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이순신은 국가적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난세의 영웅으로 표상된다. 하지만 작가는 삶보다 죽음에 가까이 있는 칼의 운명을 타고난 외로운 존재로서의 그를 그린다. 아(我)와 적(敵)이 따로 없는 사방의 적으로부터 공격받는 지휘관이자 장수로서의 비애를 이순신의 목소리로 말한다. 구태의연한 설명이 없는 간략한 문체와 명료한 단정은 칼만큼이나 예리하게 심금을 파고든다.
후임 한 명이 내 글을 읽고는 김훈의 '화장'을 읽어봤냐고 물었다. 분명 '커피사탕'은 화장의 도입부와 닮아 있었고, 왠지 내가 진짜 작가가 된 듯한 뿌듯함이 밀려왔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단지 그 뿐인 것은, 나의 글이 제 28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이 소설에 대한 심사평과 같이 '인간의 실존적 의미'도, '불교적인 의미론의 세계'와도 거리가 먼 청춘의 단면 묘사에 그친, 여전히 부끄러운 글이기 때문이다. 김훈이란 작가의 소설을 모방하고 싶은 충동이 막 인다. 어쩌면 나는 그를 내가 지향하는 작가의 전형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로 난 아직 갈 길이 멀다.
싸울 때 내 마음은 미움으로 가득 차서 슬프고 괴롭고 다급하다. 싸움은 혼자서 싸우는 것이다. 아무도 개의 편이 아니다. 싸우는 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다. 싸울 때, 미움과 외로움은 내 이빨과 뒷다리와 수염으로, 내 온몸으로 뻗쳐나온다. 으렁 으렁 으렁 소리는 그 외로움과 슬픔이 터져 나오는 소리다. 화산이 터지기 전에 땅 밑에서 용암이 끓는 소리와도 같다. 싸움은 슬프고 외롭지만, 이 세상에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다. 자라서 다 큰 개가 되면 그걸 알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은 끝내 피할 수 없다.
동물의 이야기에 이토록 가슴 아픈 적이 없었다. 개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였고 개가 아닌 사람의 생이었다. 가난한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만큼이나 단단한 발자취, 수염이 읽고 코로 와닿는 세상엔 개의 세상이 아닌 사람의 인생 그 단면이 비친다. 운명론적인 생에서 개는 짖고 물고 달리지만, 그건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아니다. 고즈넉한 풍경에서 춤추듯 달리는 개는 달을 보고 부르짖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노래한다.
소설은 개 '보리'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가난을 피할 수 없는 농어촌의 현실을 보지만, 그건 '보리'가 자신이 개고 개의 삶은 - 아무리 달려도 결코 닿을 수 없는 달처럼 - 사람의 삶이 될 수 없다는 사실마냥 그저 운명적으로 '그래서 그렇다'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애달프다. 댐이 생겨 마을로 차오르는 물을 피해 집과 밭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 파도에 휩쓸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어부의 바다, 모든 걸 내주고도 배춧잎과 함께 홀로 그 땅에 남은 할머니, 새끼를 낳고 몽둥이에 맞아 가마솥 안의 고기가 된 '흰순이'까지. 개의 이야기는 끝까지 슬프고 외롭다.
김훈
劍銘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내게 이순신은 국가적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난세의 영웅으로 표상된다. 하지만 작가는 삶보다 죽음에 가까이 있는 칼의 운명을 타고난 외로운 존재로서의 그를 그린다. 아(我)와 적(敵)이 따로 없는 사방의 적으로부터 공격받는 지휘관이자 장수로서의 비애를 이순신의 목소리로 말한다. 구태의연한 설명이 없는 간략한 문체와 명료한 단정은 칼만큼이나 예리하게 심금을 파고든다.
후임 한 명이 내 글을 읽고는 김훈의 '화장'을 읽어봤냐고 물었다. 분명 '커피사탕'은 화장의 도입부와 닮아 있었고, 왠지 내가 진짜 작가가 된 듯한 뿌듯함이 밀려왔다는 점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단지 그 뿐인 것은, 나의 글이 제 28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이 소설에 대한 심사평과 같이 '인간의 실존적 의미'도, '불교적인 의미론의 세계'와도 거리가 먼 청춘의 단면 묘사에 그친, 여전히 부끄러운 글이기 때문이다. 김훈이란 작가의 소설을 모방하고 싶은 충동이 막 인다. 어쩌면 나는 그를 내가 지향하는 작가의 전형으로 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고로 난 아직 갈 길이 멀다.
싸울 때 내 마음은 미움으로 가득 차서 슬프고 괴롭고 다급하다. 싸움은 혼자서 싸우는 것이다. 아무도 개의 편이 아니다. 싸우는 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다. 싸울 때, 미움과 외로움은 내 이빨과 뒷다리와 수염으로, 내 온몸으로 뻗쳐나온다. 으렁 으렁 으렁 소리는 그 외로움과 슬픔이 터져 나오는 소리다. 화산이 터지기 전에 땅 밑에서 용암이 끓는 소리와도 같다. 싸움은 슬프고 외롭지만, 이 세상에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다. 자라서 다 큰 개가 되면 그걸 알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은 끝내 피할 수 없다.
동물의 이야기에 이토록 가슴 아픈 적이 없었다. 개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였고 개가 아닌 사람의 생이었다. 가난한 발바닥에 박힌 굳은살만큼이나 단단한 발자취, 수염이 읽고 코로 와닿는 세상엔 개의 세상이 아닌 사람의 인생 그 단면이 비친다. 운명론적인 생에서 개는 짖고 물고 달리지만, 그건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아니다. 고즈넉한 풍경에서 춤추듯 달리는 개는 달을 보고 부르짖고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노래한다.
소설은 개 '보리'가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가난을 피할 수 없는 농어촌의 현실을 보지만, 그건 '보리'가 자신이 개고 개의 삶은 - 아무리 달려도 결코 닿을 수 없는 달처럼 - 사람의 삶이 될 수 없다는 사실마냥 그저 운명적으로 '그래서 그렇다'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래서 더욱 애달프다. 댐이 생겨 마을로 차오르는 물을 피해 집과 밭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 파도에 휩쓸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어부의 바다, 모든 걸 내주고도 배춧잎과 함께 홀로 그 땅에 남은 할머니, 새끼를 낳고 몽둥이에 맞아 가마솥 안의 고기가 된 '흰순이'까지. 개의 이야기는 끝까지 슬프고 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