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문학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

유성2011.10.05
조회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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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정치색깔을 배제하고 오늘은 일본 문학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굳이 왜 일본문학이라고 하신다면 제가 하고있는일과 연관성이 있어서라고 말씀드려야겠네요

 

일본문학은 오랜 역사를 지니면서 뚜렷한 특색을 갖추고 있습니다

일본의국민성은 날카로운 직관과 섬세한 감각, 솜씨있는 재능으로 세부에 충실한 잔재주와 섬세한 작품을 꾸미는 데 장기를 보여 왔고 또 일본은 4계절의 자연변화가 풍부하여 자연과 친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감정이 풍부하다고합니다

그와 함께 대륙에서 떨어진 섬나라로서 일찍부터 균질적인 인종에 의해 국가를 만들고 중국대륙과 한반도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우미성을 이상으로 하는 전통을 형성하였죠


일본문학은 소형이고 정교하며 정서적입니다. 한 방울의 물에서도 우주를 파악한다는 함축을 존중하기 때문에 단형시(短型詩)를 다듬어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반면에 논리적구성적이 못 되며 장대성·격렬성·엄격성에 뒤지죠

장편소설은 평면적이고 장면을 늘어놓기만 한 파노라마식 결함이 눈에 띄는데다 불교의 영향을 받았던 고대 후기에서 중세문문학은 삶의 기쁨을 노래하기보다도 항상 죽음을 마주하고 죽음을 느끼는 어둠이 강렬합니다


무사의 지배하에 자유가 억압된 신흥 근세 서민문학은 물질욕의 추구에서만 배출구를 찾았고, 이어 안이한 체념과 엷은 웃음의 희작으로 전락하였습니다

 메이지시대 이후의 문학은 서양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 결함을 극복하기 위해 서구문학의 정신이나 양식을 받아들여 동서양의 조화를 꾀하면서, 발전·변모하였 습니다

 

전쟁하에서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했던 구(舊)프롤레타리아계의 작가 ·평론가는 훨씬 솔직하게 해방과 혁명에의 가능성을 믿고 재빨리 신일본문학회를 결성하여(1945) 기관지 《신일본문학》을 발행, ‘민주주의문학’의 기치를 들고 혁명문학의 전통을 계승하려 했습니다

신일본문학회의 중심이 된 인물은 미야모토 유리코[宮本百合子] ·나카노 시게하루 ·구라하라 고레히토·구보카와 쓰루지로[窪川鶴次郞] 등인데, 1950년에는 일본공산당의 내부 분열로 이른바 ‘인민문학’이 파생하는 등 운동의 진전이 반드시 평탄하지만은 않았다고합니다

 

 

부흥한 저널리즘이 우선 작품을 구한 것은 전쟁하에서 고고한 세계를 지킨 노대가들(시가 나오야,나가이 가후)이 있었고 이어서 훨씬 어려운 새월을 지낸 쇼와연대의 작가들도 창작활동을 재개하였습니다

패전이라는 심가한 감개를 바닥에 가라앉힌 작품들도 나왔으며 68년에는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센바즈루) 영광을 안기도했습니다

[사양]의 다자이 오사무는 당시 신희작파라 불렸는데 전후의 데카당스를 반영하며 굴절된 비평정신으로 일관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소개할 일본 작가는 다자이오사무입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의 대표적인 허구의 명인이며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입니다

본명이 쓰시마 슈지(津島修治)로, 쇼와(昭和) 10년대(1935-1945)를 대표하는 문학인 전후 무뢰파(혼란, 퇴폐, 허탈을 표방하는 작가들로 다자이, 이시가와 준<石川淳>, 이토 세이(伊藤整>, 오다 시쿠노스케<小田作之助>,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 등)의 선두를 달렸던 작가입니다

일본 근대 문학사에서 뛰어난 독자성과 일본 문학으로서는 보기 드문 보편성과 국제성을 가진다는 것을 그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을 묘사하는 글을 썼으나 사실을 사실로 묘사한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을 것입니다 직관적으로 번뜩이는 사상의 재미와 그 표현의 정교함은 다자이의 작품을 읽을 때 놓칠 수 없는 점이며, 그의 중요한 매력이기도 합니다   1909년 아오모리 현출신으로 지방 유지의 집에서 부유하게 자랐으며 형들의 영향으로 중학교 까지는 교내 수석을 차지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고합니다 고등학교 진학 후 연극에 심취, 결국 동경제국대학 불문학과를 재수로 입학하였으나 입학 후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느라 수업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았으며  애인과의 불륜 등으로 동경대를 졸업하지 못해서 가족들의 신뢰와 사랑을 잃는 것이 두려워 동거하던 한 술집의 급여와 호수에서 동반자살을 시도하였으나 혼자 살아남아 그때의 충격과 자신의 부유한 집안배경을 평생 죄의식으로 안고 살아갑니다  그 이후 1948년 사망시까지 총 다섯번의 자살을 기도하였고 1935년《역행》이 제1회 아쿠타가와상후보에 올랐으나 차석에 그쳤습니다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오를 당시, 다자이 본인과 스승인 사토 하루오는 道化の華란 작품을 후보로 올리고 싶어하였으나, 선고 후보위원인 카와바타 야스나리가 탐탁치 않아 하여 逆行으로 후보 작품이 변경되었다고합니다 결혼후 안정된 삶에서 《부악백경》, 《사양》등의 많은 작품을 집필하여 그 무렵 일본의 비주류 전위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였으나, [인간실격]을 마무리한 직후 1948년 39세의 나이로 타마가와 죠스이에서 애인과 동반 자살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인간실격]은 신초(新潮)문고본으로만 일본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판매수를 기록하였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사양           뷔욘의 아내       인간 실격     그외 [장미와미소][버찌][여학생][동경팔경][달려라 메로스][츠가루][석별] 등등   그의 음침하고 자학적이며 도화적 정신과 절묘한 표현으로 인간의위선을 고발하는  다자이 오사무의 문학세계에 빠져보는건 어떠십니까