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1]

오택만201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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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Bereavement의 한 장면을 보면 살인자가 자신이 유괴한 소년의 몸을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주고 옷을 입혀주면서 이런 대사를 합니다.

“구원은 용서로부터 시작되지. 용서”

개인적으로 American Movie나 Drama들을 접하면서 느낀 점은 범죄와 악에 대하여서 처벌과 보응을 늘 갖춘 스토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 참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므로 절제가 중요하지만, 이렇게 부족한 저는 그래서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나이를 먹게 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참 고독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걱정이나 근심거리가 생겨도, 마땅히 의뢰할 곳이 없습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의지하고 조언과 도움 얻기를 바라지, 조언 해주려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지요. 상담 요청을 할 만한 대상이 없는 위치가 되면 자신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도 홀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대하여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연약함을 감싸 안고 승리를 주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5:14,15

Hillsong의 Ultimate Worship이라는 앨범의 Still이라는 찬양의 가사 중엔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When the oceans rise and thunders roar

I will soar with you above the storm

Father you are King over the flood

I will be still and know you are God

우리의 감정을 흔드는 것은 실제로 굉장하고 큰 파도와 같고 천둥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내면의 모든 내적 지구력을 붕괴시키고 살아있는 소망까지 없게 만드는 그런 큰 어려움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보다 위에서 왕이십니다. 그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폭풍우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자신과 주위 사람과 환경을 바라보면 희망이 없습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연약한 인간에겐 선을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스스로에겐 한치의 구원의 소망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 너머로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일어설 때에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서 그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말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실제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순간들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분명코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에 대하여서 낙심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복수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복수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서 12:19

예수님은 원한에 관한 한 어중간한 태도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마태복음 5:38-42.

예수님은 우리가 다시 이용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꺼이 감수하고, 심지어 원수를 보살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로마서 12:20,21.

예수님은 복수하려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요한1서 3장 14,15,16절 말씀.

어느 목사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방법에 관하여서 설명하기를, 그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좋은 인도하심에 대하여서 그 스스로가 거절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몇 번이고 그의 결정대로 가도록 두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의 약속이 이행되지 못하게 막을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불순종인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베드로후서 2:20-22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분노의 응어리를 풀지 못할 때에 영혼에 고통을 가하는 악한 영들이 우리를 괴롭게 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과 고통스러운 마음이 관절염이나 암 같은 질병들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정신병도 용서하지 못해서 맺힌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만일 사탄이 지금까지 당신을 자기 의지대로 무너뜨릴 수 있었다면 훨씬 이전에 심각하게 무너져 버렸을 것입니다. 지금 오늘의 모습의 당신의 존재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