들어왔을 때 을지문덕(乙支文德) 대원수께서 단 6만의 군사를 지휘하여 우중문(于仲文)·우문술(宇文述)의 30만 대군을 유인하여 살수(薩水)에서 격멸하시지 않았소? 서토(西土)에서는 아주 먼 옛날에 오장(吳將) 육손(陸遜)이 불과 4만 군사를 거느리고 소열제(昭烈帝) 유비(劉備)가 이끈 촉군(蜀軍) 10만을 이릉전투(夷陵戰鬪)에서 전멸시킨 적도 있었소. 옛날의 경우만 들 것도 없소. 당장 지금 안시성에서는 수만의 우리 군사와 백성들이 이세민의 수십만 대군과 멎서 꿋꿋하게 성을 지키고 있지 않은가 말이오? 지금 우리와 똑같이 열배의 대군과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오! 나는 안시성에서 양만춘 성주와 우리 군사들이 틀림없이 이기리라고 굳게 믿고 있소! 그리하여 이세민과 서토의 군사들로부터 우리 성을, 우리 영토를 반드시 지켜내리라고 믿고 있소! 그러므로 우리도 이번 한판의 싸움에서 결코 질 수가 없소이다! 우리는 정말이지 여기에서 더는 물러날 곳이 없소이다! 이번 싸움에서 기필코 승리하여 장량과 서토의 해적들을 물고기의 먹이로 만들고 우리의 바다와 우리의 요새를 지켜내야만 하오! 그래서…… 나는 이번 싸움에서 이렇게 할 작정이오.”

 

장수들이 눈을 크게 뜨고 연수영의 얼굴을 주시했다.

 

이번 결전의 주전장이 될 장산군도는 발해만의 동쪽, 서해의 북쪽, 요동반도의 남쪽에서 대장산도를 중심으로 소장산도나 장해도 등 주변의 112개 섬과 산호초들이 울타리처럼 둘러싸고 있어 거대한 만(灣), 또는 내해와도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장산군도는 멀리 단군조선 때부터 이곳 요동의 항로를 지키던 바다의 요새였고,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의 정복전쟁 때도 요동반도의 해안방어선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중요한 수군기지였다. 이와 같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므로 장산군대 해협은 전의 여수전쟁(麗隨戰爭) 때나 이번 여당전쟁(麗唐戰爭)에서나 양국 간의 대규모 해전을 피할 수 없었다. 그것이 곧 이 해역의 지정학적 숙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장량은 비사성 기지를 떠나 남동쪽으로 항진, 광록도를 지나 장산군도에 이르자 여기서 함대를 6백척씩 둘로 나누었다. 그리하여 좌군은 주장인 자신이 이끌고 내장산해협으로 들어서고, 우군은 상하에게 맡겨 외장산해협으로 진군토록 했다. 좌군의 부장은 좌난당이었고, 우군의 부장은 유영행이었다.

 

양군은 쉴 새 없이 척후선을 보내 적정을 살피는 한편, 소규모 도발로 적군의 이목을 교란시켰다. 고구려 수군의 규모가 전에 입수한 정보와 달리 2백척의 함선이라는 새로운 보고를 받은 장량은 오히려 기뻐했다. 장량이 대장선인 누선 위에서 좌난당을 비롯한 부하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연수영이란 고구려의 계집이 모든 함선을 끌고 나선 것은 우리가 전공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이번 싸움에서야 한 놈도 남김없이 전멸시킬 수 있겠구나.”

 

“그렇습니다, 대총관 각하! 이번에 자라새끼들 같은 고구려 해적들을 싹 쓸어버리면 각하께서 이 바다의 주인이 되시는 겁니다! 아니, 이 바다의 제왕이 되시는 거지요.”

 

“그런가? 으하하하!”

 

“그런데 대총관…, 육군과 달리 수군은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육군은 전세가 불리하다싶으면 장수건 사졸이건 달아나기에 바쁘지 않습니까? 그런데 수군은 배에 타고 있으니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곳이 없지 않습니까? 기껏해야 바다에 빠져죽기밖에 더 합니까?”

 

“흐응, 그건 그래! 또 뱃머리를 돌리는 자들은 뒤에서 감군(監軍)들이 목을 치지 않는가? 으하하하……”

 

“우헤헤헤…….”

 

하지만 장량은 꾀가 많은 자였다. 부하들 앞에서는 제법 호기를 부렸지만 신중하게 작전을 펼쳤다. 함대를 좌군과 우군으로 절반씩 나누었지만 그래도 고구려 수군과 접전하게 되면 한꺼번에 다 덤벼들지 말고 1백척씩 교대로 나가서 싸우라고 지시했다. 우세한 병력과 함대를 이용, 교대로 나가 싸우게 하여 적군을 지치게 만드는 차륜전법(車輪戰法)을 쓰려는 것이었다. 또한 장량은 자신의 함대가 이미 여러 차례 연수영의 기습작전과 유인작전에 말려들어 망신당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하 장수들에게 전투가 끝날 때까지 조금도 방심하지 말고 경계를 철저히 하라고 거듭해서 지시했다.

 

8월 18일 신시(申時)가 되자 연수영은 이미 구상했던 작전계획대로 내장산해협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군세가 약하기 때문에 넓은 외해를 피하고 좁은 수로를 이용하기 위한 전술적 이유 때문이었다. 장해도 근처에 이르렀을 때 척후선 한 척이 재빠르게 달려와 보고했다.

 

“서토 오랑캐들의 배들이 보입니다!”

 

“상보(祥報)하라!”

 

“6백척씩 두 함대로 나누어 양쪽 해협에 쫙 깔려서 오고 있습니다!”

 

“전 함대는 즉시 전투준비를 하라!”

 

연수영이 군령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당군 함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연수영의 함대는 그 자리에 정지한 채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전투준비를 한 채 적군 선단이 접근하기를 기다혔다. 고구려 수군을 발견한 장량은 속도 빠른 중선으로 구성된 돌격함대 1백여척을 선두에 세우고, 누선 1백여척이 그 뒤를 따라 전진하도록 했다. 이어서 전령선을 보내 우군 총수 상하에게 지시했다.

 

“상 총관은 즉시 달려와 적의 퇴로를 끊어라! 앞뒤에서 적군을 협공한다!”

 

고구려 수군 선봉 함대의 규모가 1백척은 커녕 겨우 50척밖에 안 되는 것을 본 장량은 또 다시 깔보는 마음이 들었다.

 

“속이 좁고 담이 작은 계집이라 별 수 없구나! 겨우 50척의 함선으로 대군을 막으려 들다니…….”

 

2백척이 똘똘 뭉쳐서 덤벼도 일격에 무너질 주제에 함대를 나눈 것을 보자 장량은 오늘의 승리는 어디 갈 데가 없다고 확신했다.

 

연수영의 함대 앞으로 장량의 좌군 함대 6백척이 바다를 가득 뒤덮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외장산해협으로 진입한 상하의 함대 6백척도 곧 몰려올 것이다. 연수영은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어차피 포위전은 각오할 수밖에 없구나. 드디어 결전이군.’

 

그녀는 허리에서 패검을 빼어들고 허공에 휘두르며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전 함대는 안익진(雁翼陳)을 펼쳐라! 대선은 포노를 쟁여라! 궁수는 사격준비!”

 

돌격 신호인 붉은색 군기가 오르고, 전고(戰鼓)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시각 당군 기함에서도 장량이 공격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전 함대는 적군을 포위하고 집중사격을 개시하라!”

 

함대의 최전방에 버티고 선 대장선 장대에서 연수영은 사정권에 들어온 당군의 군선들을 노려보며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냈다.

 

“쏴라! 당나라 오랑캐들을 격멸하라!”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갑판의 병사들이 노포를 발사하고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금세 적선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과 돌덩이와 화토병으로 온통 뒤덮였다. 파도에 흔들리는 뱃전에 서서 병사들은 쉴 새 없이 노포를 발사하고 활시위를 당겼다. 방패수들은 노포수의 곁에서 자기 키만큼 커다란 장방패를 들어 적선에서 날아오는 화살과 돌덩이들을 막았다. 화살과 돌덩이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지는 적군 병사들이 육안으로도 똑똑히 보였다. 그러나 당군도 그동안 맹훈련을 거듭한 덕분인지 전과는 달리 무기력하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바로 곁에서 전우들이 픽 픽 쓰러져 죽어가도 고래고래 악을 쓰며 열심히 쏘아댔다.

 

장운형의 좌군과 고성운의 우군 함대가 중군의 양쪽 옆에서 기러기가 날개를 펼친 모양의 안익진을 치고 중군을 호위하는 한편 달려드는 적선들을 맞아 응전했다. 당군의 돌격선 한 척이 맨 앞에 선 연수영의 대장선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뱃전에 붙어 밧줄을 걸고 기어오르려고 했다. 장량이 보낸 결사특공대였다. 그러자 대장선의 좌우에서 아군의 중선 두 척이 재빨리 쫓아 나와 당군 돌격선의 옆구리를 뱃머리로 사정없이 들이받았다. 당파작전(撞破作戰)이라면 당나라의 군선이 고구려 전함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적선은 ‘와지끈, 뚝딱!”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나서 가라앉아버렸다. 아군의 돌격선은 다시 뱃머리를 돌려 새로 나타난 적선을 향해 돌진했다.

 

“위치를 고수하라! 추격하지 마라!”

 

연수영이 소리쳤다. 적선은 계속해서 밀려왔다. 장량이 선발대로 보낸 1백척만으로도 그 뒤쪽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내장산해협이 온통 당나라의 전함으로 꽉 찼던 것이다.

 

음력 8월이라 해가 짧아지고 있었다. 술시(戌時)가 되자 서쪽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장량이 보낸 1백척의 선봉함대는 절반 이상이 불타고 부서져 격침됐다. 따라서 5천명 이상의 적군도 당연히 수장됐다. 적의 공세가 맹렬한 만큼 고구려군도 피해가 나왔다. 아직까지 대선은 피해가 없었지만 중·협선 다섯 척이 침몰하고 2백여명이 전사했다. 부상자는 파악할 겨를도 없었다.

 

군사들은 계속해서 노포를 발사하고 활을 쏘았다. 그리고 돌격대는 적선에 도선(渡船)하여 백병전(白兵戰)을 벌였다. 그대로 장량은 남은 전 함대를 휘몰아 총공세로 나서지는 않았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고구려군의 전력을 조금씩 약화시키겠다는 전략을 그대로 밀고나갈 속셈이었다. 장량으로서는 자기 함대 절반을 잃더라도 고구려 수군 함대를 전멸시킬 수만 있다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연수영은 그런 장량의 계산법에 말려들 수 없었다.

 

“대선들은 돌격하라! 남은 적선을 당파하라!”

 

연수영은 중·협선들을 좌우로 물러서게 하고 대선들로 하여금 다시 앞으로 나서게 하였다. 남은 적선들을 뱃머리로 들이받아 깨부수는 당파작전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는 한편 연수영은 장운형에게 급히 전령선을 보내 좌군을 이끌고 후미를 막게 했다. 당군의 우군 함대가 접근하고 있다는 급보를 받고 취한 조치였다. 장운형은 즉시 자신의 함대 1백척을 이끌고 돌아서서 방어태세를 갖추었다. 고구려의 전함들이 일제히 뱃머리를 앞세우고 돌격하자 옆구리를 드러내놓고 사격전을 펼치던 당군은 당황했다. 덩치는 크지 않지만 견고하기는 거의 두 배나 되는 튼튼한 고구려의 전함들이 들이받으면 견딜 도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30여척이 남은 당군 선봉함대는 서둘러 뱃머리를 돌려 달아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동안의 접전에서 모청호와 강철우가 이끈 고구려군 돌격대와 전위대의 활약으로 당군 전함들은 노가 거의 다 부러져서 방향을 제대로 돌릴 수가 없었다. 고구려 전함에 옆구리를 들이받힌 당군 전함마다 ‘뻥, 뻥!’ 구멍이 뚫리고 부서져나갔다. 곧이어 바닷물이 부서진 뱃전으로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당군 전함은 그렇게 한 척 두 척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수장되어갔다.

 

한편 당군의 우군 함대가 멀리 해협을 우회하여 고구려 수군의 배후로 접근했다.

 

“군주! 괜찮으세요?”

 

곁에서 동료들과 더불어 연수영을 보호하며 열심히 활시위를 당기던 낭자군 우두머리 해란봉이 물었다. 독전(督戰)하느라고 목이 다 쉰 연수영이 걱정되어서였다.

 

“내 걱정은 마! 아직은 괜찮아!”

 

그러는 사이에 드디어 바다에 어둠이 내렸다. 날이 어두워지자 장량은 후속 함대를 보내지 않았다. 멀리서 포위만 한 채 밤을 보낼 생각인 듯했다. 연수영도 징을 울려 함대를 불러 모았다. 첫날 접전은 그렇게 고구려 수군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날 밤 연수영은 장수들을 소집했다. 다행히 장수들 가운데는 희생자가 아무도 없었다. 다만 고대수와 모청호가 각각 화살에 맞아 팔과 어깨에 가벼운 부상을 입었을 뿐 전투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모두 잘 싸워주었소! 훌륭하오!”

 

“이는 군주가 앞장서신 덕분입니다!”

 

연수영의 치하에 장운형이 대표로 입을 열었다.

 

“군사들의 사기는 어떤가요?”

 

“좀 지쳤다 뿐이지 아무 문제없습니다!”

 

이번에는 고성운이 대답했다.

 

“밤에 교대로 푹 자고나면 괜찮을 겁니다.”

 

다시 장운형이 말했다.

 

“군주! 장량이란 놈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오늘처럼 싸우려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럴까요?”

 

“서전부터 피해가 많이 났으니 곧 총공세로 나서지 않겠소이까?”

 

“내일이든 모레든 적이 총공세로 나온다면 우리도 결판을 낸다는 생각으로 맞서야겠지요! 그렇지만 정면승부를 벌일 수는 없어요. 이제부터는 우리가 오랑캐들을 끌고 다녀야 하오! 그래서 적을 지치게 만든 다음, 결정적 타격을 가하는 거요. 오늘 서전에서 대패했으니 적군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을 게요.”

 

“오로지 군령에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강철우가 나섰다.

 

“내일부터 군주께서는 제발 뒤에서 지휘하시기 바랍니다! 조마조마해서 마음 놓고 싸울 수가 없소이다!”

 

이번에는 장운형도 거들었다.

 

“강 장군 말이 맞소이다! 주장이 너무 위험에 노출돼서는 안 됩니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우린 더 싸울 수가 없소이다.”

 

그러나 연수영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오! 그 얘기는 더 꺼내지 마시오! 이번 전투가 끝날 때까지는 내가 선봉장이며 돌격장입니다! …여러분이 정 그렇게 불안하다면 나 연수영이 내일부터는 가짜수염이라도 붙이고 싸울까요? 호호호…… 자, 모두 돌아가서 푹 쉬오! 물론 경계는 철저히 하면서……”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