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얘는 참....내가 뭘...이런 걸..아이 참....' 만 반복을 하셨습니다. ^^
저도 댓글 다시분 들 한 분 말씀처럼..
'현명한 어머니, 현명한 시어머니 되기 강연다니시는 것 어떠세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그런 거창한 것 할줄은 모르고..
다만 세 자녀를 키워낸 어머니로써,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나 해주시겠다 하셔서
받아적었습니다.
첫번째/ 돈 무서운 줄 알고. 남의 돈은 더 무서운 줄 알도록 가르쳐야 한다..
의좋은 형제도, 사랑이 넘치는 부모자식간에도 돈 문제가 얽히면 구멍이 나서 물이 새기 마련이고
그 구멍이 점점 커져서 둑이 무너지고, 댐이 무너진다 하셨습니다.
부모돈, 형제돈, 자식돈은 가장 무서워하고, 어려워 할 줄 알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당부하셨죠.
이제 열댓살이 된 시동생이..
용돈을 벌기 위해 세차를 하고, 집안, 욕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걷습니다.
여름방학때 시동생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놀러갔을 때.
시동생은 자기몫의 자유이용권값과 식비를 내밀더군요.
그동안 자신이 모은 용돈이었습니다.
신랑은 웃으면서 자유이용권금액만큼의 돈을 챙겼고, 식비는 네가 오늘 늦잠도 안자고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커피도 타왔으니 특별히 형이 밥은 쏜다! 라며 돌려주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황당했죠. 그 어린아이가 무슨 돈이 있다고...그래서 신랑을 나무랐습니다.
그러자 시동생이 막아서더군요.
저도 집안일 해서 돈 벌어요 형수님!!! 하고요.ㅎㅎㅎㅎㅎ
그 이후로 저도 도련님이 우리 층도 청소기를 돌려줬을 떄, 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어줬을 떄
상품권을 줍니다. (행버거, 아이스크림, 초코바 상품권 이런식으로요.)
두번째/가족간의 특별한 권리.
가족간에는 금전적인 문제를 떠난 특별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들에게, 형이 동생에게, 자식이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길게 설명하셨지만, 저는 제 신랑이 저에게 했던 한마디 말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고, 임신중독이 오고...건강이 많이 안좋았었어요.
원래도 건강하지 못하고 수시로 아팠던 탓에 박사과정중에 있던 학업도 손을 놓아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때 제가 신랑에게 말했었어요.
"나 친정가서 아기 낳고, 거기서 어느정도 몸 추스리고 싶어...아기 낳으면 내 몸도 지금보다 더
약해질지 모르고, 그러면 당신은 직장생활하면서 나 돕고, 아기 돌보는 것 돕고 힘들지 않겠어?"
그랬더니 신랑이 그러더군요.
"아버지가 자식 사랑하고, 돌보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야. 엄마인 당신은 자연스럽게 아가들 양육하면서 누리는 권리를 아빠인 나한테서 뻇으려고 하면 어떡해...나도 함께하게해줘,,"
알고보니 이런 개념은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거였습니다. 자녀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입히고, 함께 놀아주는 것은 부모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부모만이 누리는 특별한 권리이다..............
제 친정아버지는 한국 학계에서 이름 석자를 대면 알 법한 인사이자, 고위공직자이십니다. 고위공직자들은 재정감사가 꾸준히 이루어지는 관계로 일 평생 살얼음을 딛으셨고. 조금만 움직임을 보여도 기사가 뜨니...제 친정아버지도 몇날, 몇 달을 못 움직이시고 딸내미 얼굴도 못 보신 나날이 많았습니다. 지금에서야 약주 한잔 하시고 한탄을 하십니다. 자식을 사랑한다고. 보고싶었다고. 하지만 저는 일생동안 여름휴가를 한번도 못가봤습니다. 아버지 품에서 잠든 적이 없습니다. 그게 저의 슬픔이자 친정부모님의 한이기도 합니다....
제 친정부모님을 바라보며, 존경심을 가졌었지만, 색다른 아버지상인 시아버님을 보면서 가슴 벅찬날도 많습니다. 어느 아버지가 더 훌륭하신 분이라는 말을 못하겠지만... 다만, 내 아이들의 아버지는 시아버지 같은 사람이었으면..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입니다.
셋째/ 한없이 자애로운 동시에 한없이 엄격한 어머니가 되라.
시어머니께서는 굉장히 엄격하셨다고 해요. 글에서 썻지만, 처음 신랑에게 독립된 주방을 주며 알아서 먹고 살아라! 했을 때.. 처음 몇일은 굶었고, 처음 몇달은 햄버거, 피자 등 패스트 푸드를 먹었고.. 몇년은 냉동식품을 데워 먹었다 합니다. 그때 어머님 생각은 하나. 아직 젊으니 저렇게 먹어도 당장 안 죽어!!! 였습니다.; 아들이 저녁은 햄버거로 대충 때웠다 해도. 당당하게 아랫층에서 저녁을 차려드셨다고 하네요. 식비를 계산해줬으니 알아서 먹어라...이거죠.ㅎㅎ 빨래도 처음에 분홍색으로 물들이고, 하늘색으로 물들이고..사이즈가 확! 줄기도 했고.. 다 소중한 경험이다 생각하셨답니다. 훌륭한 어머니의 시작은 냉정하기 이를데 없는 마귀할멈! 이라고 하십니다. 아들이 '난 줏어온 자식인가봐...'하고 울 때 밥상 차려주고 빨래해주고, 청소해주지 말고 엄마는 너를 사랑해...힘을 내! 너는 할 수 있어! 엄마는 너를 믿어..라며 적극적인 지지를 줄 수 있는 어머니가 정말 현명한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신랑도 처음에는 어머니를 원망했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은 진정한 효자입니다. 어머니 잘해드려! 라고 저를 닥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용돈드려야지! 하고 지갑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번씩 어머니 손을 꼭 잡고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고, 고민이 있을 때 조언을 구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하고 아버지께 손내를 털어놓고 맨가슴으로 안아드립니다.
그리고 장모님, 장인어른께도 똑같이 대합니다. 진심을 보여드리고 가끔은 여덟살 짜리가 되어 투정도 하고 애교도 떨고 체면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장모님 장인어른 사랑해요...라고 말하죠.
이런,,;; 말이 길어졌네요. 아직 시어머님의 메모는 많이 남았지만 이정도로 줄이고 저 혼자 가슴에 새기렵니다. 시댁과의 갈등에 상처받으시고 힘들어하시는 여성분들 모두 힘내시고 용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특히 어머니라는 무겁고도 귀한 이름을 가지고 계신 분들 힘내시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시길 빌어요. 화이팅
결혼한지 5년차 아줌마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ㅎㅎ
저는 시부모님, 시어머니의 부모님이신 시외조부모님과 함께 삽니다!!
3층 건물에서
1층에는 시외조부모님 2층에는 시부모님과 시동생 3층에는 저희부부과 두 돌이 된 아들내미
이렇게 삽니다.
신랑을 사랑하기는 하지만..처음에는 시외조부모님을 대하는 시아버님의 모습과, 가족모임에서 본 시댁식
구들의 모습을 보고 시댁과의 합가를 결심했습니다.
시조부모님께서는 두 분만의 손길이 닿은 정원, 집, 생활, 음식을 원하셨던 관계로
지금도 두분이서만 사신다 하셨습니다.
시외조부님께서는 외동딸인 시어머니를 너무도 애틋해 하셨기에 사위이신 시아버지께서
모시고 산다 하시더라고요.
단순히 양가 부모님의 성격차이라고 여겼습니다.
처음에는..신랑의 친가쪽이 조금 차가운 성격인가?,,라고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정말 다정하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조부모님이셨습니다.
단 두분만의 시간을 좀 더 원하셨던 것 뿐이죠.
할아버님은 일주일에 3번이나 투석을 하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셨지만
할머님은 당신 손으로 남편의 모든 것을 돌봐주길 원하십니다.
혹여 몇년 안에 할아버님이 돌아가시더라도, 혼자서 남은 생을 묵상과 정원을 가꾸는 일로
채워가고 싶으시다고 하신 할머님이셨습니다.
딸, 사위와 함께 사시는 외조부모님들께서는
자식과, 손주와 함께 살길 원하셨던 관계로 시부모님 신혼때부터 함꼐 사셨다 합니다.
처음에는 계산해가며 가족관계를 관찰하던 저는 시아버님과 외조모님의 관계를 보고
합가과 결혼을 동시에 결심했더랍니다. ^^;;
'어머니 저 00가 먹고싶어요!' 라고 아버님께서 장모님인 외조모님께 말씀하시면..
외조모님은 시아버님 손에 돈을 쥐어주시며 시장에 가서 뭐뭐머 사오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시아버님은 외조모님 저금통에 그 돈을 후다닥 집어넣고는 당신 지갑 드시고 시장에 가십니다.
식재료를 사오시면 외조모님은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십니다.
사위는 그 옆에서 종알종알 말도 많습니다.
장모님은 그저 웃고 또 웃으십니다. 그리고 음식을 하시면
사위는 상을 차리면서 와아!!! 맛있겠다!!를 외치며 정원일이 심취하신 장인어른을 모셔와 술을 따라드시고
장모님께도 술을 따라드리며 오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다 말합니다.
장인어른은 재밌게 들으시다가도 결론은 항상 고리타분한 충고로 끝납니다. 매일 그렇듯이..^^
사위는 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하고 식사를 끝냅니다.
그리고 그릇을 정리해서 식기세척기에 넣고, 장인어른과 함께 정원으로 나갑니다.
이게 제가 결혼전에 보아온 시아버님과 시외조부모님의 일상이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저는 외조모님과 간단한 쓰레기를 치우고 식탁을 닦고
시아버님은 외조부님과 담배를 태우시고 들어오셔서 커피를 타십니다.
식기세척기는..아버님께서 가정의 평화를 방해한다고 아주 큰!! 것을 한대 구입하셨더라고요.ㅎ
그 모습에 반한 저는...
지금 4대가 함께 사는 이 3층 주택에 삽니다. ^^
저희집에는 4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1. 각 세대의 생활비는 각자 부담한다. -저희는 각 층마다 계량기가 달려 있습니다. 난방,수도,전기 따로 계산합니다 각 층마다 욕실, 화장실, 부엌이 따로 있기에 세금뿐이 아니라, 식비도 따로 계산합니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자꾸 조부모님댁에 가서 식사하시고.. 저희는 자주 시부모님댁에 가서 깍두기로 얻어먹곤 합니다. ㅎㅎㅎ
2. 서로 철저히 예의를 지킨다. -밤 10시 넘어 소음, 청소기, 세탁기를 사용금지입니다.
3. 각 세대별 잔치는 각자 책임진다. -저희집 가장 중요한 규칙은 각자 생일은 생일 당사자가 책임진다! 입니다. 부부가 함께 음식을 준비합니다. 단 조부모님 생신때는 어머니, 아버지/ 작은어머니, 작은 아버지께서 거드시는 것 같더라고요. 조모님 생신때 시아버님과, 시작은아버님께서 상차리시고, 음식나르시고..상치우시는 모습 보고... 감동도 하고 이분이 내 시아버지다@!! 하는 생각에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ㅎ
시어머님, 시아버님 생신때는 제가 아자아자!!! 하고 의욕을 얻어서 음식준비를 하고자....했으나; 어머니께서 다 냅두고 한가지만 하거라! 하셨기에 꼬치산적 한가지만 했습니다.ㅎ;
'내가 아직 안주인이고..안주인으로써 내 자존심껏 상을 차려보련다..'
하시는 말씀에...존경심이 들었습니다. 또 시어머니께서 신랑이 앞치마 두르고 상차리는 모습에..
'저 아이가 생전 저러지 않았는데...너한테 배웠나보다 너는 참 좋은 영향만 미치는구나.. :
라고 하시는 말씀에 또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ㅠㅠㅠ
4. 각 세대의 개인 생활을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 - 시조부모님, 조부모님 어떤 분도 저희 신혼생활에 간섭안하십니다. 따로 식사하고자 하신다면 저희에게 동의를 구합니다. 몇 월 몇 일 몇시에 무슨 메뉴로 너희를 저녁식사에 초대할까 하는데 어떠니? 라고요. 바로 아랫층에서 전화를 하십니다. 처음 신혼집으로 바꾸는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시어른들께서 3층으로 올라오신 일이 없네요. 아...우리 아들이 태어나서 제가 몸을 못 움직이고 누워있을 때 저에게 두 번이나 동의를 구하시고 조심스럽게 올라오셨을 때..한 번 있군요. ^^ 또 한번..제가 우리 아들을 뱃속에 품었을 때 밤새 높은 열에 시달렸을 때 시어머니께서 올라오셔서는 제 웃도리를 벗기셔서는 고약(?) 비슷한 것을 제 몸에 바르시고 마사지를 해주시며 눈물을 흘리셨을 때가 있었습니다. 아프지 말아라..아가...이를 어쩌니... 열에 들떠 엄마...라고 헛소리만 하던 저에게 어머니께서 제 손을 잡고 펑펑 울으시며 하신 말씀이십니다.
저희 시부모님께 저는 참 불만도 많았습니다.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신랑이 만 18세가 된 이후로는 밥을 안 해주셨습니다.
성인이 되었으니, 자기 입에 넣을 먹을 것은 스스로 해먹어라...가 철칙이셨습니다.
3층에 신랑이 혼자 살았고, 그곳에는 완벽한 부엌이 있었으니...
정신적인 독립을 시켜야겠다...라는 시어머니의 철학에 근거한 프로젝트였죠. ㅎ
며칠을 굶었고. 또 몇달은 패스트 푸드만 먹었고..
몇 년은 냉동식품만 먹었고...
그리고 나서 스스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신랑은.
지금은 영양균형을 맞춰서 요리를 할 줄 압니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빨래를 색깔별로,
재질별로, 빨아서 널줄 압니다. 청소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쓰레기는 어떻게 분리해야 하는지 압니다.
신랑이 직장생활을 한 이후로는..
시부모님은 첫 아들인 신랑과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셨습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이었지만 월세를 부모님께 꼬박꼬박 냈다고 하더군요.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만.
결혼 후 서류를 정리하다 임대차 계약서를 발견했습니다........
지금 제 신랑은 세계 최고의 아빠이자, 남편이자, 사위이고 아들이고, 손자입니다.
시부모님께서 저에게 우리 아들교육에 대해 꾸준한 충고를 주십니다.
만 3세가 지나면 더이상 아기가 아니니, 엄마 품을 떠나보내서 올바른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정서교육도 시켜야 하고, 꿈을 심어야줘야 하고, 용기를 심어줘야 하고..
성인이 되면 완전한 독립을 시켜야 한다며..
그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라며 좋은 말씀을 해주십니다.
저는 부모로부터 완벽하게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이룬 남편덕에 행복합니다.
내 마누라! 만을 외치며 저에게 진심을 보여주고 자식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추가) 아들과 계약서 쓰시는 시어머니
어머니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셔서는
'아이 얘는 참....내가 뭘...이런 걸..아이 참....' 만 반복을 하셨습니다. ^^
저도 댓글 다시분 들 한 분 말씀처럼..
'현명한 어머니, 현명한 시어머니 되기 강연다니시는 것 어떠세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그런 거창한 것 할줄은 모르고..
다만 세 자녀를 키워낸 어머니로써,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나 해주시겠다 하셔서
받아적었습니다.
첫번째/ 돈 무서운 줄 알고. 남의 돈은 더 무서운 줄 알도록 가르쳐야 한다..
의좋은 형제도, 사랑이 넘치는 부모자식간에도 돈 문제가 얽히면 구멍이 나서 물이 새기 마련이고
그 구멍이 점점 커져서 둑이 무너지고, 댐이 무너진다 하셨습니다.
부모돈, 형제돈, 자식돈은 가장 무서워하고, 어려워 할 줄 알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당부하셨죠.
이제 열댓살이 된 시동생이..
용돈을 벌기 위해 세차를 하고, 집안, 욕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걷습니다.
여름방학때 시동생을 데리고 놀이동산에 놀러갔을 때.
시동생은 자기몫의 자유이용권값과 식비를 내밀더군요.
그동안 자신이 모은 용돈이었습니다.
신랑은 웃으면서 자유이용권금액만큼의 돈을 챙겼고, 식비는 네가 오늘 늦잠도 안자고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커피도 타왔으니 특별히 형이 밥은 쏜다! 라며 돌려주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황당했죠. 그 어린아이가 무슨 돈이 있다고...그래서 신랑을 나무랐습니다.
그러자 시동생이 막아서더군요.
저도 집안일 해서 돈 벌어요 형수님!!! 하고요.ㅎㅎㅎㅎㅎ
그 이후로 저도 도련님이 우리 층도 청소기를 돌려줬을 떄, 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어줬을 떄
상품권을 줍니다. (행버거, 아이스크림, 초코바 상품권 이런식으로요.)
두번째/가족간의 특별한 권리.
가족간에는 금전적인 문제를 떠난 특별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아들에게, 형이 동생에게, 자식이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길게 설명하셨지만, 저는 제 신랑이 저에게 했던 한마디 말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고, 임신중독이 오고...건강이 많이 안좋았었어요.
원래도 건강하지 못하고 수시로 아팠던 탓에 박사과정중에 있던 학업도 손을 놓아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때 제가 신랑에게 말했었어요.
"나 친정가서 아기 낳고, 거기서 어느정도 몸 추스리고 싶어...아기 낳으면 내 몸도 지금보다 더
약해질지 모르고, 그러면 당신은 직장생활하면서 나 돕고, 아기 돌보는 것 돕고 힘들지 않겠어?"
그랬더니 신랑이 그러더군요.
"아버지가 자식 사랑하고, 돌보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야. 엄마인 당신은 자연스럽게 아가들 양육하면서 누리는 권리를 아빠인 나한테서 뻇으려고 하면 어떡해...나도 함께하게해줘,,"
알고보니 이런 개념은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거였습니다.
자녀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입히고, 함께 놀아주는 것은 부모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부모만이 누리는 특별한 권리이다..............
제 친정아버지는 한국 학계에서 이름 석자를 대면 알 법한 인사이자, 고위공직자이십니다.
고위공직자들은 재정감사가 꾸준히 이루어지는 관계로 일 평생 살얼음을 딛으셨고.
조금만 움직임을 보여도 기사가 뜨니...제 친정아버지도 몇날, 몇 달을 못 움직이시고
딸내미 얼굴도 못 보신 나날이 많았습니다.
지금에서야 약주 한잔 하시고 한탄을 하십니다. 자식을 사랑한다고. 보고싶었다고.
하지만 저는 일생동안 여름휴가를 한번도 못가봤습니다. 아버지 품에서 잠든 적이 없습니다.
그게 저의 슬픔이자 친정부모님의 한이기도 합니다....
제 친정부모님을 바라보며, 존경심을 가졌었지만, 색다른 아버지상인 시아버님을 보면서
가슴 벅찬날도 많습니다. 어느 아버지가 더 훌륭하신 분이라는 말을 못하겠지만...
다만, 내 아이들의 아버지는 시아버지 같은 사람이었으면..하는 것이 솔직한 바람입니다.
셋째/ 한없이 자애로운 동시에 한없이 엄격한 어머니가 되라.
시어머니께서는 굉장히 엄격하셨다고 해요.
글에서 썻지만, 처음 신랑에게 독립된 주방을 주며 알아서 먹고 살아라! 했을 때..
처음 몇일은 굶었고, 처음 몇달은 햄버거, 피자 등 패스트 푸드를 먹었고..
몇년은 냉동식품을 데워 먹었다 합니다.
그때 어머님 생각은 하나. 아직 젊으니 저렇게 먹어도 당장 안 죽어!!! 였습니다.;
아들이 저녁은 햄버거로 대충 때웠다 해도.
당당하게 아랫층에서 저녁을 차려드셨다고 하네요.
식비를 계산해줬으니 알아서 먹어라...이거죠.ㅎㅎ
빨래도 처음에 분홍색으로 물들이고, 하늘색으로 물들이고..사이즈가 확! 줄기도 했고..
다 소중한 경험이다 생각하셨답니다.
훌륭한 어머니의 시작은 냉정하기 이를데 없는 마귀할멈! 이라고 하십니다.
아들이 '난 줏어온 자식인가봐...'하고 울 때
밥상 차려주고 빨래해주고, 청소해주지 말고
엄마는 너를 사랑해...힘을 내! 너는 할 수 있어! 엄마는 너를 믿어..라며
적극적인 지지를 줄 수 있는 어머니가 정말 현명한 어머니라고 하셨습니다.
신랑도 처음에는 어머니를 원망했다고 해요.
하지만 지금은 진정한 효자입니다.
어머니 잘해드려! 라고 저를 닥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용돈드려야지! 하고 지갑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번씩 어머니 손을 꼭 잡고
진심어린 대화를 나누고, 고민이 있을 때 조언을 구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하고
아버지께 손내를 털어놓고 맨가슴으로 안아드립니다.
그리고 장모님, 장인어른께도 똑같이 대합니다.
진심을 보여드리고 가끔은 여덟살 짜리가 되어 투정도 하고 애교도 떨고
체면이고 뭐고 다 던져버리고 장모님 장인어른 사랑해요...라고 말하죠.
이런,,;; 말이 길어졌네요.
아직 시어머님의 메모는 많이 남았지만 이정도로 줄이고
저 혼자 가슴에 새기렵니다.
시댁과의 갈등에 상처받으시고 힘들어하시는 여성분들 모두 힘내시고
용기를 얻으시길 바랍니다.
특히 어머니라는 무겁고도 귀한 이름을 가지고 계신 분들
힘내시고, 강한 모습을 보여주시길 빌어요.
화이팅
결혼한지 5년차 아줌마 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ㅎㅎ
저는 시부모님, 시어머니의 부모님이신 시외조부모님과 함께 삽니다!!
3층 건물에서
1층에는 시외조부모님
2층에는 시부모님과 시동생
3층에는 저희부부과 두 돌이 된 아들내미
이렇게 삽니다.
신랑을 사랑하기는 하지만..처음에는 시외조부모님을 대하는 시아버님의 모습과, 가족모임에서 본 시댁식
구들의 모습을 보고 시댁과의 합가를 결심했습니다.
시조부모님께서는 두 분만의 손길이 닿은 정원, 집, 생활, 음식을 원하셨던 관계로
지금도 두분이서만 사신다 하셨습니다.
시외조부님께서는 외동딸인 시어머니를 너무도 애틋해 하셨기에 사위이신 시아버지께서
모시고 산다 하시더라고요.
단순히 양가 부모님의 성격차이라고 여겼습니다.
처음에는..신랑의 친가쪽이 조금 차가운 성격인가?,,라고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정말 다정하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조부모님이셨습니다.
단 두분만의 시간을 좀 더 원하셨던 것 뿐이죠.
할아버님은 일주일에 3번이나 투석을 하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셨지만
할머님은 당신 손으로 남편의 모든 것을 돌봐주길 원하십니다.
혹여 몇년 안에 할아버님이 돌아가시더라도, 혼자서 남은 생을 묵상과 정원을 가꾸는 일로
채워가고 싶으시다고 하신 할머님이셨습니다.
딸, 사위와 함께 사시는 외조부모님들께서는
자식과, 손주와 함께 살길 원하셨던 관계로 시부모님 신혼때부터 함꼐 사셨다 합니다.
처음에는 계산해가며 가족관계를 관찰하던 저는 시아버님과 외조모님의 관계를 보고
합가과 결혼을 동시에 결심했더랍니다. ^^;;
'어머니 저 00가 먹고싶어요!' 라고 아버님께서 장모님인 외조모님께 말씀하시면..
외조모님은 시아버님 손에 돈을 쥐어주시며 시장에 가서 뭐뭐머 사오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시아버님은 외조모님 저금통에 그 돈을 후다닥 집어넣고는 당신 지갑 드시고 시장에 가십니다.
식재료를 사오시면 외조모님은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십니다.
사위는 그 옆에서 종알종알 말도 많습니다.
장모님은 그저 웃고 또 웃으십니다. 그리고 음식을 하시면
사위는 상을 차리면서 와아!!! 맛있겠다!!를 외치며 정원일이 심취하신 장인어른을 모셔와 술을 따라드시고
장모님께도 술을 따라드리며 오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을 다 말합니다.
장인어른은 재밌게 들으시다가도 결론은 항상 고리타분한 충고로 끝납니다. 매일 그렇듯이..^^
사위는 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하고 식사를 끝냅니다.
그리고 그릇을 정리해서 식기세척기에 넣고, 장인어른과 함께 정원으로 나갑니다.
이게 제가 결혼전에 보아온 시아버님과 시외조부모님의 일상이었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저는 외조모님과 간단한 쓰레기를 치우고 식탁을 닦고
시아버님은 외조부님과 담배를 태우시고 들어오셔서 커피를 타십니다.
식기세척기는..아버님께서 가정의 평화를 방해한다고 아주 큰!! 것을 한대 구입하셨더라고요.ㅎ
그 모습에 반한 저는...
지금 4대가 함께 사는 이 3층 주택에 삽니다. ^^
저희집에는 4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1. 각 세대의 생활비는 각자 부담한다.
-저희는 각 층마다 계량기가 달려 있습니다.
난방,수도,전기 따로 계산합니다
각 층마다 욕실, 화장실, 부엌이 따로 있기에 세금뿐이 아니라, 식비도 따로 계산합니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자꾸 조부모님댁에 가서 식사하시고..
저희는 자주 시부모님댁에 가서 깍두기로 얻어먹곤 합니다. ㅎㅎㅎ
2. 서로 철저히 예의를 지킨다.
-밤 10시 넘어 소음, 청소기, 세탁기를 사용금지입니다.
3. 각 세대별 잔치는 각자 책임진다.
-저희집 가장 중요한 규칙은 각자 생일은 생일 당사자가 책임진다! 입니다.
부부가 함께 음식을 준비합니다.
단 조부모님 생신때는 어머니, 아버지/ 작은어머니, 작은 아버지께서 거드시는 것 같더라고요.
조모님 생신때 시아버님과, 시작은아버님께서 상차리시고, 음식나르시고..상치우시는 모습 보고...
감동도 하고 이분이 내 시아버지다@!! 하는 생각에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ㅎ
시어머님, 시아버님 생신때는 제가 아자아자!!! 하고 의욕을 얻어서 음식준비를 하고자....했으나;
어머니께서 다 냅두고 한가지만 하거라! 하셨기에 꼬치산적 한가지만 했습니다.ㅎ;
'내가 아직 안주인이고..안주인으로써 내 자존심껏 상을 차려보련다..'
하시는 말씀에...존경심이 들었습니다.
또 시어머니께서 신랑이 앞치마 두르고 상차리는 모습에..
'저 아이가 생전 저러지 않았는데...너한테 배웠나보다 너는 참 좋은 영향만 미치는구나.. :
라고 하시는 말씀에 또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ㅠㅠㅠ
4. 각 세대의 개인 생활을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
- 시조부모님, 조부모님 어떤 분도 저희 신혼생활에 간섭안하십니다.
따로 식사하고자 하신다면 저희에게 동의를 구합니다.
몇 월 몇 일 몇시에 무슨 메뉴로 너희를 저녁식사에 초대할까 하는데 어떠니? 라고요.
바로 아랫층에서 전화를 하십니다.
처음 신혼집으로 바꾸는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시어른들께서 3층으로 올라오신 일이 없네요.
아...우리 아들이 태어나서 제가 몸을 못 움직이고 누워있을 때
저에게 두 번이나 동의를 구하시고 조심스럽게 올라오셨을 때..한 번 있군요. ^^
또 한번..제가 우리 아들을 뱃속에 품었을 때 밤새 높은 열에 시달렸을 때
시어머니께서 올라오셔서는 제 웃도리를 벗기셔서는
고약(?) 비슷한 것을 제 몸에 바르시고 마사지를 해주시며 눈물을 흘리셨을 때가 있었습니다.
아프지 말아라..아가...이를 어쩌니...
열에 들떠 엄마...라고 헛소리만 하던 저에게 어머니께서 제 손을 잡고 펑펑 울으시며 하신 말씀이십니다.
저희 시부모님께 저는 참 불만도 많았습니다.
저희 시어머니께서는 신랑이 만 18세가 된 이후로는 밥을 안 해주셨습니다.
성인이 되었으니, 자기 입에 넣을 먹을 것은 스스로 해먹어라...가 철칙이셨습니다.
3층에 신랑이 혼자 살았고, 그곳에는 완벽한 부엌이 있었으니...
정신적인 독립을 시켜야겠다...라는 시어머니의 철학에 근거한 프로젝트였죠. ㅎ
며칠을 굶었고. 또 몇달은 패스트 푸드만 먹었고..
몇 년은 냉동식품만 먹었고...
그리고 나서 스스로 요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신랑은.
지금은 영양균형을 맞춰서 요리를 할 줄 압니다.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빨래를 색깔별로,
재질별로, 빨아서 널줄 압니다. 청소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쓰레기는 어떻게 분리해야 하는지 압니다.
신랑이 직장생활을 한 이후로는..
시부모님은 첫 아들인 신랑과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하셨습니다.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이었지만 월세를 부모님께 꼬박꼬박 냈다고 하더군요.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만.
결혼 후 서류를 정리하다 임대차 계약서를 발견했습니다........
지금 제 신랑은 세계 최고의 아빠이자, 남편이자, 사위이고 아들이고, 손자입니다.
시부모님께서 저에게 우리 아들교육에 대해 꾸준한 충고를 주십니다.
만 3세가 지나면 더이상 아기가 아니니, 엄마 품을 떠나보내서 올바른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정서교육도 시켜야 하고, 꿈을 심어야줘야 하고, 용기를 심어줘야 하고..
성인이 되면 완전한 독립을 시켜야 한다며..
그것이 진정한 부모의 역할이라며 좋은 말씀을 해주십니다.
저는 부모로부터 완벽하게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이룬 남편덕에 행복합니다.
내 마누라! 만을 외치며 저에게 진심을 보여주고 자식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남편을 사랑합니다.
남편이 제일 잘 하는 말은, 미안해..와 고마워..입니다.
연애시절에 매 순간 감동이 젖었던 그 모습, 신혼생활때 사랑해를 말하던 진심..
첫 아기를 가진 임산부 시절,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그 자신감과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나에 대한 경외심. 존경심.
신혼이 끝났다고 말해도 좋을 이 시점에서 처음 만난날과 변함없는 표정으로
오늘도 사랑해 여보! 를 속삭이는 내 남편
그 모든 것이 시어머니의 자식사랑에서 비롯됬음을 배웠고
내 아들에게 내리사랑으로 보답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