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판을 즐겨보는데, 막장인 글이 올라오면 독한 조언들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하소연할 곳은 고작 친구들 뿐입니다. 이 카테고리와 어울리는 내용은 아니지만, 많이들 조회하시느 곳이라고 들어서 인생경험이 풍부하신 분들의 얘기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자 여기에 올립니다.
일단 얘기가 좀 깁니다.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어도 설명이 부족할 뿐 거짓은 없으니 그러려니하고 이해해주세요.
저는 올해 21살이고, 중부지방 쪽 대기업 생산라인에 근무하고 있는 여자입니다.
고향은 남부지방이고
애초부터 이쪽을 계획하고 실업계 고교에 진학해서 입사하게 된 케이스에요. 일부러 최대한 먼 곳에서 온 원서?라고 해야하나 그 단어가 지금 잘 기억이 안나네요; 아무튼 최대한 먼 지역을 지원했습니다.
아빠에게서 도망치고싶어서였어요.
공무원으로 재직할 당시엔 참 좋은 분이었어요. 그 당시엔 생모인줄 알았던 계모가 아빠 몰래 저를 구박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그 정도야 웃으면서 넘길 수 있어요. 이해해요. 저 같아도 그랬을 지 모르죠.
초등학교 2학년 즈음 뇌물사건으로 인해 실직하게 되면서 아빠가 많이 바꼈어요. 알콜중독자가 되서 집을 깨부수고, 폭력을 휘두르고. 계모는 어린 남동생만 데리고 집을 나갔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생모 역시도 오빠만 데리고 도망치듯 이혼했다더군요.
저 같은 기집애는 필요 없었겠죠. 저 역시 그 사람들에겐 정도 뭣도 없어요.
계모가 집을 나가고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있던 오후에, 절 데리러 와준 할머니를 따라 시골로 내려갔어요. 그 이후로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을 할머니가 도와주셨어요.
실직한 이후 몇 년간 방황하던 아빠는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시골로 따라내려와 또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어요. 종류는 다양했어요. 동네가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거나 가전제품을 부수거나 하는 등의 가벼운 것부터, 어느 날은 귀 속이 덜거덕거리길래 꺼내봤더니 핏덩어리가 뭉쳐 나온 적도 있구요. 비오는 날 마당에 무릎꿇고 앉아있게 한 뒤 슬리퍼로 얼굴 후려맞은 적도 있고, 한 번 가출하고 잡혀온 날엔 그냥 한마리 개가 됐어요. 복날 맞은 개. 가출한 저를 찾아 학교에 가서 제 이름을 부르며 개망신주는 건 예사였구요.
하루라도 두 발 뻗고 자지 못했어요. 새벽에 깨우는 게 예사였거든요. 하도 세뇌가 돼서 아빠가 제 이름을 부르면 아무리 피곤해도 자동으로 몸이 벌떡 일어나졌어요. 무의식속에서도.
마음 편히 잘 수 있었던 날은 아빠가 정신병원에 갇혀 있을 때나 알콜병원에 갇혀있을때 정도? 알콜병원도 잠시 외출했을때 술먹고 들어가 간호사 앞에서 깽판쳐서 강제퇴원조치 당했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날 때리고 내 강아지 안구를 망치로 박살내 죽여 끌고 나갔을지라도, 할머니만 죽음에 몰고가지 않았더라면 언젠가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었을 지도 몰라요.
어디서 자꾸 그렇게 빚이 생기는지, 카드빚 독촉장 무더기를 할머니에게 던지며 땅을 팔아서라도 갚으라며 소리지르고, 지 손으로 망치로 차 박살내놓고 차 사내라고 그러고. 할머니가 그렇게 못하겠다면 그 때부턴 저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맞는 건 할머니가 정말 못 견디시니까.
제가 할머니 품으로 파고들면 파고들 수록 아빠가 더 미쳐 발광한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면, 당신이 막내삼촌 집이든 병원이든 어디든 도망갈 수 있게 밀어냈을텐데. 혼자 남을 저 때문에 떠나지도 못하고 감싸주시던 할머니는, 아빠에게 무슨 어린애들 패싸움 할 때처럼 주먹으로 맞아 병원에 입원하셨어요.
할머니를 따라가던 저는, 아빠가 마당에 와인병을 깨부수며 넌 유리조각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집 밖에 못나간다며 윽박지르길래 오기로 그거 다 쓸고 제 인생의 마지막 가출을 감행했어요. 그때가 정말 최고였어요. 한 두시간 맞았나? 도망치다 머리채 잡혀서 더 맞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때 하필 구정이 돌아오고 있어서 종부셨던 할머니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오셨어요. 이것저것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오니 언제나처럼 동네가 트로트 소리로 떠들썩하더라구요. 집 앞에 서서 할머니에게 지금이라도 도망치자고, 경찰에 신고하자고, 막내삼촌한테 가자고 했지만 할머니는 집으로 묵묵히 들어가셨고, 그날 역시 들어오자마자 할머니에게 돈지랄을 해 할머니는 결국 그날 농약을 드시고 돌아가셨어요.
철이 없고 멍청해서 속도 많이 썩인 손녀였지만, 대기업에 취직해 돈을 많이 벌어서 꼭 아빠에게서 도망치게 해드리겠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눈 앞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데 전 말리지조차 않았어요.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차라리 더 편해지지 않을까 착각했었어요. 순간 눈이 돌았던거에요, 울며불며 말렸더라면 아직 제 곁에 살아계셨을지도 모르는데.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믿겨지지가 않았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게.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그 뒤를 따라가는데, 평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던 동네할머니들이 혀를 차시더라구요. 저건 지 그렇게 아껴주던 할머니가 죽었는데 울지도 않는다면서.
남이라는 존재는 말을 참 아무렇지도 않게 독하게 뱉더라구요. 나와 할머니에 대해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친척들이던 고모삼촌들이던 모두 연락이 끊겼어요. 북적북적하던 명절연휴가 할머니 한 분 안 계시다고 그렇게 싸늘해지더라구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아빠는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어요. 그냥 제가 아빠인 자기에게 의지하지 않고 할머니에게 의지하는게 싫었던 거고, 자기 스스로가 떳떳한 가장이지 못한게 화가나서 자꾸 더 어긋나갔던 거에요. 알아요. 아빠도 참 인생 슬픈 사람이니까.
아빠도 인생 끝났어요. 그렇게 똑똑하던 사람이 그 한모금 머금었다 뱉은 제초제 때문에 생사를 오락가락하더니, 살아남은 대신 정신분열 판정을 받았어요. 정확히 몇 급인진 모르겠어요. 관심 없으니까...
아빠 병 수발하면서, 할머니 없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제 관심은 오직 하나였어요. 복수요. 우스운 단어라 생각되실지도 모르지만 전 복수하고 싶었고 그 결심 지금도 변하지 않아요.
옛날 얘긴 대충 이정도면 될 것 같구요... 제가 조언을 얻고싶은 부분은 여기부터에요.
고등학교 다닐때는 아빠가 장애인이고 제가 미성년자라 30씩 총 60이 나왔어요. 생활이 얼추 가능했어요. 아빠는 물론 그 때도 제가 필요한 돈을 달라고 하면 없다그러고 자기는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그랬어요.
지금은 제가 성인이 되어서 월소득이 150을 넘었기 때문에 면사무소에서 지원을 끊어버렸어요. 아빠에게 나오던 30까지 모두요. 아빠가 30이라도 지원받으려면 제가 월소득 150이 안되야된다고 하더라구요.
입사하고 처음 한 1년간은 돈을 줬어요. 30씩. 그러다가 갑자기 50씩 달라고 하더니 뭐 60을 보내라고 하던가? 이번년도 초였어요. 열받아서 아예 돈 다 끊어버렸어요. 그리고 참고 있던 모든 걸 다 말했는데, 아빠는 정신분열 때문에 할머니를 때린것도 절 때린것도 아무것도 기억이 안난데요. 그 속에 안들어가봤으니 그냥 시침떼는걸지도 모르죠.
그래서 제가 할머니 얘기를 들먹이면서 화내고 그랬더니 건방지게 굴지말라며 도리어 화를내더라구요.
돈 달라고 난리난리치길래 전화 다 거절하고 에어플레인모드 해놨더니 음성메세지 실컷 남겨놨더라구요. 들려드리진 못하니 대충 적어드릴게요.
참고로 정말 말안통하고, 저 음성메세지 써놓은거 보면 아시겠지만 말을 반복해요. 술 취해서.
음성메세지듣고 저도 눈돌아서 전화해서 원하시는대로 남남 되어드리겠다고 비꽜더니 회사에 찾아와서 훼방을 놓겠다네요. 예전에 제가 할머니뒤로 숨으면 더 난리칠때부터 얼핏 생각하긴 했었는데, 제가 자기 자식인데 여태까지 했던것처럼 순종을 안하니까 그게 정말 싫은것 같아요. 제가 저 인간의 폭력성을 갖고 태어났다는 게 너무 무서워요. 폭력은 보고 배우는 거라잖아요.
저는 이런 협박전화도 받기싫고, 예전엔 같이욕하던 고모들도 이제 몇 년 지났다고 아빠 힘든데 돈좀 보태주라합니다. 면사무소에서도 전화와요. 돈을 안붙여줘서 아빠가 힘들어한다구요. 아빠는 오빠앞에서도 참 말 착하게 잘합니다. 다른사람 앞에선 병들고 힘없는 늙은남자구요. 그래서 제가 욕먹어요. 돈 좀 번다고 부모 나몰라라하고 고향에도 한 번 내려와보지 않는 미친년으로요. 제 편 하나도없어요. 저는 아빠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갑갑한 상황속에서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냥 내려가서 아빠도 죽이고 저도 죽을까요? 그것 밖에 없나요? 조언좀 부탁드려요....
제인생은대체왜이럴까요? 조언부탁드려요...
저는 판을 즐겨보는데, 막장인 글이 올라오면 독한 조언들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하소연할 곳은 고작 친구들 뿐입니다. 이 카테고리와 어울리는 내용은 아니지만, 많이들 조회하시느 곳이라고 들어서 인생경험이 풍부하신 분들의 얘기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자 여기에 올립니다.
일단 얘기가 좀 깁니다.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어도 설명이 부족할 뿐 거짓은 없으니 그러려니하고 이해해주세요.
저는 올해 21살이고, 중부지방 쪽 대기업 생산라인에 근무하고 있는 여자입니다.
고향은 남부지방이고
애초부터 이쪽을 계획하고 실업계 고교에 진학해서 입사하게 된 케이스에요. 일부러 최대한 먼 곳에서 온 원서?라고 해야하나 그 단어가 지금 잘 기억이 안나네요; 아무튼 최대한 먼 지역을 지원했습니다.
아빠에게서 도망치고싶어서였어요.
공무원으로 재직할 당시엔 참 좋은 분이었어요. 그 당시엔 생모인줄 알았던 계모가 아빠 몰래 저를 구박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그 정도야 웃으면서 넘길 수 있어요. 이해해요. 저 같아도 그랬을 지 모르죠.
초등학교 2학년 즈음 뇌물사건으로 인해 실직하게 되면서 아빠가 많이 바꼈어요. 알콜중독자가 되서 집을 깨부수고, 폭력을 휘두르고. 계모는 어린 남동생만 데리고 집을 나갔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생모 역시도 오빠만 데리고 도망치듯 이혼했다더군요.
저 같은 기집애는 필요 없었겠죠. 저 역시 그 사람들에겐 정도 뭣도 없어요.
계모가 집을 나가고 덩그러니 혼자 남겨져 있던 오후에, 절 데리러 와준 할머니를 따라 시골로 내려갔어요. 그 이후로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을 할머니가 도와주셨어요.
실직한 이후 몇 년간 방황하던 아빠는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시골로 따라내려와 또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어요. 종류는 다양했어요. 동네가 시끄럽게 음악을 틀어놓거나 가전제품을 부수거나 하는 등의 가벼운 것부터, 어느 날은 귀 속이 덜거덕거리길래 꺼내봤더니 핏덩어리가 뭉쳐 나온 적도 있구요. 비오는 날 마당에 무릎꿇고 앉아있게 한 뒤 슬리퍼로 얼굴 후려맞은 적도 있고, 한 번 가출하고 잡혀온 날엔 그냥 한마리 개가 됐어요. 복날 맞은 개. 가출한 저를 찾아 학교에 가서 제 이름을 부르며 개망신주는 건 예사였구요.
하루라도 두 발 뻗고 자지 못했어요. 새벽에 깨우는 게 예사였거든요. 하도 세뇌가 돼서 아빠가 제 이름을 부르면 아무리 피곤해도 자동으로 몸이 벌떡 일어나졌어요. 무의식속에서도.
마음 편히 잘 수 있었던 날은 아빠가 정신병원에 갇혀 있을 때나 알콜병원에 갇혀있을때 정도? 알콜병원도 잠시 외출했을때 술먹고 들어가 간호사 앞에서 깽판쳐서 강제퇴원조치 당했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날 때리고 내 강아지 안구를 망치로 박살내 죽여 끌고 나갔을지라도, 할머니만 죽음에 몰고가지 않았더라면 언젠가는 아빠를 용서할 수 있었을 지도 몰라요.
어디서 자꾸 그렇게 빚이 생기는지, 카드빚 독촉장 무더기를 할머니에게 던지며 땅을 팔아서라도 갚으라며 소리지르고, 지 손으로 망치로 차 박살내놓고 차 사내라고 그러고. 할머니가 그렇게 못하겠다면 그 때부턴 저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맞는 건 할머니가 정말 못 견디시니까.
제가 할머니 품으로 파고들면 파고들 수록 아빠가 더 미쳐 발광한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면, 당신이 막내삼촌 집이든 병원이든 어디든 도망갈 수 있게 밀어냈을텐데. 혼자 남을 저 때문에 떠나지도 못하고 감싸주시던 할머니는, 아빠에게 무슨 어린애들 패싸움 할 때처럼 주먹으로 맞아 병원에 입원하셨어요.
할머니를 따라가던 저는, 아빠가 마당에 와인병을 깨부수며 넌 유리조각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집 밖에 못나간다며 윽박지르길래 오기로 그거 다 쓸고 제 인생의 마지막 가출을 감행했어요. 그때가 정말 최고였어요. 한 두시간 맞았나? 도망치다 머리채 잡혀서 더 맞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그때 하필 구정이 돌아오고 있어서 종부셨던 할머니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돌아오셨어요. 이것저것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오니 언제나처럼 동네가 트로트 소리로 떠들썩하더라구요. 집 앞에 서서 할머니에게 지금이라도 도망치자고, 경찰에 신고하자고, 막내삼촌한테 가자고 했지만 할머니는 집으로 묵묵히 들어가셨고, 그날 역시 들어오자마자 할머니에게 돈지랄을 해 할머니는 결국 그날 농약을 드시고 돌아가셨어요.
철이 없고 멍청해서 속도 많이 썩인 손녀였지만, 대기업에 취직해 돈을 많이 벌어서 꼭 아빠에게서 도망치게 해드리겠다고 늘 생각했었는데. 눈 앞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시는데 전 말리지조차 않았어요. 그렇게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차라리 더 편해지지 않을까 착각했었어요. 순간 눈이 돌았던거에요, 울며불며 말렸더라면 아직 제 곁에 살아계셨을지도 모르는데.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믿겨지지가 않았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게. 사람들이 상여를 메고 그 뒤를 따라가는데, 평소 웃으며 인사를 받아주던 동네할머니들이 혀를 차시더라구요. 저건 지 그렇게 아껴주던 할머니가 죽었는데 울지도 않는다면서.
남이라는 존재는 말을 참 아무렇지도 않게 독하게 뱉더라구요. 나와 할머니에 대해 알면 뭘 얼마나 안다고.
그렇게 친척들이던 고모삼촌들이던 모두 연락이 끊겼어요. 북적북적하던 명절연휴가 할머니 한 분 안 계시다고 그렇게 싸늘해지더라구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아빠는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어요. 그냥 제가 아빠인 자기에게 의지하지 않고 할머니에게 의지하는게 싫었던 거고, 자기 스스로가 떳떳한 가장이지 못한게 화가나서 자꾸 더 어긋나갔던 거에요. 알아요. 아빠도 참 인생 슬픈 사람이니까.
아빠도 인생 끝났어요. 그렇게 똑똑하던 사람이 그 한모금 머금었다 뱉은 제초제 때문에 생사를 오락가락하더니, 살아남은 대신 정신분열 판정을 받았어요. 정확히 몇 급인진 모르겠어요. 관심 없으니까...
아빠 병 수발하면서, 할머니 없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제 관심은 오직 하나였어요. 복수요. 우스운 단어라 생각되실지도 모르지만 전 복수하고 싶었고 그 결심 지금도 변하지 않아요.
옛날 얘긴 대충 이정도면 될 것 같구요... 제가 조언을 얻고싶은 부분은 여기부터에요.
고등학교 다닐때는 아빠가 장애인이고 제가 미성년자라 30씩 총 60이 나왔어요. 생활이 얼추 가능했어요. 아빠는 물론 그 때도 제가 필요한 돈을 달라고 하면 없다그러고 자기는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그랬어요.
지금은 제가 성인이 되어서 월소득이 150을 넘었기 때문에 면사무소에서 지원을 끊어버렸어요. 아빠에게 나오던 30까지 모두요. 아빠가 30이라도 지원받으려면 제가 월소득 150이 안되야된다고 하더라구요.
입사하고 처음 한 1년간은 돈을 줬어요. 30씩. 그러다가 갑자기 50씩 달라고 하더니 뭐 60을 보내라고 하던가? 이번년도 초였어요. 열받아서 아예 돈 다 끊어버렸어요. 그리고 참고 있던 모든 걸 다 말했는데, 아빠는 정신분열 때문에 할머니를 때린것도 절 때린것도 아무것도 기억이 안난데요. 그 속에 안들어가봤으니 그냥 시침떼는걸지도 모르죠.
그래서 제가 할머니 얘기를 들먹이면서 화내고 그랬더니 건방지게 굴지말라며 도리어 화를내더라구요.
돈 달라고 난리난리치길래 전화 다 거절하고 에어플레인모드 해놨더니 음성메세지 실컷 남겨놨더라구요. 들려드리진 못하니 대충 적어드릴게요.
-ㅇㅇㅇ. 니는왜돈을붙여준다해놓고돈으안붙여주는거야.이노무가시나니는아빠한테진짜혼날래?내가니돈붙여주고그하고이러면그만큼아빠가생각을해가지고천만원을준다고그렇게이야기했는데도니는한달에돈을얼마나받아,임마.야이새끼야!니가한달에150만원이상받기때문에아빠는면사무소에서한달에30만원나오는것도못받고있잖아.그러면으니가그걸책임져야지임마!니가임마150만원이상받기때문에아빠는하나도돈도하나도못받아!니가아빠를그렇게배신을해임마!3월달부터이때까지아빠는참았다임마.그럼니는초등학교때부터시작해서이때까지살아온거계산을해.나도니꼴보기싫으니까.니가이렇게전화안받으면아빠는이제니하고연락을끊는다.니가시집을가던가어떻게살던가그하던가알겠나임마.이노무가시나니는그것밖에안돼.이내용듣는즉시내한테전화해알겠나.안그럼내가(사는지역으로)올라간다.내가올라가면니는직장이고뭐고다그만둔다고생각해.알겠나임마.이노무가시나아직까지씨,어데이래아빠를무시하고그러노!!!!!!
-ㅇㅇ야,아빤데,니는저녁은먹었나지금일하나?추석때내려오지도못하고그하고이래갖고.아빠는니얼굴함보고싶은데.회사일이바빠갖고내려오지도못하제?열심히해라.그하고밥도꼬박꼬박챙겨먹고.니오빠는어제왔다가올라갔다.오빠랑자주연락하고.추석지나고니편할때한번내려와얼굴보고싶다.연주야.힘들제?그래도참고견디고그래야지.연주야사랑해.전화끊을게.
-ㅇㅇㅇ!아빠다!아빠는니한테진짜실망했다임마.니가앞으로아빠를무시하고살수있는거같애니가?한번살아봐.니가지금좀도와주면아빠가나중에몇배로돌려준다고했잖아.이딴식으로건방지게굴면아빠는니한테는앞으로하나도안보태줄테니까알았나?니하고내하고앞으로남남이다!남남보다못하는가시나야니는!임마!알겠나!니가그렇게까불고그러면아빠는니를가만히안둬!어!내가니를가만히안둔다고!니를끄집어갖고!내옆에!갖다놓을거야.알았나!가시나야까불지마!내가올라가면은,니는내옆에니는내딸이니까내가너를사랑하니까내가모든걸책임질게!니는내가이래갖고갖다놓을테니까,그렇게알고있어알겠나!멀리있다고해갖고임마전화한통화도하지도않고,응?아빠는그냥이래갖고놀고있지만은임마!아빠는안죽었어새끼야!내가믿는거는니빼이뿐인데새끼야,니는그렇게전화도안받고그러나임마!아빠는오늘화가상당히많이났어!
-ㅇㅇㅇ!똑바로알아라.내가ㅇㅇ회사글로올라가면니는보따리쌀준비해라.이노무가시나어디이래건방지게.니는아빠도모르고엄마도모르고.니조금컸다고그래건방지게노나?어?야이가시나야!!!니가그렇게건방지게놀아!내가올라가는거같으면니는보따리쌀준비해!알았어!이노무가시나어디이래건방지게,니가임마!지금아빠는!몸이아파갖고조금놀고있잖아.니가조금도와주면은임마아빠가다시힘내갖고일할수가있잖아임마!니도결혼하던가앞으로애낳던가이렇게안할거야?아빠를무시할거야?니한테엄마가있나?아빠뿐이없어임마!니는엄마도없고아빠도없이그렇게니혼자살거같애?니는내딸래미야임마.니가건방지게놀고그하고이러면내가절대로안놔둔다.니머리카락을잡고!집에!끌고올거야!알았나내가니회사에가가지고머리카락끌고이래갖고잡아오는그런일이없도록해라,니가!이노무가시나야!앞으로잘살고그하고이럴라하면은,잘해!
아빠는 이런 사람이구요.
참고로 정말 말안통하고, 저 음성메세지 써놓은거 보면 아시겠지만 말을 반복해요. 술 취해서.
음성메세지듣고 저도 눈돌아서 전화해서 원하시는대로 남남 되어드리겠다고 비꽜더니 회사에 찾아와서 훼방을 놓겠다네요. 예전에 제가 할머니뒤로 숨으면 더 난리칠때부터 얼핏 생각하긴 했었는데, 제가 자기 자식인데 여태까지 했던것처럼 순종을 안하니까 그게 정말 싫은것 같아요. 제가 저 인간의 폭력성을 갖고 태어났다는 게 너무 무서워요. 폭력은 보고 배우는 거라잖아요.
저는 이런 협박전화도 받기싫고, 예전엔 같이욕하던 고모들도 이제 몇 년 지났다고 아빠 힘든데 돈좀 보태주라합니다. 면사무소에서도 전화와요. 돈을 안붙여줘서 아빠가 힘들어한다구요. 아빠는 오빠앞에서도 참 말 착하게 잘합니다. 다른사람 앞에선 병들고 힘없는 늙은남자구요. 그래서 제가 욕먹어요. 돈 좀 번다고 부모 나몰라라하고 고향에도 한 번 내려와보지 않는 미친년으로요. 제 편 하나도없어요. 저는 아빠에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갑갑한 상황속에서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냥 내려가서 아빠도 죽이고 저도 죽을까요? 그것 밖에 없나요? 조언좀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