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정열의 땅, 이베리아 반도 여행 09. [태양처럼 정렬적인 매혹의 도시, 세비야 -2부]

행복나그네2011.10.04
조회16

 

  

 

이슬람과 카톨릭이 공존하는 카테드랄과 알카사르

 

세비야의 담배공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 시내 중심부로 들어선다. 어느덧 뜨거운 안달루시아의 태양볕 아래 목덜미가 그을리고,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습도는 낮으나, 태양볕이 워낙 뜨겁고, 햇볕이 강해 피부가 검게 그을리고, 뜨근 뜨근해진다. 아마도 이 지역 사람들은 선글라스와 모자가 없다면 외출하기 어려울 것 같다. 세비야 미녀들의 멋진 갈색 피부 역시 이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태양볕 탓이리라. 매일 구름 낀 희뿌연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서유럽 사람들이 바캉스 시즌 때마다 스페인 남부지방으로 몰려드는 이유를 이제야 알 듯 하다. 또한, 스페인이 세계 3대 관광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안달루시아의 뜨거운 태양볕이 한 몫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나 시내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카테드랄은 일반 성당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대교구를 책임지는 주교좌 성당금 이상을 카테드랄이라고 부른다. 서울로 치면, 명동성당이 카테드랄인 셈이다. 그런 만큼 성당의 위엄이나 규모 역시 "대성당"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일반 성당보다는 웅장하고 화려하다. 특히나, 세비야의 카테드랄은 로마의 싼 삐에뜨로 성당,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과 더불어 세계 3대 성당으로 손꼽힐 정도로 규모가 크고,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당연히 스페인에서는 가장 큰 성당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세비야의 카테드랄은 과거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15세기 이슬람 세력을 물리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던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고딕양식의 성당을 지었다. 이 대성당의 한 모퉁이에는 약 100미터 높이의 종루가 서 있는데, 바로 히랄다 탑이다. 이 히랄다 탑의 건축양식은 기존의 고딕양식과는 다르게 매우 독특하다. 이 히랄다 탑은 12세기 말 이슬람 교도였던 알모아데 족이 세운 것으로 원래는 이슬람 사원의 첨탑인 미나레트였다. 이후에 기독교도가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상당을 지을 때, 다행히도 이 첨탑만은 허물지 않고 남겨두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고딕 양식의 카톨릭 성당과 이슬람 양식의 히랄다 탑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그 독특한 아름다움이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서로 다른 문화와 건축 양식의 피조물들이 이렇게 하나의 공간에 공존하고 있다니,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방은 과거 이슬람 세력과 카톨릭 세력간의 치열한 공방이 있던 곳이라 그런지 이처럼 이질적인 문명간의 만남에서 탄생한 복합적인 건축 양식이 많이 남아 있다. 다음 목적지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 역시 그러한 건축 양식 중 하나인데, 그 만큼 문화적 가치와 예술적 아름다움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처럼 이질적인 두 문명 간의 만남에서 탄생한 독특한 문화유산은 흔치 않은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100미터 높이의 히랄다 탑을 올라가 보기로 했다. 탑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탑의 중앙 기둥을 나선형으로 돌아가며 오르막으로 되어 있는 경사면을 약 20~3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중간 정도 올라갔을 즈음, 나는 온 몸이 땀으로 젖어 버렸다. 하지만, 탑 꼭대기에서 바라보게 될 세비야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며, 꼭 참고 한 걸음 한 걸음 힘겹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탑의 꼭대기에 도달하니, 과연 태양처럼 뜨거운 정열의 도시, 세비야의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저만치 과달끼비르 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그 강변에 자리잡은 황금의 탑이 안달루시아의 강렬한 오후 태양볕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그리고, 바로 눈 앞에는 카테드랄의 높은 첨탑들이 제멋대로 삐죽 삐죽 솟아 있는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조금 힘들지만, 아름다운 세비야의 풍경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기에 꼭 한 번 올라가 볼 만한 곳이다.

 

 

히랄다 탑에서 내려와 이제 카테드랄과 바로 인접해 있는 알카사르에 가 보기로 했다.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이 알카사르는 본래 이슬람 교도인 알모아데족의 요새 역할을 하던 곳이다. 1248년에 카톨릭 세력이 이슬람 교도로부터 세비야를 탈환하면서 개축되었고, 그 이후 시대별로 계속된 개축공사로 인하여 이슬람, 무데하르,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되어 매우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유럽의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독특한 건축 양식이다. 인류의 문명과 역사는 서로 다른 문명끼리 충돌하면서 복합되고, 그 과정을 반복하며 새로운 문명과 역사를 만들어 낸다고 했던가? 그 역사의 증거를 이 곳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 같다.

 

 

 

알카사르를 구경하고 나니, 어느새 버스터미널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이 아름다운 세비야를 충분히 둘러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나, 시간이 되었으니 떠나야 하는 것이 나그네의 운명이다. 스페인 미녀들의 도시, 안달루시아의 태양, 오페라 <카르멘>과 <세비야의 이발사>, 플라멩고, 그리고, 이슬람 문화와 카톨릭 문화가 복합된 독특한 건축양식들,... 이렇게 볼거리와 이야기 거리가 많은 세비야를 남겨 두고 떠나야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세비야를 조금이라도 더 구경하고 싶어 버스터미널에서 시내로 들어올 때와 다른 길로 돌아서 가 보기로 했다. 아까 히랄다 탑에서 보았던 과달끼비르강 방향으로 크게 돌아서 강변에 서 있는 황금의 탑을 구경하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세비야에서 하룻밤 머물 수 있다면, 플라멩고 공연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무래도 플라멩고의 본고장이니, 플라멩고를 빼놓고 세비야를 떠난다면 앙꼬 없는 찐빵을 먹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는 앙꼬 없는 찐빵을 먹은 것처럼 무언가 허전함을 남겨둔채 이제 그라나다로 떠난다. 언제나 모든 이별의 순간에는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 법. 리스본에서의 버스표 매진 사건이 오버랩되며, 그 안타까운 마음이 더해진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