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애들이 대부분 나 참 막장드라마처럼 살았다고 해서. 니들이 볼 땐 아니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선 간단하게만 얘기해줄게. -------------------------------------------------------------------------- 나는말야. 원래 내 위에 언니가 있어야 해. 근데 그 언니가 나보다 먼저 죽었어. 아니, 죽었다기보단. 엄마 뱃속에서 이미 없어졌지. 나? 나도 혼전임신. 즉, 나로 인해 엄마아빠가 결혼하셨어. 일단 엄마아빠 얘기는 뒷전에 두자. 그건 나중에 얘기해주든지 할게. 일단, 지금은 내 얘기를 하라는 거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이 곳 저 곳 안아픈 곳이 없었어. 쉽게 말하자면 잔병치레지. 엄마가 나 가졌을 때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었대. 그래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빠한테도 어릴 때부터 참 많이 맞고 자랐거든. 지금도 마찬가지고. 어느 정도냐고? 음. 5살때, 이거 정말 기억난다. 내가 구구단을 9단까지 못외워서, 엄마한테 효자손이랑 파리채로 미친듯이 뚜들겨맞고, 아빠가 나중에 들어왔을 때, 나 엄마한테 이미 뚜들겨맞고 나서 울다 지쳐서 잠들었는데, 내가 공부 안하고 잔다고 또 집에 있던 각목 비슷한 나무 막대기로 겁나 쳐맞았지. 온 몸이 다 피멍들고 피멍이 짓물려서 터지고 피가 줄줄 새나올 정도로. 중1때인가.. 내가 친구들이랑 놀다가 늦게 들어왔었어. 현관을 열고 딱 들어왔는데 신발장 앞에 혁띠, 청테이프 묶은 각목, 전기테이프로 미친듯이 묶어놓은 골프채세개가 나란히 놓여있었어. 세 가지 중 한가지를 고르고 들어오래. 난 우물쭈물 하고 있었지. 세 개 다 굉장히 아팠거든. 뭐가 나을 지 고르지도 못할 정도로, 굉장히 많이. 10초동안 못 고른 죄로, 또 늦게 들어 온 죄로, 세 가지로 쳐맞았어. 이틀동안 물도 못먹고 사흘동안 걷지도 못하고 일주일동안 눈도 제대로 못떴었어. 이주가 지나서야 겨우겨우 학교에 나갔지. 학교는 엄마가 말해놨는지, 병결 처리가 되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하도 맞고 지내다보니까, 아빠에 대한 반항심이 생기더라. 술과 담배를 시작했어. 중1이란 나이부터. 아빠가 속상하고 화날 때, 담배를 피는 것. 어른들이 힘들고 답답할 때 술을 마시는 것. 나도 그러면 될 줄 알았지. 그러다가, 어느 날. 딱 걸렸지. 가방에 아빠 담배를 훔쳐서 담아뒀던 것을. 어떻게 됬게? 엄마랑 바로 바닷가로 직진했어. 내가 제주가 고향이거든? 어떻게 하다 요번에 집에서 빠져나와서 대전 올라와서 살고 있지만, 뭐 어찌됬든 간에. 그렇게 바다로 직진한 다음, 초 겨울에 엄마랑 같이 익사할 뻔 하고, 미친듯이 살려달라고 소리소리를 지르는데, 사람들은 그냥 구경하기만 하고 신고도 안해주더라. 그러다가 해수욕장 근처 슈퍼를 하는 아저씨가 신고를 해주셔서 119 오고 경찰차 오고.. 난 응급실로 실려가고 엄마는 집으로 가서, 차 가져다 놓고 다시 왔지. 집에 가자고 하는데, 병원에서 저체온으로 숨도 할딱할딱 쉬면서 엄마가 날 만지니까 내가 진짜 미친사람처럼 경기를 일으켰었대. 그 후였나... 집에서 사는 게 너무너무나도 힘이 든거야. 손목을 긋고 목을 매고 차도에 뛰어들고 정신과에서 받아온 수면제를 대량으로 쳐먹고, 항우울제고 위장약이고 집에 있는 약들 죄다 탈탈 털어서 쳐먹었는데도, 한.. 삼사일 기절했다가 깼어. 위청소 장청소 다하고, 독소 제거하는 링겔을 손목에 꼽은 채로, 정신병원에서. 내가 자살기도를 할 때마다, 나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렇게 하면 부모님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까 싶었어.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손목을 긋곤 했지. 지금도 내 손목엔 아직도 그 흉칙한 선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원한다면, 흉터가 남아있는 내 손목 사진을 올려서 보여줄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정신병원으로 끌려왔고, 마치 정신병자처럼, 그리고 죄인처럼. 정신과 의사앞에 앉아서 내 하루일과와 기분을 낱낱이 보고할 수밖에 없었지. 아차. 여기서 한가지 더 말하는데. 정신병원은 이중철문에 온 창문엔 철창으로 가로막혀 있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는 정신병동 복도 내부야. 티비에서 보는 것 처럼, 밖에 돌아다니는 거? 그런 거 없어. 그냥, 병동 내부. 그 것도 딱 이중철문이 있는 앞까지. 나가지도 못하게. 보호실이란 곳이 있어. 그 곳은 병동 내 사람들이 싸움을 일으키거나 발작을 일으키면 안정제 하나 투여하고 진정이 될 때까지, 밥도 굶겨. 양쪽 손과 발을 쩍 벌리고 침대 끝에 묶어둔 채로 말이야. 나?.. 거기서 나 진짜 잘 챙겨주던 아저씨, 발작일으키셨는데. 그냥 밤새 침대에 진정제랑 안정제 투여하고는 묶어서 놔두더라. 밤새 꺼억꺼억 거리는 소리가 끊임 없이 들려왔어. 괴로움에 이불 싸매고 눈물만 흘리다가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조그만 소란이 이는 소리에 일어나서 복도로 가니까. 그 아저씨가 누워있던 침대에 하얀 천이 덮힌 채로 보호실에서 나오더라. 침대를 끌고 가는 도중에 문턱에 걸려서 덜컹이는 충격에 아저씨 손이 툭, 하고 삐져나왔는데. 손이말야. 시꺼멓게 피가 뭉쳐가지고 그대로 굳었는지, 시퍼렇다기보다는.. 약간 거무스름한 죽은 피색과.. 손목 또한, 선명하게 파여있더라. 얼마나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을 런지, 안봐도 훤히 보일 정도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신병동은 정신병자들을 고쳐주는 곳이 아니라. 정신병자를 만드는 곳이란 거야. 니들은 어떻게 생각할 진 모르겠지만, 직접 다녀온 내 생각은 이렇다고. 말하던거 계속 이어서 말해야겠지? 그렇게 고등학교를 올라갔어. 처음엔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입학식 날에 학교에 가서 자퇴서를 내고 올 계획이였어. 부모님 동의..? 물론 없었지. 그냥 또 죽창나게 맞더라도, 어떻게든 해 볼 계획이였어.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가.. 하. 남자를 만났지. 학교에서. 중학교 동창인데, 뭐 그건 어찌됬든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넘어갈게. 그렇게 그 애 (첫사랑)과 2년간의 교제를 이어가다 헤어지고, 나는 다시 방황을 탔지. 더이상 날 사랑해 줄 사람도, 기댈 사람도 없는 암흑같았거든. 이 모든 세상이, 나를 밀어내려고만 하는 것 같아 보였거든. 한마디로, 개같았어.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는 내 자신이 병신이고 쓰레기처럼 느껴졌단 말이야. 자살기도..? 더이상 하지 않았어. 느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더 무관심으로 변해하는 것을, 느껴버렸으니까. 나는, 사랑이 받고 싶었을 뿐이지. 사람들 속에서 묻히는 것을 원하진 않았거든. 그 때부터, 집을 나갔어. 학교에 다닐 의미도 뭣도 없어졌고.. 처음부터 없었다는 게 맞겠지만, 일단은 한동안 그 애를 바라보면서 같이 다니는 낙으로 학교를 갔었으니까. 그대로 집을 나가고, 학교를 안갔어. 거의 일년동안. 그동안 병결처리를 해주드만, 결국 고3이 되고, 10월달이 되자. 학교에서 통지서가 날라왔지. 퇴학 경고 통지서. 수업일수 부족으로 징계고 뭐고 지랄을 했었지만, 학교도 안가는데 내가 알게 뭐야? 결국 엄마가 알아서 자퇴서를 내셨더라고. 지금은.. 솔직히, 자퇴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굉장히 후회하고 있다. 웃기지? 내가 원해서 자퇴해놓고 후회하고 있다, 라니. 근데 정말 그래. 친구 따라서 내가 다니던 학교 졸업식장을 찾아갔다가, 졸업식 내내 쳐 울기만 하다 나왔어. 너무 서러워서. 내가 왜 이렇게 되버렸나, 싶은 마음에 너무너무 서럽더라고. 옆에 있던 상담선생님까지 울어버릴 정도로, 진짜 그만큼 서럽게 울었어. 졸업식중이던 애들도 뒤돌아볼 정도로, 오열하면서. 꺼이꺼이.. ------------------------------------------------------------------ 아, 너무 길어졌네. 더 듣고 싶다면 댓글로 남겨. 다시 이어서 써줄테니까.
음, 어디서부터 얘기해줘야 할까.
뭐, 애들이 대부분 나 참 막장드라마처럼 살았다고 해서.
니들이 볼 땐 아니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우선 간단하게만 얘기해줄게.
--------------------------------------------------------------------------
나는말야. 원래 내 위에 언니가 있어야 해.
근데 그 언니가 나보다 먼저 죽었어.
아니, 죽었다기보단. 엄마 뱃속에서 이미 없어졌지.
나? 나도 혼전임신. 즉, 나로 인해 엄마아빠가 결혼하셨어.
일단 엄마아빠 얘기는 뒷전에 두자.
그건 나중에 얘기해주든지 할게.
일단, 지금은 내 얘기를 하라는 거니까.
나는, 어릴 때부터 이 곳 저 곳 안아픈 곳이 없었어.
쉽게 말하자면 잔병치레지. 엄마가 나 가졌을 때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았었대.
그래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빠한테도 어릴 때부터 참 많이 맞고 자랐거든.
지금도 마찬가지고.
어느 정도냐고? 음. 5살때, 이거 정말 기억난다.
내가 구구단을 9단까지 못외워서, 엄마한테 효자손이랑 파리채로 미친듯이 뚜들겨맞고,
아빠가 나중에 들어왔을 때, 나 엄마한테 이미 뚜들겨맞고 나서 울다 지쳐서 잠들었는데,
내가 공부 안하고 잔다고 또 집에 있던 각목 비슷한 나무 막대기로 겁나 쳐맞았지.
온 몸이 다 피멍들고 피멍이 짓물려서 터지고 피가 줄줄 새나올 정도로.
중1때인가.. 내가 친구들이랑 놀다가 늦게 들어왔었어.
현관을 열고 딱 들어왔는데 신발장 앞에 혁띠, 청테이프 묶은 각목,
전기테이프로 미친듯이 묶어놓은 골프채세개가 나란히 놓여있었어.
세 가지 중 한가지를 고르고 들어오래.
난 우물쭈물 하고 있었지. 세 개 다 굉장히 아팠거든.
뭐가 나을 지 고르지도 못할 정도로, 굉장히 많이.
10초동안 못 고른 죄로, 또 늦게 들어 온 죄로, 세 가지로 쳐맞았어.
이틀동안 물도 못먹고 사흘동안 걷지도 못하고 일주일동안 눈도 제대로 못떴었어.
이주가 지나서야 겨우겨우 학교에 나갔지. 학교는 엄마가 말해놨는지, 병결 처리가 되있었고.
어렸을 때부터 하도 맞고 지내다보니까, 아빠에 대한 반항심이 생기더라.
술과 담배를 시작했어. 중1이란 나이부터. 아빠가 속상하고 화날 때, 담배를 피는 것.
어른들이 힘들고 답답할 때 술을 마시는 것. 나도 그러면 될 줄 알았지.
그러다가, 어느 날. 딱 걸렸지. 가방에 아빠 담배를 훔쳐서 담아뒀던 것을.
어떻게 됬게? 엄마랑 바로 바닷가로 직진했어. 내가 제주가 고향이거든?
어떻게 하다 요번에 집에서 빠져나와서 대전 올라와서 살고 있지만,
뭐 어찌됬든 간에. 그렇게 바다로 직진한 다음, 초 겨울에 엄마랑 같이 익사할 뻔 하고,
미친듯이 살려달라고 소리소리를 지르는데, 사람들은 그냥 구경하기만 하고 신고도 안해주더라.
그러다가 해수욕장 근처 슈퍼를 하는 아저씨가 신고를 해주셔서 119 오고 경찰차 오고..
난 응급실로 실려가고 엄마는 집으로 가서, 차 가져다 놓고 다시 왔지.
집에 가자고 하는데, 병원에서 저체온으로 숨도 할딱할딱 쉬면서
엄마가 날 만지니까 내가 진짜 미친사람처럼 경기를 일으켰었대.
그 후였나... 집에서 사는 게 너무너무나도 힘이 든거야.
손목을 긋고 목을 매고 차도에 뛰어들고 정신과에서 받아온 수면제를 대량으로 쳐먹고,
항우울제고 위장약이고 집에 있는 약들 죄다 탈탈 털어서 쳐먹었는데도,
한.. 삼사일 기절했다가 깼어.
위청소 장청소 다하고, 독소 제거하는 링겔을 손목에 꼽은 채로,
정신병원에서.
내가 자살기도를 할 때마다, 나는 정말 죽고 싶은 심정도 있었지만,
적어도 그렇게 하면 부모님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줄까 싶었어.
그래서 하루가 멀다 하고 손목을 긋곤 했지.
지금도 내 손목엔 아직도 그 흉칙한 선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원한다면, 흉터가 남아있는 내 손목 사진을 올려서 보여줄 수도 있고.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정신병원으로 끌려왔고,
마치 정신병자처럼, 그리고 죄인처럼.
정신과 의사앞에 앉아서 내 하루일과와 기분을 낱낱이 보고할 수밖에 없었지.
아차. 여기서 한가지 더 말하는데.
정신병원은 이중철문에 온 창문엔 철창으로 가로막혀 있고,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는 정신병동 복도 내부야.
티비에서 보는 것 처럼, 밖에 돌아다니는 거? 그런 거 없어.
그냥, 병동 내부. 그 것도 딱 이중철문이 있는 앞까지. 나가지도 못하게.
보호실이란 곳이 있어. 그 곳은 병동 내 사람들이 싸움을 일으키거나 발작을 일으키면
안정제 하나 투여하고 진정이 될 때까지, 밥도 굶겨.
양쪽 손과 발을 쩍 벌리고 침대 끝에 묶어둔 채로 말이야.
나?.. 거기서 나 진짜 잘 챙겨주던 아저씨, 발작일으키셨는데.
그냥 밤새 침대에 진정제랑 안정제 투여하고는 묶어서 놔두더라.
밤새 꺼억꺼억 거리는 소리가 끊임 없이 들려왔어.
괴로움에 이불 싸매고 눈물만 흘리다가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조그만 소란이 이는 소리에 일어나서 복도로 가니까.
그 아저씨가 누워있던 침대에 하얀 천이 덮힌 채로 보호실에서 나오더라.
침대를 끌고 가는 도중에 문턱에 걸려서 덜컹이는 충격에
아저씨 손이 툭, 하고 삐져나왔는데.
손이말야. 시꺼멓게 피가 뭉쳐가지고 그대로 굳었는지, 시퍼렇다기보다는..
약간 거무스름한 죽은 피색과.. 손목 또한, 선명하게 파여있더라.
얼마나 괴로움에 몸부림을 쳤을 런지, 안봐도 훤히 보일 정도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신병동은 정신병자들을 고쳐주는 곳이 아니라.
정신병자를 만드는 곳이란 거야. 니들은 어떻게 생각할 진 모르겠지만,
직접 다녀온 내 생각은 이렇다고.
말하던거 계속 이어서 말해야겠지?
그렇게 고등학교를 올라갔어. 처음엔 너무너무 힘이 들어서,
입학식 날에 학교에 가서 자퇴서를 내고 올 계획이였어.
부모님 동의..? 물론 없었지.
그냥 또 죽창나게 맞더라도, 어떻게든 해 볼 계획이였어.
그런데 어찌어찌 하다가.. 하. 남자를 만났지. 학교에서.
중학교 동창인데, 뭐 그건 어찌됬든 별로 중요하지 않으니까 넘어갈게.
그렇게 그 애 (첫사랑)과 2년간의 교제를 이어가다 헤어지고,
나는 다시 방황을 탔지. 더이상 날 사랑해 줄 사람도, 기댈 사람도 없는 암흑같았거든.
이 모든 세상이, 나를 밀어내려고만 하는 것 같아 보였거든.
한마디로, 개같았어. 어떻게든 살아보려 하는 내 자신이 병신이고 쓰레기처럼 느껴졌단 말이야.
자살기도..? 더이상 하지 않았어. 느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더 무관심으로 변해하는 것을, 느껴버렸으니까.
나는, 사랑이 받고 싶었을 뿐이지. 사람들 속에서 묻히는 것을 원하진 않았거든.
그 때부터, 집을 나갔어. 학교에 다닐 의미도 뭣도 없어졌고..
처음부터 없었다는 게 맞겠지만,
일단은 한동안 그 애를 바라보면서 같이 다니는 낙으로 학교를 갔었으니까.
그대로 집을 나가고, 학교를 안갔어. 거의 일년동안.
그동안 병결처리를 해주드만, 결국 고3이 되고, 10월달이 되자.
학교에서 통지서가 날라왔지. 퇴학 경고 통지서.
수업일수 부족으로 징계고 뭐고 지랄을 했었지만, 학교도 안가는데 내가 알게 뭐야?
결국 엄마가 알아서 자퇴서를 내셨더라고.
지금은.. 솔직히, 자퇴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굉장히 후회하고 있다.
웃기지? 내가 원해서 자퇴해놓고 후회하고 있다, 라니.
근데 정말 그래. 친구 따라서 내가 다니던 학교 졸업식장을 찾아갔다가,
졸업식 내내 쳐 울기만 하다 나왔어. 너무 서러워서.
내가 왜 이렇게 되버렸나, 싶은 마음에 너무너무 서럽더라고.
옆에 있던 상담선생님까지 울어버릴 정도로, 진짜 그만큼 서럽게 울었어.
졸업식중이던 애들도 뒤돌아볼 정도로, 오열하면서. 꺼이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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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길어졌네. 더 듣고 싶다면 댓글로 남겨.
다시 이어서 써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