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로부터 추방당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 학자. 학습자 중심 교육 실천자의 대표적인 인물이 된다.
그는 교수자 중심 교육법은 은행저금식 교육(Banking Education)이라고 비판하고,
문제제기식 교육(Problem-posing Education)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일종의 대화식 교육과 일맥상통하다.
※ 은행저금식 교육이란...
저금통에 동전을 축적시키면 그 양이 늘어나듯이, 머리에 지식을 축적시키면 지식이 풍부해진다는 논리이다. 저금통을 흔들었을 때, 소리가 경쾌할 수록 A급, 그렇지 아니할 경우 F. 이런식으로 서열을 가르는 것 역시 은행저금식 교육의 특징이다. 그렇게 서열을 가르면 학생은 수동적으로 교수에게 끌려갈 수 밖에 없다. '평가'라는 어마어마한 무기가 교수에게 있기 때문이다.
Freire는 침묵문화를 철저히 거부하고,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소통하는 교육을 원했다.
그에 따라, 학생들이 교수자의 취향에 맞춰 가르쳤던 것이 이제는 반대로 교수자가 학습자의
취향에 맞춰야 한다.
그렇다면 차갑부 선생님께서 내걸은 "학습자중심 교수법의 4대 원칙"을 알아보자.
1. 알고 준비하라
가르칠 대상인 학생들을 알아야 하며('가르칠 대상') 그에 따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가르칠 방법'을 고뇌해야 하며, '가르칠 내용' 역시 더할나위없이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칭찬에 궁핍했던 학생들이 모인 자리였다면 교수자는 칭찬을 평소보다 더 많이 해야한다. 자신감이 생긴 학생들은 더욱 긍정적인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사례로 에디슨과 미국 어느 초등학교를 예로 들 수 있다.
에디슨의 경우, 학교에서 퇴학맞았음에도 어머니의 다독임과 칭찬을 받고,
전화위복을 하여 세계 최고의 발명왕이 된다.
미국 어느 초등학교의 경우, 어떤 연구자가 초등학교 어느 반을 표본으로 하여 IQ테스트를 본 후, 그 결과에 상관없이 몇명을 선출하여 담임선생님께 '이 몇명이 IQ가 가장 높게 나왔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몇달 후, 시험을 쳤는데 그 몇명이 성적이 우수등급으로 나왔다.
담임선생님은 연구자로부터 받은 명단을 확인한 후, 이 몇명에게 더욱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또 어느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기 스스로 머리 나쁘다고 생각하거나
부정적인 사고를 자주하는 경우 실제로 머리가 둔화된다고 한다.
어쨌든 학생을 알고, 학생에 맞는 교육내용과 교수법을 준비해야 한다.
2. 학습자와 하나가 되라.
교수자가 학습자와 하나가 되지 못하는 순간, 사랑의 매는 폭력이 될 뿐이다.
3. 배움의 의욕을 갖게 하라.
학습자에게 동기유발을 촉진시켜주는 헬퍼로서의 역량을 지녀야 한다.
이전의 언급했었던 칭찬을 자주한다거나 관심을 가져다주는 것 역시 이 파트에 해당된다.
4. 뇌가 좋아하도록 가르쳐라.
초두 최신효과, 자이가닉 효과, 본 레스토프 효과, 타인지도 효과 등의 기법을 사용하도록 한다.
이렇게 학습자중심의 교수법에 대해 설명해보았는데, 사실 강의땐 몇배에 달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블로깅을 하면서 간추리기도 하고, 완벽하게 강의를 듣지 못한 것도 있어서 다 글로 표현해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차갑부 선생님께 했어야할 질문들을 올려본다.
1. 교수자는 직업윤리에 의거하여 학습자를 평가하는 것 뿐인데, 점수로 서열을 가르는 것은 학습자중심의 교육에 반하는 행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딜레마에 대한 생각이나 대안 있으십니까?
2. 교수자의 도덕성이 학습자를 가르치는데 중요합니까? 도덕성 그것 역시 교수자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개인 이미지메이킹에는 중요할지 모르겠으나, 교수자이기 때문에 도덕성을 더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은 사회로부터 더 감시받아야 하는 억지논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쨌든 교수자는 그러한 도덕성에 더욱 신경써야하는 건 불가피한 일인지 궁금합니다.
학생중심의 교육. 그것은 항상 미래일 뿐인가?
8.31일은 경성대(차갑부 연사님), 9.2일은 부산대(김태원 연사님)에서
각 학교별 교수학습개발원 주최하에 연사의 명강의가 열렸다.
안그래도 직전학기때 학교수업중 <교수학습매체론>을 듣고,
교육에 대해 엄청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번 특강은 그 목마른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다.
기존의 교수자중심 교수법은 낡은 교육방법이라기보단 한계가 깊은 교육방법이다.
교수자중심의 교수법의 한계를 크게 네가지로 분류해보면,
1. 학생이 순종적으로 변한다.
2. 폭력적인 교수법이다. (교수자의 가치관 강요)
3. 이상보단 현실을 추구한다.
4. 교육의 주체는 교수자이고, 교육의 피동체가 학생이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일어난다.
오늘날 지식정보화 사회는 1분1초 쉴틈없이 변하는 세상이다.
지식의 생명주기가 초를 다툴 만큼 짧아 방금 습득한 지식이라도 얼마 안있어 진부한
지식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스스로 응용하여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세상의 변화에 따라 학생 스스로가 지식을 탐색하고 활용하도록 도와주는
도우미 또는 동기부여자가 21세기 새로운 형태의 교수자인 것이다.
학습자중심의 교수학습법은 브라질의 Paulo Freire가 대표적이다.
브라질에서 사람들을 하여금 스스로 지성인으로 발전하게끔 헬퍼로의 활약을 해왔는데
정부로부터 추방당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 학자. 학습자 중심 교육 실천자의 대표적인 인물이 된다.
그는 교수자 중심 교육법은 은행저금식 교육(Banking Education)이라고 비판하고,
문제제기식 교육(Problem-posing Education)을 대안으로 내세웠다.
일종의 대화식 교육과 일맥상통하다.
※ 은행저금식 교육이란...
저금통에 동전을 축적시키면 그 양이 늘어나듯이, 머리에 지식을 축적시키면 지식이 풍부해진다는 논리이다. 저금통을 흔들었을 때, 소리가 경쾌할 수록 A급, 그렇지 아니할 경우 F. 이런식으로 서열을 가르는 것 역시 은행저금식 교육의 특징이다. 그렇게 서열을 가르면 학생은 수동적으로 교수에게 끌려갈 수 밖에 없다. '평가'라는 어마어마한 무기가 교수에게 있기 때문이다.
Freire는 침묵문화를 철저히 거부하고,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소통하는 교육을 원했다.
그에 따라, 학생들이 교수자의 취향에 맞춰 가르쳤던 것이 이제는 반대로 교수자가 학습자의
취향에 맞춰야 한다.
그렇다면 차갑부 선생님께서 내걸은 "학습자중심 교수법의 4대 원칙"을 알아보자.
1. 알고 준비하라
가르칠 대상인 학생들을 알아야 하며('가르칠 대상') 그에 따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가르칠 방법'을 고뇌해야 하며, '가르칠 내용' 역시 더할나위없이 알아야 한다.
예를 들면, 칭찬에 궁핍했던 학생들이 모인 자리였다면 교수자는 칭찬을 평소보다 더 많이 해야한다. 자신감이 생긴 학생들은 더욱 긍정적인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이러한 사례로 에디슨과 미국 어느 초등학교를 예로 들 수 있다.
에디슨의 경우, 학교에서 퇴학맞았음에도 어머니의 다독임과 칭찬을 받고,
전화위복을 하여 세계 최고의 발명왕이 된다.
미국 어느 초등학교의 경우, 어떤 연구자가 초등학교 어느 반을 표본으로 하여 IQ테스트를 본 후, 그 결과에 상관없이 몇명을 선출하여 담임선생님께 '이 몇명이 IQ가 가장 높게 나왔습니다'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몇달 후, 시험을 쳤는데 그 몇명이 성적이 우수등급으로 나왔다.
담임선생님은 연구자로부터 받은 명단을 확인한 후, 이 몇명에게 더욱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또 어느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기 스스로 머리 나쁘다고 생각하거나
부정적인 사고를 자주하는 경우 실제로 머리가 둔화된다고 한다.
어쨌든 학생을 알고, 학생에 맞는 교육내용과 교수법을 준비해야 한다.
2. 학습자와 하나가 되라.
교수자가 학습자와 하나가 되지 못하는 순간, 사랑의 매는 폭력이 될 뿐이다.
3. 배움의 의욕을 갖게 하라.
학습자에게 동기유발을 촉진시켜주는 헬퍼로서의 역량을 지녀야 한다.
이전의 언급했었던 칭찬을 자주한다거나 관심을 가져다주는 것 역시 이 파트에 해당된다.
4. 뇌가 좋아하도록 가르쳐라.
초두 최신효과, 자이가닉 효과, 본 레스토프 효과, 타인지도 효과 등의 기법을 사용하도록 한다.
이렇게 학습자중심의 교수법에 대해 설명해보았는데, 사실 강의땐 몇배에 달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블로깅을 하면서 간추리기도 하고, 완벽하게 강의를 듣지 못한 것도 있어서 다 글로 표현해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차갑부 선생님께 했어야할 질문들을 올려본다.
1. 교수자는 직업윤리에 의거하여 학습자를 평가하는 것 뿐인데, 점수로 서열을 가르는 것은 학습자중심의 교육에 반하는 행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딜레마에 대한 생각이나 대안 있으십니까?
2. 교수자의 도덕성이 학습자를 가르치는데 중요합니까? 도덕성 그것 역시 교수자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개인 이미지메이킹에는 중요할지 모르겠으나, 교수자이기 때문에 도덕성을 더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은 사회로부터 더 감시받아야 하는 억지논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쨌든 교수자는 그러한 도덕성에 더욱 신경써야하는 건 불가피한 일인지 궁금합니다.
문화콘텐츠기획자 이창민입니다. http://blog.naver.com/vegeta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