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에 입대를 했으니 벌써 23년전 일이네요. 저도 입대할 당시 애인이 있었지요. 군대 영장이 입대 2주전에 나왔어요. 본적지에서 계류 어쩌고 저쩌고 영장을 딱 받아보니 입대 날짜 까지 딱 2주전... 차마 군대 간다고 말못하고... 망설이다 망설이다 일주일 전에 통보를 했지요. 군대를 간다고... 말문이 막혀 저를 보던 그분의 얼굴이 지금도 뚜렸하네요. 제가 군대 갈 당시 상황은 별로 안좋았어요. 독재타도 양키고홈... 민주화 운동이 극심할 당시였고 많은 사람들이 군대가서 실종되고 의문사 하고 그럴 때였으니까요. 그리고 개월수도 30개월 이었어요. 물론 전 "문무대"라고 불리우던 대학생 병영 집체교육 세대라 45일의 혜택이 있었지만 전방 입소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은 45일을 더 합쳐 3개월 혜택도 받았어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군대라 하면 단 하루도 못견디는 공간인 건 확실하지요. 팔팔한 젊은이들을 울타리에 가두고 한공간에서 제약을 두며 생활 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애국심을 제외하고 보자면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이기에... 그리고 사랑하던 사람과 2년 6개월간 떨어져 지낸다는 거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이유중 하나지요. 여기 글을 읽어 보면 많은 분들이 곰신이 변하지는 않을까 기다렸는데 군화가 변하지는 않을까 걱정인 글이 대부분이네요. 글쎄요 단정 지어 이야기 할 수 없지만 50대 50 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간의 문제인 것 같아요. 군대 가면 사람 된다는 말 거짓이니까요. 군대가서 사람됐다면 군필이 대부분인 우리나라는 아주 좋은나라가 되었을테니까요. 제 군 시절에도 그런 분들이 있었어요. 군 입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별통보로 받아들이던 시절이지만 지고지순한 사랑은 동서고금이 모두 똑 같으니까요... 편지를 쓰면 정확하게 15일 만에 곰신 손에 들어가더군요. 그리고 그날 당장 곰신이 답장을 써서 보내면 오는데 또 15일.. 물론 매일 쓰고 매일 보내면 처음 15일과 보낸 15일 모두 한달을 제외하고 매일 편지가 오는 것은 똑같지만... 그러나 이사로 주소라도 바뀌던가 전화번호가 바뀌면 군대 안에 있는 군화는 답답해 미치지요. 먼저 편지를 보내오기 전엔 암흑 상태니까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군대 내에 공중전화는 꿈도 못꿀 일이고 오로지 편지.. 그러다 겨우 훈련이나 대민지원 등으로 군대 밖으로 나올일이 생겨도 공중전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고참에게 찍히는 일이기에 그리고 동전도 없고... 콜렉트 콜 (그당시에 이거 생겼을때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지요) 로 어쩌다 운이 좋아 전화를 한다쳐도 그녀가 집에 없으면 꽝이지요. 겨우 전화를 받는 그녀의 어머님이나 아버님 동생 누나등에게 "저 누구인데요 군대에서 잠시 나와서 전화하는 겁니다... ㅇㅇ이 들어오면 편지 하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눈물로 끊던 시절이었어요. 면회를 와도 부인이나 부모 친족이 나니면 외박이 안되던 시절. px에서 겨우 몇시간 얼굴 보고 발길을 돌리던 곰신들은 가끔 그날 부대 당직부관이 px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남친 외박 시켜야 겠다는 일념으로 떡이며 가지고 들어온 양주병을 안기면서 외박 부탁을 애걸복걸 하고 허락 맡으면 난리나던 기억이 있네요. 제 여친은 제가 상병 마지막 호봉때 (전역 9개월 남았을때) 회사에 취직했고 그 회사의 대리와 눈이 맞아서 이별통보를 했어요. 구형 프라이드를 몰던 그 대리... (지금도 프라이드라는 자동차가 싫어) 그 기분은 참... 토요일이면 멍하니 연병장을 보고 앉아 페가 타는지 간을 태우는지 담배를 태우는지 깊숙한 곳에 존재하던 슬픔을 연기로 날리곤 했어요. 차라리 밖이 었다면 돌이켜보려 애도 써보고 집앞에서 기다려보기라도 하련만 군대에 메어있으니 뭔 뾰족한 수도 없고... 조용히 손에서 빠져나가는 물을 보는 기분. 잡힐것 같아도 잡히지 않는.. 그러나 여전히 손은 젖어있는... 다만 여친이 만난 그 프라이드 남이 좋은 녀석이었으면 하고 마음을 달래볼 수 밖에... 자살 소동 벌어져요. 곰신이 변한 군화들. 그땐 연락할 길도 없고 연락할 수도 하소연 할 수도 없고 애걸복걸 할 수도 없었기에 더 탈영이 많았는지 몰라요. 지금처럼 군대에 전화도 있고 외박 외출도 많이 나온다면 지겨울 만도 하지만 그래도 홀로서기와 외로움을 20대초반 흔들리는 나이에 겪어야 할 군화들 다독거려 주시고 기다리시면서 유혹이 들어와도 군화가 믿음직하고 사람구실 할 놈이라면 배신 하지 마세요. 아직도 여전히 어리광 부리고 휴가 나오면 친구들밖에 모르고 술에 절어있고 게임에 몰두하고 다른 여자 만나고 다닌 다면 싹수가 노란 놈이니 다른년 줘버리세요. 바람피니 뭐니 질투마시구요. 가끔 발렌타인 데이라고 사탕이며 초코렛이며 선물보낸거 사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안들어요. 저걸 받는 군화놈 얼마나 뿌듯할까.. 그래도 어리광 부리고 투정하는 군화 있다면 수면제나 돼지 발정제를 보내세요. 그래야 어른되죠. 아마 제 군시절에 (그땐 발렌타인데이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떤 곰신이 저정도의 선물을 박스로 보내왔다면 9시 뉴스에 나왔을 거에요. "도가 지나친 젊은이들의 행각 어쩌고 저쩌고..." 아름 다운 사랑 하시구요. 서로의 믿음이 굳건 하다면 짜증나는 이별도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도 없을 거에요. 이상 아버지 같은 늙은이의 조언을 빙자한 회상이었습니다. 11
1988군번이 곰신과 군인들에게...
1988년에 입대를 했으니 벌써 23년전 일이네요.
저도 입대할 당시 애인이 있었지요.
군대 영장이 입대 2주전에 나왔어요. 본적지에서 계류 어쩌고 저쩌고
영장을 딱 받아보니 입대 날짜 까지 딱 2주전...
차마 군대 간다고 말못하고... 망설이다 망설이다 일주일 전에 통보를 했지요.
군대를 간다고... 말문이 막혀 저를 보던 그분의 얼굴이 지금도 뚜렸하네요.
제가 군대 갈 당시 상황은 별로 안좋았어요.
독재타도 양키고홈... 민주화 운동이 극심할 당시였고
많은 사람들이 군대가서 실종되고 의문사 하고 그럴 때였으니까요.
그리고 개월수도 30개월 이었어요.
물론 전 "문무대"라고 불리우던 대학생 병영 집체교육 세대라 45일의 혜택이 있었지만
전방 입소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은 45일을 더 합쳐 3개월 혜택도 받았어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군대라 하면 단 하루도 못견디는 공간인 건 확실하지요.
팔팔한 젊은이들을 울타리에 가두고 한공간에서 제약을 두며 생활 하게 한다는 것 자체가
애국심을 제외하고 보자면 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이기에...
그리고 사랑하던 사람과 2년 6개월간 떨어져 지낸다는 거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이유중 하나지요.
여기 글을 읽어 보면 많은 분들이 곰신이 변하지는 않을까
기다렸는데 군화가 변하지는 않을까 걱정인 글이 대부분이네요.
글쎄요 단정 지어 이야기 할 수 없지만 50대 50 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간의 문제인 것 같아요.
군대 가면 사람 된다는 말 거짓이니까요.
군대가서 사람됐다면 군필이 대부분인 우리나라는 아주 좋은나라가 되었을테니까요.
제 군 시절에도 그런 분들이 있었어요.
군 입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이별통보로 받아들이던 시절이지만
지고지순한 사랑은 동서고금이 모두 똑 같으니까요...
편지를 쓰면 정확하게 15일 만에 곰신 손에 들어가더군요.
그리고 그날 당장 곰신이 답장을 써서 보내면 오는데 또 15일..
물론 매일 쓰고 매일 보내면 처음 15일과 보낸 15일 모두 한달을 제외하고
매일 편지가 오는 것은 똑같지만...
그러나 이사로 주소라도 바뀌던가 전화번호가 바뀌면 군대 안에 있는 군화는
답답해 미치지요. 먼저 편지를 보내오기 전엔 암흑 상태니까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군대 내에 공중전화는 꿈도 못꿀 일이고
오로지 편지.. 그러다 겨우 훈련이나 대민지원 등으로 군대 밖으로
나올일이 생겨도 공중전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고참에게 찍히는 일이기에
그리고 동전도 없고... 콜렉트 콜 (그당시에 이거 생겼을때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지요)
로 어쩌다 운이 좋아 전화를 한다쳐도 그녀가 집에 없으면 꽝이지요.
겨우 전화를 받는 그녀의 어머님이나 아버님 동생 누나등에게
"저 누구인데요 군대에서 잠시 나와서 전화하는 겁니다... ㅇㅇ이 들어오면 편지 하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눈물로 끊던 시절이었어요.
면회를 와도 부인이나 부모 친족이 나니면 외박이 안되던 시절.
px에서 겨우 몇시간 얼굴 보고 발길을 돌리던 곰신들은
가끔 그날 부대 당직부관이 px에 나타나기라도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남친 외박 시켜야 겠다는 일념으로 떡이며 가지고 들어온 양주병을
안기면서 외박 부탁을 애걸복걸 하고 허락 맡으면 난리나던 기억이 있네요.
제 여친은 제가 상병 마지막 호봉때 (전역 9개월 남았을때) 회사에 취직했고
그 회사의 대리와 눈이 맞아서 이별통보를 했어요. 구형 프라이드를 몰던 그 대리...
(지금도 프라이드라는 자동차가 싫어)
그 기분은 참... 토요일이면 멍하니 연병장을 보고 앉아 페가 타는지 간을 태우는지
담배를 태우는지 깊숙한 곳에 존재하던 슬픔을 연기로 날리곤 했어요.
차라리 밖이 었다면 돌이켜보려 애도 써보고 집앞에서 기다려보기라도 하련만
군대에 메어있으니 뭔 뾰족한 수도 없고...
조용히 손에서 빠져나가는 물을 보는 기분. 잡힐것 같아도 잡히지 않는..
그러나 여전히 손은 젖어있는...
다만 여친이 만난 그 프라이드 남이 좋은 녀석이었으면 하고 마음을 달래볼 수 밖에...
자살 소동 벌어져요. 곰신이 변한 군화들. 그땐 연락할 길도 없고
연락할 수도 하소연 할 수도 없고 애걸복걸 할 수도 없었기에 더 탈영이 많았는지 몰라요.
지금처럼 군대에 전화도 있고 외박 외출도 많이 나온다면 지겨울 만도 하지만
그래도 홀로서기와 외로움을 20대초반 흔들리는 나이에 겪어야 할 군화들
다독거려 주시고 기다리시면서 유혹이 들어와도 군화가 믿음직하고
사람구실 할 놈이라면 배신 하지 마세요.
아직도 여전히 어리광 부리고
휴가 나오면 친구들밖에 모르고 술에 절어있고 게임에 몰두하고 다른 여자 만나고 다닌 다면
싹수가 노란 놈이니 다른년 줘버리세요. 바람피니 뭐니 질투마시구요.
가끔 발렌타인 데이라고 사탕이며 초코렛이며 선물보낸거 사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안들어요. 저걸 받는 군화놈 얼마나 뿌듯할까..
그래도 어리광 부리고 투정하는 군화 있다면 수면제나 돼지 발정제를 보내세요.
그래야 어른되죠.
아마 제 군시절에 (그땐 발렌타인데이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떤 곰신이 저정도의 선물을 박스로 보내왔다면 9시 뉴스에 나왔을 거에요.
"도가 지나친 젊은이들의 행각 어쩌고 저쩌고..."
아름 다운 사랑 하시구요. 서로의 믿음이 굳건 하다면 짜증나는 이별도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도 없을 거에요.
이상 아버지 같은 늙은이의 조언을 빙자한 회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