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같이 살아오면서 절대 여자로써는 갖기 힘든 살기와 미움, 어두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항상 어딘가 높은 곳을 가면 뛰어 내리고 싶고 길에 차가 지나가면 뛰어들고 싶은 자해 혹은 자살 욕구가 하루에도 빈번하게 일어 납니다.
저는 어렸을 때는 괜찮았지만 초등학생때부터 쭉 부부싸움과 자식을 향한 폭력과 폭언에 시달려 왔습니다.
정비업을 하시는 아버지와 시장에서 노점을 하시며 빠듯하게 자식만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가 계십니다.
제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모두 어머니 덕분이지요
빌라 3층에 살다가 가족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땅을 사서 짓겠다면 집을 팔아 그집 빌라 지하 4평남짓 셋방으로 떠밀려와 살았습니다., 땅을 사고 그 땅위에 집을 짓는 돈은 저희 어머니의 자매들에게 꾸었고 자신의 돈 조금 그리고 반이 넘는 돈을 은행대출을 받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폭력은 그때 부터 시작했습니다. 원체 아버지란 사람의 성격이 독단적이고 이기적이며 다혈질이라 욱하는 성격이 굉장히 심합니다.
제가 10 살 즈음에 그 한칸짜리 셋방에서 어린 딸아이가 엄마등을 꼭 붙들고 자고 있었는데 아버지란 사람은 잠자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자고있는 어머니의 머리를 잡고 방바닥에 계속 내리치며 찌으셨어요. 당연히 딸아이가 옆에 있으니 잠자리를 거부하셨겠지요. 저희 엄마(걍 엄마라고 할께요.) 는 몸은 힘이 없이 늘어진채로 끌려다니면서 벽이며 바닥이면 가구 등에 머리를 계속 내리쳐지면서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서는 아버지가 칼을 들고 와서는 10살인 작은 여자아이였던 제 앞에서 엄마목에 칼을 들이대며 저보고 시끄럽게 하지 말라며 울지말라고 하면서 인질극을 벌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굉장히 우습군요. 저는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며 무조건 빌었어요. 제발이러지 말라고 살려달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이때부터 쌓였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부엌에나가 칼을 자기 손목에 대더니 제앞에서 다시 인질극을 하더군요. 자기가 죽겠다면서.. 저는 무조건 잘못했다며 싹싹빌며 용서해 달라고 했죠. 정작 어린저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는데 말이죠. 저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 왜,,, 왜 나한테만 이런일이 일어나는 걸까....... 나의 모든 것이 화근이고 모든 일들에 나한테서 비롯된 일일까... 자라오면서 아버지란 사람은 뭐든것이 너떄문에 일어난 일이다. 니가 이 집안의 화다.. 이러고 말이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건지 이나이가 되도 도저히 이해가 안됩니다.
이 일들이 있고난후 엄마와 저는 외갓집으로 피신해서 엄마는 얼굴에 멍과 상처가 낭자했고 저는 힘없이 어른들의 싸움에 끌려다녔고 결국엔 엄마가 펑펑 우시면서 저를 외딴곳에 내려놓고 버리고 가시다가 잘못했다고 다시 돌아와서 데려가기도 하셨죠.
그 후에 어떻게 어떻게 해서 다시 한집에 살게 되었지만 폭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치매에 걸리신 친할아버지를 엄마가 부양하다가 돌아가셔서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사람들도 많은데 집에서 또 엄마 머리에 화분을 갑자기 내리치시고 막 때리고 시작했고 다른 어른들이 말리고 난장판이 됐었죠. 그떄나이가 제가 초등하교 5학년때 입니다.
하지만 폭력은 엄마에게서 끝나지 않았고 외동인 저에게도 끈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어린 여자아이는 의지할데라곤 강아지 밖에 없었고 밤에도 나가 떄가 잔뜩묻은 강아지를 안고 개집에서 잘만큼 외로 웠었습니다. 그런 어린 아이를 아버지는 손찌검을 할때마다 머리채를 붙잡고 주먹으로 머리를 마구 내리치며 혁띠로 떄리고 선풍기를 집어던지며 잔인하게 폭행했습니다.
죽어야한다며 죽으라며 소리치며 떄리던 모습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습니다.
아이는 그럼 학교 갈때는 멍이 잔뜩 들은채로 갖고 친구들은 왜 그러냐며 어디서 다쳤냐고 물었고 저는 울기만 했었지요.
중학생때도 고등학생때도 폭행은 이어지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주며 키우던 강아지도 3층살던 집에서 창밖에 던질만큼 아버지는 잔혹했고 다혈질이었습니다.
대학에 갓들어간 1학년 때도 폭력은 이어졌고 여전히 죽으라며 폭언과 울며 말리는 엄마 그리고 살려달라고 울며 싹싹빌며 오직 살기위해 모진 발길질과 주먹질을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이 때는 머리가 심하게 붓고 어지럽고 구토증세가 일어 이대병원에 야간진료까지 받았었습니다. 뇌출혈이 예상되지만 심하진 않고 경과를 지켜보자며 이모댁으로 엄마와 피했었습니다. 어린 사촌동생들은 왜 제일 큰 누나가 왜 이러고 자신의 집에 왔었는지 아직도 모를 겁니다.
얼굴에 잔뜩인 멍과 머리의 어지러움을 안고 2학기 개강날 학교를 갔고 친구들은 왜 그러냐며 무슨일이 있었냐며 물었고 친구들에게는 길에가다가 전봇대에 부딪쳐서 머리를 다쳤다고 웃으며 넘겼습니다.
그나마 그후로 집안이 안정되어 폭력은 없었지만 학창시절내내 상처를 껴안고 친구들과는 웃으며 집에서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울며 그렇게 보내왔습니다. 초등학생때 유서를 썼고 지금은 엄마를 두고 내가 어떻게 죽을 수 있나 오직 저만을 위해 살아오신 그 분을 생각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아버지란 사람은 아직도 제 옆에 있으며 저는 상처를 숨기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오직 저에게 남은건 증오와 살기 뿐이지요.
아버지란 사람은 밖에서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이 자자하지만 집안에서는 항상 인상을 쓰고 살고 있죠. 그러면서도 지금에와서 저를 위한다고 행동하지만 저는 그게 가증스럽고 욕만 나올뿐이지요.
저의 망쳐버린 학창시절은 망가져버린 나의 마음은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까요.
너무나 힘이 듭니다.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푼수고 발랄하고 장난을 잘치는 친구이지만 이런말들을 잘 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적어 봅니다.
가정폭력의 결과로 24세 여자의 삶
저는 올해 대학을 졸업한 24세 외동 여자 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가정폭력과 폭언과 자신밖에 모르고 사는 아버지란 분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현재 같이 살아오면서 절대 여자로써는 갖기 힘든 살기와 미움, 어두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항상 어딘가 높은 곳을 가면 뛰어 내리고 싶고 길에 차가 지나가면 뛰어들고 싶은 자해 혹은 자살 욕구가 하루에도 빈번하게 일어 납니다.
저는 어렸을 때는 괜찮았지만 초등학생때부터 쭉 부부싸움과 자식을 향한 폭력과 폭언에 시달려 왔습니다.
정비업을 하시는 아버지와 시장에서 노점을 하시며 빠듯하게 자식만을 위해 살아오신 어머니가 계십니다.
제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도 모두 어머니 덕분이지요
빌라 3층에 살다가 가족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땅을 사서 짓겠다면 집을 팔아 그집 빌라 지하 4평남짓 셋방으로 떠밀려와 살았습니다., 땅을 사고 그 땅위에 집을 짓는 돈은 저희 어머니의 자매들에게 꾸었고 자신의 돈 조금 그리고 반이 넘는 돈을 은행대출을 받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폭력은 그때 부터 시작했습니다. 원체 아버지란 사람의 성격이 독단적이고 이기적이며 다혈질이라 욱하는 성격이 굉장히 심합니다.
제가 10 살 즈음에 그 한칸짜리 셋방에서 어린 딸아이가 엄마등을 꼭 붙들고 자고 있었는데 아버지란 사람은 잠자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자고있는 어머니의 머리를 잡고 방바닥에 계속 내리치며 찌으셨어요. 당연히 딸아이가 옆에 있으니 잠자리를 거부하셨겠지요. 저희 엄마(걍 엄마라고 할께요.) 는 몸은 힘이 없이 늘어진채로 끌려다니면서 벽이며 바닥이면 가구 등에 머리를 계속 내리쳐지면서 폭행을 당했습니다, 그리고서는 아버지가 칼을 들고 와서는 10살인 작은 여자아이였던 제 앞에서 엄마목에 칼을 들이대며 저보고 시끄럽게 하지 말라며 울지말라고 하면서 인질극을 벌이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굉장히 우습군요. 저는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며 무조건 빌었어요. 제발이러지 말라고 살려달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저의 상처와 트라우마는 이때부터 쌓였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부엌에나가 칼을 자기 손목에 대더니 제앞에서 다시 인질극을 하더군요. 자기가 죽겠다면서.. 저는 무조건 잘못했다며 싹싹빌며 용서해 달라고 했죠. 정작 어린저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는데 말이죠. 저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 왜,,, 왜 나한테만 이런일이 일어나는 걸까....... 나의 모든 것이 화근이고 모든 일들에 나한테서 비롯된 일일까... 자라오면서 아버지란 사람은 뭐든것이 너떄문에 일어난 일이다. 니가 이 집안의 화다.. 이러고 말이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건지 이나이가 되도 도저히 이해가 안됩니다.
이 일들이 있고난후 엄마와 저는 외갓집으로 피신해서 엄마는 얼굴에 멍과 상처가 낭자했고 저는 힘없이 어른들의 싸움에 끌려다녔고 결국엔 엄마가 펑펑 우시면서 저를 외딴곳에 내려놓고 버리고 가시다가 잘못했다고 다시 돌아와서 데려가기도 하셨죠.
그 후에 어떻게 어떻게 해서 다시 한집에 살게 되었지만 폭력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치매에 걸리신 친할아버지를 엄마가 부양하다가 돌아가셔서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사람들도 많은데 집에서 또 엄마 머리에 화분을 갑자기 내리치시고 막 때리고 시작했고 다른 어른들이 말리고 난장판이 됐었죠. 그떄나이가 제가 초등하교 5학년때 입니다.
하지만 폭력은 엄마에게서 끝나지 않았고 외동인 저에게도 끈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어린 여자아이는 의지할데라곤 강아지 밖에 없었고 밤에도 나가 떄가 잔뜩묻은 강아지를 안고 개집에서 잘만큼 외로 웠었습니다. 그런 어린 아이를 아버지는 손찌검을 할때마다 머리채를 붙잡고 주먹으로 머리를 마구 내리치며 혁띠로 떄리고 선풍기를 집어던지며 잔인하게 폭행했습니다.
죽어야한다며 죽으라며 소리치며 떄리던 모습이 아직도 귓가에 남아있습니다.
아이는 그럼 학교 갈때는 멍이 잔뜩 들은채로 갖고 친구들은 왜 그러냐며 어디서 다쳤냐고 물었고 저는 울기만 했었지요.
중학생때도 고등학생때도 폭행은 이어지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주며 키우던 강아지도 3층살던 집에서 창밖에 던질만큼 아버지는 잔혹했고 다혈질이었습니다.
대학에 갓들어간 1학년 때도 폭력은 이어졌고 여전히 죽으라며 폭언과 울며 말리는 엄마 그리고 살려달라고 울며 싹싹빌며 오직 살기위해 모진 발길질과 주먹질을 이를 악물고 견뎠습니다. 이 때는 머리가 심하게 붓고 어지럽고 구토증세가 일어 이대병원에 야간진료까지 받았었습니다. 뇌출혈이 예상되지만 심하진 않고 경과를 지켜보자며 이모댁으로 엄마와 피했었습니다. 어린 사촌동생들은 왜 제일 큰 누나가 왜 이러고 자신의 집에 왔었는지 아직도 모를 겁니다.
얼굴에 잔뜩인 멍과 머리의 어지러움을 안고 2학기 개강날 학교를 갔고 친구들은 왜 그러냐며 무슨일이 있었냐며 물었고 친구들에게는 길에가다가 전봇대에 부딪쳐서 머리를 다쳤다고 웃으며 넘겼습니다.
그나마 그후로 집안이 안정되어 폭력은 없었지만 학창시절내내 상처를 껴안고 친구들과는 웃으며 집에서는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울며 그렇게 보내왔습니다. 초등학생때 유서를 썼고 지금은 엄마를 두고 내가 어떻게 죽을 수 있나 오직 저만을 위해 살아오신 그 분을 생각하며 버티고 있습니다. 아버지란 사람은 아직도 제 옆에 있으며 저는 상처를 숨기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오직 저에게 남은건 증오와 살기 뿐이지요.
아버지란 사람은 밖에서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이 자자하지만 집안에서는 항상 인상을 쓰고 살고 있죠. 그러면서도 지금에와서 저를 위한다고 행동하지만 저는 그게 가증스럽고 욕만 나올뿐이지요.
저의 망쳐버린 학창시절은 망가져버린 나의 마음은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까요.
너무나 힘이 듭니다.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푼수고 발랄하고 장난을 잘치는 친구이지만 이런말들을 잘 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적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