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존재에 관한 사유는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이성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문제다. 더욱 엄밀히 말하자면 ‘신’의 존재는 결코 이성과 논리로 검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신’의 존재 혹은 부재는 결단코 명확히 정의 될 수 있는 성질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신봉하는 신앙 속 ‘신’ 의 존재 여부 혹은 ‘신’의 성향에 대한 이성적 분석은 반드시 필요한 사유의 과정임은 확실하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세서 ‘신’의 존재 여부와 성향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데 있어 어떠한 외부적 요인에 의한 증명을 배제 한 채 신앙이라는 개념 속에 내포된 모순을 찾아내고 그 모순에서 또 다른 모순을 찾아내는 방식을 이용하여 신앙 자체가 인정하고 있는 보편적 이론에 허구성을 밝히는 방식으로 글을 이어나가기로 하겠다.
2. 본 론(신)
현재 인류가 믿고 있는 종교가 과연 몇 가지나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가장 보편적인 종교를 찾아보자면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정도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중 불교는 어떤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라기보다 삶의 태도나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방법론적 의미에 종교 이고 힌두교는 가장 중요한 3신인 창조의신(브라흐마) 파괴의 신 (시바) 유지의 신 (비뉴슈)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신들을 섬기는 종교이기에 이 글에서 다루고자하는 유일신의 개념을 충족시키지는 못하며 유일신 섬기며 그 유일신에 의하여 세계의 존재 하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종교는 결국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가 남게 된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코란을 읽어보지 못했고 이슬람 이라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의 핵심적 부분을 알지 못하기에 여기에서는 기독교와 천주교라는 종교 속에서 다루어지는 신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신 이란?
기독교와 천주교(이후 기독교로 표기) 는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그들 종교의 ‘신’을 명확하고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태초의 존재자이고 전지, 전능 며 절대로 선한 존재 이고 처음이자 끝이며 완전히 완벽한 존재가 바로 그들 종교 속에서 정의 하는 ‘신’이다. 성경에서는 그들의 ‘신’이 6일 동안 세상을 만들었으며 그 마지막 날 인간을 만들고 7 번째 날 쉬었노라고 적고 있다.
또한 최초의 인간은 아담이라는 남성이며 이 최초의 남성으로 하여금 세상 모든 피조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시고 그들 모두를 다스릴 권한을 넘겼다고 전한다.
2) 신 의 전지성에 대한 의심
기독교의 ‘신’ 인 하나님은 오로지 하나 뿐인 절대 유일의 존재이며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선악과를 통해 보여 지듯 이 ‘신’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그의 아나 이브가 금지된 열매를 얻은 것을 뱀으로 화한 악마의 꾐에 의한 행동이었다고는 하나 그러한 꾐에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신’에 뜻과는 다른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의 여지가 인간 내부 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자유의지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인간 고유의 이성적 사고능력이며 이것은 분명 ‘신’의 전지적 능력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변수 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에서 묘사하고 있는 신의 대하여 약간 다른 해석이 가능한데
세상 모든 것을 통제하며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신조차도 그의 작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이러한 인간 고유의 이성능력은 신의 전지성과 대립함과 동시에 이 위에 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 의지를 예측하지 못하는 신은 모든 것을 아는 전지(全知) 라는 수식어가 타당한 존재일까?
3) 신 의 전능성에 대한 의심
앞서 우리는 성경에서 정의한 ‘신’의 성향 중 전능하며 절대로 선하 다는 개념이 포함 되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전능하다는 말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며 절대 선 한 존재란 말은 선한 것을 사랑하고 악한 것을 미워 한다는 말이다. 이 두 명제를 치환할 경우 ‘신’은 선한 것을 사랑하며 모든 악한 것을 세상에 남겨두려 하지 않으려 하는 성향을 지닌다는 것을 유추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퍼져있는 ‘악’의 존재에 대해 이러한 ‘신’의 성향이 충족되지 않음을 인식할 수 있다.
물론 ‘선’ 과 ‘악’ 이라는 개념은 그 존재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여 질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요컨대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절대로 ‘악’이 될 수 없다. 이는 생존을 위한 욕구충족의 방법론적 문제이지 절대로 ‘선’과 ‘악’이 개입될 여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돼지나 소의 입장에서 인간이 고기를 먹는 행위는 ‘악’ 일 수 밖에 없다. 자신과 자신의 형제를 좁은 축사 속 에 감금한 채 태어난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오로지 먹기 위해 사육하는 인간의 행위는 분명히 ‘악’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입장차이 에서 오는 문제는 결코 어느 한 ‘종’의 입장에서 이해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며 이 경우 인간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돼지나 소 와 같은 짐승의 그것보다 강했기에 진화에 길에서 인간이 보다 우월한 고지를 점유 하여 그들을 먹을 뿐 이는 ‘죄’도 ‘악’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대적이고 모호한 개념의 ‘악’ 이 아니라 너무나 절대적 객관적 입장에서의 ‘악’ 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어찌 설명 할 수 있을까? 절대적이고 객관적 입장이라는 말은 상당히 위험한 표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악’ 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떠한 동물 군도 어떠한 ‘종’ 도 동족을 죽이지는 않는다. 특히 자신의 유전정보를 후세에 남길 새끼 군에 대한 살해는 모든 동물 ‘종’ 으로부터 경계 되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행위를 너무나 태연히 자행한다. 경제적 문제로 자신의 아이를 죽이거나 보험금을 위해 자신의 아이의 손목을 자르는 아버지, 서로가 믿고 있는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태연히 동족을 살해하는 일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드문 사건이 아니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행되어지는 현실적 문제다.
그렇다면 ‘신’은 왜 이러한 ‘악’을 이 세계에서 사라지게 하지 않는가? 아니 더욱 신기한건 ‘악’을 사라지게 하기는커녕 ‘악’ 이라는 것 이 이 세계의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이세계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비추어 볼 때 ‘악’ 의 개념 역시 ‘신’에 의해 창조 되어진 것 이라고 보아야 하진 않을까?
여기서 우리는 신이 오로지 선한 존재가 아니기에 ‘악’ 이라는 개념마저도 창조 했거나 혹은 ‘악’을 없앨 만한 능력이 없는 이른바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해야 할 것이다.
3. 결 론
앞서 우리는 성경 속에 묘사된 ‘신’의 개념을 통해 ‘신’의 대하여 확인한 결과 창세기에서 정의한 ‘신’이 실제로 그 모습 그대로 구현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신’ 은 전지적 이지도 않으며 전능하지도 않고 거기다 오로지 선하지도 않은 모든 면에서 불확실한 존재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른 외부적 논리에 의함이 아니라 성경스스로가 묘사한 내용에서 이렇게 성경속 내용과 전혀 다른 신의 성향이 유추 되었다는 성경의 모순성 인데 성령으로 쓰여 진 기록이라 전해지는 성경의 모순성은 ‘신’의 모순성과 직결 되는 문제이기에 이점은 분명 중요한 것이다.
‘신’의 절대성과 완벽성이 상실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가 있는데 ‘신’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과 아니면 ‘신’은 존재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형태의 ‘신’은 아니며 성경기록과 기독교에 교리에서 치장한 ‘신’은 성령이나 그밖에 신성한 것에 의함이 아닌 전지, 전능하지 않으며 선하지 않고 모순적인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철학적 사유를 이어옴에 있어 인과성이 배제된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러한 인과성의 연장선상에서 완벽하지 않은 존재가 완벽한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완벽한 존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완벽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성경이라는 모순투성이의 허구적 기록을 완벽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신’이 전했다는 것은 이러한 인과성에 대한 부정이며 이러한 모순적 기록은 모순적 존재인 인간이 창조한 것이요 그러한 기록속의 모순적으로 묘사된 ‘신’ 역시 모순 된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일 수밖에 없다.
[펌] 신의 존재에 대한 반론
신의 존재에 대한 반론
1. 서 론
‘신’의 존재에 관한 사유는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이성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문제다. 더욱 엄밀히 말하자면 ‘신’의 존재는 결코 이성과 논리로 검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신’의 존재 혹은 부재는 결단코 명확히 정의 될 수 있는 성질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신봉하는 신앙 속 ‘신’ 의 존재 여부 혹은 ‘신’의 성향에 대한 이성적 분석은 반드시 필요한 사유의 과정임은 확실하다. 그리하여 나는 여기세서 ‘신’의 존재 여부와 성향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는데 있어 어떠한 외부적 요인에 의한 증명을 배제 한 채 신앙이라는 개념 속에 내포된 모순을 찾아내고 그 모순에서 또 다른 모순을 찾아내는 방식을 이용하여 신앙 자체가 인정하고 있는 보편적 이론에 허구성을 밝히는 방식으로 글을 이어나가기로 하겠다.
2. 본 론(신)
현재 인류가 믿고 있는 종교가 과연 몇 가지나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가장 보편적인 종교를 찾아보자면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 정도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중 불교는 어떤 유일신을 섬기는 종교라기보다 삶의 태도나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 방법론적 의미에 종교 이고 힌두교는 가장 중요한 3신인 창조의신(브라흐마) 파괴의 신 (시바) 유지의 신 (비뉴슈)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신들을 섬기는 종교이기에 이 글에서 다루고자하는 유일신의 개념을 충족시키지는 못하며 유일신 섬기며 그 유일신에 의하여 세계의 존재 하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종교는 결국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가 남게 된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나는 아직 코란을 읽어보지 못했고 이슬람 이라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의 핵심적 부분을 알지 못하기에 여기에서는 기독교와 천주교라는 종교 속에서 다루어지는 신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신 이란?
기독교와 천주교(이후 기독교로 표기) 는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그들 종교의 ‘신’을 명확하고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태초의 존재자이고 전지, 전능 며 절대로 선한 존재 이고 처음이자 끝이며 완전히 완벽한 존재가 바로 그들 종교 속에서 정의 하는 ‘신’이다. 성경에서는 그들의 ‘신’이 6일 동안 세상을 만들었으며 그 마지막 날 인간을 만들고 7 번째 날 쉬었노라고 적고 있다.
또한 최초의 인간은 아담이라는 남성이며 이 최초의 남성으로 하여금 세상 모든 피조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시고 그들 모두를 다스릴 권한을 넘겼다고 전한다.
2) 신 의 전지성에 대한 의심
기독교의 ‘신’ 인 하나님은 오로지 하나 뿐인 절대 유일의 존재이며 모든 것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선악과를 통해 보여 지듯 이 ‘신’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과 그의 아나 이브가 금지된 열매를 얻은 것을 뱀으로 화한 악마의 꾐에 의한 행동이었다고는 하나 그러한 꾐에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신’에 뜻과는 다른 자유의지에 의한 행동의 여지가 인간 내부 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자유의지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인간 고유의 이성적 사고능력이며 이것은 분명 ‘신’의 전지적 능력으로도 예측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변수 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에서 묘사하고 있는 신의 대하여 약간 다른 해석이 가능한데
세상 모든 것을 통제하며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신조차도 그의 작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행동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이러한 인간 고유의 이성능력은 신의 전지성과 대립함과 동시에 이 위에 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 의지를 예측하지 못하는 신은 모든 것을 아는 전지(全知) 라는 수식어가 타당한 존재일까?
3) 신 의 전능성에 대한 의심
앞서 우리는 성경에서 정의한 ‘신’의 성향 중 전능하며 절대로 선하 다는 개념이 포함 되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전능하다는 말은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며 절대 선 한 존재란 말은 선한 것을 사랑하고 악한 것을 미워 한다는 말이다. 이 두 명제를 치환할 경우 ‘신’은 선한 것을 사랑하며 모든 악한 것을 세상에 남겨두려 하지 않으려 하는 성향을 지닌다는 것을 유추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퍼져있는 ‘악’의 존재에 대해 이러한 ‘신’의 성향이 충족되지 않음을 인식할 수 있다.
물론 ‘선’ 과 ‘악’ 이라는 개념은 그 존재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개념으로 받아들여 질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요컨대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절대로 ‘악’이 될 수 없다. 이는 생존을 위한 욕구충족의 방법론적 문제이지 절대로 ‘선’과 ‘악’이 개입될 여지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돼지나 소의 입장에서 인간이 고기를 먹는 행위는 ‘악’ 일 수 밖에 없다. 자신과 자신의 형제를 좁은 축사 속 에 감금한 채 태어난 순간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오로지 먹기 위해 사육하는 인간의 행위는 분명히 ‘악’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입장차이 에서 오는 문제는 결코 어느 한 ‘종’의 입장에서 이해 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며 이 경우 인간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돼지나 소 와 같은 짐승의 그것보다 강했기에 진화에 길에서 인간이 보다 우월한 고지를 점유 하여 그들을 먹을 뿐 이는 ‘죄’도 ‘악’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상대적이고 모호한 개념의 ‘악’ 이 아니라 너무나 절대적 객관적 입장에서의 ‘악’ 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어찌 설명 할 수 있을까? 절대적이고 객관적 입장이라는 말은 상당히 위험한 표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악’ 은 분명히 존재한다.
어떠한 동물 군도 어떠한 ‘종’ 도 동족을 죽이지는 않는다. 특히 자신의 유전정보를 후세에 남길 새끼 군에 대한 살해는 모든 동물 ‘종’ 으로부터 경계 되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행위를 너무나 태연히 자행한다. 경제적 문제로 자신의 아이를 죽이거나 보험금을 위해 자신의 아이의 손목을 자르는 아버지, 서로가 믿고 있는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태연히 동족을 살해하는 일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드문 사건이 아니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행되어지는 현실적 문제다.
그렇다면 ‘신’은 왜 이러한 ‘악’을 이 세계에서 사라지게 하지 않는가? 아니 더욱 신기한건 ‘악’을 사라지게 하기는커녕 ‘악’ 이라는 것 이 이 세계의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면 이세계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비추어 볼 때 ‘악’ 의 개념 역시 ‘신’에 의해 창조 되어진 것 이라고 보아야 하진 않을까?
여기서 우리는 신이 오로지 선한 존재가 아니기에 ‘악’ 이라는 개념마저도 창조 했거나 혹은 ‘악’을 없앨 만한 능력이 없는 이른바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해야 할 것이다.
3. 결 론
앞서 우리는 성경 속에 묘사된 ‘신’의 개념을 통해 ‘신’의 대하여 확인한 결과 창세기에서 정의한 ‘신’이 실제로 그 모습 그대로 구현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신’ 은 전지적 이지도 않으며 전능하지도 않고 거기다 오로지 선하지도 않은 모든 면에서 불확실한 존재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른 외부적 논리에 의함이 아니라 성경스스로가 묘사한 내용에서 이렇게 성경속 내용과 전혀 다른 신의 성향이 유추 되었다는 성경의 모순성 인데 성령으로 쓰여 진 기록이라 전해지는 성경의 모순성은 ‘신’의 모순성과 직결 되는 문제이기에 이점은 분명 중요한 것이다.
‘신’의 절대성과 완벽성이 상실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두 가지 결론을 내릴 수가 있는데 ‘신’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과 아니면 ‘신’은 존재하지만 기독교에서 말하는 형태의 ‘신’은 아니며 성경기록과 기독교에 교리에서 치장한 ‘신’은 성령이나 그밖에 신성한 것에 의함이 아닌 전지, 전능하지 않으며 선하지 않고 모순적인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철학적 사유를 이어옴에 있어 인과성이 배제된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점을 이미 알고 있다. 이러한 인과성의 연장선상에서 완벽하지 않은 존재가 완벽한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완벽한 존재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완벽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성경이라는 모순투성이의 허구적 기록을 완벽하다고 생각되어지는 ‘신’이 전했다는 것은 이러한 인과성에 대한 부정이며 이러한 모순적 기록은 모순적 존재인 인간이 창조한 것이요 그러한 기록속의 모순적으로 묘사된 ‘신’ 역시 모순 된 인간이 만들어낸 개념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