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께서 뇌경색 당뇨 고혈압 허리협착증등 병이 본격적으로 발병이 된것은 1년하고 7개월이 다되어간다. 그런데 나에게 돌아온 것은 상처뿐이다. 난 결혼식때 시댁(시어머니)에서 받은거라고는 내가 드렸던 예단비에서 30만원 받은게 전부다. 폐물이랑 옷가지등은 신랑이 번돈으로 다 받았다. 난 욕심이 많이 없는 편이라 친정엄마는 내게 "너도 네것좀 챙겨라." 하신다. 근데도 시댁에 내부모께 하듯 열심히 했다. 몸으로도 하고 금전적으로도 다 해드렸다. 형님은 다이아반지 3캐럿등 폐물 5셋트를 받았다. 그래도 그런게 중요한가? 부모는 다 똑같은 자식으로 생각하겠거니 했다. 내가 자식을 낳아 길러 보니 정말 안아픈 손가락은 없었다. 그러하니 부모님들도 다 그 마음이겠거니 했다. (※ 참고로 난 둘째 며느리다.) 손주들 보고 싶다고 오라면 가고, 집에 농사일 거들어달라고 전화오면 가고 아버님 병원비 보내라고 하면 보내드리고 시숙과 형님은 눈치껏 안한다. 자기들이 안해도 나중에 부모재산은 모두 자기꺼라 생각하며 안한다. 시숙은 술만 마시면 부모들 집이랑 땅 몽땅 팔거라고 한다. 시누는 출가외인이니까 자기는 부모들께 금전적인 것은 안한다고 오빠들이 알아서 하라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 발병이 된 그 시점에서 요양병원에 모시기 전까지 내가 한달에 한번씩 어머니댁에 가서 먹을 음식 해드리고 집청소 빨래 모두 다 해 드렸다. 한달에 시댁에 들어가는 돈이 25~30만원 정도 들어갔다. 내가 그렇게 물질적으로 몸으로 헌신적일때 시댁 식구들은 모두들 나몰라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시댁에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4~5시간이다. 시숙은 같은 지역에 살아서 버스타고 가면 30~40분 거리에 있다. 시숙은 남자이니 들어가도 살림 살아드리긴 어려운일이다. 자주 갔으면 하는 우리 마음과는 달리 형님은 시숙이 시댁에 들어가는 것도 못가게 했다고 한다. 동서는 직장다닌다는 이유로 일년에 두번 명절에만 시댁에 간다. 시누는 멀리 있다는 핑계로 일년에 한번 올까 말까다. 몸으로 하는 것도 내가 하고 돈으로 하는 것도 내가 했다. 우리도 별 여유가 있진 않다. 그래도 부모니까 열심히 했다. 언젠가는 휴가때 다 모였다. 그때 어머니께 용돈을 똑같이 해서 보내드리자고 우리 신랑과 내가 건의를 했다. 어머니께선 그때쯤 농사일도 하시고 양식장에 나가서 힘든일도 하시며 시아버지 대신해 가정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신랑과 내가 우리가 다 책임을 질수는 없는 생활비이니 형제들이 다 같이 다달이 똑같은 금액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나 어머니 통장을 확인하니 용돈을 붙이고 있는 집은 우리뿐이였다. 시누와 형님은 같이 말을 맞추기라도 한듯 시누는 3월달까지 형님은 4월달까지 붙이고 용돈을 끊었다. 근데 이번 6월달 뇌경색으로 또 넘어지신 어머니께서 더이상 몸을 못 움직여 우리가 사는 지역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그래도 좀 싼 곳으로 모신다는게 우리 집에서 한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 되는 곳에 모시는 통에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꼭 어머니께 들리고 내가 힘든것은 참기로 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날이 갈수록 피곤해지고 엉망이 되어가는 살림을 그냥둘수가 없어서 비싸더라도 더 가까이 모시는게 나을것 같아 한달여 전에 집근처 병원으로 모셨다. 근데 난 그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듯 매일 매일 가는 중이다. 첨엔 어머니께서 적응하는데 힘드실까봐 매일 갔는데...... 뇌경색이 또 와서 올리고 기운 없고 이내 잘못 될수도 있다는 의사말에 자식도리 다 하려고 매일가고 있다. 근데 시누가 어머니를 보러 왔다. 자기 엄만데 손하나 까딱 안한다. 시누가 와도 어머니 밥먹이고 얼굴 닦이는 일이며 목에 음식물 걸려 등 두드리는 일도 다 내 몫이다. 엄마 손 잡고 입으로만 하고 있는 시누~~ 근데 그 때 마침 의사가 회진을 돌다 우리방엘 왔다. 의사쌤 "할머니, 이사람 누구요?" 시어머니 "딸!!" 의사쌤 "할머니, 딸이 이뿌요? 며느리가 이뿌요?" 시어머니 "딸이 이뿌다" 난 바라지도 않았지만 정녕 이말을 듣고 나니 더 마음이 않좋다. 요양병원이라고 해도 요양보호사들 환자들한테 극진히 하지 않는다. 난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신랑회사일을 봐준다). 그래서 어머니께 퇴근후 2시간은 항상 어머니께 들러서 말벗도 되어드리고 어머니 수발을 해 왔다. 엉치뼈에 욕창이 생길까봐서 내가 가 있는 동안 만이라도 기저귀는 내가 직접 갈아드린다. 간호사 요양보호사는 자기들이 한다지만 그들이 해놓은 대로 그냥두면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큰 볼일을 보고 난 후에 기저귀를 갈아도 깔끔이 닦아 주질 않아 내가 기저귀를 갈때 물티슈로 어머니 구석구석을 닦으면 변도 묻어나오고 오줌 찌든 냄새가 코를 찔러 된다. 앉혀라 그러시면 앉혀드리고 물수건으로 발닦아라 그러시면 또 닦아드리고 얼굴과 손발은 수시로 닦아드렸다. 이또한 내가 해야할 자식의 도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근데도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마음이 였는지 듣고 나니 이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저녁이 다 되어 집에 있는 얘들 밥이 걱정이 되어 집에 간다고 하면 어머니는 "가지마라" "여기서 자라""가면 나 멀리 가버린다." "이젠 못 본다" 이런 말들로 날 잡고 놓아 주질 않는다. 그렇다고 새끼들 밥을 굶길수는 없지 않는가? 근데 딸은 갈 길이 멀다며 간다고 하니 그냥 가라고 한다. "조심해서 올라가라" 이런 말도 하신다. 매일 나를 보낼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아픈 시어머니 상대로 서운하다는것을 내 성격으론 표현도 못한다. 나만 아프고 말지 그냥 삼키는 성격이다. 그래도 속상한 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지 현명한 방법일까? 지금 기분으로는 병원에도 가기 싫은데...... 어머니의 남은 삶이 얼마 없을것 같아 그냥 참아 보려 하는데도 난 힘이든다. 지금이...... 1
딸이 더 이쁘다!!!@@
시어머니께서 뇌경색 당뇨 고혈압 허리협착증등 병이 본격적으로 발병이 된것은
1년하고 7개월이 다되어간다. 그런데 나에게 돌아온 것은 상처뿐이다.
난 결혼식때 시댁(시어머니)에서 받은거라고는 내가 드렸던 예단비에서 30만원 받은게 전부다.
폐물이랑 옷가지등은 신랑이 번돈으로 다 받았다. 난 욕심이 많이 없는 편이라 친정엄마는 내게
"너도 네것좀 챙겨라." 하신다.
근데도 시댁에 내부모께 하듯 열심히 했다. 몸으로도 하고 금전적으로도 다 해드렸다.
형님은 다이아반지 3캐럿등 폐물 5셋트를 받았다.
그래도 그런게 중요한가? 부모는 다 똑같은 자식으로 생각하겠거니 했다.
내가 자식을 낳아 길러 보니 정말 안아픈 손가락은 없었다. 그러하니 부모님들도 다 그 마음이겠거니 했다.
(※ 참고로 난 둘째 며느리다.)
손주들 보고 싶다고 오라면 가고, 집에 농사일 거들어달라고 전화오면 가고
아버님 병원비 보내라고 하면 보내드리고
시숙과 형님은 눈치껏 안한다.
자기들이 안해도 나중에 부모재산은 모두 자기꺼라 생각하며 안한다.
시숙은 술만 마시면 부모들 집이랑 땅 몽땅 팔거라고 한다.
시누는 출가외인이니까 자기는 부모들께 금전적인 것은 안한다고 오빠들이 알아서 하라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 발병이 된 그 시점에서 요양병원에 모시기 전까지
내가 한달에 한번씩 어머니댁에 가서 먹을 음식 해드리고 집청소 빨래 모두 다 해 드렸다.
한달에 시댁에 들어가는 돈이 25~30만원 정도 들어갔다.
내가 그렇게 물질적으로 몸으로 헌신적일때 시댁 식구들은 모두들 나몰라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시댁에 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4~5시간이다.
시숙은 같은 지역에 살아서 버스타고 가면 30~40분 거리에 있다.
시숙은 남자이니 들어가도 살림 살아드리긴 어려운일이다. 자주 갔으면 하는 우리 마음과는 달리
형님은 시숙이 시댁에 들어가는 것도 못가게 했다고 한다.
동서는 직장다닌다는 이유로 일년에 두번 명절에만 시댁에 간다.
시누는 멀리 있다는 핑계로 일년에 한번 올까 말까다.
몸으로 하는 것도 내가 하고 돈으로 하는 것도 내가 했다.
우리도 별 여유가 있진 않다. 그래도 부모니까 열심히 했다.
언젠가는 휴가때 다 모였다. 그때 어머니께 용돈을 똑같이 해서 보내드리자고 우리 신랑과 내가 건의를
했다. 어머니께선 그때쯤 농사일도 하시고 양식장에 나가서 힘든일도 하시며 시아버지 대신해 가정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신랑과 내가 우리가 다 책임을 질수는 없는 생활비이니 형제들이 다 같이 다달이
똑같은 금액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나 어머니 통장을 확인하니
용돈을 붙이고 있는 집은 우리뿐이였다.
시누와 형님은 같이 말을 맞추기라도 한듯 시누는 3월달까지 형님은 4월달까지 붙이고 용돈을 끊었다.
근데 이번 6월달 뇌경색으로 또 넘어지신 어머니께서 더이상 몸을 못 움직여
우리가 사는 지역에 있는 요양병원으로 모셨다.
그래도 좀 싼 곳으로 모신다는게 우리 집에서 한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 되는 곳에
모시는 통에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꼭 어머니께 들리고 내가 힘든것은 참기로 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날이 갈수록 피곤해지고 엉망이 되어가는 살림을 그냥둘수가 없어서
비싸더라도 더 가까이 모시는게 나을것 같아 한달여 전에 집근처 병원으로 모셨다.
근데 난 그 병원에 출근 도장을 찍듯 매일 매일 가는 중이다.
첨엔 어머니께서 적응하는데 힘드실까봐 매일 갔는데......
뇌경색이 또 와서 올리고 기운 없고 이내 잘못 될수도 있다는 의사말에 자식도리 다 하려고 매일가고 있다.
근데 시누가 어머니를 보러 왔다.
자기 엄만데 손하나 까딱 안한다.
시누가 와도 어머니 밥먹이고 얼굴 닦이는 일이며 목에 음식물 걸려 등 두드리는 일도 다 내 몫이다.
엄마 손 잡고 입으로만 하고 있는 시누~~
근데 그 때 마침 의사가 회진을 돌다 우리방엘 왔다.
의사쌤 "할머니, 이사람 누구요?"
시어머니 "딸!!"
의사쌤 "할머니, 딸이 이뿌요? 며느리가 이뿌요?"
시어머니 "딸이 이뿌다"
난 바라지도 않았지만 정녕 이말을 듣고 나니 더 마음이 않좋다.
요양병원이라고 해도 요양보호사들 환자들한테 극진히 하지 않는다.
난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신랑회사일을 봐준다).
그래서 어머니께 퇴근후 2시간은 항상 어머니께 들러서
말벗도 되어드리고 어머니 수발을 해 왔다.
엉치뼈에 욕창이 생길까봐서 내가 가 있는 동안 만이라도 기저귀는 내가 직접 갈아드린다.
간호사 요양보호사는 자기들이 한다지만 그들이 해놓은 대로 그냥두면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큰 볼일을 보고 난 후에 기저귀를 갈아도 깔끔이 닦아 주질 않아
내가 기저귀를 갈때 물티슈로 어머니 구석구석을 닦으면 변도 묻어나오고 오줌 찌든 냄새가
코를 찔러 된다.
앉혀라 그러시면 앉혀드리고
물수건으로 발닦아라 그러시면 또 닦아드리고
얼굴과 손발은 수시로 닦아드렸다.
이또한 내가 해야할 자식의 도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근데도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마음이 였는지 듣고 나니 이 가슴은 무너져 내린다.
저녁이 다 되어 집에 있는 얘들 밥이 걱정이 되어 집에 간다고 하면 어머니는
"가지마라" "여기서 자라""가면 나 멀리 가버린다." "이젠 못 본다" 이런 말들로
날 잡고 놓아 주질 않는다.
그렇다고 새끼들 밥을 굶길수는 없지 않는가?
근데 딸은 갈 길이 멀다며 간다고 하니 그냥 가라고 한다.
"조심해서 올라가라" 이런 말도 하신다.
매일 나를 보낼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아픈 시어머니 상대로 서운하다는것을 내 성격으론 표현도 못한다.
나만 아프고 말지 그냥 삼키는 성격이다. 그래도 속상한 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럴땐 어떻게 해야지 현명한 방법일까?
지금 기분으로는 병원에도 가기 싫은데......
어머니의 남은 삶이 얼마 없을것 같아 그냥 참아 보려 하는데도 난 힘이든다. 지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