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너무 속이 상하고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제동생이 죽기전에 이렇게라도 글을 올려봅니다. 저희 가족은 22살 남동생과 엄마 아빠와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제 동생은 4월 18일 육군 훈련소에 들어갔고 그 뒤 6월 25일 토요일 면회외박을 나와 저와 부모님은 동생을 만나러 후반기교육을 하고 있는 강원도에 있는 부대로 찾아갔습니다. 아침8시 씩씩한 모습으로 뛰어나오는 동생과 함께 예약해놓은 펜션으로 가서 저희가족은 함께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될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6월 26일 부대로 복귀를 했습니다. 이제 3일만 있으면 자대배치 받아 어디로 가게될지 궁금하다며 29일 수요일날 자대배치 받으면 금요일에 떠난다고 은근 설레여 하던 동생이였습니다. 그런데 수요일도 아닌 금요일에 연락이 온 동생은 자대가 아닌, 강원도에 있는 국군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습니다. 급성폐렴으로 29일 수요일에 입원했는데 오늘 전화한다고... 엄마 아빠 바쁘면 안와도 된다고.. 하지만 부모님은 동생이 걱정되셔서 7월 2일 토요일 새벽같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때 동생은 수요일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링겔에 의존하며 지내고 있었고 짧은 면회시간을 뒤로하고 병원에서는 2주간 더 입원해 있으면 된다는 말을 듣고는 부모님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7월 4일 새벽3시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상태가 악화되서 서울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그러고 수도병원에서 폐에 물이차서 자기네도 손쓸수가 없다며 분당에 있는 S대학병원으로 이송시켜야 한다고 급하게 부모님을 찾았습니다. 부모님이 갔을때 동생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의식은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한테 너무 아프다고 큰병원으로 가고싶다고.. 짧은 말을 하고 수도병원에서 구급차로 S대 병원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7월 4일 급성폐렴에서 슈퍼바이러스가 검출되어 치료를 했지만 급성호흡곤란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7월 4일부터 중환자실에 있던 동생은 겨우 다시 목숨을 건졌지만 슈퍼바이러스가 지나가 망가진 폐는 좀처럼 회복 되기가 어려웠습니다. 2개월째 중환자실에 있던 동생은 결국 폐이식을 해야지만 살수 있다는 결론하에 또 다시 다른병원으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구굽차로 이송을 하러 나온 동생은 병원 병실에 갑갑한 천장만 보다 높고 푸른 하늘을 잠시나마 보고는, 강남에 있는 S대 병원 으로 9월 7일 옮겼습니다. 폐이식만 하면 살수 있을거라고 그것만 성공하면 조금이라도 함께할 시간이 더주어 진다고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패혈증이 오고 간과 콩팥등 여러장기들이 다 손상되어 폐이식이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오늘은 9월10일 제동생 생일입니다. 생일 전 후 로 나가고 싶다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던 동생은 이제 의식을 재워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패혈증이 오고 또 다른 세균들이 발견되어 폐이식을 할 수 없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제동생은 남자라면 꼭 군입대를 해야한다며 열심히 군생활 잘 하고 돌아오겠다고 군생활도 할만하다고 항상 씩씩해 말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요 무슨 마음의 준비요 군대에서 씩씩하던 제 동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가야 합니까 왜 진작에 큰병원으로 보내주지 않았나요 가족들에게 전화연락도 안해주고 국군병원에서도 연락을 안해주고 왜 아픈 제동생이 직접 전화를 하나요 젊은날에 청춘받쳐 나라에 애국 하는 마음으로 입대했는데 돌아오는것은 이런 고통스러운 죽음입니까? 이세상에서 핏줄이라고는 남동생 하나뿐인데 이렇게 빨리 헤어져야합니까.. 항상 우리집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아들을 이렇게 먼저 보내야 하는게 말이 됩니까.... 군대에서 이런 희생자가 또 다시 나와서는 안됩니다.. 사람일이라는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지만 초기에 대처를 잘해주었으면 제동생이 이렇게 젊은날에 가족과 이별하는 일은 없을것입니다.. 군대에서 아픈 군인들도 집에서 부모님 간병하듯이 잘 돌보아 주세요.. 동생이 병원에서 종이에 썼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네요.. "퇴원하면 제일해보고 싶은게 뭐야?" 가족들이랑 꼭 껴안고 거실에서 자는거... 집에가고싶다고 집에가고 싶다고 하던 동생은 이렇게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채 22번째 생일을 보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한 마음으로 제 동생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인 추석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지민이의 글을 읽어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격려 덕분에 꼭 일어날꺼라는 희망이 생깁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건 제 친구의 누나가 쓴 글이고 조금이나마 같이 기도해주세요... 저도 다시 살아나길 간절히 바라고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울것 같습니다. 37
죽음을 앞두고 있는 내 친구에게...
안녕하세요.. 너무 속이 상하고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제동생이 죽기전에 이렇게라도 글을 올려봅니다.
저희 가족은 22살 남동생과 엄마 아빠와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제 동생은 4월 18일 육군 훈련소에 들어갔고 그 뒤 6월 25일 토요일 면회외박을 나와 저와 부모님은
동생을 만나러 후반기교육을 하고 있는 강원도에 있는 부대로 찾아갔습니다.
아침8시 씩씩한 모습으로 뛰어나오는 동생과 함께 예약해놓은 펜션으로 가서 저희가족은 함께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사먹고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될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난 6월 26일 부대로 복귀를 했습니다. 이제 3일만 있으면 자대배치 받아 어디로 가게될지
궁금하다며 29일 수요일날 자대배치 받으면 금요일에 떠난다고 은근 설레여 하던 동생이였습니다.
그런데 수요일도 아닌 금요일에 연락이 온 동생은 자대가 아닌, 강원도에 있는 국군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습니다. 급성폐렴으로 29일 수요일에 입원했는데 오늘 전화한다고...
엄마 아빠 바쁘면 안와도 된다고.. 하지만 부모님은 동생이 걱정되셔서 7월 2일 토요일 새벽같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때 동생은 수요일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링겔에 의존하며 지내고 있었고
짧은 면회시간을 뒤로하고 병원에서는 2주간 더 입원해 있으면 된다는 말을 듣고는 부모님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7월 4일 새벽3시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상태가 악화되서 서울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그러고 수도병원에서 폐에 물이차서 자기네도 손쓸수가 없다며 분당에 있는 S대학병원으로
이송시켜야 한다고 급하게 부모님을 찾았습니다. 부모님이 갔을때 동생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의식은 있었다고 합니다. 엄마한테 너무 아프다고 큰병원으로 가고싶다고.. 짧은 말을 하고 수도병원에서
구급차로 S대 병원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7월 4일 급성폐렴에서 슈퍼바이러스가 검출되어 치료를 했지만 급성호흡곤란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7월 4일부터 중환자실에 있던 동생은 겨우 다시 목숨을 건졌지만 슈퍼바이러스가
지나가 망가진 폐는 좀처럼 회복 되기가 어려웠습니다. 2개월째 중환자실에 있던 동생은 결국 폐이식을
해야지만 살수 있다는 결론하에 또 다시 다른병원으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구굽차로 이송을 하러
나온 동생은 병원 병실에 갑갑한 천장만 보다 높고 푸른 하늘을 잠시나마 보고는, 강남에 있는 S대 병원
으로 9월 7일 옮겼습니다. 폐이식만 하면 살수 있을거라고 그것만 성공하면 조금이라도 함께할 시간이
더주어 진다고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패혈증이 오고 간과 콩팥등 여러장기들이 다 손상되어
폐이식이 불가능 하다고 합니다. 오늘은 9월10일 제동생 생일입니다. 생일 전 후 로 나가고 싶다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던 동생은 이제 의식을 재워 치료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패혈증이
오고 또 다른 세균들이 발견되어 폐이식을 할 수 없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제동생은 남자라면 꼭 군입대를 해야한다며 열심히 군생활 잘 하고 돌아오겠다고 군생활도 할만하다고
항상 씩씩해 말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요 무슨 마음의 준비요
군대에서 씩씩하던 제 동생이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가야 합니까 왜 진작에 큰병원으로 보내주지
않았나요 가족들에게 전화연락도 안해주고 국군병원에서도 연락을 안해주고 왜 아픈 제동생이 직접 전화를 하나요 젊은날에 청춘받쳐 나라에 애국 하는 마음으로 입대했는데 돌아오는것은 이런 고통스러운
죽음입니까? 이세상에서 핏줄이라고는 남동생 하나뿐인데 이렇게 빨리 헤어져야합니까.. 항상 우리집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던 아들을 이렇게 먼저 보내야 하는게 말이 됩니까....
군대에서 이런 희생자가 또 다시 나와서는 안됩니다.. 사람일이라는거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지만
초기에 대처를 잘해주었으면 제동생이 이렇게 젊은날에 가족과 이별하는 일은 없을것입니다..
군대에서 아픈 군인들도 집에서 부모님 간병하듯이 잘 돌보아 주세요..
동생이 병원에서 종이에 썼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네요.. "퇴원하면 제일해보고 싶은게 뭐야?"
가족들이랑 꼭 껴안고 거실에서 자는거... 집에가고싶다고 집에가고 싶다고 하던 동생은 이렇게
병원에서 죽음을 앞둔 채 22번째 생일을 보내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한 마음으로
제 동생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인 추석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지민이의 글을 읽어주시고
기도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격려 덕분에
꼭 일어날꺼라는 희망이 생깁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건 제 친구의 누나가 쓴 글이고 조금이나마 같이 기도해주세요...
저도 다시 살아나길 간절히 바라고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