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단종이 있다면 영국에는 누구?? 바로........!!!!!

모든역사사랑♥2011.09.10
조회1,546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사와 영국 역사 그리고 프랑스 역사 등 세계사를 사랑하는 평범한 대학생 2학년 학생입니다.

 

처음으로 톡에 글을 써 보는데요.

 

예전에 이 곳에서 조선시대 역대 왕에 관련된 내용이 톡이 되어서 저도 한번 용기를 내어 써봅니다.

 

한국사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듯 해서 영국 역사 중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하는데요.

 

재미있게 읽어 주시고 궁금하신게 있으시면 댓글을 달아주세요 ㅎㅅㅎ

 

 

 

 

레이디 제인 그레이(Lady Jane Grey, 1537년 - 1554년 2월 12일)

 

     

 

 

 

우리나라에 단종이 계셨다면 영국에는 이 분이 계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제인 그레이 또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서 만 16세의 어린 나이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것과 다름이 없으니까요.

 

흔히 영국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고 계신 분이 계신 분께

 

[영국 최초의 여왕은 누구입니까?]란 질문을 하면 10에 9은 메리 1세, 혹은 엘리자베스 1세를 대답하시는데요

 

실은 레이디 제인 그레이가 영국 최초의 여왕입니다.

 

1553년 7월 10일부터 ~ 7월 19일까지 겨우 9일동안만 군림한 잉글랜드 튜더 왕가의 최초의 여왕입니다.

 

그럼 제인 그레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에 들어가죠

 

유년시절의 제인은 매우 딱할 정도로 불쌍했습니다. 아버지는 도셋 후작 헨리 그레이, 어머니는 헨리 8세의 생질녀 - 조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레이디 프랜시스 브랜던 입니다.

 

후작부부는 매우 권력과 부에 대한 욕심이 많고 샤냥과 파티를 즐기는 활발한 성격이었으나 장녀인 제인은 학구열이 높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었습니다.

 

프랜시스 브랜든, 즉 제인의 어머니는 딸의 나약함을 못마땅하게 여겨 자주 체벌을 가하고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때문에 제인은 부모에게서 사랑을 맏지 못한채 독서와 공부에 정열을 쏟았고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구사할 뿐만 아니라 종교개혁 운동에 영향을 받은 독실한 성공회 신자로서 신학에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당시 헨리 8세가 즉위할 당시에는 6명의 여왕들 중 마지막 왕비인 캐서린 파 왕비가 있었습니다. 캐서린 왕비는 제인을 구박하는 부모를 못마땅해 왕이 죽고 난 후 자신이 받은 저택에서 제인을 데려와 약 1년간 양육합니다.

 

그 시절은 삶이 짧았던 제인에게서 가장 행복했던 유년시절로 자리매김합니다.

 

이 삶이 계속되었으면 좋았으련만, 하늘은 그 아이를 외면합니다.

 

캐서린 파 왕비가 죽었기 때문이죠. 당시 헨리 8세와 결혼하여 에드워드 6세를 낳은 제인 시모어 왕비의 혈족인 토머스 시모어와 3번째 결혼한 캐서린 파 왕비는 임신하여 첫 아이를 낳는 도중 산욕열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당시 토머스 시모어는 권력욕이 많은 사람이라 제인을 이대로 내보내기는 싫어서 에드워드 6세와 이어 줄 생각을 합니다. 캐서린 왕비 또한 살아있었을 때도 찬성하고 있었죠.

 

하지만 일이 틀어지게 되자 토머스 시모어는 엘리자베스 왕녀(두번째 왕비인 앤 불린의 자식이자 후에 엘리자베스 1세 여왕)와 결혼할 생각을 합니다. 또 에드워드 6세를 납치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자 했으나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 않는 법.

 

토머스 시모어는 반역을 저질렀다는 죄를 받고 단두대에서 도끼의 이슬로 사라집니다.

 

도싯 후작 부부, 제인 그레이의 부모는 허겁지겁 토머스 시모어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변명과 함께 제인을 재빨리 데려옵니다. 이리하여 제인에게 더 큰 고난의 운명이 시작되죠.

 

 

 

위의 인물들이 바로 제인의 부모, 즉 도싯 후작 부부입니다.

 

 

토머스 시모어가 죽은 후 에드워드 6세와 제인과 결합시키려는 계획은 수포가 되었으나 후작 부부는 제인을 왕비의 자리에 앉히겠다는 야심을 버리지 않습니다.

 

1553년 제인은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의 아들 길포드와 결혼하게 됩니다.

 

제인은 자신의 결혼을 격렬히 거부했지만 부모의 강압을 이길 수 없었죠.

 

종교개혁을 통해 힘을 얻었던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는 병약한 에드워드 6세가 죽으면 제 1순위의 로마 가톨릭 신자인 왕녀 메리(첫 왕비인 아라곤의 캐서린의 자식, 후의 메리 1세)를 제거하고 성공회 신자인 제인을 왕위에 올릴 생각이었습니다.

 

※ 여기서 잠깐~~~ 종교개혁이란??

 여기서 말하는 종교개혁은 헨리 8세가 만든 종교입니다. 헨리 8세는 메리 1세의 어머니인 아라곤의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고 앤 불린(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과 결혼하고 싶었으나 로마 가톨릭 종교에서는 이혼을 금지하고 있었죠. 또한 아라곤의 캐서린의 부모는 유명한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2세의 딸입니다. 즉 교황은 국가적인 면에서도 섣불리 에스파냐의 심기까지 건드리면서까지 이혼을 허락하고 싶지 않아했죠. 그래서 헨리 8세는 제멋대로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하고 앤 불린과 결혼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교황은 헨리 8세에게 파문을 내리죠. 당시 파문을 내린다는 것을 왕이라고 인정치 않겠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한마디로 다른 나라에게 왕 대접을 못받는다는 것이죠. 이를 계기로 교황한테 간섭받는 것을 싫어하던 헨리 8세는 성공회란 종교를 만들고 교황에게 충성을 바치지 말고 왕에게 충성을 바쳐라~~ 주의로 가게 됩니다. 당연히 로마 가톨릭 신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잃게 될까면 격렬한 반대를 하고 왕은 왕대로 피비린내 나는 처형, 사형을 내리면서 종교를 바꾸게 됩니다.

 

 

 

 

 

제인을 왕위에 올리면 이름뿐인 왕만 내어주고 당연히 정치 같은 민감한 사항은 자신이 맡아 갖고있던 기득권을 지킬 생각이었죠.

 

7월 6일 에드워드 6세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즉시 공작과 도싯 후작 부부는 제인을 왕위에 올리죠.

 

이 과정에서 제인은 미친듯이 반항을 하지만 무차별한 체벌로 인해 억지로 왕위를 계승합니다.

 

메리 왕녀는 공작이 자신을 유폐 혹은 죽이려는 사실을 깨닫고 서포크 지방의 프레밍턴 성에 몸을 숨깁니다.

 

제인은 억지로 왕위를 받지만 시아버지인 공작이 남편 길포드에게 여왕의 배우자로서의 실권을 주라는 말에 완강히 저항하고 길포드는 대신 클라렌스 공작의 지위를 받습니다.

 

허나 민심은 왕녀 메리에게 기울어져 있었고 제인이 즉위한 지 겨우 9일 후에 메리는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런던에 입성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제인의 아버지는 일단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메리의 추대선언서에 서명을 한 후 딸에게 가서 폐위 사실을 알립니다. 이 소식에 제인은 '부모님의 뜻에 순종한 것을 넘어 저는 막중한 죄를 지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왕관을 벗겠습니다. 이제 그만 집으로 가도 되나요?'라고 말합니다.

 

도싯 후작은 묵묵히 돌아서서 딸인 제인을 내버려두고 런던에서 도망칩니다.

 

제인과 길포드는 반역죄로 런던탑에 유폐되고,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는 8월 21일 도끼의 이슬로 사라지죠.

 

왕위에 오른 메리 1세는 어릴 적 제인과 궁에서 같이 공부하고 지낸 정을 생각하여 살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재판에서는 사형을 선고받으나 나중에는 사면령을 내릴 생각이었죠.

 

그러나 하늘은 이 가련한 소녀를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1554년 1월, 토머스 와이엇을 중심으로 한 성공회 신자들이 일으킨 반란에 제인의 아버지인 헨리 그레이가 가담하면서 상황은 극변하게 바뀌게 됩니다.

 

튜더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으며 자신과도 극과 극의 종교인 성공회인 제인은 살려두기에 너무 위험한 인물로 낙인이 찍힌 것입니다.

 

메리1세는 제인에게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제안하지만, 제인이 이를 거절하여 사형이 확정되고 맙니다. 사형이 확정되는 순간 제인은 담담하게 '제 불운한 날들을 끝마치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깁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부친과 두 동생, 그리고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조용히 최후를 준비합니다.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는 아버지 덕분에 한많은 생애를 더욱 빨리 마감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썼습니다.

 

사형식 날에는 런던탑의 하녀들에게 제인이 혹시 모를 임신을 하지 않았는지 알아보게 하지만 임신이 아닌 것이 확인되고 1554년 2월 12일 남편 길포드가 비첨 타워에서 먼저 세상을 떠납니다

 

이를 지켜본 제인은 권력다툼의 희생양이라는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는지 '아 길포트, 길포트! 죽음이란 참으로 씁쓸하구나'라고 중얼거립니다.

 

마침내 제인은 때가 되어 형장인 타워 그린으로 가면서도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습니다.

 

사형대에 이르러 그는 모인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연설을 하고 스스로 눈가래가를 한 후 참수대 위에 누우려고 하였으나 눈이 가려져서 참수대를 찾지 못합니다.

 

당황한 그녀는 '어쩌지? 어디있지?'라고 말하자 이 모습을 안쓰럽게 지켜본 관중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고 형틀에 갖대 대줍니다.

 

얼마 후 제인은 도부수의 도끼 아래 짧고 한많은 삶을 마감합니다.

 

 

 

내 몸뚱이가 벌을 받으면 내 영혼은 하느님의 자비를 받을 것이다.

죽음은 내 몸뚱이를 벌하겠지만 내 영혼은 하느님 앞에서 정당화 될 것이다.

내 죄가 벌을 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해도 적어도 내 젊음과 경솔함이 변명이 되어줄 것이다.

하느님과 후대 사람들은 나에게 보다 관대하리라.

     -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유서 中

 

 

 

 

 

 

 

 

 

 

항상 제인 그레이에 대해 설명을 할 때마다 불쌍하다는 소녀라고 밖에 생각이 안드는군요......

권력과 종교가 무엇인지

어린 소녀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잔인함과

자신의 종교를 끝까지 잃지 않는 정신이 참......

그저 안쓰럽게 생각됩니다.

 

 

 

 

 

 

 

 

톡 한번 눌러주세요.

긴 글 쓰느라 지쳤는데.. ㅎㅅ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