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中毒) - 두번째

독백2003.12.16
조회383

현표는 불안한 마음에 집으로 뛰어 들어가 지우를 찾았고, 안엔 지우의 신발만 있을뿐 지우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현표는 걱정이 되었고,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어린아
이의 걸음으로 2시간이 넘게 지우를 찾았고, 드디어 놀이터에서 지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얼레리 꼴레리- 벙어리 래요- 벙어리래요-"
" 말도 못하는 바보 래요-"

 

현표가 놀이터안으로 들어가자 지우는 지우보다 더 커 보이는 동내 남자아이들에게 둘러 쌓여
놀림을 받고 있었고, 놀이터 모래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말없이 울고만 있었다.

 

" 뭐야!! 비켜 형들 뭐야- 저리가!!!"

 

현표는 그런 지우를 보곤 달려와 남자아이들을 밀쳐냈고, 현표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이들
은 그런 현표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 뭐야- 이현표 아니야?!"
" 그러게.너네 아빠가 사채하신다며? 착한사람들 돈은 다 뺏어간다고 동내사람들이 욕하던데"
" 하하하 "

 

아이들은 현표를 놀려댔고, 현표는 아빠를 욕하는것 따윈 들리지도 않았다. 단지 지우누나를
울린 이들에게 화가 날뿐이었다.

 

" 오... 그 눈은 뭐야? 우릴 때리기라도 하겠단 거냐?"

 

아이들은 초등학생들이었고, 현표는 이제 다섯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아이였다.
그들은 셋이었고, 현표는 혼자 였다.

 

" 아빠는 남에 돈이나 뺏어가고 여자친구는 벙어리냐?"

 

현표는 그들의 가운데 서있던 가장 덩치가 컸던 아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현표가 그의 얼굴을 치자 그는 뒤로 넘어졌고, 현표는 그의 배위로 올라가 그의 얼굴을 사정없
이 패기 시작했다.

 

" 이 새끼 윽...뭐야- 윽...야!!  니들...윽..."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얻어 맞고만 있던 아이가 소리치자 그의 친구들이 현표에게 달려 들
었고, 친구들이 현표를 잡자 맞고 있던 아이는 입술의 피를 닦으며 현표에게 달려 들었다.
현표는 꼼짝도 하지 못했고, 그런 현표를 보며 지우는 말없이 울기만 했다.
현표는 울고 있는 지우를 보며 애써 미소를 지었고, 지우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 야- 가자!! "

 

한참 현표를 패던 아이들이 잡고 있던 현표의 팔을 놓자 현표는 맥없이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뽀얀 현표의 얼굴은 온통 피 투성이었고, 지우는 현표에게로 기어와 현표의 얼굴을 옷소매로
닦아 주었다. 지우의 하얀 원피스에 현표의 빨간 피가 물들고 있었다.

 

" 으윽...괜찮아 누나......난 괜찮아..."

 

지우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울지마...누나.  난 괜찮다니까..."

 

현표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고, 배에선 통증이 느껴졌다.

 

"윽........"

 

지우는 현표를 부축했고 현표는 조심스레 일어 섰다. 현표는 통증을 참으려 허리를 숙였
고 그러자 흙투성이가 된 작은 지우의 발이 보였다.
집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지우의 신발...
현표는 허리를 굽혀 자신의 신발을 벗어 지우의 발 앞에 놔주었다.
지우는 현표를 보았고, 현표는 그런 지우를 향해 신발을 보였다.
아무래도 지우가 그 신을 신지 않을것 같았는지 현표는 지우의 한쪽발을 조금 들어 털어
주기 시작했다.

 

" 이거봐. 신발을 신어야지... 더러워 졌잖아......"

 

현표는 나머지 한쪽발도 흙을 털고, 신발을 신켜주었다.

 

" 됐다...가자!!"

 

현표는 지우의 손을 꼭 붙잡고 집으로 향했다.

 

" 태어나서 처음으로 밟아 본 시멘트 바닥이었는데... 누나가 같이 있어서 하나도 아프지 않았어..."

현표는 옛날 얘기를 계속 이었다.

 

" 아빠- 아빠 어디예요?"

 

유치원에서 집에 돌아온 현표는 지우가 보이지 않자 기석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가 지우를 팔거라는 말이 떠올라서 였다.

 

" 아빠 지금 지우누나랑 있죠?? 그렇죠!!! 지우누나 데려가지 말아요. 아빠... 지우누나 데려가
지 말아요.제발..."
' 무슨 소릴 하는거냐........'
" 아빠가 지우누나 데려 갔잖아요!!"
' 무슨 소리야! 난 오늘 그애 보지도 못했어!'
" 그...그럼 지우누나는 어딜 간거예요?"
'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하니. 난 모르겠다. 바쁘니 이만 끊자.'

 

현표는 전화를 끊고 다시 한번 집안을 찾기로 했다. 커다란 2층집은 현표가 지우를 찾는데 도
움이 되지 못했다.

 

" 누나 아무데도 가지 말고 집에 있어. 나 유치원 다녀 올게. 금방 올거야...알았지?"

 

현표의 말에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런데 집안 어디에도 지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을때 방안 침대옆에 웅크리고 앉아 알아 듣지 못할 말을 웅얼거리
는 지우가 보였다.

 

" 누나!!"

 

현표는 반가움에 지우에게로 달려가 그녀를 보았고, 지우는 슬픈눈을 하고는 눈물을 흘리고 있
었다.

 

" 누나? 무슨 일이야?? 왜 울어?"

 

지우의 알아 듣지 못할말...

 

" 응?? 뭐라고 하는거야?? 나...잘 안들려. 누나!! "

 

지우는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지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어디서 많이 들어 본듯한...

 

" 지나간...세월...모두...잊어...버리게...당신없이...아무것도...이젠...할 수 없어...사랑...밖에...난 몰라..."

 

누나가 송마담 누나가 부르던 노래였다. 현표가 누나의 가게 앞을 지날때면 부르고 있던 노래.
지금의 지우와 같은 눈을 하고 부르던 노래. 지우는 그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도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지우는 그노래를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읊조리고 있었다.

 

" 아빠 오셨어요?"
" 그래."
" 아빠...지우누나 제 방에 있었어요."
" ..."
" 아빠! 지우누나 아무데두 데려가면 안되요-"
" ..."
" 아빠 꼭이요!! "

 

현표의 말에 기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 아빠- 꼭!!"

 

현표가 기석의 방문을 열자 그는 통화를 하고 있었고,

 

" 뭐 송마담이 죽어? 간암? 할말이 없군..."

 

현표는 통화 내용을 듣고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평소에 알콜중독이었던 그녀는 끝내 26이라는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죽었고
그걸 알기라도 한 듯 지우는 하루 종일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는 그 노래를 불렀나보다.


그러던 어느날...

 

" 아빠 누나 어디로 데려 가는 거예요. 아빠 안되요-아빠- 아빠!!!"

 

현표는 악몽을 꿨다. 아빠가 지우누나를 아주 못되게  생긴 아저씨한테 팔아 넘기는 꿈을...
현표의 얼굴에선 식은땀이 흘렀고 그가 일어나자 이미 해는 하늘에 걸려있었다.
집안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고요했고 현표는 일어나자 마자 아랫층으로 내려왔다.

 

" 아빠! "

 

기석은 집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현표는 기석의 방문을 열었고, 방안은 깔끔하게 정리되
어 있었다.

 

" 나가셨..."

 

현표는 문을 닫으려다 방문앞에 떨어져 있는 흰종이를 주웠고 흰종이에는 그렇게 쓰여있었다.

 

-성모 수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