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의 여왕’ 연수영 」4고구려 수군의 승리 ⑵

개마기사단2011.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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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공(火攻)으로 무너진 요동성(遼東城)



태종의 친정군이 요택(遼澤)를 건너기 시작한 것은 5월부터였다. 태종이 직접 지휘하는 당군 병사들은 2백리에 걸친 요하의 늪지대에 흙을 퍼붓고 초목을 베어 다리를 놓고 수렁을 메우며 요하로 나갔다. 요택의 늪을 지나가는 것은 역시 생각만큼 힘든 일이었다. 그들이 열흘 만에 요하 서편에 도착한 것은 645년 5월 10일이었다.



그때 건안성전투에서 패배한 장검의 부대가 뗏목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장검은 태종에게 패전 사실을 알리고 사죄하였다. 그러나 미리 뗏목이 준비된 것을 확인한 태종은 기쁜 나머지 건안성전투에서의 과오를 묻어 주었다. 간신히 어물쩍 위기를 모면한 장검은 칭병하고 낙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세민은 장검을 돌려보내고 다시 친정군을 몰아 요하를 무사히 건넜다.



요하를 건너 강 동편에 도착한 태종은 뗏목을 불태우라고 명령했다. 이미 요택에 부설한 부교(浮橋)와 장비도 모두 소각한 후였다. 이것은 고구려를 정복하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군사들에게 표현하려던 것이었지만, 자칭 병법의 대가이며 전략의 천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실책이었다.



태종의 친정군은 영접 나온 요동도행군 이세적의 호위를 받으며 요동성 앞으로 나아갔다. 이세적은 그간의 성과를 낱낱이 보고했다. 태종은 장군예와 장검의 실수로 인해 4만이나 되는 정병을 잃었다는 사실을 상세히 보고받았다. 대로한 태종은 장군예를 군법에 따라 처형해 버렸다. 장검도 죄를 물어야 하는데 그는 이미 낙양으로 출발한 다음이어서 태종도 당장 어찌할 수가 없었다.



태종이 30만 친정군을 이끌고 이세적의 군대와 합류하자 당군의 요동성 공격은 다시 치열해졌다. 요동성 앞에 포차를 설치한 당군은 이세적의 지시에 따라 삼백근이나 되는 바위를 성벽으로 날리기 시작했다. 한두 번 맞을 때는 견디어 내더니 계속된 포차 공격에 요동성 이곳저곳이 무너져 내렸다. 성벽이 무너지면 고구려군은 재빨리 나서서 목책을 덧대곤 했다.



바위를 수없이 쏘아대던 당군은 바위가 떨어졌는지 포차공격을 멈추고 성벽으로 진격해 왔다. 성벽 위에 있던 고구려군은 쇠뇌로 맞섰다. 일차 전투에서 당군은 적지 않은 희생을 내고 물러갔다. 당군이 물러간 직후 고구려군은 깨진 성벽을 다시 보수했다.



다음날 아침, 태종의 친정군이 합류해서 세(勢)가 불어난 당군은 아침 식전부터 바위를 날라 포차 주위에 산더미 같이 쌓아 놓았다. 요동도행군대총관 이세적이 호령했다.



“지금부터 계속 바위를 날려라. 여기 있는 바위를 전부 쏜 다음 운제를 갖고 성벽으로 돌진한다. 이제 수나라도 함락시키지 못했던 저 요동성은 함락될 것이다.”



당군들은 바위를 날리기 시작했다. 성안의 고구려 군사들은 쉴새없이 날아오는 바위 덩어리 때문에 운신할 수도 없었다. 이때 시작된 포차공격은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요동성은 석성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포차의 공격에 약했다. 한두 번은 끄떡없다가도 계속된 포차 공격에 의해 성의 이곳저곳이 많이 허물어졌다.



드디어 이세적의 총공격령이 떨어졌다. 요동성을 수십 겹 포위하고 있던 당군들은 용감하였다. 운제를 앞세우고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돌격해 갔다. 드디어 요동성 성벽 위에서 쇠뇌와 불화살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진격하던 당군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갔다. 가까스로 성벽까지 진출하면 위에서는 끓는 물과 바위덩어리가 내려왔다. 돌격과 후퇴를 여러 번 거듭한 끝에 마침내 당군은 물러갔다. 그러면 성안에 있는 고구려 군사들이 나와 깨진 성벽을 다시 보수했다. 당군도 피해가 컸지만 고구려군 사상자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계속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날짜만 흘러갔다.



태종이 이세적을 비롯한 장수들을 불러 자신의 계략을 이야기한다.



“우리 군사들이 용감하게 싸우고 있지만 요동성 함락은 쉽지가 않다. 적군이 죽기살기로 저항하고 있어서 아군의 피해가 늘어간다.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요동성을 쳐야 한다. 짐이 기상을 보건대 내일 큰바람이 불 것 같다. 그러니 지금 불화살을 준비했다가 내일 성안으로 불화살을 쏘아 올려라. 요동성 안에는 나무로 만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고 한다. 우리가 화공을 쓴다면 고구려군은 불을 잡으려고 둘로 나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가 시석을 무릅쓰고 성벽으로 기어 올라가면 함락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다.”



태종의 이야기는 화공(火攻)을 써서 성안에 있는 민가를 태우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애꿎은 민간인들만 죽게 된다. 이것은 병법에서도 절대 피하는 간악한 계책이었던 것이다. 군자가 취할 도리가 못 되었다. 그러나 이때 이세적은 피해를 입게 되는 백성들에 관해 무어라고 진언할 수가 없었다. 태종은 승리에 목이 마른 잔혹한 늑대였을 뿐이었다. 태종의 처소를 나온 이세적은 당장 부하 장수들을 불러 불화살을 준비하도록 일렀다.





다음날 아침, 이세적은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불화살을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군사들을 향해 외쳤다.



“무조건 성 가까이 진격해서 불화살을 성안으로 올려 쏘아라!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이 불어 화공에 안성맞춤이다. 오늘 중으로 저 요동성은 떨어진다. 자, 나아가자!”



이세적이 선두에서 말을 달리자 이에 용기를 업은 당병들은 시석을 무릅쓰고 성 가까이 나아가 성안으로 불화살을 쏘아 올렸다.



수천 개의 불화살이 성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요동성에서는 난리가 났다. 불화살은 성안 민가 이곳저곳에 처박히기 시작했다. 때마침 불어 닥친 동남풍으로 인해 불길은 겉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갔다. 수많이 민간인들이 집에서 뛰어나왔다. 우왕좌왕 불길을 잡으려 하였지만 불길은 바람을 타고 계속 번져 나갔다. 성주 고지순도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쩔쩔맸다. 화공은 꿈에도 생각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요동성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고 드디어 당군은 모래주머니로 해자를 메우고 운제를 설치해서 드디어 성을 넘었다. 치열한 백병전이 있었지만 결국 요동성은 양군간에 숱한 희생을 내고 함락되고 말았다. 이때가 645년 5월 17일이었다.



당나라 군사들이 요동성에 점령하자 태종은 성청(城廳) 안으로 들어가 포로가 되어 끌려온 요동성주 고지순을 심문하였다. 밧줄에 꽁꽁 묶인 채 당나라 황제 앞에서 강제로 무릎을 꿇린 고지순은 살기가 가득한 눈빛으로 태종을 노려보았다.



“네가 군사들을 거느리고 성을 지키는 모습을 살펴보니 참으로 지용을 겸비한 양장(良將)이라고 생각했다. 짐은 인재를 사랑한다. 대당제국에는 그대와 같은 장수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투항하여 짐의 장수가 된다면 많은 식읍(食邑)을 내리고 봉작(封爵)으로 우대하겠다. 어떤가?”



태종이 고지순을 회유했으나 고지순은 가래침을 뱉으며 태종을 꾸짖는다.



“하늘에 두개의 해가 떠 있지 않듯이 신하에게도 두 사직(社稷)이 있을 수 없다. 장수가 전투에서 패배하면 오직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나를 욕보이지 말고 어서 목을 베어라!”



태종은 숨을 깊게 내뱉으며 탄식한다.



“허어, 참으로 아깝도다. 군주가 뛰어난 장수를 얻기는 하늘에 뜬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나 저렇듯 짐의 장수가 되는 것을 거부하니 어쩔 도리가 없구나. 저 자를 참수(斬首)하되, 예를 갖추어 장사지내도록 하라.”



이렇게 고지순은 고구려 장수로서 기개를 지켜 의연한 모습으로 순국하였다. 태종은 요동성을 함락시키자 앞서 개모성을 빼앗아 개주(蓋州)로 개칭했듯이 요동성은 요주(遼州)라고 개명했다. 지명부터 바꾸어 당나라의 군현으로 삼은 것은 이번 침공이 단순한 정벌이 아니라 고구려 전 국토를 당나라 영토로 편입하여는 정복전이라는 사실을, 그 마각을 여지없이 드러낸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당군의 창 끝이 향한 곳은 백암성(白巖城)이었다. 당시 백암성에는 연개소문의 지시에 따라 오골성주(烏骨城主) 대사자(大使者) 추정국(鄒廷鞠)의 부하 장수인 고돌발(高突勃)이 군사 1만명을 거느리고 지원을 위해 와 있었다. 백암성주인 손대음(孫代音)은 친당파 기회주의자였으나 연개소문이 혁명을 일으켜 친당파 관료와 장수 다소를 숙청했을 때에 연정토와 선도해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친 덕분에 그때까지도 성주 자리를 용케도 지키고 있었다.



당군이 백암성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자 지레 겁을 먹은 손대음은 고돌발에게 물었다.



“장군, 지금 당주 이세민이 거느린 군사는 30만명이 훨씬 넘고 막강함을 자랑하는 요동성도 이들에 의해 잿더미가 됐다고 하니 우리가 이 조그만 성에서 어떻게 당군을 대적할 수 있겠소?”



고돌발이 칼자루에 손을 대며 눈알을 부라렸다.



“아니, 그렇다면 지금 성주께서는 적에게 항복이라도 하자 이 말씀이시오?”



고돌발이 워낙 험상궂게 나오자 손대음은 움찔했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무슨 방책이라도 있나 해서 장군의 의견을 듣자 하였소.”



그제야 고돌발의 양미간이 다소 풀어졌다.



“이곳 백암성은 평지성인 요동성과는 전혀 다릅니다. 백암성은 험(險)한 산성입니다. 지대가 워낙 높은 산위에 있어 적들은 포차조차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군사 일 천명만 있어도 충분히 지킬 수 있습니다. 적이 백만 대군으로 온다 한들 백암성은 끄떡도 없게 되어 있습니다.”



손대음이 말을 이었다.



“글쎄, 나도 그걸 알고는 있으나 적들의 형세가 워낙 강해서 탈이오.”



고돌발이 다시 화를 버럭 냈다.



“백암성에는 충분한 식량과 화살이 있으며 성에 있는 모든 군민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소. 그런데 무슨 걱정이 그리 대단하오?”



이에 손대음도 할 말을 잊고 가만히 자리를 떴다.





요동성에서 사후 잔무처리를 하고 나서 태종도 선봉부대의 뒤를 따라 백암성에 도착해 보니 기가 막혔다. 성은 산을 등지고 물가에 바짝 닿아 쌓여졌는데 사면이 험하고 가팔랐다. 동남으로는 태자하와 맞물려 있고 위는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었다. 성은 둘레가 약 오리 정도 되어 보이는 성이었다. 침공을 하려면 서남쪽밖에는 없었다. 병서에서 말하는 천하의 요새라 함은 백암성을 두고 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태종은 고심 끝에 이세적과 군대를 나누어 서남쪽을 공격했다. 성벽 위에서는 고돌발 군의 지휘 아래 군사들이 쇠뇌를 당기고 바위를 굴렸다. 삽시간에 당군들은 고구려군의 쇠뇌에 맞고 바위에 깔려 무수히 죽어 나갔다. 하는 수 없이 태종은 북을 울려 군사를 물렸다.



영채에 돌아온 태종은 이세적과 상의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城)과 접하는 면이 적어 공격하기는 어려우나 성을 방어하기는 쉬웠다. 백만 대군이 있다 한들 별무소용이었다.





한참을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는데, 백암성주 손대음이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왔다고 했다. 태종은 밀사를 당장 불러보았다. 밀사의 말을 들어 보니 항복을 하면 살려 주겠냐는 내용이었다. 태종은 희색이 만연했다. 터지려는 웃음을 감추고 간신히 이야기했다.



“짐이 이 따위 백암성 정도 무너뜨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러나 싸우게 되면 피차 희생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백암성주가 항복을 하겠다니, 성주의 지위도 유지시켜 주고 백성들도 해치지 않겠다.”



이에 백암성에서 나온 사자는 공손히 읍하고 다시 성으로 돌아갔다.



손대음은 밀사를 통해 태종의 대답을 듣고 기뻤다.



손대음은 즉시 수하 장수들을 불러 놓고 항복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전부 다 반대를 했다. 특히 고돌발은 칼을 들어 손대음을 찔러 죽이려고까지 했다.



손대음은 즉시 수하 장수들을 불러 놓고 항복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전부 다 반대를 했다. 특히 고돌발은 칼을 들어 손대음을 찔러 죽이려고까지 했다.



손대음은 겁이 더럭 났다. 당나라에 항복하기도 전에 장수들의 칼에 맞아 죽을 것 같았다. 농담이었다고 얼버무리고는 회의를 파했지만 손대음은 잠이 오지 않았다.



이튿날, 태종은 이세적과 같이 성문으로 나아가 항복을 받으려 했다. 이때 성 위에 있는 고돌발이 외친다.



“저놈이 당주 이세민이다. 저놈을 항해 화살을 쏘아라.”



이에 수백의 화살이 당군에게 날아오니 이세민은 황급히 뒤로 돌아가서 군사들 틈에 몸을 숨겼다. 화살 공격을 피하고 진영에 돌아온 태종은 생각해 보니 손대음이 괘씸했다. 항복하겠다는 놈이 화살을 날리다니. 태종은 당장 총진격의 명을 내렸다. 수십만의 당병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성벽 위에서는 바위돌과 쇠뇌가 빗발치듯 쏟아졌다. 당군은 계속 죽어 나갔다. 그러나 뒤에서 태종의 고함소리는 계속 울려왔다.



“무조건 올라가서 성벽을 타고 넘어라. 고구려 군사는 몇 천 명도 안 된다.”



성 밑에서도 당군이 성안으로 화살을 쏘아댔다. 성벽 위에 있던 고구려 군사들도 화살에 맞아 떨어져 죽는 자가 생겼다. 치열한 싸움이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전투는 저녁때까지 계속되었다. 태종은 날이 어두워지자 군사를 물리고 영채로 돌아왔다.



태종이 손대음이란 자를 생각하며 부득부득 이를 갈고 있는데, 성에서 또 사람이 왔다고 했다. 태종은 밀사를 불러보았다. 내용인즉 고돌발이 투항에 반대하므로 손대음도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기(唐旗)를 몇 개만 빌려주면 내일 전투할 때 성 위에 꽂을 테니 성문이 열리면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이에 태종은 분노를 식히고 당기를 주었다. 과연 이튿날 전투 시작 채 몇 시간도 안 되어서 성 위에 당나라 군기가 나부끼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문을 지키던 고구려 위병들이 성이 함락된 줄 알고 창을 놓았다. 이때 손대음의 심복이 성문을 활짝 열고 당군을 맞아들였다. 수만의 당군들은 함성을 지르면 뛰어올라가 성문을 통과했다.



북쪽 성벽 위에서 군사를 지휘하고 있던 고돌발은 성벽 위로 백기와 당나라의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보자 비겁한 손대음이 투항한 것을 알고 분노를 곱씹었다. 그는 어제 당군에게서 빼앗은 운제를 타고 성벽 밑으로 내려갔다. 태종 이세민만 죽이면 이 전쟁이 끝날 것이란 생각에 고돌발은 당군 진영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다가 철륵(鐵勒) 출신의 당나라 장수 계필하력을 만났다. 고돌발은 계필하력과 30여합을 싸운 끝에 그의 옆구리에 부상을 입혔으나 수많은 당병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고돌발을 제압하고 사로잡았다.



고돌발은 태종 앞으로 끌려 나왔다. 태종은 고돌발이 계필하력에게 부상을 입힌 적장이란 사실을 알자 계필하력에게 고돌발을 참살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오랑캐라고 깔보던 철륵 출신이지만 제법 사내다운 계필하력이 이렇게 말했다.



“폐하! 고돌발은 자기 임금을 위해서 목숨을 걸고 소장을 찌른 것이니 그 또한 충성스럽고 장한 용사가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소장과 그는 애당초 모르는 사이였으니 원수진 일도 없사옵니다.”



그 말을 들은 태종은 호의를 무시당해 괘씸한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을 고쳐먹었다. 속 좁은 황제보다는 통 큰 황제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태종은 계필하력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고돌발은 죽이지 말고 군문에 가두어두도록 했다. 끈질기게 기회를 엿보던 고돌발은 며칠 뒤에 포로들을 당나라로 후송할 때 탈출에 성공하여 고구려군에 복귀했다.



개모성과 요동성에 이어 백암성까지 점령한 당군은 말머리를 남쪽으로 돌려 안시성으로 향했다. 요동성과 마찬가지로 안시성도 배후에 그대로 두고는 안심하고 천산산맥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제 안시성만 점령하면 천산산맥을 타넘어 압록수까지 일사천리로 진격할 작정이었다.



그렇지만 당군이 백암성을 점령하고 승승장구한 여세를 타서 곧장 안시성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6월 1일에 백암성을 점령하고, 다시 요동성으로 돌아갔다가 6월 11일에 요동성을 출발하여 6월 20일에야 안시성 외곽에 이르렀던 것이다.



당군이 불과 이틀이면 행군할 수 있는 거기를 열흘이나 걸린 까닭은 고구려군의 강력한 반격에 부닥쳤기 때문이었다. 남소성주 걸곤우와 걸중상 부자가 말갈족 출신이 대부분인 날랜 경갑기병대를 거느리고 유격전을 펼치고, 요동성과 개모성에서 살아남은 패잔병들도 백암성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고돌발의 군기 아래 뭉쳐 요동성을 탈환하려고 집요한 공격을 감행했던 것이다.



▶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