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라디오나 TV를 통해 음악을 듣고, 컴퓨터를 하면서도 음악을 듣는다. 또한 출퇴근길의 지하철이나 학교의 쉬는 시간에도 MP3나 마이마이를 통해 음악을 듣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이처럼 음악은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에 일부가 되어있다.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태교음반 이라던가 머리가 좋아지는 음반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에는 음악을 이용한 심리치료도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처럼 음악은 사람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런데 세간에는 죽음을 부르는 음악이나 자살을 하게 된다는 음악들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얼마 전에는 '미궁'이라는 음악을 들으면 죽게된다는 소문이 나돌아 TV에서까지 취재를 했었는데, 그 곡은 가야금의 달인인 황병기 교수가 인간사의 희노애락을 표현한 노래이며 그저 헛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처럼 죽음의 음악이나 악마의 음악이라고 소문난 노래중 대부분은 그저 소문일 뿐이었다고 밝혀졌는데, 그중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면서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노래 한 곡이 있다.
마약처럼, 사랑처럼, 사람을 중독 시키는 '죽음의 송가' - Gloomy Sunday
역사상 가장 충격적 콘서트 1946년 4월 30일,, 파리에서 세계적인 지휘자 Ray Ventura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콘서트가 열렸다. 구슬프고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관객들은 그 음악에 심취했다. 이 때 드러머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 뒤로 금관악기 연주자가 드러머를 뒤따르듯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았고, 곡이 끝날 때까지 남아있던 단원은 제1바이올린 단 한사람뿐이었다. 그러나 곡이 끝나자 그도 역시 천장에 내려진 줄에 목을 맸다. 연주곡은 바로 레조 세레스의 '글루미 선데이'였다.
비운의 천재 작곡가, 레조 세레스 작곡가 레조 세레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그가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유머가 풍부했고 왜소한 체구의 소유자였다는 것, 그리고 그에겐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꼽히는 헬렌이라는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레조는 헬렌이 자신을 떠난 후 실연의 아픔을 견딜 수 없었고 그때 작곡한 노래가 '글루미 선데이'이다. 그는 그 노래를 작곡한 후 손가락이 점점 굳어져 마침내는 두 손가락만으로 피아노 연주를 해야 했고 악보조차 읽을 수 없었다. 고소 공포증이 있어 높은 곳에 설 수조차 없던 그였지만 기이하게도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죽음의 순간에도 그는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있었다.
수백명을 자살하게 한 미스테리의 노래 1935년 헝가리에서 레코드로 발매된 지 8주만에 노래를 듣고 187명이 자살했고, 뉴욕 타임즈는 '수백명을 자살하게 한 노래'라는 헤드라인으로 특집기사를 실었다. '글루미 선데이 클럽'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노래를 듣고 자살했다. 이로 인해 그 노래의 악보는 폐기되었다.
이런 이유들을 들어 사람들은 '글루미 선데이'가 죽음의 찬가 또는 자살을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이유가 꼭 이 노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노래가 작곡된 1930년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로 암울한 시대였다. 또한 187명의 자살자가 나온 헝가리는 유럽의 어떤 나라보다 평균 수명이 낮고, 터키처럼 동양과 서양의 중간에 위치한 역사를 지니고 있어 이로 인한 정체성, 민족의 근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때문인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살율을 가진 나라이다. 또한, 나치 정권인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이 많이 살고 있던 헝가리를 비롯한 유럽의 실정을 볼 때 음악에서만 요인을 찾기보다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요즘에도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자살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나?? 물론 그 당시의 원곡은 남아있지 않고, 음을 기억해서 만들었다는 리메이크한 곡들만 남아있어 현재로서는 정말 '글루미 선데이'가 죽음을 부르는 노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혹시 '글루미 선데이'는 인간들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전쟁이라는 시대 상황에 의해 죽음의 노래라는 오명을 쓰게된 것은 아닐까???? 마약처럼, 사랑처럼, 사람을 중독 시키는 죽음의 송가라는 별칭을 가진 '글루미 선데이'는 죽음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6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gloomy sunday 를 아십니까?
★마약처럼, 사랑처럼,
사람을 중독시키는 '죽음의 송가' - Gloomy Sunday
우리는 라디오나 TV를 통해 음악을 듣고, 컴퓨터를 하면서도 음악을 듣는다. 또한 출퇴근길의 지하철이나 학교의 쉬는 시간에도 MP3나 마이마이를 통해 음악을 듣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이처럼 음악은 자연스럽게 우리 생활에 일부가 되어있다.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태교음반 이라던가 머리가 좋아지는 음반 등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요즘에는 음악을 이용한 심리치료도 많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처럼 음악은 사람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그런데 세간에는 죽음을 부르는 음악이나 자살을 하게 된다는 음악들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얼마 전에는 '미궁'이라는 음악을 들으면 죽게된다는 소문이 나돌아 TV에서까지 취재를 했었는데, 그 곡은 가야금의 달인인 황병기 교수가 인간사의 희노애락을 표현한 노래이며 그저 헛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처럼 죽음의 음악이나 악마의 음악이라고 소문난 노래중 대부분은 그저 소문일 뿐이었다고 밝혀졌는데, 그중 아직까지도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면서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노래 한 곡이 있다.
마약처럼, 사랑처럼, 사람을 중독 시키는 '죽음의 송가' - Gloomy Sunday
역사상 가장 충격적 콘서트
1946년 4월 30일,,
파리에서 세계적인 지휘자 Ray Ventura가 이끄는 오케스트라의 콘서트가 열렸다. 구슬프고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고 관객들은 그 음악에 심취했다. 이 때 드러머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서 자신의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 뒤로 금관악기 연주자가 드러머를 뒤따르듯 자신의 가슴에 칼을 꽂았고, 곡이 끝날 때까지 남아있던 단원은 제1바이올린 단 한사람뿐이었다. 그러나 곡이 끝나자 그도 역시 천장에 내려진 줄에 목을 맸다. 연주곡은 바로 레조 세레스의 '글루미 선데이'였다.
비운의 천재 작곡가, 레조 세레스
작곡가 레조 세레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그가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유머가 풍부했고 왜소한 체구의 소유자였다는 것, 그리고 그에겐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꼽히는 헬렌이라는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레조는 헬렌이 자신을 떠난 후 실연의 아픔을 견딜 수 없었고 그때 작곡한 노래가 '글루미 선데이'이다. 그는 그 노래를 작곡한 후 손가락이 점점 굳어져 마침내는 두 손가락만으로 피아노 연주를 해야 했고 악보조차 읽을 수 없었다. 고소 공포증이 있어 높은 곳에 설 수조차 없던 그였지만 기이하게도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했다. 죽음의 순간에도 그는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있었다.
수백명을 자살하게 한 미스테리의 노래
1935년 헝가리에서 레코드로 발매된 지 8주만에 노래를 듣고 187명이 자살했고, 뉴욕 타임즈는 '수백명을 자살하게 한 노래'라는 헤드라인으로 특집기사를 실었다.
'글루미 선데이 클럽'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이 노래를 듣고 자살했다. 이로 인해 그 노래의 악보는 폐기되었다.
이런 이유들을 들어 사람들은 '글루미 선데이'가 죽음의 찬가 또는 자살을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이유가 꼭 이 노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노래가 작곡된 1930년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로 암울한 시대였다. 또한 187명의 자살자가 나온 헝가리는 유럽의 어떤 나라보다 평균 수명이 낮고, 터키처럼 동양과 서양의 중간에 위치한 역사를 지니고 있어 이로 인한 정체성, 민족의 근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때문인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자살율을 가진 나라이다.
또한, 나치 정권인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이 많이 살고 있던 헝가리를 비롯한 유럽의 실정을 볼 때 음악에서만 요인을 찾기보다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서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요즘에도 '글루미 선데이'를 듣고 자살했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나?? 물론 그 당시의 원곡은 남아있지 않고, 음을 기억해서 만들었다는 리메이크한 곡들만 남아있어 현재로서는 정말 '글루미 선데이'가 죽음을 부르는 노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혹시 '글루미 선데이'는 인간들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전쟁이라는 시대 상황에 의해 죽음의 노래라는 오명을 쓰게된 것은 아닐까????
마약처럼, 사랑처럼, 사람을 중독 시키는 죽음의 송가라는 별칭을 가진 '글루미 선데이'는 죽음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6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다
츄촌 해주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