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대교 남단에서 78번 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달리다 보면 전망이 탁 트인 곳을 만나게 된다. 바로 김포 애기봉전망대다. 애기봉은 서울에서 서측방의 최북단인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해발 154미터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애기봉은 북쪽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이곳에 오르면 1.8킬로미터에 거리에 위치한 북한 개성시 판문군 조강리 일대를 최단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다. 때문에 국민 안보 관광지로써, 또한 실향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장소로 인기가 높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23킬로미터 떨어진 개성의 송악산도 볼 수 있다.
때는 2010년 6월, 소나기가 사방을 훑고 지나간 어느 날이다. 한복으로 곱게 멋을 낸 한 여인이 애기봉을 향해 힘들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스물두어 살쯤 되었을까. 작고 단아한 외모다. 곱게 빗어 쪽을 두른 머릿결은 아침부터 공들여 손질한 기색이 역력하다. 수심 가득한 얼굴엔 뽀얀 분이 발라져 있고 눈은 이슬비를 만난 듯 촉촉이 젖어 있다. 그녀는 붉은 가죽신을 부지런히 움직여 걸음을 재촉한다. 여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강 언덕에서 물안개가 허리를 뒤채며 언덕을 기어오른다.
여인은 전망대 표지석에 기대어 잠시 이마의 땀을 훔친다. 관광객 중 그 누구도 여인에게 눈길을 주는 이는 없다. 아니, 숫제 여인을 못 본 듯이 행동한다. 여인은 누군가를 찾는지 사방을 둘러보지만 찾는 이를 발견할 수는 없다. 여인은 전망대로 달려가 멀리 북녘 땅을 바라본다. 어느새 여인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여인은 자그마치 374년 동안 애기봉 주변을 오르내리며 한 남자를 기다려왔다. 반드시 돌아오겠노라고 맹세했던 그 사람. 평양감사를 기다리며.
그 시각, 손에 잡힐 듯이 펼쳐진 임진강을 건너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붉은 관복을 입은 채 남자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애기봉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꿈에도 그리던 여인의 그림자가 설핏 눈에 비쳤다. 남자는 걸음을 빨리 하며 백사장을 벗어났다.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자 역시 수백 년을 기다렸다. 마침내 기도가 닿았는지 짧은 만남이 허락되었다. 먼 이국 땅에 뼈를 묻었던 남자는, 낯선 땅을 박차고 한달음에 달려오는 길이다.
“애기, 애기는 어디 있는가?”
남자는 애타게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부른다.
" 임진강이 구슬프게 흐르는 애기봉에는 애기의 한과 실향민의 애환이 사무쳐 그리움으로 모여든다. 가까운 북녘 땅이지만 발길 닿을 수 없는 길이기에 임진강은 망망대해보다 더 넓게 느껴진다. "
그리움으로 손꼽은 만남의 약속
그렇다. 그녀의 이름은 애기(愛妓)다.
때는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인조 14년의 일이다. 당시 조선 조정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1636년 12월, 청나라 태종은 1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으로 쳐들어왔다. 선봉은 마부태였다. 마부태는 임경업 장군이 지키는 백마산성을 피해, 밤낮을 달려 10여 일 만에 한양에 첫 발을 디뎠다. 인조는 왕손들을 강화도로 피난시킨 뒤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을 계속했다. 그러나 청나라 군사가 성을 포위 압박하고, 각지의 근왕군이 패전을 거듭하자 삼전도에 나가 청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다.
싸움에 이긴 청군은 수많은 사람을 인질로 잡아 돌아갔다. 평양감사 아무개도 그중 하나였다. 평양감사는 인질이 되어 잡혀가는 왕세자를 시중하며 모진 바람을 헤치고 심양으로 끌려갔다. 애기는 평양감사의 사랑하던 애첩이었다.
청국으로 끌려가기 전날 밤,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로 이별했다. 애기는 나를 두고 어딜 가냐며 통곡했다. 차라리 함께 가든지, 나를 죽이고 가라고 매달리는 애기를 평양감사가 타일렀다.
“내가 가지 않으면 함께 잡혀가는 세자마마를 누가 돌볼 것이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반드시 돌아올 테니 기다려야 한다.”
애기가 대답했다.
“나라의 일에 어찌 아녀자가 사사로운 감정을 내세우겠습니까. 단 한 가지 약속만은 꼭 지켜 주십시오. 반드시 살아 돌아오셔야 합니다.”
“암, 약속을 지키고말고.”
그날 두 사람의 약속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결국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고 말았다. 감사와 생이별을 한 애기는 혼자 강을 건너 월곶면 조강리에 머물면서 감사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 했다. 하루하루 더해지는 감사에 대한 그리움으로 날마다 쑥갓머리산(지금의 애기봉) 정상에 올라 님 계신 북녘을 향해 눈물로 소리치며 애타게 불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님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고, 기다리다 지친 애기는 병이 들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죽기 전 애기는 유언을 남겼다.
“님이 오시는지 볼 수 있도록 내 시신을 바로 세워 북녘으로 묻어 주오.”
애기의 유언에 따라 동네 사람들은 애기를 쑥갓머리산 꼭대기에 장사하고 그 산을 애기봉(愛妓峰)이라 불러왔다. 1968년 애기봉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애기의 한(恨)과 가족과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한이 같다고 하여 ‘애기봉’이라는 친필 휘호를 내렸다. 그래서일까? 매년 추석 때면 이곳에는 가족과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이 찾아 조상들에게 제를 올리고 통일을 기원한다. 예나 지금이나 애기봉은 북녘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한으로 맺힌 곳이라 하겠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자라나는 나무들처럼, 김포 애기봉에는 통일에 대한 염원과 희망이 해마다 한 뼘씩 자라난다."
몇 백 년을 기다려온 애기와의 만남
“애기, 애기는 어디 있는가? 내가 왔소. 내가 돌아왔소.”
남자의 목소리가 애기봉을 메아리친다.
“저, 여기 있어요.”
남자를 발견한 애기가 한달음에 달려가 품에 안긴다.
“왜 이제야 오시었소?”
애기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흐느낀다.
“미안하네. 미안하네.”
남자는 변명할 틈도 없이 애기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는다.
두 사람은 조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자리를 옮긴다.
“저기 좀 보아요.”
여자가 아득한 북녘 땅을 손가락질한다.
“저곳이 송악이군요?”
“그렇지. 조금만 더 올라가면 우리가 사랑을 나누었던 평양이오.”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죠.”
“그렇소. 통일이 된다면 당신과 다시 만나질 수 있겠지만.”
남자가 애기의 손을 꼭 쥔다. 두 사람은 다시금 서로를 꼭 껴안는다. 애기는 헤어지던 그날을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생이별을 해야 했던 순간, 차라리 애기는 죽음을 택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 말을 믿고 매일같이 애기봉 정상에 올라 멀리 북녘을 바라보았다. 죽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영혼은 애기봉을 떠나지 못하고 애타게 남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늘 그렇게 흘러가는 임진강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군요.”
애기는 멀리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렇지. 저쪽 어디에 예전에 나루가 있었는데, 그래서 평양으로 가는 장사치나 관리들이 배로 강을 건너곤 했었지. 세자께서 멀리 심양으로 끌려가실 때도 저 뱃길을 이용했다오.”
“그래요. 생각이 나요. 그때로 강물은 저렇게 조용히 흘렀어요.”
“그래도 자랑스럽소. 비록 남북이 분단돼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해 있을 줄은 몰랐소. 사실 따지고 보면 병자호란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터진 전쟁이 아니오. 우리가 힘만 있었어도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맞아요. 후손들이 참 대견해요. 이 작은 땅에서 단시간에 경제대국이 되었다니. 장차 통일이 된다면 더는 소원이 없을 것 같아요. 통일이 되어 당신과 내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들은 전망대를 내려와 주차장이 있는 언덕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기 서 있는 것은 무엇이오?”
남자가 대리석과 시멘트로 된 흰색 구조물을 가리켰다.
“저것은 김포지구 전투전적비랍니다.”
“아, 이곳에서 또 무슨 전쟁이 있었던 것이오?”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래요. 당신도 알다시피 불과 60여 년 전 같은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채 이념 전쟁을 펼쳤어요. 공산주의자들이 점령한 북쪽은 아직도 세상과 문을 닫아건 채 백성들이 가난과 싸우며 통일의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지요.”
“당신은 그 전쟁을 모두 보았겠구려.”
“맞아요. 이곳에서 용감한 해병 젊은이들이 적과 싸우다가 죽어갔어요.”
애기는 다시 한 번 눈시울을 붉히며 아득히 생각에 잠겼다. 60여 년 전, 지금처럼 초록이 싱그럽던 어느 날, 탱크로 무장한 북녘의 젊은이들이 예고도 없이 남쪽으로 몰아쳤다. 임진강은 서울 사수를 위한 방어선이었고 국군과 공산군은 밀고 밀리는 전투 속에 애기봉을 사수하기 위해 싸웠다. 그중에서도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의 선봉에 섰던 해병 제1연대 예하 제3대대는 애기봉에서 서울로의 반격을 시도하려던 적을 과감히 소탕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1.4후퇴의 와중인 51년 3월부터 휴전까지 기간에는 해병 독립 제5대대가 이곳에 배치되어 한강을 사이에 두고 중공군과 대치하면서 한강 넘어 개풍군 및 개성 등으로 침투하였다. 당시 월암리 전투를 비롯한 50여 회의 작전을 수행함으로써 민족의 젖줄인 한강을 사수하고 이 땅을 지켰다.
"꼭 돌아온다는 말, 다시 만나자는 말, 수많은 약속의 말이 오가는 한강의 제1류 임진강. 봉오리에서 지고 말았던 그 약속들이 이제는 노란 들꽃처럼 활짝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그뿐만이 아니에요.” 애기는 한 서린 눈으로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어디 그날의 전쟁뿐이었겠어요. 더 가까이는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때도, 멀리로는 몽고와 항쟁을 할 때도, 수나라와 당나라가 쳐들어 올 때도 이곳은 늘 민족의 운명을 건 격전장이 되곤 했어요. 강을 장악하면 배를 이용해 곧장 한강으로 진입할 수 있었으니까요.” 남자는 혀를 끌끌 찼다. “당신 말이 맞소.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민족의 수난과 함께 하는 강이 아니라 민족이 세계로 뻗어가는 물길이 되어야 할 텐데, 저 강물을 통해 서해로 나가 태평양을 건너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우리의 국력이 뻗어가는 그런 강이 되었으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저녁이 다가왔다. 두 사람이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애기봉 정상으로 올라가 석양을 바라보며 다시금 포옹을 나누었다. 애기는 남자에게 언제 다시 돌아올지 묻지 않았다. 모든 걸 시간이 해결해 주리란 걸 서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 일어난 역사의 강물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오늘도 말없이 흘러가는 조강 물결이 그들에게 속삭이고 있다.
남과북을 아우르다, 김포애기봉전망대
평양감사를 기다리며
행주대교 남단에서 78번 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달리다 보면 전망이 탁 트인 곳을 만나게 된다. 바로 김포 애기봉전망대다. 애기봉은 서울에서 서측방의 최북단인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해발 154미터 고지에 위치하고 있다.
애기봉은 북쪽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이곳에 오르면 1.8킬로미터에 거리에 위치한 북한 개성시 판문군 조강리 일대를 최단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다. 때문에 국민 안보 관광지로써, 또한 실향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장소로 인기가 높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23킬로미터 떨어진 개성의 송악산도 볼 수 있다.
때는 2010년 6월, 소나기가 사방을 훑고 지나간 어느 날이다. 한복으로 곱게 멋을 낸 한 여인이 애기봉을 향해 힘들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스물두어 살쯤 되었을까. 작고 단아한 외모다. 곱게 빗어 쪽을 두른 머릿결은 아침부터 공들여 손질한 기색이 역력하다. 수심 가득한 얼굴엔 뽀얀 분이 발라져 있고 눈은 이슬비를 만난 듯 촉촉이 젖어 있다. 그녀는 붉은 가죽신을 부지런히 움직여 걸음을 재촉한다. 여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강 언덕에서 물안개가 허리를 뒤채며 언덕을 기어오른다.
여인은 전망대 표지석에 기대어 잠시 이마의 땀을 훔친다. 관광객 중 그 누구도 여인에게 눈길을 주는 이는 없다. 아니, 숫제 여인을 못 본 듯이 행동한다. 여인은 누군가를 찾는지 사방을 둘러보지만 찾는 이를 발견할 수는 없다. 여인은 전망대로 달려가 멀리 북녘 땅을 바라본다. 어느새 여인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여인은 자그마치 374년 동안 애기봉 주변을 오르내리며 한 남자를 기다려왔다. 반드시 돌아오겠노라고 맹세했던 그 사람. 평양감사를 기다리며.
그 시각, 손에 잡힐 듯이 펼쳐진 임진강을 건너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붉은 관복을 입은 채 남자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애기봉을 올려다보았다. 저 멀리, 꿈에도 그리던 여인의 그림자가 설핏 눈에 비쳤다. 남자는 걸음을 빨리 하며 백사장을 벗어났다.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남자 역시 수백 년을 기다렸다. 마침내 기도가 닿았는지 짧은 만남이 허락되었다. 먼 이국 땅에 뼈를 묻었던 남자는, 낯선 땅을 박차고 한달음에 달려오는 길이다.
“애기, 애기는 어디 있는가?”
남자는 애타게 사랑하는 여인의 이름을 부른다.
" 임진강이 구슬프게 흐르는 애기봉에는
애기의 한과 실향민의 애환이 사무쳐 그리움으로 모여든다.
가까운 북녘 땅이지만 발길 닿을 수 없는 길이기에
임진강은 망망대해보다 더 넓게 느껴진다. "
그리움으로 손꼽은 만남의 약속
그렇다. 그녀의 이름은 애기(愛妓)다.
때는 병자호란이 일어났던 인조 14년의 일이다. 당시 조선 조정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려 있었다. 1636년 12월, 청나라 태종은 12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으로 쳐들어왔다. 선봉은 마부태였다. 마부태는 임경업 장군이 지키는 백마산성을 피해, 밤낮을 달려 10여 일 만에 한양에 첫 발을 디뎠다. 인조는 왕손들을 강화도로 피난시킨 뒤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을 계속했다. 그러나 청나라 군사가 성을 포위 압박하고, 각지의 근왕군이 패전을 거듭하자 삼전도에 나가 청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항복했다.
싸움에 이긴 청군은 수많은 사람을 인질로 잡아 돌아갔다. 평양감사 아무개도 그중 하나였다. 평양감사는 인질이 되어 잡혀가는 왕세자를 시중하며 모진 바람을 헤치고 심양으로 끌려갔다. 애기는 평양감사의 사랑하던 애첩이었다.
청국으로 끌려가기 전날 밤,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로 이별했다. 애기는 나를 두고 어딜 가냐며 통곡했다. 차라리 함께 가든지, 나를 죽이고 가라고 매달리는 애기를 평양감사가 타일렀다.
“내가 가지 않으면 함께 잡혀가는 세자마마를 누가 돌볼 것이냐?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반드시 돌아올 테니 기다려야 한다.”
애기가 대답했다.
“나라의 일에 어찌 아녀자가 사사로운 감정을 내세우겠습니까. 단 한 가지 약속만은 꼭 지켜 주십시오. 반드시 살아 돌아오셔야 합니다.”
“암, 약속을 지키고말고.”
그날 두 사람의 약속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결국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고 말았다. 감사와 생이별을 한 애기는 혼자 강을 건너 월곶면 조강리에 머물면서 감사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 했다. 하루하루 더해지는 감사에 대한 그리움으로 날마다 쑥갓머리산(지금의 애기봉) 정상에 올라 님 계신 북녘을 향해 눈물로 소리치며 애타게 불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님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고, 기다리다 지친 애기는 병이 들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죽기 전 애기는 유언을 남겼다.
“님이 오시는지 볼 수 있도록 내 시신을 바로 세워 북녘으로 묻어 주오.”
애기의 유언에 따라 동네 사람들은 애기를 쑥갓머리산 꼭대기에 장사하고 그 산을 애기봉(愛妓峰)이라 불러왔다. 1968년 애기봉을 방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애기의 한(恨)과 가족과 고향을 잃은 실향민의 한이 같다고 하여 ‘애기봉’이라는 친필 휘호를 내렸다. 그래서일까? 매년 추석 때면 이곳에는 가족과 고향을 두고 온 실향민들이 찾아 조상들에게 제를 올리고 통일을 기원한다. 예나 지금이나 애기봉은 북녘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한으로 맺힌 곳이라 하겠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자라나는 나무들처럼, 김포 애기봉에는
통일에 대한 염원과 희망이 해마다 한 뼘씩 자라난다."
몇 백 년을 기다려온 애기와의 만남
“애기, 애기는 어디 있는가? 내가 왔소. 내가 돌아왔소.”
남자의 목소리가 애기봉을 메아리친다.
“저, 여기 있어요.”
남자를 발견한 애기가 한달음에 달려가 품에 안긴다.
“왜 이제야 오시었소?”
애기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흐느낀다.
“미안하네. 미안하네.”
남자는 변명할 틈도 없이 애기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는다.
두 사람은 조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자리를 옮긴다.
“저기 좀 보아요.”
여자가 아득한 북녘 땅을 손가락질한다.
“저곳이 송악이군요?”
“그렇지. 조금만 더 올라가면 우리가 사랑을 나누었던 평양이오.”
“지금은 갈 수 없는 곳이죠.”
“그렇소. 통일이 된다면 당신과 다시 만나질 수 있겠지만.”
남자가 애기의 손을 꼭 쥔다. 두 사람은 다시금 서로를 꼭 껴안는다. 애기는 헤어지던 그날을 떠올리며 눈물짓는다.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생이별을 해야 했던 순간, 차라리 애기는 죽음을 택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는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 말을 믿고 매일같이 애기봉 정상에 올라 멀리 북녘을 바라보았다. 죽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영혼은 애기봉을 떠나지 못하고 애타게 남자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늘 그렇게 흘러가는 임진강
“강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군요.”
애기는 멀리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곳으로 눈길을 주었다.
“그렇지. 저쪽 어디에 예전에 나루가 있었는데, 그래서 평양으로 가는 장사치나 관리들이 배로 강을 건너곤 했었지. 세자께서 멀리 심양으로 끌려가실 때도 저 뱃길을 이용했다오.”
“그래요. 생각이 나요. 그때로 강물은 저렇게 조용히 흘렀어요.”
“그래도 자랑스럽소. 비록 남북이 분단돼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해 있을 줄은 몰랐소. 사실 따지고 보면 병자호란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터진 전쟁이 아니오. 우리가 힘만 있었어도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오.”
“맞아요. 후손들이 참 대견해요. 이 작은 땅에서 단시간에 경제대국이 되었다니. 장차 통일이 된다면 더는 소원이 없을 것 같아요. 통일이 되어 당신과 내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들은 전망대를 내려와 주차장이 있는 언덕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기 서 있는 것은 무엇이오?”
남자가 대리석과 시멘트로 된 흰색 구조물을 가리켰다.
“저것은 김포지구 전투전적비랍니다.”
“아, 이곳에서 또 무슨 전쟁이 있었던 것이오?”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래요. 당신도 알다시피 불과 60여 년 전 같은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채 이념 전쟁을 펼쳤어요. 공산주의자들이 점령한 북쪽은 아직도 세상과 문을 닫아건 채 백성들이 가난과 싸우며 통일의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지요.”
“당신은 그 전쟁을 모두 보았겠구려.”
“맞아요. 이곳에서 용감한 해병 젊은이들이 적과 싸우다가 죽어갔어요.”
애기는 다시 한 번 눈시울을 붉히며 아득히 생각에 잠겼다. 60여 년 전, 지금처럼 초록이 싱그럽던 어느 날, 탱크로 무장한 북녘의 젊은이들이 예고도 없이 남쪽으로 몰아쳤다. 임진강은 서울 사수를 위한 방어선이었고 국군과 공산군은 밀고 밀리는 전투 속에 애기봉을 사수하기 위해 싸웠다. 그중에서도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의 선봉에 섰던 해병 제1연대 예하 제3대대는 애기봉에서 서울로의 반격을 시도하려던 적을 과감히 소탕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1.4후퇴의 와중인 51년 3월부터 휴전까지 기간에는 해병 독립 제5대대가 이곳에 배치되어 한강을 사이에 두고 중공군과 대치하면서 한강 넘어 개풍군 및 개성 등으로 침투하였다. 당시 월암리 전투를 비롯한 50여 회의 작전을 수행함으로써 민족의 젖줄인 한강을 사수하고 이 땅을 지켰다.
"꼭 돌아온다는 말, 다시 만나자는 말,
수많은 약속의 말이 오가는 한강의 제1류 임진강.
봉오리에서 지고 말았던 그 약속들이
이제는 노란 들꽃처럼 활짝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그뿐만이 아니에요.”
애기는 한 서린 눈으로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어디 그날의 전쟁뿐이었겠어요. 더 가까이는 신미양요와 병인양요 때도, 멀리로는 몽고와 항쟁을 할 때도, 수나라와 당나라가 쳐들어 올 때도 이곳은 늘 민족의 운명을 건 격전장이 되곤 했어요. 강을 장악하면 배를 이용해 곧장 한강으로 진입할 수 있었으니까요.”
남자는 혀를 끌끌 찼다.
“당신 말이 맞소.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민족의 수난과 함께 하는 강이 아니라 민족이 세계로 뻗어가는 물길이 되어야 할 텐데, 저 강물을 통해 서해로 나가 태평양을 건너고 대서양을 가로질러 우리의 국력이 뻗어가는 그런 강이 되었으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저녁이 다가왔다.
두 사람이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애기봉 정상으로 올라가 석양을 바라보며 다시금 포옹을 나누었다. 애기는 남자에게 언제 다시 돌아올지 묻지 않았다. 모든 걸 시간이 해결해 주리란 걸 서로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번 일어난 역사의 강물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라고, 오늘도 말없이 흘러가는 조강 물결이 그들에게 속삭이고 있다.
“몸 건강하세요.”
“당신도 이제 편안히 쉬시구려.”
“그래요, 당신도…….”
남자는 석양을 등진 채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왔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며 애기는 밤이 깊도록 손을 흔들었다.
<주변관광지>
* 김포국제조각공원 031-980-2980
* 문수산산림욕장 031-980-2966
* 대명포구 횟타운 031-988-6494
* 덕포진 031-980-2965
* 다도박물관 031-998-1000
* 애기봉(김포) 031-988-6128
* 글, 사진제공 : 「강,이야기를 품다_한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