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은 인구밀도의 도시생활에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다 하겠읍니다. 사람들을 보면, 교통체증, 주차난, 소음공해, 대기오염등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은 잘 참아내지만, 정작 참기 힘들어 하는 것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주는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아닌가 합니다. 식당에서 떠들고 돌아 다니는 아이를 제지하지 않는 젊은 부부들, 전철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을 날리는 사람들, 거북이 걸음의 고속도로 갓길을 달리는 차량들,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대개 그냥 보고만 있지요. 어떻게 떠드는 아이를 아이 기 죽을까봐 놔두는 젊은 부부를 볼 때마다 탓하겠읍니까. 내가 서있던 바로 앞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일어나기 무섭게 저쪽에서 몸을 날려 앉은 사람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따지는 순간 같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아마 그들은 사람들의 그런 '젊잖음'을 간파하고 그런 행동을 되풀이 하는지 모르겠읍니다. 갓길을 달리는 차들을 막으러 자신마저 갓길로 갈 수 있겠읍니까. 이 것 역시 그럴 수는 없는 것이지요. 다수의 사람이 사는 곳에는 서로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 행동 범위, 규범이 있읍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의 상당 부분은 법의 영역 바깥에 있읍니다. 식당에서 떠드는 아이를 놔두는 부모에 벌금을 부과하는 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사회는 얼마나 우스광스러운 사회인가요. 전철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 날리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어느 국회의원이 상정했다고 하면, 세계적인 우스개뉴스가 되겠지요. 최소한의 행동규범, 예의범절은 법이전에 사회의 구성원이 지켜야 할 '품위를 지키며 함께 살자'고 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일상생활에 한가지 더해진 스트레스가 특정종교인들의 지나친 전도, 신앙과시 성향이 아닌가 합니다. 식당 저쪽 자리에서 내용까지 다 들리게 울려오는 기도소리, 한글을 아는 대한민국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구호, 돈내고 보는 스포츠 경기에서 마저 관객에게 강요되는 '기도 세레모니' 언제부터인가 한 종교가 우리사회의 중요한 규범을 무시한 채, 전도라는 명목으로, 때로는 신앙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강요되고 있읍니다. 예의바른 젊잖은 사람이 어떻게 기도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크다고 그 자리에 찾아가 조용히 하라고 말하겠읍니까.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행동이 신앙의 자유로 용인될 수는 없읍니다. 자신들과 소속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공공장소에서 나름대로의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역사를, 한꺼번에 지옥저주하는 구호를 외쳐대는 것이 자유라고 한다면 그 자유는 연쇄살인자가 말하는 '연쇄살인의 자유'와 같은 자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돈내고보는 스포츠는 모두 프로(professional)스포츠입니다. 경기장입장료를 사거나, TV광고와 함께 집에서 축구중계를 보는 관객이나 돈을 내는 그 스포츠의 팬이며, 그 스포츠가 회사의 서비스제품이라면, 스포츠 팬들은 그 사업의 고객이며, 선수들은 그 회사의 간판직원인 직업인이라고 할 수 있겠읍니다. 그들 선수들의 수입- 때로는 그 고객들 수입의 수십배수백배 수준의-는 궁극적으로 이들 고객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고객들이 즐기는 서비스가 특정종교의 전도나 신앙과시의 장으로 이용된다는 것이 과연 사회규범의 차원에서 허용가능한 일일까요? 선수개인의 신앙심의 표현이라구요? 그 프로선수가 그 자리에 서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스포츠 고객들이 있기 때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지요. 어느 호텔의 도어맨이 오는 방문객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든가, 할렐루야라든가 종교적 구호로 고객을 맞이 한다면 당장 그 다음날로 해고되지 않겠읍니까. 마찬가지 이유로 프로스포츠선수의 종교적 세레모니도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장소와 때가 매우 부적절하다는 것이지요. 호텔 도어맨이나 축구선수나 자신의 신앙표현은 탈의실에서 끝나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세레머니 말도 많지만 지금까지 같은 교인들 중에 그런 것은 잘 못 된 것이다 나서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공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는,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는, 그런 위험한 행위를 제지하기는 커녕, 은근히 그런 행위에 내심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 그 특정종교의 교인들이 보이는 일반적 자세가 아닌가 합니다. 전철에 서 있는 사람들 중 앉고 싶은 마음 없는 사람 몇이나 되겠읍니까. 그렇다고 자리 하나 비었을 때 주위 모든 사람들이 몸을 날린다면 어떻게 되겠읍니까. 꼼짝도 않는 고속도로 갓길 탐내어보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읍니까. 그렇다고 다 갓길로 끼어들면 어떻게 될까요. 한번 묻겠읍니다. 그 특정종교,... 인구비중에 비해 유난히 국민들에게 많이 노출되고, 전도되고, 어느 다른 종교인보다 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한 그 종교가 지난 20년간 교세가 확장되었읍니까, 아니면 줄어들었읍니까. 그 종교가 앞세우는 신의 아들이라는 그 훌륭하신 분이 일반인들에게 더 가까워 졌나요, 더 멀어졌나요. 만약 더 멀어졌다면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종교인, 신앙인이라면 일반인의 수준보다는 한 차원 더 높아야 하지 않겠읍니까? 진정한 전도는 내세움과 자랑보다는 희생과 겸손에서 더 힘을 받지 않겠읍니까? 자신은 지금까지 위에서 예를 든 것 같은, 예수가 일반인들에게서 더 멀어지게 만든 행위들에 내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계셨나요? '개독'이란 말이 듣기 싫으신가요? '개독'이란 말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말, 가만 생각해 보면 이 말보다 더 오만한 말이 있을까요? 본래 교리가 그런 건가요? 지난 20년간 예수가 일반인들의 마음에서 더 멀어진 이유, 그 근본 원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 21
안 지켜도 그만인 신앙의 에티켓, 그리고 그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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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인구밀도의 도시생활에서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다 하겠읍니다.
사람들을 보면, 교통체증, 주차난, 소음공해, 대기오염등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은
잘 참아내지만, 정작 참기 힘들어 하는 것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주는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아닌가 합니다.
식당에서 떠들고 돌아 다니는 아이를 제지하지 않는 젊은 부부들,
전철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을 날리는 사람들,
거북이 걸음의 고속도로 갓길을 달리는 차량들,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것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대개 그냥 보고만 있지요.
어떻게 떠드는 아이를 아이 기 죽을까봐 놔두는 젊은 부부를 볼 때마다 탓하겠읍니까.
내가 서있던 바로 앞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일어나기 무섭게 저쪽에서 몸을 날려
앉은 사람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따지는 순간 같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아마 그들은 사람들의 그런 '젊잖음'을 간파하고 그런 행동을 되풀이 하는지 모르겠읍니다.
갓길을 달리는 차들을 막으러 자신마저 갓길로 갈 수 있겠읍니까.
이 것 역시 그럴 수는 없는 것이지요.
다수의 사람이 사는 곳에는 서로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 행동 범위, 규범이 있읍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의 상당 부분은 법의 영역 바깥에 있읍니다.
식당에서 떠드는 아이를 놔두는 부모에 벌금을 부과하는 법이 제정되어야 하는 사회는
얼마나 우스광스러운 사회인가요.
전철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몸 날리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어느 국회의원이 상정했다고 하면, 세계적인 우스개뉴스가 되겠지요.
최소한의 행동규범, 예의범절은 법이전에 사회의 구성원이 지켜야 할
'품위를 지키며 함께 살자'고 하는 최소한의 약속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일상생활에 한가지 더해진 스트레스가 특정종교인들의
지나친 전도, 신앙과시 성향이 아닌가 합니다.
식당 저쪽 자리에서 내용까지 다 들리게 울려오는 기도소리,
한글을 아는 대한민국사람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구호,
돈내고 보는 스포츠 경기에서 마저 관객에게 강요되는 '기도 세레모니'
언제부터인가 한 종교가 우리사회의 중요한 규범을 무시한 채,
전도라는 명목으로, 때로는 신앙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강요되고 있읍니다.
예의바른 젊잖은 사람이 어떻게 기도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크다고 그 자리에
찾아가 조용히 하라고 말하겠읍니까.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런 행동이 신앙의 자유로 용인될 수는 없읍니다.
자신들과 소속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공공장소에서 나름대로의 신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역사를, 한꺼번에 지옥저주하는 구호를 외쳐대는 것이 자유라고 한다면
그 자유는 연쇄살인자가 말하는 '연쇄살인의 자유'와 같은 자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돈내고보는 스포츠는 모두 프로(professional)스포츠입니다.
경기장입장료를 사거나, TV광고와 함께 집에서 축구중계를 보는 관객이나 돈을 내는
그 스포츠의 팬이며, 그 스포츠가 회사의 서비스제품이라면, 스포츠 팬들은 그 사업의 고객이며,
선수들은 그 회사의 간판직원인 직업인이라고 할 수 있겠읍니다. 그들 선수들의 수입-
때로는 그 고객들 수입의 수십배수백배 수준의-는 궁극적으로 이들 고객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고객들이 즐기는 서비스가 특정종교의 전도나 신앙과시의 장으로
이용된다는 것이 과연 사회규범의 차원에서 허용가능한 일일까요?
선수개인의 신앙심의 표현이라구요? 그 프로선수가 그 자리에 서 있는 이유가 바로
그 스포츠 고객들이 있기 때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것이지요.
어느 호텔의 도어맨이 오는 방문객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든가, 할렐루야라든가
종교적 구호로 고객을 맞이 한다면 당장 그 다음날로 해고되지 않겠읍니까.
마찬가지 이유로 프로스포츠선수의 종교적 세레모니도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장소와 때가 매우 부적절하다는 것이지요.
호텔 도어맨이나 축구선수나 자신의 신앙표현은 탈의실에서 끝나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 세레머니 말도 많지만 지금까지 같은 교인들 중에 그런 것은 잘 못 된 것이다
나서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공적인 장소에서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는,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는, 그런 위험한 행위를 제지하기는 커녕, 은근히 그런 행위에
내심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 그 특정종교의 교인들이 보이는 일반적 자세가 아닌가 합니다.
전철에 서 있는 사람들 중 앉고 싶은 마음 없는 사람 몇이나 되겠읍니까.
그렇다고 자리 하나 비었을 때 주위 모든 사람들이 몸을 날린다면 어떻게 되겠읍니까.
꼼짝도 않는 고속도로 갓길 탐내어보지 않은 사람 누가 있겠읍니까.
그렇다고 다 갓길로 끼어들면 어떻게 될까요.
한번 묻겠읍니다. 그 특정종교,... 인구비중에 비해 유난히 국민들에게 많이 노출되고,
전도되고, 어느 다른 종교인보다 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한 그 종교가 지난 20년간
교세가 확장되었읍니까, 아니면 줄어들었읍니까. 그 종교가 앞세우는 신의 아들이라는
그 훌륭하신 분이 일반인들에게 더 가까워 졌나요, 더 멀어졌나요.
만약 더 멀어졌다면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종교인, 신앙인이라면 일반인의 수준보다는 한 차원 더 높아야 하지 않겠읍니까?
진정한 전도는 내세움과 자랑보다는 희생과 겸손에서 더 힘을 받지 않겠읍니까?
자신은 지금까지 위에서 예를 든 것 같은, 예수가 일반인들에게서 더 멀어지게 만든
행위들에 내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계셨나요?
'개독'이란 말이 듣기 싫으신가요?
'개독'이란 말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자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른다는 말, 가만 생각해 보면 이 말보다 더 오만한 말이 있을까요?
본래 교리가 그런 건가요?
지난 20년간 예수가 일반인들의 마음에서 더 멀어진 이유, 그 근본 원인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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