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은 이제 '다음에......'하고 내 가슴 깊이 묻어둘 애틋한 그리움의 한 대상이 되었으므로 미지의, 선연한 푸른 바다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오랜 날들을 나는 즐겁게 시달리리라.
애월, 가슴에 품고 싶은 작은 기생(妓生) 같은, 그 이름 떠오를 적마다.
- 이수익 시인의 詩 '애월' 중에서
노아요트투어 회사에서 요트 체험하는 중.
바다에서 바라보는 제주도의 원경이 일품^^
천년 전에 솟아오른 기생화산,
비양도 가는 선착장에서
맑은 바닷물에 학꽁치 떼가 무리지어 유영하네요^^
섬 속에 섬(?)이 산다!
비양도에는 해수로된 염습지 팔랑못이 있다.
목재 데크로 만든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
유유자적... 생태환경이 잘 보존된 못을 한바퀴 돌았다.
그날의 추억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고 싶은 섬, 비양도...
비양도(飛揚島): 한림읍에서 북서쪽으로 약 3㎞ 지점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002년(고려 목종 5)에 분출한 화산섬으로 기록되어 있다. 섬 모양은 전체적으로 원형이다. 최고지점은 114m의 분화구로 섬의 북쪽에 솟아 있으며, 남쪽은 대체로 평탄하다. 해안선의 드나듦은 단조로우며 대부분 암석해안이다.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며 눈·비가 많다. 농산물로는 유채·고구마·깨 등이 생산되며, 주민은 대부분 순수어업에 종사한다. 연근해에서는 80여 종의 어류가 회유하며 각종 해조류가 풍부하다. 특히 옥돔·고등어·갈치·방어 등이 많이 잡히며, 자연산 소라·전복·해삼 등이 채취된다. 취락은 남동쪽 해안가에 집중 분포하며 제주 한림항 간에 도선(渡船)이 왕복 운항된다. 동쪽 해안에 비양도등대가 있다. 면적 0.52㎢, 해안선 길이 2.5㎞, 인구 153, 가구 63(2004).[사전 자료]
예술계의 살아있는 전설, 르네상스맨,
과학자이자 천재예술가 창조형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는 다빈치 뮤지엄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공간 중 하나^^
드라마 촬영 현장을 실외(로케이션)와 실내(스튜디오)로 나누어
'로케'와 '디오'를 발췌한 스토리 체험형 드라마 박물관...로케디오 월드
제주 화산암에서 물이 용출되는
애월읍 유수암(流水岩) 마을의 유수암천
유수암 마을: 제주특별자치도는 화산활동에 의해서 형성된 땅이라 할 수 있으며 수천 년에 걸쳐 탐라인이 살아온 빌렛 (어음)동굴유적 및 곽지패총이 발견되는 걸로 봐서 제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이미 구석기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10세기부터 고려의 지배를 받으며 민란, 목호의 난 등 큰 난리를 치르고 13세기에는 삼별초군이 제주도를 본거로 항쟁을 하였다. 유수암에는 항몽 삼별초군이 항파두성에 웅거할 때 함께 따라 온 어느 한 고승이 지금의 유수암 절동산 아래 맑은 샘을 발견하고 그 언덕 아래 조그만 암자를 지어 태암감당이라 이름하여 불시를 시작한 것이 처음으로 이곳에 인적이 닿은 시초이다. 수년 후에 항파두성이 함몰할 때 김통정 장군의 처 이화선이 수하를 데리고 유수암천이 흐르는 이곳으로 피신하여 양지 바른 곳에 토실을 짓고 남은 여생을 살다가 명을 마쳤으므로 속칭 종신당이라 전해오며 이때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麗蒙聯合軍(여몽연합군)에 의하여 삼별초를 토평한 원나라는 탐라에 10개소의 목마장을 설치하여 국마를 기르게 하였는데 유수암경은 오소장에 속했고 그 목자들을 금물덕악(지금의 금덕봉)아래 관리사용에 편리하도록 집단으로 모여 살게 하였음으로 이곳이 바로 거문덕이였으며, 유수암 본동 보다 약 100년 가까이 먼저 촌락이 형성되었다.
그 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 초기에 지방토호의 한 사람인 좌수 홍덕수란 거물이 극악천, 고달천, 등 주위에 사는 사람들을 모으고 다른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유수암으로 이주시키고 자신도 식솔과 일가들이며 많은 노비들과 무리들을 이끌어 입향 정주하여 많은 전토를 확보하고 사람들이 생업에 터전을 마련하여 마을의 형태를 갖추었으니 이가 바로 유수암의 설촌자이다.
태암감당은 먼 훗날 '척화'라는 스님이 있어 사찰을 중건하고 천고사라 이름하여 면면히 내려오다가 조선 숙종 28년 이형상 목사에 의하여 당 오백 절 오백이 파괴 될 당시 사라졌으며, 지금은 절동산이란 이름과 더불어 빈터만 남아 있을 뿐 칠백년의 짙푸른 고색창연한 팽나무 숲 속에 그 시절 심지어 오랜 풍상에 젖은 한 그루의 무환자나무만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옛날의 영고성상의 깊은 사연을 말해주는 듯 고고한 자태로 현세의 유수암을 지켜보고 의연히 서 있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어 오는 터이다. [유수암 마을 홈페이지 마을 약사]
애월읍 삼별초 항몽유적지의 소나무
강건한 기상이 누구의 넋일까?
아! 제주도의 눈부신 아름다움 속에는
저항과 유배의 한을 간직한 비극의 섬이 숨어 있었지!
유수암 마을을 둘러보고
조금만 차로 이동하면
고려 최후의 대몽고 격전지...김통정 장군과 삼별초가 순국한
항파두리 항몽유적지(抗蒙遺蹟址)가 나온다.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고려시대 전적지. 고려시대 삼별초가 몽고군에 맞서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유적지이다. 제주도 애월읍 고성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김통정을 비롯한 삼별초 전원이 순국한 곳이다. 삼별초는 진도에서 여몽연합군에게 패하고 고려 원종 12년(1271)에 제주도에 들어와 성을 쌓았다.
이 성은 가파른 자연 지형을 활용하여 축조되었는데 성 안에 식수원으로 ‘구시물’이라는 용천수가 있어 물이 풍부했다. 이 용천수를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성을 쌓기도 하였다. 내성과 외성을 갖춘 이중성곽으로 외성은 흙을 이용해 쌓았으며 내성은 돌을 이용해 쌓았다. 외성의 둘레는 약 6㎞정도이며 내성의 둘레는 750m 정도이다. 현재 외성인 토성은 일부만 남아 있으며 그 외에 돌쩌귀(문짝을 여닫는데 쓰는 두 개의 쇠붙이), 기와, 자기, 연못터 등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외성의 폭은 말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적이 침입했을 때 나무를 태운 재를 토성 위에 뿌리고 말에 빗자루를 달고 내달려서 먼지가 자욱해지도록 하는 연막작전을 펴기 위함이었다. 이 때문에 김통정이 구름 위를 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한다.
상세설명
고려 원종 14년(1273) 김통정 장군과 삼별초 대원들이 여몽연합군과 마지막까지 싸운 곳이다. 진도 싸움에서 패한 삼별초는 원종 12년(1271) 제주도에 들어와 안팎 2중으로 된 성을 쌓았는데 안쪽의 성은 성벽의 안팎을 수직에 가깝게 돌로 쌓았으며, 바깥성은 언덕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쌓았다. 이 성은 해발 약 190∼215m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고성천이 있고 서쪽으로는 소앵천이 있다.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으며 동쪽은 완만하고 서쪽에는 하천이 있어 성을 쌓기에 적합한 지형이다. 주변에는 대부분 경작지, 목초지 들판이 있고 남쪽과 북쪽에는 논이 있었다. 당시에 쌓았던 토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돌쩌귀, 기와, 자기, 연못터 등 많은 유적이 발견되었다. 오늘날에는 유적 정화사업을 벌여 순의비, 순의문, 항몽유적기록화 7폭, 관리사무소를 두고 역사교육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제주도 여행] 사람들은 섬(?) 하나 품고 산다
[제주도 여행]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섬 1. 애월에서 해로동혈까지
평택항에서
밤을 낮 삼아
2만여 마리의 말힘(馬力)으로 달리는 배를 타고
달려온 제주도는
저 멀리
해무에 속마음을 숨긴
한라산이 손님을 맞이 합니다.
나의 기다림은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사막 횡단이 끝나는 것이다
제주도가 보고 싶다
유채꽃밭 너머 현무암 돌담들
그 너머 청색 스펙트럼으로 출렁거리던 바다
(중략)
슬프다
나는 감정이 북어인 사람인데
가슴속에 해류가 흐르면서
북어가 명태로 부활하려고 한다
- 기다림/최승호
제주도 3박 4일 일정...이모저모를 올려 보자^^
제주관광 안내도에는
"세계가 찾는 제주, 세계로 가는 제주"를 홍보한다.
제주도 투어의 진가는
온몸으로 느껴보는 제주의 자연,
살아있는 기운을 경험해라 한다.
박물관, 미술관 등 문화예술 관련 전시를 좋아하는지라
제주도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수많은 문화적 볼거리...
광고 카피를 인용하면 '골라먹는 재미'가 있어 좋다.
제목 보고 '맛기행'을 생각하셨다면
제주도 먹거리 관련 맛집 탐방은 다음 기회에 올리겠다ㅎㅎ
어디로 갈까나?
무엇을 볼까나?
하루 동침(?)한 코델리아호,
배를 뒤로 하고...
짧은 이별(?)을 고하고
애월(涯月)을 만나려 갑니다!
애월항?
지명에서 무엇인지 모를 애잔함이 전해지는 항구...
사내들의 이심전심일까?
물가의 달...애월
그 느낌과 뜻이 너무 낭만적이고 서정적이라
인터넷 검색을 하니
'우울한 샹송'이란 詩 때문에 좋아하는 시인도
가슴에 품고 싶은 그리움을 애월 바다에 담았다
이제,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하던 시인의 시가
涯月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들린다.
...애월은 이제 '다음에......'하고 내 가슴 깊이 묻어둘
애틋한 그리움의 한 대상이 되었으므로
미지의, 선연한 푸른 바다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오랜 날들을 나는 즐겁게 시달리리라.
애월, 가슴에 품고 싶은
작은 기생(妓生) 같은,
그 이름 떠오를 적마다.
- 이수익 시인의 詩 '애월' 중에서
노아요트투어 회사에서 요트 체험하는 중.
바다에서 바라보는 제주도의 원경이 일품^^
천년 전에 솟아오른 기생화산,
비양도 가는 선착장에서
맑은 바닷물에 학꽁치 떼가 무리지어 유영하네요^^
섬 속에 섬(?)이 산다!
비양도에는 해수로된 염습지 팔랑못이 있다.
목재 데크로 만든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
유유자적... 생태환경이 잘 보존된 못을 한바퀴 돌았다.
그날의 추억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고 싶은 섬, 비양도...
비양도(飛揚島): 한림읍에서 북서쪽으로 약 3㎞ 지점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002년(고려 목종 5)에 분출한 화산섬으로 기록되어 있다. 섬 모양은 전체적으로 원형이다. 최고지점은 114m의 분화구로 섬의 북쪽에 솟아 있으며, 남쪽은 대체로 평탄하다. 해안선의 드나듦은 단조로우며 대부분 암석해안이다.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며 눈·비가 많다. 농산물로는 유채·고구마·깨 등이 생산되며, 주민은 대부분 순수어업에 종사한다. 연근해에서는 80여 종의 어류가 회유하며 각종 해조류가 풍부하다. 특히 옥돔·고등어·갈치·방어 등이 많이 잡히며, 자연산 소라·전복·해삼 등이 채취된다. 취락은 남동쪽 해안가에 집중 분포하며 제주 한림항 간에 도선(渡船)이 왕복 운항된다. 동쪽 해안에 비양도등대가 있다. 면적 0.52㎢, 해안선 길이 2.5㎞, 인구 153, 가구 63(2004).[사전 자료]
예술계의 살아있는 전설, 르네상스맨,
과학자이자 천재예술가 창조형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만나는 다빈치 뮤지엄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공간 중 하나^^
드라마 촬영 현장을 실외(로케이션)와 실내(스튜디오)로 나누어
'로케'와 '디오'를 발췌한 스토리 체험형 드라마 박물관...로케디오 월드
제주 화산암에서 물이 용출되는
애월읍 유수암(流水岩) 마을의 유수암천
유수암 마을: 제주특별자치도는 화산활동에 의해서 형성된 땅이라 할 수 있으며 수천 년에 걸쳐 탐라인이 살아온 빌렛 (어음)동굴유적 및 곽지패총이 발견되는 걸로 봐서 제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이미 구석기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10세기부터 고려의 지배를 받으며 민란, 목호의 난 등 큰 난리를 치르고 13세기에는 삼별초군이 제주도를 본거로 항쟁을 하였다. 유수암에는 항몽 삼별초군이 항파두성에 웅거할 때 함께 따라 온 어느 한 고승이 지금의 유수암 절동산 아래 맑은 샘을 발견하고 그 언덕 아래 조그만 암자를 지어 태암감당이라 이름하여 불시를 시작한 것이 처음으로 이곳에 인적이 닿은 시초이다. 수년 후에 항파두성이 함몰할 때 김통정 장군의 처 이화선이 수하를 데리고 유수암천이 흐르는 이곳으로 피신하여 양지 바른 곳에 토실을 짓고 남은 여생을 살다가 명을 마쳤으므로 속칭 종신당이라 전해오며 이때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麗蒙聯合軍(여몽연합군)에 의하여 삼별초를 토평한 원나라는 탐라에 10개소의 목마장을 설치하여 국마를 기르게 하였는데 유수암경은 오소장에 속했고 그 목자들을 금물덕악(지금의 금덕봉)아래 관리사용에 편리하도록 집단으로 모여 살게 하였음으로 이곳이 바로 거문덕이였으며, 유수암 본동 보다 약 100년 가까이 먼저 촌락이 형성되었다.
그 후 고려가 망하고 조선 초기에 지방토호의 한 사람인 좌수 홍덕수란 거물이 극악천, 고달천, 등 주위에 사는 사람들을 모으고 다른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유수암으로 이주시키고 자신도 식솔과 일가들이며 많은 노비들과 무리들을 이끌어 입향 정주하여 많은 전토를 확보하고 사람들이 생업에 터전을 마련하여 마을의 형태를 갖추었으니 이가 바로 유수암의 설촌자이다.
태암감당은 먼 훗날 '척화'라는 스님이 있어 사찰을 중건하고 천고사라 이름하여 면면히 내려오다가 조선 숙종 28년 이형상 목사에 의하여 당 오백 절 오백이 파괴 될 당시 사라졌으며, 지금은 절동산이란 이름과 더불어 빈터만 남아 있을 뿐 칠백년의 짙푸른 고색창연한 팽나무 숲 속에 그 시절 심지어 오랜 풍상에 젖은 한 그루의 무환자나무만이 불어오는 바람결에 옛날의 영고성상의 깊은 사연을 말해주는 듯 고고한 자태로 현세의 유수암을 지켜보고 의연히 서 있어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어 오는 터이다. [유수암 마을 홈페이지 마을 약사]
애월읍 삼별초 항몽유적지의 소나무
강건한 기상이 누구의 넋일까?
아! 제주도의 눈부신 아름다움 속에는
저항과 유배의 한을 간직한 비극의 섬이 숨어 있었지!
유수암 마을을 둘러보고
조금만 차로 이동하면
고려 최후의 대몽고 격전지...김통정 장군과 삼별초가 순국한
항파두리 항몽유적지(抗蒙遺蹟址)가 나온다.
제주 항파두리 항몽유적지: 고려시대 전적지. 고려시대 삼별초가 몽고군에 맞서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유적지이다. 제주도 애월읍 고성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김통정을 비롯한 삼별초 전원이 순국한 곳이다. 삼별초는 진도에서 여몽연합군에게 패하고 고려 원종 12년(1271)에 제주도에 들어와 성을 쌓았다.
이 성은 가파른 자연 지형을 활용하여 축조되었는데 성 안에 식수원으로 ‘구시물’이라는 용천수가 있어 물이 풍부했다. 이 용천수를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성을 쌓기도 하였다. 내성과 외성을 갖춘 이중성곽으로 외성은 흙을 이용해 쌓았으며 내성은 돌을 이용해 쌓았다. 외성의 둘레는 약 6㎞정도이며 내성의 둘레는 750m 정도이다. 현재 외성인 토성은 일부만 남아 있으며 그 외에 돌쩌귀(문짝을 여닫는데 쓰는 두 개의 쇠붙이), 기와, 자기, 연못터 등의 유적이 발굴되었다.
외성의 폭은 말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는 적이 침입했을 때 나무를 태운 재를 토성 위에 뿌리고 말에 빗자루를 달고 내달려서 먼지가 자욱해지도록 하는 연막작전을 펴기 위함이었다. 이 때문에 김통정이 구름 위를 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고 한다.
상세설명
고려 원종 14년(1273) 김통정 장군과 삼별초 대원들이 여몽연합군과 마지막까지 싸운 곳이다. 진도 싸움에서 패한 삼별초는 원종 12년(1271) 제주도에 들어와 안팎 2중으로 된 성을 쌓았는데 안쪽의 성은 성벽의 안팎을 수직에 가깝게 돌로 쌓았으며, 바깥성은 언덕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쌓았다. 이 성은 해발 약 190∼215m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고성천이 있고 서쪽으로는 소앵천이 있다.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으며 동쪽은 완만하고 서쪽에는 하천이 있어 성을 쌓기에 적합한 지형이다. 주변에는 대부분 경작지, 목초지 들판이 있고 남쪽과 북쪽에는 논이 있었다. 당시에 쌓았던 토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며 돌쩌귀, 기와, 자기, 연못터 등 많은 유적이 발견되었다. 오늘날에는 유적 정화사업을 벌여 순의비, 순의문, 항몽유적기록화 7폭, 관리사무소를 두고 역사교육 시설로 활용하고 있다.
고려시대 몽고의 침략 때, 삼별초의 항쟁을 떠올리게 해준 항파두리 토성
가족과 함께하면 좋을 국내 최대라는
쥬라기테마파크...제주공룡랜드
공룡처럼 멸할...
이 세상의 모든 치들을
박물관에나 유배 보내자^^
자연휴양림처럼 편안한 휴식과
맛있는 제주도 만찬(?)을 즐겼던 청아대 리조트
그대의 발칙한 상상력에 똥침을 놓는 트릭아트 뮤지엄
고마해라,
너무 아프다.
불쌍한 다수,
이 시대의 천사표 인간들(?)을 위하여
행복하게 웃으며 희망의 똥침을^^
동굴의 다원, 다희연
기대 이상으로
푸르른 녹차밭과 녹차비빕밥,
멋진 다기, 제주도 그림 전시회와
'해로동혈' 동굴 카페에서의 차 한 잔...
화산섬 제주도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감이!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는 뜻으로
삶과 죽음,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함께 한다는 부부.
그 사랑의 맹세를 비유하는 '해로동혈' 동굴 안의 인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