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범으로 아버지가 구치소에...

서보민2011.10.01
조회8,349

 

판에 쓴 http://pann.nate.com/talk/313083620 전체 본문 입니다.

1년동안 겪었던 일들입니다. 길어도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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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남 2녀 중 장녀이며 29살이다.

지체장애 1급으로 29년을 살아오며 장애인성범죄 사건에 연루 될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늘 부모님께 장녀라는 이유로 책임감이 무겁다며 투정 부리던 것이 어제 같은데, 큰 충격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정에는 아버지가 없었다. 지금은 정말 장녀가 무엇인지 또한 장애인은 법정에서는 장애유형을 이해시키기 힘들뿐더러 비장애인과 큰 차별을 받는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나(29), 남동생(23), 여동생(21) 다섯 명이다.

나와 내 여동생(21)은 3살 때 열병을 앓았고 루게릭의 하나로 척추성근위축증으로 인하여 지체장애1급 사지마비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는 법 공부를 하던 중, 내가 태어나게 되었다. 첫 돌이 지나고 열병으로 장애가 생겼고 아버지는 공부를 포기하고 돈을 벌어야 했다. 어머니는 아이의 알 수 없는 병을 고치기 위해 장사를 하며 대한민국 큰 병월을 전부 쫒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6살 되던 해, 아버지는 그동안 모은 돈과 퇴직금으로 수술을 시켰지만, 수술 후 걸어서 초등학교 입학 하자던 의사의 말과 달리 내 장애는 더 심해졌다. 수술비로 집도 잃고 서초동 무허가 동네에서 생활하며 아버지는 다시 공무원 생활을 하였고 내 병을 고치기 전까지 동생은 보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친지들의 설득으로 남동생을 낳았다. 그 후 여동생이 태어났고 2만 명 중 1명이 걸린다는 이 장애가 여동생에게도 생겼다.

 

아버지는 공직을 버리시고 어머니와 함께 집 근처에 사무실을 차려 15년을 운영하고 계신다. 누워서 고개도 못 돌리는 나와 내 동생 때문에 맞벌이는 힘들기에 내린 결정 이였고, 언제든 전화하면 오셔서 돌봐 주셨다. 감기만 걸려도 생명이 위태로운 나는 부모님께서 밤잠도 못 주무시며 얼마나 피눈물 흘리며 우리를 키우셨는지 알고 있다.

 

세상에 장애인을 둔 부모 중 자식을 악용 하려는 못된 부모도 많지만, 우리 부모님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언제 꺼질지 모르는 두 생명을 금이야 옥이야 키우신 부모님이시기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키보드로 딸 자녀를 둔 부모님들께 사실을 알리고 석고대죄를 올리는 것 뿐 이라고 생각한다.

 

*법정에 참여하며 본 내용과 들은 내용을 객관적인 사실대로 적으려고 노력 했으며 여러분의 의견을 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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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날 아내가 말했다.

 

“@@아빠, 같은 장애아 키우는데 술 먹을 일 있으면 위에서 팔아줘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사장들 만나도 밥집 가서 술 한 잔 하지 술집은 안 가게 되데…”

 

남자는 아내가 말한 술집을 방문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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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술집을 운영하는 여주인이 미성년자 뇌병변 2급 장애인 딸을 술집에 두었고 술 먹으로 왔던 두 남자 중, 계산하는 남자에게 영업이 끝났다며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딸이 장애가 있어 밤길이라 부탁하는 것 같아 모녀와 함께 있던 동료와 네 명이 함께 나왔고 아파트 단지 2~3분 거리를 가게 되었다. 중간에 동료와 헤어지고 모녀와 남자, 셋이서 갔다.

 

2010년 8월, 그 후 2개월이 흐르고 남자는 성당교우들과 그 술집에 다시 방문 하였다. 술집 여주인은 그 남자에게 “오랜만이네요”라며 인사를 하였다. 성당교우들과 이야기가 끝 날 무렵 계산하려고 하자 술집 주인은 “다른 사람이 계산 했어요” 라고 했다. 남자는 화장실을 가려고 문을 열자 장애아이가 서있었고 “@@구나 들어가라” 며 손을 한번 잡아주고 화장실을 다녀와 교우들과 합석하여 밖으로 나왔다.

 

다음날 모 술집 주인은 남자를 불러 자기 딸을 성추행 하였다며 병원비를 요구했다.

남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돌아갔고, 남자와 말이 안통하자 주인은 남자의 아내를 불러 병원비를 요구하며 "남편이 시인하면 합의를 해 주겠다"며 온 동내에 소문을 내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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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남편이 그럴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의심이 되어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이 @@엄마한테 척 잡 힐 행동 했어요?”

 

“아니 내 성격 알면서 뭔 소린가?”

 

“아니… 하도 억지 부리니까…

@@한테 성추행 했다는 건 말도 안 되고…

@@엄마한테 척 잡힐 행동 했나 싶어서… ”

 

“나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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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주인은 말이 안통하자 온 동네에 소문을 내고 다니더니 남자를 성추행 범이라고 신고했다.

 

경찰에서는 6월에 남자와 함께 술 먹은 남자에게 전화하여 동행했는지 확인 했다. 하지만 아이 엄마와 셋이 가며 아이를 성추행 했다는 내용을 밝힐 증인이 없었고 술집 복도에서 추행한 사실도 증인이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는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했다.

 

경찰에서는 남자와 아내에게 “미성년자 장애인 성범죄는 검사가 구속 수사하니 시인하면 불구속 지휘를 올려 불구속수사를 하게 해주겠다. 합의 보면 끝난다.” 고 하였다.

 

남자와 아내는 집이 걱정 되었다. 구속 수사라고 하면 아내 혼자 사무실 운영하며 몸 불편한 두 딸은 어떻게 할지…

경찰에서 거짓말 탐지기 이야기를 듣자, 남자는 모든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신청하였다. 하지만 숫자 5를 적고 수사관은 5냐고 묻는 질문에 “아니요” 라고 답하라고 했다. 남자는 5냐는 질문에 “예” 라고 답하자 거짓말 탐지기가 울렸다. 5를 5라고 답해도 탐지기는 울렸다. 남자가 하는 모든 말에 거짓말탐지기가 울렸고 경찰은 시인하고 합의 보라고 했다. 합의 안보면 구속수사라고 했다.

 

아내는 동내에 아는 변호사 사무실을 연락하여 자초지정을 설명하고 상담하자 변호사 사무장은 “요즘 장애인 미성년자 성범죄는 특별법으로 증거 없이 말로만으로도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한다. 길게 끌지 말고 억울해도 같은 동네 살고 하니 합의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지인들은 “변호사 비용이라 생각하고 위로금 좀 주고 끝내고 애들과 본업에 충실 하라 ”고 하였다.

 

소문내고 다니는 술집 여자의 입을 막기 위해, 아내는 남편 몰래 합의 하로 갔지만 술집 여자는 “아저씨가 사과하고 경찰서 가서 시인하고 오면 합의를 봐 주겠다”고 했다. 또한 아내가 억울하다고 찾아가면 막걸리를 뿌리고 재떨이를 던지며 경찰을 불러 영업 방해로 신고했다.

 

아내는 남편에게 시인 하자며 “불쌍한 사람 도와준다 생각하고 합의 보고 빨리 끝내고 정상 생활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남자는 ”안 그래도 억울한데… 동네 창피해서 못 살겠다“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술집 여자는 온 동네 소문을 퍼트리고 다녔다. 15년 이상을 아 동네에 살아 온 남자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하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떤 것도 입증할 방법이 없어 경찰에 통화내역을 확인 해 달라고 했지만 “통화내역은 필요 없다”고 했다. 주변 지인들은 힘들어하는 아내와 남자에게 “재수 없다 생각하고 돈 좀 주고 정상 생활을 하라” 고 조언을 했다.

 

남자네 집은 매일 전쟁터였다. 돈이 아까워 술을 잘 안마시던 남자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억울해 울분을 터트리고 조울증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당신 없으면 아이들 대리고 못 살아요. 결혼해서 당신 이날 까지 헌신적으로 산거 아니까 이번 한번만 더 억울해도 시인하고 애들 대리고 가정 지키면서 가계 운영하자… 응?” 아내는 매일 울며 잠긴 방문 앞에서 남편을 설득하였다.

 

아내는 남편의 손을 잡고 술집 앞까지 대려다 주었고 남자가 사과 아닌 사과를 해야했다.

또 한 아내는 경찰서 앞까지 바래다주었고, 남자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자 경찰 팀장에게 전화하여 “우리 애들 아빠와 우리 가족에게 한이 남지 않게 해 주세요.”라며 서글피 울었다. 남자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술을 마셔 기억 안 나는데, 그랬나 봅니다.”라고 시인을 하였다. 시인을 하자 술집 여자는 딸이 성추행을 당해 이사했다며 돈 500으로 합의를 보려하지 않았고 결국 법정까지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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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과 화장실의 문 간격은 한 발짝 정도이며 술집 계산을 마친 뒤, 일행과 손님이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문 앞 복도에서 성추행을 했다는 것이다. 또 한 2개월 전 6월에도 집에 대려다 달라고 하여 모녀와 함께 갔던 상황에서도 장애아에게 성추행을 했다고 주장한다.

 

남자는 “같이 가자고 대려다 달라고 하여 두 모녀가 앞에 가고 , 뒤에서 일행과 이야기하며 가다가 일행과 헤어지고 나란히 3셋이서 갔다.”고 하며 “대려다 달라고 해놓고 이러니 더 억울하고 화가 난다.”고 하였다.

 

여자는 본인은 앞에 가고 딸과 아저씨는 뒤에서 왔다고 주장하며 왜 따로 갔냐는 질문에 “반찬통을 들어서 앞서가고 딸과 아저씨는 뒤에 왔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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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술집에 함께 갔던 남자의 친구가 증인으로 법정에 나왔다.

 

여자는 6월 20일 이라고 주장하나, 두 남자는 “술 마신 날짜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6월에는 1번 술집을 방문했다.” 고 하며, 남자는 개업식 때 방문하여 2번째 방문이며 증인남자는 그날이 처음 방문한 날이라고 했다.

 

법정에서 남자는 “왜 데려다 달라고 했냐?”고 묻자

 

법정에서 판사에게 주인여자는 “믿으니까 데려다 달라고 했다.”고 한다.

 

주인여자는 남자와 술 마신 증인을 보고 술집에 한 번도 안 왔던 사람이라고 했다.

또한 여자는 “이혼한 남자가 중3 아들과 함께 와서 밥 좀 해달라고 해서 밥해줬다. 이 남자와 함께 이야기 하며 집에 갔다." 고 하였고

 

판사가 그 사람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자. “잘 모르는 사람이라 전화번호는 모르고 7동에 사는 것과 인태리어업자라는 것만 안다”며 그 주인은 다음 재판에 증인으로 대려나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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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는 인테리어 업자라는 증인이 나왔다.

인테리어 업자는 남자를 법정에서 처음 본다고 하였고, 술집 여자와 알게 된지 4년 정도 되며 이 주점은 일주일에 1~2번 간다고 하였다.

 

또한 술집 주인에게 누님이라고 호칭하였다.

밥해달라고 아들과 함께 갔으며 골뱅이를 먹었다.

그 시간 한 테이블에 맥주병의 남자가 있었고 시간이 늦어 “누님, 그만 갑시다.” 라며 아들과 이야기 하며 여자와 함께 집으로 갔으며, 여자가 손에 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다.

 

또한 장애아가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고 하였다.

아이와의 간격을 묻자, “뒤 돌아 보지 않아서 모른다.” 고 하며

 

장애인 인데 그래도 잘 따라오는지 확인 안했냐고 묻자,

 

증인은 “내 아들하고 이야기 하며 가느라 거기에 신경 썼다.”고 하였고

 

변호사가 “그럼, 아들과 이야기하는데, 왜 애 엄마는 애를 두고 당신과 걸어갔냐?”고 묻자.

 

증인은 “누님과 고민 상담하며 갔다”고 하였고 “중간 쯤 장애아이가 안보였다”고 하였다.

 

판사는 “안보였다는 것은, 뒤돌아보지 않았다고 했는데, 뒤돌아 본 것이냐 추측이냐?” 는 질문에서도 증인은 확실하게 말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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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엄마는 또 다른 진술에서는 “아저씨와 아이가 먼저 갔고 셋이서 같이 깄다.”고 했다.

비장애인임에도 아이엄마 진술이 매번 다르고 주장하는 “성추행 했다”는 내용만 같다.

처음, 병원비를 요구 했지만 성추행 당했다며 진단서 없는 정신적 치료를 원하였다.

또한 뇌병변2급 장애인이지만 고등학교를 다니고 장애정도가 극히 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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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님은 뇌병변 2급 장애아의 모녀 손을 들었다.

판결 후, 이런 말을 하셨다.

 

“경찰, 검찰, 재판 에서 피해자 말이 다르긴 하지만 주장하는 바가 같고,

그럴 수도 있기 때문엡…”

 

참 어이가 없었다. 아이 엄마가 피해자인가? 아이엄마는 비장애인임으로 진술이 3회 이상 바뀌고 거짓 증인까지 세운 것이 분명한데도 이해한다는 것은 재판을 신중하게 처리하지 않은 것이다.

 

판결문에는 피해자와 고소인 딸들의 장애는 한순간에 지적장애가 되어버렸다.

 

아버지가 끌려가고 어머니는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후 판사는 말했다.

“장애가 있는 애들을 왜 자꾸 법정에 대리고 나오는지 모르겠다.”

 

동생이 말했다.

“대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저희가 오고 싶어서 온 거에요”

 

판사는 말을 이었다.

“부모는 온다고 해도 못 오게 해야지!”

 

동생이 울먹이며 말했다.

“아버지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계시는데 자식이 어떻게 안 오겠어요?”

 

7월 6일 공개재판에서 판사는 7월 24일 이제 만 20살이 되는 여동생에게 상처를 주었다.

 

5년 전 재래시장에서 차별발언으로 상처받고 집밖에 나가기 싫어하던 동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동안 동생을 사회에 참여시키기 위한 가족의 노력을 무산으로 만드는 발언 이였다. 판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또 한 공개 재판인데도 나와 내 동생을 내쫒듯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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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을 지체장애1급 두 딸을 피눈물 흘리시며 키우신 아버지...

구치소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작년 여름이 생각난다.

 

"아빠 힘드니까 이제 산에 안 올래요"

"아빠 힘든 게 너희 몸 불편한 것 보다 더 힘들겠냐?

아빠도 나이 먹고 힘들지만 더 나이 먹으면 대려오고 싶어도 못 오니까

올 수 있을 때 가족끼리 와서 재미있게 놀아야지"

 

부모는 자식이 장애로 인하여 거동이 불편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봐야하는 것만 으로도 죄의식을 갖고 살며 본인의 탓으로 돌린다. 또 한 자식의 아픔을 평생 짊어지고 살아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뜨거운 눈물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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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여 글을 올립니다.

또 저희 가족처럼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들께서 피해 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잘못된 기사글

http://news.nate.com/view/20110708n02780

뎃글들이 참 마음 아프게 달린 기사 였다.

 

아고라 서명 투표 바랍니다.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html?id=112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