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 속의 환영 프놈바켕

박민지201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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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7.28.

 

 

참, 뜨거웠지요.

앙코르와트의 열기를 식히러

잠시 시내 펍스트리트로 돌아옵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즐겨 찾아서 레드 피아노로 온 건 아니고,  

툰아저씨가 파킹해준 시내 사거리에 바로 있었고, 돌아다닐 힘이 없었으며

우리는 대세에 따르지 않으니까요.  

 

 

 

 

  

 

 

참, 맑지요.

레드 피아노 이층에서의 풍경입니다.  

하늘이 청명해서 꼬물꼬물 인간들이 벌려놓은 살림살이며

번거러운 몸짓 하나 하나가 다 아름답습니다.

오늘 일몰은 볼만할 것 같습니다.

앙코르 맥주 500 한 잔과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고

일몰을 향해 프놈바켕으로 갑니다.

 

 

 

 

 

 

'안정적'으로 해가 지고 있습니다.

일몰까지는 아직 1시간 반 시간 남짓 남았군요.

 

 

 

 

 

 

 

일몰을 위한 절대장소,

프놈바켕에서의 자리싸움은 볼만합니다.      

이미 발디딜 틈이 없었지요.   

어쩌면 풍경보다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컸던 곳입니다. 

지구촌 모든 인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라하면 섭섭치 않겠습니까.        

 

 

나는 여기서 예상치 못한 전율을 느끼게 됩니다.    

수 백명의 세계인들이 모두  

같은 것을 향해, 같은 것을 기다리고, 같은 것을 갈망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뜨겁습니다.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거든요.   

정말이지 또 한 번 절절한 인류애를 느낍니다. 

빈틈없이 하나가 되는 시간  

지구촌은 하나다 쏴~!   

 

 

 

 

 

 

그런데...

복병이 나타납니다.

한 순간에 찬물을 끼얹는 무지막지한 천둥소리와 함께

거대한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인류가 동시에 내뱉는 한숨 소리를 들어보셨습니까.  

천둥보다 삼엄한 탄식이 쏟아집니다.  

미국 시트콤에서 훈련 받은 청중들이 아아.... 하고 내뱉는 소리를 확대 상상합시다.  

 

절대적인 하늘 앞에 어쩔 수도, 그렇다고 바로 굴복할 수도 없는

인간의 안타까운 몸짓과 분노와 짜증이 번지기 시작합니다.   

 

일몰은 물건너 갔지만,  

나도 너무 슬펐지만 사람들의 동요를 보면서

즐거워 미쳐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언제 다시 여기에 올라와 일몰을 보겠냐만은,   

제가 언제 다시 세계인들의 일사분란한 안타까움을 목격하겠습니까.

 

운이 나빴고,

운이 좋았습니다.  

     

 

 

 

 

 

버텨봤자, 괴로울 뿐인 걸 아는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합니다.  

일찌감치 체념한 사람들 사이에서 끝까지 버티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아 울면서 질질 기어내려옵니다.

그래도 너 즐거웠잖아.  

 

 

 

 

 

 

힘들게 기어 올라간 곳에서  

수확 없이 기어 내려오는  

일사분란한 체념의 몸짓.

괜찮아, 하늘이 굽어보실 거야.

 

 

 

 

 

 

 

기어이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툭툭 우두두투투투 무섭게 내리기 시작합니다.

우리 툰 아저씨도 구멍난 비옷을 꺼내 입으시죠.  

예상 밖의 이른 퇴근 시간에 속으로 쾌재를 외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죠. 

 

 

 

 

 

 

 

 

미련과 안타까움이 질척질척, 

발 길이 떨어지지 않는 길 위를

그래도 씩씩하게 행군합니다.

아름다웠지요.  

그리고 나는 왜 뿌듯했을까...

 

 

 

 

 

 

 

엄청난 빗 속에 흐린 잔영을 남기는 앙코르와트...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꿈 속의 꿈에서나 볼 듯한 이미지와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씩씩하게 웁니다.

빗 속을 달리는 수 백의 헤드라이트들과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달려오는 이들에게 멋지다고 한 방 날려줍니다.   

흑백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자전거를 탄 그녀와 서로 엄지손가락을 쳐들고 인사했습니다.     

멋지다고.    

정말, 당신 멋있다고.   

 

 

이 모든 만남들을 가능하게 해 준

난데없는 비에게 고맙다고,

난데없이 펼쳐질 인생이 그리 두렵지는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