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때 불타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속으로 들어갔다가 건물붕괴로 사망한 구조대원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우리를 숙연케 한다. 이 건물의 보안책임자 존 오닐도 구조대원과 함께 사망했다. FBI 요원이던 오닐은 90년대 초부터 이슬람 테러조직을 맹렬히 쫓았다. 2001년 8월말 세계무역센터의 보안책임자로 직장을 옮기 후 한 달도 안 돼 발생한 9.11테러로 그는 불같이 살았던 생을 마감했다. 뉴욕 포스터의 머레이 와이스 기자가 쓴 이 책(원제: The Man Who Warned America)은 이스람 테러의 위험성에 대해 일찌감치 경고를 했고, 또한 세계를 누비며 테러조직과 전쟁을 벌였던 존 오닐의 일대기다. 저자는 클린턴 대통령 등 미국의 고위정책 담당자들이 오닐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더라면, 9.11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1962년 뉴저지 주 애틀랜틱 시티에서 태어난 오닐은 어릴 때부터 FBI수사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고교를 졸업하자 그는 워싱턴의 FBI본부에 관광안내원으로 취직,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대학을 다녔다. 대학 졸업후 정상로 FBI요원이 된 그는 여러 보직을 거쳐 본부의 테러방지 대책반에서 일했고, 이어 워싱턴과 뉴욕지부의 국가안보반장을 지냈다. 오닐은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발 사건의 주범인 유세프를 체포하는 작전을 지휘했고, 1995년 오클라호마 연방건물 폭파사건, 1996년 사우디 미 공군기지 폭발 테러등 큼직한 사건을 수사했다. 오닐은 일찍이 빈 라덴의 가공할 위험성을 알아차렸다. 그는 빈 라덴의 어록을 보고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1997년 6월 한 공개석상에서 오닐은 빈 라덴이 언제든지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998년 8월에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이 동시에 폭파돼서 247명이 죽고 수천명이 다친 대참사가 발생했다. 1999년 연말이 닥쳐오자 오닐은 줄리아니 뉴욕 시장등과 함께 밀레니엄 테러에 대비했다. 2000년 1월 1일 자정을 기해 맨해튼을 폭파하려던 밀레니엄 테러는 오닐 덕분에 막을 수 있었으나, 당시 백악관은 밀레니엄 테러 시도를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오닐과 친분이 있던 저자는 오닐의 인간적인 면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고교 졸업 후 결혼한 첫 부인과 일찍이 별거한 후 오닐은 아이들의 양육비를 대야 했기 때문에 늘 쪼들렸다. 카톨릭 신자였던 오닐은 이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닐은 많은 여인을 사랑했고, 90년대에 들어선 발레리등 세 명의 여인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상하게도 오닐은 이들여인의 사랑이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 면이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오닐은 FBI의 보안규정을 위반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를 계기로 FBI를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무역센터의 보안책임자로 직장을 옮긴후 제대로 일도 해보지 못하고 건물과 함께 운명을 같이했다. 빈 라덴을 쫓던 그가 결국 빈 라덴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오닐의 장례식은 2001년 9월 28일, 그가 어릴 때 세례를 받은 고향 애틀랜틱 시티의 세인트 니콜라스 성당에서 열렸다. 오닐의 노모와 별거 중인 아내와 자식들, 오닐이 사랑했던 두 여인, 그리고 FBI의 동료, 사법공무원, 외교관 등 1000명이 넘는 추모객들이 그를 떠나 보내는 미사에 참석했다. 한 인간의 진한 삶을 통해 테러와의 전쟁이 의미하는 바를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책이다,,, **책 제목/미국에 경고를 한 사람(THE MAN WHO WARNED AMERICA), /머레이 와이스 지음/리건 북스..패랭이 옮김 **
미국에 경고를 한 사람(THE MAN WHO WARNED AMERICA)
**9.11테러 때 불타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속으로 들어갔다가
건물붕괴로 사망한 구조대원들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우리를 숙연케 한다.
이 건물의 보안책임자 존 오닐도 구조대원과 함께 사망했다.
FBI 요원이던 오닐은 90년대 초부터 이슬람 테러조직을 맹렬히 쫓았다.
2001년 8월말 세계무역센터의 보안책임자로 직장을 옮기 후 한 달도 안 돼 발생한
9.11테러로 그는 불같이 살았던 생을 마감했다.
뉴욕 포스터의 머레이 와이스 기자가 쓴 이 책(원제: The Man Who Warned America)은
이스람 테러의 위험성에 대해 일찌감치 경고를 했고, 또한 세계를 누비며 테러조직과 전쟁을 벌였던
존 오닐의 일대기다.
저자는 클린턴 대통령 등 미국의 고위정책 담당자들이 오닐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더라면,
9.11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1962년 뉴저지 주 애틀랜틱 시티에서 태어난 오닐은 어릴 때부터 FBI수사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고교를 졸업하자 그는 워싱턴의 FBI본부에 관광안내원으로 취직,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대학을 다녔다.
대학 졸업후 정상로 FBI요원이 된 그는 여러 보직을 거쳐 본부의 테러방지 대책반에서 일했고,
이어 워싱턴과 뉴욕지부의 국가안보반장을 지냈다.
오닐은 1993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발 사건의 주범인 유세프를 체포하는 작전을 지휘했고,
1995년 오클라호마 연방건물 폭파사건, 1996년 사우디 미 공군기지 폭발 테러등 큼직한 사건을 수사했다.
오닐은 일찍이 빈 라덴의 가공할 위험성을 알아차렸다.
그는 빈 라덴의 어록을 보고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1997년 6월 한 공개석상에서 오닐은 빈 라덴이 언제든지 미국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1998년 8월에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이 동시에 폭파돼서 247명이 죽고
수천명이 다친 대참사가 발생했다.
1999년 연말이 닥쳐오자 오닐은 줄리아니 뉴욕 시장등과 함께 밀레니엄 테러에 대비했다.
2000년 1월 1일 자정을 기해 맨해튼을 폭파하려던 밀레니엄 테러는 오닐 덕분에 막을 수 있었으나,
당시 백악관은 밀레니엄 테러 시도를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오닐과 친분이 있던 저자는 오닐의 인간적인 면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고교 졸업 후 결혼한 첫 부인과 일찍이 별거한 후 오닐은 아이들의 양육비를 대야 했기 때문에 늘 쪼들렸다.
카톨릭 신자였던 오닐은 이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오닐은 많은 여인을 사랑했고, 90년대에 들어선 발레리등 세 명의 여인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이상하게도 오닐은 이들여인의 사랑이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한 면이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오닐은 FBI의 보안규정을 위반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이를 계기로 FBI를 떠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무역센터의 보안책임자로 직장을 옮긴후 제대로 일도 해보지 못하고
건물과 함께 운명을 같이했다.
빈 라덴을 쫓던 그가 결국 빈 라덴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오닐의 장례식은 2001년 9월 28일,
그가 어릴 때 세례를 받은 고향 애틀랜틱 시티의 세인트 니콜라스 성당에서 열렸다.
오닐의 노모와 별거 중인 아내와 자식들, 오닐이 사랑했던 두 여인, 그리고 FBI의 동료,
사법공무원, 외교관 등 1000명이 넘는 추모객들이 그를 떠나 보내는 미사에 참석했다.
한 인간의 진한 삶을 통해 테러와의 전쟁이 의미하는 바를 느낄 수 있는 감동적인 책이다,,,
**책 제목/미국에 경고를 한 사람(THE MAN WHO WARNED AMERICA),
/머레이 와이스 지음/리건 북스..패랭이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